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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486화 (486/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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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6화 4장. 영웅들의 시대가 도래하다(2)

“무량수불!”

참혹한 전장을 바라보는 현소 진인의 눈가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도문인 화산파에서 한평생을 보낸 현소 진인이었다. 이렇게 참혹한 전장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일차 정마대전 당시엔 학도사의 신분이라서 화산파를 벗어날 수 없었고, 이차 정마대전이 발발한 후에는 화산파에서 후학을 양성하는 데만 힘을 썼다.

특히 이곳에 오기 전까지 그가 가장 심혈을 기울인 것은 새로 받아들인 제자인 남서일에게 지식을 전수해 주는 것이었다.

남서일은 아직 어린 떡잎이었다. 세심하게 신경을 써서 보살펴야 했다. 하지만 남서일만 보살피기엔 강호의 상황이 너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강호의 운명을 건 대회전(大會戰)이 화산파가 있는 섬서성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그에겐 좋든 싫든 대회전에 참여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사숙은 이곳에만 계십시오. 절대 움직이시면 안 됩니다.”

화산파의 장문인인 운경이 현소 진인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그러고도 안심이 되지 않았는지 몇몇 일대제자들에게도 명령을 내렸다.

“너희들은 반드시 사숙을 지켜라. 설령 목숨을 던져서라도.”

“예! 장문인.”

“걱정하지 마십시오.”

지목받은 일대제자들이 힘껏 대답했다.

그제야 운경은 안심하고 다른 제자들과 함께 전장에 뛰어들 수 있었다.

그동안은 화산파를 운영하고, 제자들을 양성하느라 직접 싸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난 일 년 동안 화산파를 완벽하게 정비하고, 미래를 위한 동량들까지 어느 정도 키워 냈다. 거기에 현소 진인까지 있다. 그만 건재하다면 설령 이 싸움에서 자신이 죽는다고 할지라도 화산파는 절대 꺾이지 않고 다시 부흥할 수 있을 것이다.

“화산파가 살아 있음을 저들에게 보여 주자. 마교를 중원에서 몰아내자.”

“와아아!”

운경의 외침에 화산파의 무인들이 함성을 내지르며 전장으로 뛰어들었다.

화산파 제자들의 활약은 그야말로 눈이 부셨다.

그들이 검을 휘두를 때마다 마교의 무인들이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지난 수년 동안 이를 악물고 독기를 키워 온 화산파의 무인들이었다.

그들은 몇 년 전에 이미 본산을 짓밟히고 전대의 장문인과 장로들, 그리고 수많은 사형제들을 잃었다. 그들은 단 하루도 그날의 치욕과 울분을 잊은 적이 없었다.

쉬가악!

그들은 그야말로 전력을 다해 검공을 펼쳤다.

“크아악!”

“도사들을 막아라.”

화산파의 개입에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던 오행천살진에 파탄이 생겨났다.

운경과 명경이 이끄는 화산파의 무인들이 동쪽을 유린할 때 서쪽에서는 고일원이 이끄는 종남파가 날뛰고 있었다.

종남파 역시 화산파처럼 마교에 씻을 수 없는 원한을 갖고 있었다. 이번 기회를 놓친다면 마교에 복수할 기회가 영원이 찾아오지 않을 거란 사실을 알기에 그들은 정말 최선을 다해 싸웠다.

화산파와 종남파의 개입으로 창천맹의 무인들은 숨을 돌릴 수 있게 됐다.

초연운이 소리쳤다.

“화산파와 종남파가 우리와 함께한다. 우리는 이길 수 있다.”

“우와아아!”

“이길 수 있다.”

바람 앞에 꺼져 가던 촛불처럼 사그라지던 전의가 다시 살아났다. 창천맹의 무인들은 다시 힘을 내서 마교와 맞서 싸웠다.

“크윽!”

“제기랄!”

이렇게 되자 당황한 것은 오히려 마교 측 무인들이었다.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상황이 역전되자 당황스러움은 배가되었다.

마치 철천지원수라도 되는 것처럼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창천맹 무인들의 기세에 마교 무인들의 기가 짓눌렸다.

이렇게 되자 당황한 것은 마교의 수뇌부들이었다. 마교의 절대고수들은 대부분 격에 맞는 상대와 싸우고 있었다.

화산파와 종남파를 견제할 무인이 부족했다. 특히 화산파의 명경 같은 고수를 상대할 만한 고수가.

명경은 정말 미친 사람처럼 날뛰고 있었다. 화산파의 도사라고 볼 수 없는 그의 잔혹한 손속에 수많은 마교의 고수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지고 있었다.

그의 손속이 얼마나 잔혹한지 마교의 고수들마저 공포에 질려 접근하기를 꺼려할 정도였다.

“군사! 이대로 가다가는 희생이 너무 큽니다. 일단 병력을 뒤로 물려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너무 많은 희생자가 나오고 있습니다.”

몇몇 무인들이 상한천에게 의견을 제시했다. 하지만 대답은 상한천이 아닌 척관혈의 입에서 나왔다.

“후퇴는 없다.”

“교주님?”

“신교를 위한 희생은 오히려 영광스러운 것. 죽어서도 본교의 부흥을 위한 거름이 될 수 있다면 그들도 기뻐할 것이다.”

그의 광기 어린 말에 모두가 몸을 떨었다.

척관혈이 광포한 눈으로 전장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얼마가 죽든 상관없다. 희생자가 얼마나 나오든 오늘 이 지루한 전쟁을 반드시 끝낼 것이다. 군사.”

“예! 교주님.”

“대비가 되어 있다고 했지?”

“그렇습니다.”

“그럼 시행하도록.”

“존명!”

상한천이 힘찬 대답과 함께 조그만 흑기를 들었다. 그러자 뒤에 있던 무인이 커다란 흑색 깃발을 힘차게 휘둘렀다.

“오래 기다렸다.”

“드디어 우리 차례군.”

그 순간 전장 외곽에서 한 무리의 무인들이 나타났다. 그들의 정체를 알아본 마교의 무인들이 외쳤다.

“호교원이다.”

“십삼지파의 무인들도 있다.”

“와아아!”

그들의 말처럼 나타난 이들은 위강휘가 이끄는 호교원의 원로들과 어지간해서는 모습을 드러내는 일이 거의 없는 십삼지파의 일부 무인들이었다.

그들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화산파와 종남파의 무인들을 향해 달려갔다.

“명경, 너는 내 몫이다.”

유령마제 위강휘가 명경을 목표로 잡고 달려들었다.

명경이 입술을 질겅 깨물며 소리쳤다.

“기다렸다.”

상대가 가늠할 수 없는 고수라는 것은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레 겁을 집어먹고 물러날 생각도 없었다.

지난 일 년 동안 그는 정말 죽고 싶은 생각이 절로 들 만큼 고된 수련을 했다. 거기에 담호에게 받은 단련까지 더해졌다.

상대가 전대의 고수라고 하지만, 자신 역시 고된 수련을 통해 강해졌다. 자신이 겁을 집어먹고 물러나면 그만큼 화산파의 희생이 커질 터였다.

“챠아앗!”

명경은 혼신의 힘을 다해 위강휘와 부딪쳐 갔다.

콰아앙!

굉음이 터지며 일대가 초토화되었다.

전장 곳곳에서 그런 싸움이 펼쳐지고 있었다.

호교원의 노고수들과 십삼지파의 참전은 잠시 창천맹 쪽으로 기울어져 가던 전황을 다시 마교에 유리하게 만들었다.

그야말로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난전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로써 창천맹이나 마교 모두 숨겨 두었던 패를 모두 끄집어냈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상한천의 의도대로 진행되고 있었다.

“더 이상 숨겨진 패가 없다면 강한 쪽이 이긴다.”

상한천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승리를 자신하는 것이다.

화산파와 종남파의 참전으로 저들은 숨겨진 패를 모두 소모했다. 그것은 이쪽도 마찬가지였지만, 기본적으로 전력은 이쪽이 더 월등했다. 그 어떤 신산묘수로도 이 정도 전력의 차이를 메울 수는 없었다.

상한천이 슬쩍 척관혈을 바라봤다.

마교가 승기를 잡아 가고 있음에도 척관혈은 심기가 불편한지 볼을 씰룩이고 있었다.

그때였다.

“교주님!”

갑자기 하얀 그림자가 나타났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조리 백색 일색인 이는 바로 백익멸왕 노군상이었다. 그의 곁에는 낯익은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바로 마모 단운향이었다.

노군상이 부복하며 말했다.

“마모 님을 찾아서 모시고 왔습니다.”

순간 척관혈의 눈빛이 더욱 광포하게 일렁였다.

“운향!”

“교주님!”

“왜 그런 것이냐? 왜 제를 지낸 후 사라진 것이냐?”

“그게…… 저도 모르겠습니다.”

“모른다?”

척관혈의 눈빛이 더욱 사납게 일렁였다. 그러자 단운향이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정말 모르겠습니다. 제를 끝낸 후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제 앞에 멸왕이 나타났더군요.”

“기억을 못 한다는 건가? 혈노에 관한 것도.”

“죄송합니다. 교주님. 정말 저는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습니다.”

단운향의 눈엔 어느새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적들을 상대할 때는 그렇게 독한 면모를 보이던 여인이 척관혈 앞에서는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었다.

그녀는 진심으로 혼란스러운 모습이었다. 그런 그녀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척관혈의 마음이 조금은 약해졌다.

“그에 관한 일은 오늘 대전이 끝난 후에 심문하겠다. 그때까지 이곳에 얌전히 있도록 하라.”

“알겠……어요.”

단운향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척관혈은 이내 다시 전장으로 시선을 던졌다.

전장은 혼돈 그 자체였다.

양측의 전력이 모두 투입된 싸움이었다. 당연히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할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양측 모두 피해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져만 갔다. 창천맹의 무인들이 무참히 죽어 나갔지만, 마교의 피해 역시 만만치 않았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죽었는지 혈향이 강하게 후각을 자극했다. 역한 비린내에 경험이 많은 무인들조차 얼굴을 찌푸릴 정도였다.

전쟁을 지휘하는 상한천조차 역겨움에 속에 있는 모든 것을 토할 것 같았다. 그래도 꾹꾹 눌러 참았다.

그는 군사였다. 이 전쟁을 지휘하는 존재였다.

그가 흔들리면 신교 전체가 흔들렸다.

신교의 무인들이 죽어 나가는 것은 가슴 아팠지만, 신교 천하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희생이라 생각했다.

‘오늘의 싸움에서 승리를 거둔다면 더 이상 본교를 마교라 부르지 못할 것이다. 신교, 그래! 오늘은 신교로 정식 출범하는 뜻깊은 날이 될 것이다.’

그 영광스러운 역사의 문을 자신의 손으로 열어젖히는 것이다.

상한천은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실제로 마교는 창천맹을 압도하고 있었다.

기세 좋게 싸움에 뛰어들었던 화산파와 종남파도 호교원과 십삼지파의 공격에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그토록 맹위를 떨치던 초연운도 피투성이가 되었고, 귀신같은 검공으로 마교의 무인들을 도륙하던 해소월도 많은 상처를 입고 움직임이 눈에 띄게 둔해져 있었다. 다른 무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소천은 혈인이 되다시피 했고, 청운이나 십칠 인의 결사대 역시 크고 작은 상처를 입은 채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오늘까지 더하면 모두 여섯 차례나 마교와 격돌했던 그들이었다. 제아무리 그들의 내공이 고강하다고 하지만 체력이 고갈되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허억! 허억!”

“흐읍!”

그들은 애써 숨을 고르며 불순해진 진기를 다스리려 노력했다. 하지만 마교의 무인들은 그들에게 시간을 주지 않고 공격했다.

“크아악!”

결국 십칠 인의 결사대 중 한 명이 목숨을 잃고 말았다.

그의 죽음을 시작으로 결사대가 죽어 나갔다. 그들이 흘린 피가 대지를 붉게 적셨다.

“안 돼!”

그 모습을 멀리서 본 초연운이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악양을 탈출할 때부터 함께했기에 누구보다 각별한 정이 쌓인 그들이었다. 그들의 죽음을 보면서도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이 초연운을 비통하게 만들었다.

초연운은 당장이라도 그들에게 달려가고 싶었다. 하지만 마교의 고수들 다섯 명이 그의 발목을 붙잡고 있었다. 하나같이 녹록지 않은 이들이라 쉽게 뿌리칠 수 없었다.

초연운은 검율천을 떠올렸다.

‘왜 아직 움직이지 않는 거지?’

그는 분명히 최적의 시기에 움직인다고 했다. 그를 완전히 믿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지금쯤이면 움직일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초연운의 예상과 달리 그는 어떠한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속은 건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초연운은 이내 고개를 저어 의심을 털어 냈다.

한번 의심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었다. 지금은 의심을 하기보다는 믿어야 할 때였다.

그러나 그의 마음과 달리 전황은 너무나 불리했다. 창천맹의 무인들은 밀리고 밀려 또다시 성벽 아래까지 몰렸다.

차차창!

“크헙!”

“악!”

수많은 이들이 비명을 지르며 죽어 나갔다. 그들의 몸에서 튄 피가 성벽을 붉게 물들였다.

창천맹의 모두가 ‘절망’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더 이상 솟아날 구멍이 없다고 생각하던 그때였다.

두두두!

갑자기 지축이 흔들렸다.

비단 초연운만 그렇게 느낀 것이 아니었다. 창천맹의 무인들도, 그들을 거세게 몰아붙이던 마교의 무인들도 발을 타고 올라오는 강렬한 진동을 느꼈다.

“뭐, 뭐냐? 마교의 지원 병력인가?”

“또 합류할 이들이 있나?”

그렇지 않아도 절망적이던 창천맹 무인들의 안색은 시커멓게 변했고, 마교 무인들의 얼굴엔 화색이 돌았다.

이 정도의 진동이라면 엄청난 규모의 대병력이 움직여야만 가능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우리가 왔다.”

“마교 놈들을 모조리 쓸어버려라.”

커다란 외침과 함께 마교의 뒤쪽에서 녹의를 입은 사내들이 불쑥불쑥 모습을 드러냈다. 넓은 평원을 온통 녹색으로 물들일 만큼 엄청난 숫자였다.

그들의 선두에 한 여인이 있었다.

호피로 만든 상의를 입은 다갈색 피부의 여인이었다. 그녀의 등 뒤로 보통 사람보다 머리 두 개는 더 커 보이는 거한이 커다란 도끼를 양손에 든 채 서 있었다.

모두가 그들의 정체에 의구심을 표할 때 창천맹에서 커다란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혜령 누나, 일광 형.”

목소리의 주인은 바로 방진보였다.

방진보는 한눈에 그들의 정체를 알아보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바로 황혜령과 묵일광이었으니까.

담호의 동생인 황혜령이 묵일광과 함께 녹림도들을 이끌고 이곳에 나타난 것이다.

두 사람이 데리고 온 녹림도의 수만 무려 오천 명이 넘었다. 비록 개개인의 무위는 창천맹이나 마교의 무인들에 비할 수는 없었지만, 그 숫자만큼은 압도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이런!”

뒤늦게 녹림도들의 등장을 알아차린 상한천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의 계획 어디에도 녹림의 등장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총채주였던 황경문의 죽음으로 녹림은 와해됐다고 생각했다. 모래알 같은 녹림도들의 응집력을 생각하면 두 번 다시 그들이 뭉치기 힘들다고 판단했었다.

황경문만큼 강력한 구심점이 없다면 말이다.

“도대체 누가 구심점이 된 건지? 저 사내? 아니면 계집?”

그때 황혜령이 입을 열었다.

“총채주와 형제들의 원수를 우리 손으로 갚을 차롑니다. 모두 공격하세요.”

“와아아!”

“형제들의 원수를 갚자.”

녹림도가 일제히 마교의 무인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오천 명이 넘는 대병력이 달려드는 모습은 실로 장관이었다. 지축이 흔들리고, 먼지가 하늘 높이 비산했다.

“크아악!”

“아악!”

그토록 거세게 창천맹의 무인들을 몰아치던 마교의 무인들이 앞뒤로 협공을 받고는 속절없이 무너졌다.

황혜령이 그 모습을 차가운 눈으로 바라봤다.

총채가 마교에 짓밟힌 후 그녀는 묵일광과 함께 생존자들을 이끌고 절강성에 있는 장흥채(長興寨)로 피신했다.

그녀와 묵일광이 장홍채에 있다는 소문을 들은 녹림도들이 알음알음 찾아왔다. 처음 장흥채에 합류한 이는 몇 명 되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모두 마교에 형제들을 잃은 이들이었다. 그들은 마교에 씻을 수 없는 원한을 갖고 있었기에 황혜령을 중심으로 똘똘 뭉칠 수 있었다.

전대 총채주의 딸, 거기에 녹림 최강의 무인으로 성장한 묵일광이 함께하고 있었다. 그들보다 강력한 구심점은 존재하지 않았다.

마교가 창천맹을 향해 총공세를 펼친다는 정보를 입수한 황혜령과 묵일광은 그날로 병력을 이끌고 이곳으로 향했다. 비록 거리가 너무 멀어 오늘에서야 도착했지만 말이다.

녹림의 합류로 상황은 반전됐다.

초연운이 목청을 돋우어 소리쳤다.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우리도 힘을 내서 공격하자.”

“와아아아!”

창천맹의 무인들이 함성을 내지르며 마지막 힘을 쥐어짜 냈다.

녹림도들은 그야말로 악귀처럼 마교의 무인들을 잡고 늘어졌다. 비록 무공은 비할 수 없었지만, 그들의 독기는 마교의 무인들을 능가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마교의 무인 한 명에 세 명, 네 명의 녹림도가 달라붙었다. 거기에 창천맹의 무인들까지 합세하니 도저히 당할 재간이 없었다.

“아, 안 돼!”

“으아아!”

결국 견디지 못하고 도주하는 무인들이 나타났다.

처음엔 몇 명 되지 않았지만, 절망이란 감정은 무서운 속도로 일대에 퍼져 나갔다. 위에서 명령을 내리지 않았는데도 도주하는 무인들이 속출했다. 엄격하게 지켜져야 할 군령 체계가 무너진 것이다.

“안 돼!”

그 모습을 본 상한천이 비명과 같은 소리를 질렀다. 한번 군령 체계가 무너지면 다시 엄격하게 세우는 것은 지난한 일이었다. 상한천이 깃발을 휘두르며 명령을 내렸지만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

상한천의 얼굴이 사색이 되어 갈 때였다.

“역시 직접 나서지 않으면 아무것도 되지 않는군.”

스산한 목소리와 함께 광포한 기운이 일대를 짓눌렀다. 뒤돌아보자 척관혈의 몸에서 검은 기운이 촉수처럼 뻗어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교, 교주님?”

“그대에게 실망했다, 군사!”

“죄송합니다. 죽여 주시옵소서. 교주님.”

“이 죄는 전쟁이 끝난 후 물으리라. 저 개미 같은 것들을 모조리 죽이고 난 후.”

쿠우우!

대기가 비명을 지르며 미친 듯이 요동쳤다.

마교의 정점에 서 있는 남자가 검은 폭풍을 휘몰아치며 전장에 뛰어 들어갔다.

콰가가각!

“으아악!”

“켁!”

폭풍에 휩쓸린 모든 것들이 부서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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