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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9화 5장. 개인의 욕망이 천리를 거스른다(2)
그곳은 시간의 흐름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곳이었다.
회색의 공간은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광활하게 펼쳐져 있었고, 그곳에서 시간의 흐름을 인지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아무리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고, 쉴 만한 곳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나무 한 그루, 조그만 개울 하나 보이지 않는 삭막한 풍경은 겨우 붙잡고 있는 이성의 끈조차 놓아 버리게 하기 충분했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그곳에 던져진 순간부터 서서히 미쳐 갔을 것이다. 아무리 정신력이 강한 사람일지라도 그와 같은 곳에 혼자 오래 있다 보면 광기에 침습당하는 것이 당연했다.
실제로 남궁 형제에게도 그런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직 어린 데다가 무공도 미약했기에 정신력이 굳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들이 어찌어찌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곁에서 살뜰히 보살피는 방진보 덕분이었다. 그리고 방진보는 묵묵히 앞길을 헤쳐 나가는 담호의 뒷모습을 보며 힘을 얻고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광활한 공간 속에서 그들은 한낱 먼지나 다름없었다. 그곳에서 빠져나갈 곳을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대한 도전이었다. 하지만 담호는 좌절하지 않았다.
화산에서 내려온 후 그가 행했던 모든 일은 남들이 알면 미쳤다고 할 만한 불가능한 일들의 연속이었다. 그는 이제까지 남들이 불가능하다고 한 모든 일들과 편견의 벽을 연속으로 깨부수며 이곳까지 왔다.
도전한다면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있지만, 주저앉는다면 그 미약한 가능성마저 사라진다는 사실을 담호는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담호는 좌절하지 않고 걸었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그렇게 걸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도 인지하지 못했다. 체감상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것 같았다. 그런데도 배가 전혀 고프지 않다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대신 정신적인 허기가 강하게 느껴졌다.
먹지 않아도 숨 쉬고, 살아가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대신 정신의 공허감이 괴롭히는 것이다.
이쯤 되자 남궁형제가 서서히 미쳐 갔다. 아무리 남궁세가의 비전 무공을 익히고 있다고 해도 그들은 아직 어렸다. 정신적으로 덜 성숙했기에 스스로를 제어하는 법을 알지 못했다. 당연히 한계에 일찍 봉착할 수밖에 없었다.
그다음 증상이 나타난 이가 방진보였다. 담호를 따라다니며 정신력이 굳건해진 방진보였지만, 무간지옥에 갇혀 있는 시간이 오래되자 조금씩 정신력이 마모되기 시작한 것이다.
아마 그때쯤이었을 것이다. 담호의 감각이 이상하리만큼 예리하게 일어선 것은. 그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담호는 무간지옥을 빠져나가는 것에만 관심을 뒀었지, 무간지옥 자체엔 신경을 쓰지 않았었다. 하지만 신경이 예리하게 일어서자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여러 가지 흐름이 느껴졌다.
격한 흐름, 유한 흐름, 폭발적인 흐름, 은은한 흐름. 그 종류도 다양했고, 느낌도 각기 달랐다.
담호가 분류한 흐름은 모두 여섯 가지였다. 그리고 여섯 가지의 흐름이 향하는 곳도 각기 달랐다.
담호는 그중 가장 가깝게 느껴지는 흐름의 종착지를 향했다. 얼마나 걸었는지 몰랐다. 며칠일 수도 있었고, 몇 달일 수도 있었다. 그렇게 힘들게 걸어 도착한 곳에서 거대한 문을 발견했다.
사실 그것이 문인지도 알 수 없었다. 흐름이 뭉쳐 문 형상을 하고 있기에 편의상 그렇게 불렀을 뿐이다.
그곳에서 기산월을 발견했다.
흐름의 문 한가운데 있었기 때문인지 몰라도 기산월은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지 않는 공간에서도 수염과 머리카락이 덥수룩하게 자라나 있었다.
기산월은 흐름이 뭉쳐 있는 문 한가운데 갇혀서 미쳐 가고 있었다. 그는 뜻을 알 수 없는 말을 연신 중얼거리고 있었다.
방진보가 먼저 기산월을 구하려 했다. 하지만 흐름의 강한 힘에 잡아먹혀 오히려 문에 갇힐 뻔했다. 다행히 담호가 늦지 않게 방진보를 구해 냈기에 무사할 수 있었다.
잠시나마 흐름에 잡아먹혔던 방진보는 정신이 혼란스러운지 횡설수설을 했다. 하지만 제정신을 차린 후에는 언제 그런 소리를 했는지조차 잊어버렸다.
끝이 보이지 않는 무한 공간인 이곳을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그들보다 오래 이곳에 있었던 기산월이 반드시 필요했다. 결국 담호는 직접 흐름의 문으로 들어갔다.
담호는 거센 압력과 저항을 느꼈다. 마치 문 자체가 의지가 있어 담호라는 존재를 부인이라도 하듯이 거세게 밀어냈다. 암혼심공을 극도로 끌어 올렸음에도 담호는 쉽게 전진하지 못하고 밀려났다. 오히려 방진보가 그보다 더 많이 전진했었을 정도였다.
그제야 담호는 깨달았다. 그가 문이라고 규정한 곳은 힘이 강한 자일수록 오히려 강한 힘으로 밀어낸다는 사실을. 담호와 같이 강대한 힘을 가진 자일수록 더욱 거센 힘으로 몰아붙인다는 사실을.
기산월이 문 한가운데 갇혀 있었던 것은 그의 힘이 어중간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진즉에 밀려났거나, 아니면 아예 잡아먹혔을 것이다.
마치 공간 자체가 담호와 같은 힘을 지닌 자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더욱 전진하기 힘들었다. 그래도 담호는 포기하지 않았다.
담호는 매일같이 밀려나고, 전진하기를 반복했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싸움이었다. 담호는 만신창이가 되어 갔다. 하지만 끝없는 도전이 담호에게 상처만 준 것은 아니었다. 압력에 저항하는 요령과 힘을 조금씩 터득하게 된 것이다.
수백 번의 도전 끝에 담호는 결국 기산월이 갇혀 있는 곳까지 접근할 수 있었다. 그 순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스쳐 지나가는 흐름의 편린 속에서 담호는 무언가를 봤다. 전혀 현실적이지 않은 광경이었기에 착각이라고 생각할 만도 했다. 하지만 단순히 환상이나 꿈이라고 치부하기엔 너무나 생생했다.
어지간한 일에는 절대 동요하는 법이 없는 담호의 심장이 크게 요동칠 정도로.
새로운 세계, 낯선 공간, 그리고 이질적인 존재들.
담호가 이제까지 쌓아 온 가치관과 지식 세계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놀라운 광경이 흐름의 편린 속에 담겨 있었다.
만일 담호가 암혼심공을 익히지 않았다면, 그래서 정신력이 굳건하지 않았다면 흐름의 편린에 함몰되어 기산월과 같은 꼴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담호는 결국 기산월을 구할 수 있었다.
기산월은 정상이 아니었다. 흐름의 편린에 함몰되어 정신이 헝클어지고 만 것이다. 그는 미쳐 날뛰었고, 담호에 의해 제압됐다. 그리고 정신을 되찾을 수 있었다.
제정신을 차리고도 기산월은 한참이나 움직이지 못했다. 그는 심신이 극도로 피폐해져 있었다. 그가 기력을 다시 되찾기까지는 실로 오랜 시간이 걸렸다.
기력을 되찾은 후에도 기산월은 쉽게 움직이지 못했다. 흐름의 편린 속에 함몰되었던 기억이 정신에도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기산월은 방진보의 극진한 보살핌 속에서 정신을 추슬렀다. 그 과정에서 진짜 자신의 기억과 흐름의 편린에 함몰되어 경험했던 가짜 기억을 정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 그곳, 무간지옥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거기까지가 담호의 기억이었다.
무간지옥을 빠져나온 이후 몇 번 떠올린 적이 있었지만, 이렇게 생생하게 되살아나긴 이번이 처음이었다.
담호는 이런 현상이 결코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란 것을 알고 있었다. 정상적인 상황 하에서는 말이다.
‘꿈이군.’
꿈이라는 것을 인지한 순간 담호가 눈을 번쩍 떴다. 그러자 별빛 한 점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야공이 눈에 들어왔다.
그가 있는 곳은 이름 모를 야산이었다. 어젯밤 늦게 노숙을 했고, 바위에 등을 기댄 채 잠깐 잠을 청했었다. 그때는 분명 하늘에 별들이 가득했었다.
“사술(邪術)!”
담호는 자신이 느낀 위화감의 실체를 순식간에 알아차렸다.
어느새 그가 있는 야산에 사기(邪氣)가 가득했다. 사기가 그에게 영향을 끼쳐 옛 기억을 끄집어낸 것이 분명했다.
담호가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하늘을 뒤덮고 있는 사기가 출렁였다.
갑자기 담호가 오른발을 힘차게 굴렀다. 대진각을 펼친 것이다.
쿠웅!
굉음과 함께 바닥이 갈라지고 암반이 성벽처럼 일어나 담호를 에워쌌다.
“크흑!”
순간 암흑 속에서 누군가의 갑갑한 신음성이 터져 나왔다.
담호가 대지를 박찼다.
충보에 이어 파성추가 펼쳐졌다.
쾅!
“커헉!”
굉음과 함께 누군가의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주먹에서 묵직한 느낌이 전해져 왔다. 암흑 속에 숨어 있던 상대에 타격을 준 것이다. 하지만 겨우 그 정도에서 멈추면 담호가 아니었다.
쩌엉!
단양타가 터지면서 공기가 요동을 쳤다.
“제기랄!”
순간 어둠 속에 숨어 있던 미지의 존재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튀어나왔다.
보통 사람 허리밖에 오지 않는 난쟁이였다. 하지만 눈매가 날카롭고, 입매가 얄팍한 것이 보통 독해 보이는 인상이 아니었다.
그는 입가에 피를 흘리며 담호를 노려봤다.
“놈! 잘도 혈륜환몽술(血輪幻夢術)에서 벗어났구나. 버러지만도…… 커헉!”
쾅!
그는 끝까지 말을 잇지 못했다. 다시 한 번 담호의 파성추가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설마 담호가 다시 공격할 줄 예상하지 못했던 난쟁이는 큰 충격을 입고 피를 토했다.
순식간에 그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려 갔다.
‘미친!’
보통 사람은 대개 이런 경우에 정체를 묻는다거나, 대화를 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담호는 그런 보통 사람의 범주에서 한참이나 벗어나 있었다.
그는 난쟁이가 자신에게 사술을 펼친 이유를 묻지 않았다. 정체를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어떤 이유에서건 자신을 건드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상대를 격살하려 했다. 난쟁이는 이런 상대를 처음 경험했다. 그래서 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는 천사교의 사대사자 중 한 명인 환마사자(幻魔使者)였다. 사술과 환술의 대가였기에 적과 직접 싸울 일도 없었고, 타격을 받을 일은 더더욱 없었다.
혹시라도 담호에게 가까이 다가가면 기척을 눈치채고 깨어날까 봐 멀찍이 떨어져 사술을 펼쳤다. 그런데 담호는 그가 사술을 펼치자마자 즉각적으로 감지하고 반응했다.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이제까지 그의 적은 그의 얼굴 한 번 보지 못하고 고통 속에서 죽어 갔다. 그는 방관자이자 조종자였지, 단 한 번도 이렇게 직접적인 타격을 받은 적이 없었다. 그래서 당혹스러웠고, 두려웠다.
어둠 속에서 담호의 눈이 번뜩였다.
먹이를 노리는 호랑이처럼 그는 무섭게 돌진해 오고 있었다. 그런데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대지를 박차는 소리도, 공기를 가르는 소리도.
환마사자가 담호의 돌진을 인지했을 때는 이미 그의 주먹이 코앞까지 도달해 있었다. 환마사자는 감히 피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눈을 질끈 감았다. 호박처럼 부서질 자신의 머리를 상상하면서.
까앙!
순간 쇳소리가 터져 나오고 강렬한 풍압이 수천 개의 송곳처럼 환마사자의 얼굴을 찔렀다. 그 때문에 고통이 느껴지긴 했지만 그래도 머리가 산산이 부서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눈을 질끈 감고 있는 그의 귀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어서 뒤로 물러나게.”
환마사자가 슬그머니 눈을 뜨자 낯익은 뒷모습이 보였다.
마치 산악처럼 굳건한 등 뒤로 수많은 무기가 보였다. 창(槍), 도(刀), 극(戟). 편(鞭), 부(斧), 추(錐), 마치 세상의 모든 무기를 그 한 몸에 모아놓은 것 같았다.
“아!”
환마사자의 얼굴에 반색이 떠올랐다.
그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무인은 천사교에서 교주 다음으로 강력한 무인이었다.
이미 한 세대 전에 오대무객의 일원으로 위명을 날렸고, 천사교에 들어온 이후에는 오사(五邪)의 대형으로서 든든한 존재감을 과시했다.
천병왕(天兵王) 오극.
별호 그대로 천 가지 병장기를 다룰 수 있다는 전설적인 무인이 바로 오극이었다. 그가 완전무장을 한 채 나타난 것이다.
담호의 주먹은 그가 내뻗은 곤(棍)에 막혀 있었다. 곤으로 파성추를 튕겨 낸 것이다. 만년한철로 만든 곤이 중간에서 부러졌지만, 환마사자를 구한 대가라고 치면 싸게 먹힌 셈이었다.
오극이 시선은 담호에게 둔 채 환마사자에게 말했다.
“자네는 물러나게.”
“하지만…….”
“자네의 사술은 그에게 통하지 않네. 차라리 물러나서 교주의 대법이나 돕게나.”
“알……겠습니다.”
결국 환마사자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사술이라면 충분히 담호의 정신을 혼돈에 빠트릴 수 있을 거라 자신했었지만, 결과는 보다시피 대실패였다.
그의 사술은 담호에게 통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자신이 담호에게 위축되었다. 담호의 사나운 두 눈을 마주 볼 자신이 없었다. 그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온몸에 오한이 오슬오슬 들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기세에서부터 담호에게 잡아먹힌 셈이었다.
환마사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갔다. 담호는 그런 환마사자를 내버려 두었다. 평소 그의 성정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남자 때문이었다.
천병왕이라는 별호는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전대의 오대무객 중 최강자였던 만큼 오극의 기세는 실로 막강하기 그지없었다.
수많은 병기로 중무장을 한 그의 모습은 전신(戰神)을 연상케 했다. 어지간한 무인일지라도 그의 겉모습만 봐도 오줌을 지릴 정도로 위압적인 모습이었다.
담호는 말없이 오극을 바라봤다. 그런 그의 눈빛 어디에도 위축된 빛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깊게 침잠된 것이 속내를 전혀 읽을 수가 없었다.
오극은 그런 담호의 모습에도 놀라지 않았다.
상대는 권마라 불리는 자였다.
비록 자신과 세대는 다르지만 현 강호 최강자라고 불려도 부족함이 없는 남자였다. 그런 그가 겨우 자신의 겉모습이나 존재감에 짓눌려 흔들릴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휴우!”
담호를 앞에 두고 있자니 투지가 끓어올랐다.
이제까지는 교의 방침 때문에 그와 직접 싸우는 것을 자제했지만, 대업이 막바지에 다다른 지금은 그에게도 선택권이 주어졌다. 그의 선택은 바로 담호와 직접 부딪치는 것이었다.
오극이 입을 열었다.
“궁금한 게 많은 얼굴이군. 환마사자에게 물러날 시간을 주었으니 그 대가로 한 가지만 대답하지. 무엇이든 물어보게나.”
“대법이라고 했나?”
“그렇다네.”
“무엇을 위한 대법이지?”
“교주를 위한 대법이라네. 정확히는 그의 욕망을 만족시켜 주기 위한 대법이지.”
뜬구름 잡는 듯한 오극의 화법에 담호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자 오극이 ‘허허’ 웃으며 등 뒤에서 커다란 도끼를 꺼내 들었다. 그런 그의 전신에서는 패도적인 기세가 물씬 피어오르고 있었다.
마치 생의 마지막을 앞두고 가장 강렬한 빛을 발산하는 촛불처럼 오극 역시 화려하게 생의 마지막을 장식할 생각이었다.
‘교주, 미안하외다. 이 이상 당신의 꿈을 함께할 수 없을 듯하오. 나에겐 이곳이 마지막을 불태울 전장이오. 교주께서는 부디 원하는 꿈을 이루시오.’
오극이 미소를 지으며 도끼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그때 담호가 입을 열었다.
“무간지옥과 관련이 있는 모양이군.”
“…….”
“맞나 보군.”
담호의 눈빛이 더욱 날카로워졌다.
순간 오극은 그의 눈빛에 전신이 난자당하는 듯한 느낌을 받고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담호의 시선이 칠흑처럼 어두운 야공으로 향했다.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왜 소림사에서 마교가 제를 지낸 건지, 굳이 그래야 할 이유가 있는지 궁금했거든.”
“…….”
“사부가 그러더군. 사람들의 강렬한 원념(怨念)은 천기에도 영향을 끼친다고. 때문에 큰 전란이 있은 후에는 꼭 천기가 흐트러지고, 이 세상을 유지하는 법도가 흔들려 재앙이 찾아온다고.”
“닥쳐라!”
오극이 큰 소리를 버럭 질렀다.
순간 담호는 자신의 짐작이 사실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가 오극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오른발로 대지를 찍고, 왼발을 끌면서 다가오는 그의 모습은 끔찍했다. 오극 같은 절대고수가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킬 정도로 말이다.
“호천명이 원하는 것이 그런 거겠지. 세상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모든 법도가 흔들리는 것.”
“닥쳐랏! 놈!”
“소림과 무림맹만으로는 모자랐나?”
“닥치라고 했다.”
오극의 목에 핏대가 서며 사자후가 터져 나왔다. 산천초목이 그의 사자후에 벌벌 떨었다. 하지만 담호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다가왔다.
“창천맹과 마교를 공멸시켜야 할 정도로 큰 대가가 필요했던가? 무엇을 위해서. 무간지옥 너머에 있는 세상으로 가는 문을 열기 위해서?”
순간 오극이 마치 작살에 뚫린 고기처럼 몸을 퍼득 떨었다.
그의 반응에서 담호는 확신할 수 있었다.
자신이 무간지옥이라 부르는 그곳은 문이었다.
이곳과는 다른 곳으로 통하는 그 문은 마치 커다란 그물 같았다. 코 사이가 굉장히 커서 작은 물고기들은 빠져나갈 수 있었지만, 큰 물고기는 빠져나갈 수 없는 그런 그물이었다.
기산월보다 약한 이는 빠져나갈 수 있지만, 담호처럼 강대한 힘을 가진 이는 그물을 벗어날 수 없었다.
그물은 인과의 법도로 얽혀 있었다. 그물을 약하게 하기 위해선 이 세상을 유지하고 있는 천리를 흔들어 놓아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많은 이들의 피와 원념이 필요했다.
담호는 이제야 모든 진실을 깨달았다.
수십 년 동안 중원에서 일어난 모든 싸움이 결국은 호천명의 욕망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단 한 명의 욕망이 이 끔찍한 비극을 초래했다는 진실을.
“나도 스스로를 정상적인 인간이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너희들은 아예 인간의 범주를 벗어났군.”
“이놈! 닥쳐라!”
쾅!
순간 폭음이 터져 나오며 오극의 신형이 뒤로 튕겨 나갔다. 그의 손에 들려 있던 커다란 도끼는 어느새 산산이 부서져 있었다. 담호의 파성추가 작렬한 것이다.
담호의 머리가 바람에 흩날리며 사나운 두 눈이 드러났다.
“너나 닥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