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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0화 5장. 개인의 욕망이 천리를 거스른다(3)
찌르르!
도끼의 손잡이를 잡고 있는 손이 저릿했다. 마치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떨림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그만큼 강렬한 충격이 전신을 관통하고 있었다.
일반적인 무인이라면 이 정도 충격만으로도 정신이 날아가 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오극은 일반적인 무인이 아니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무인이었다는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오극은 부서진 도낏자루를 버리고, 순식간에 채찍을 빼 들었다.
촤촤촥!
검은색 채찍이 순식간에 오극의 앞에 막(膜)을 형성해 담호의 접근을 막았다. 오극은 그 정도로는 안심하지 못해 허리에 걸려 있던 도까지 꺼내 들었다.
좌수로는 채찍을 휘둘러 담호를 견제하고, 우수로는 도를 이용해 공격했다. 운용 방법이나 묘리가 전혀 상반된 두 가지 병장기를 동시에 자유자재로 다루는 그의 모습은 천병왕(千兵王)이라는 별호가 아깝지 않았다.
파앙!
방어만 하던 채찍이 어느 순간 갑자기 독사처럼 뻗어 나와 담호를 강타했다. 철심과 교룡의 심줄을 꼬아 만든 채찍이었다. 표면에는 갈고리 같은 미세한 돌기가 수없이 돋아 나와 있다. 살짝 스치는 것만으로도 피부가 벗겨지고, 근육이 뜯겨져 나가는 기병이었다.
그런 채찍에 격타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담호의 신형은 약간 흔들리기만 했을 뿐 어떤 상처도 나지 않았다. 채찍에 격타 당하는 순간 금구자를 펼쳐 흘려보냈기 때문이다.
오극도 그런 사실을 알고 있었다. 채찍을 잡은 손에서 묵직한 감촉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역시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상대는 권마.
당금 무림의 최정점에 선 고수였다.
사문이나 가문의 보살핌을 받고 자란 화초가 아니었다. 스스로의 힘으로 혈로를 헤치고 성장한 거목 중의 거목이 바로 그였다.
누구보다 많은 사투를 치렀기에 실전 감각이 최고조에 달한 그가 겨우 이 정도에 타격을 받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오극은 당황하지 않고 미리 준비한 다음 수를 펼쳤다. 오른손에 쥐고 있던 도를 순식간에 도갑에 회수한 후 장난처럼 가볍게 팔을 휘둘렀다.
“…….”
순간 담호의 안색이 더욱 차갑게 변했다. 공기의 흐름이 미세하게 변했음을 인지했기 때문이다.
우웅!
담호는 망설이지 않고 방패를 펼쳤다. 그러자 그의 몸 주위에서 ‘티틱’ 하는 소음이 연이어 울려 퍼졌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무언가가 방패에 막혀 떨어지는 소리였다. 소음의 주인은 육안으로는 구별하기 힘든 미세한 침(針)들이었다.
염왕침(閻王針)이라는 암기였다.
오극이 가진 비장의 수 중 하나로 공기의 결을 타고 움직이기에 절대고수라고 할지라도 방비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담호는 너무 쉽게 감지하고 방어했다. 제아무리 오극이 심지가 강하다고 하더라도 평정심이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오극의 당황한 것은 찰나에 불과했지만, 담호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쐐애액!
담호가 성벽을 파괴할 듯이 무서운 속도로 짓쳐들어왔다. 오극은 예의 채찍을 휘둘러 전신을 방호하면서 검을 꺼내 들었다.
콰앙!
“크윽!”
순간 오극의 입에서 답답한 신음성이 터져 나왔다. 그런 그의 얼굴은 핼쑥하게 질려 있었다.
그의 눈앞에서 철심과 교룡의 심줄을 꼬아 만든 채찍이 터져 나가 조각조각 흩어지고 있었다. 오극의 상식이 산산이 부서지고 있었다.
탄성과 유연성이 그 어떤 병장기보다 뛰어난 것이 채찍이었다. 잘려 나갈 수는 있어도 부러지거나 터지는 일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그의 눈앞에서 그 불가능한 일이 일어났다.
그의 채찍을 터트린 것은 다름 아닌 담호의 주먹이었다. 담호의 주먹은 마치 추(錐)처럼 뾰족하게 모아져 있었다. 그만큼 분산되었던 힘과 파괴력 역시 일점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래서 채찍을 파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위이잉!
철통처럼 오극을 보호하던 채찍이 사라지자 담호의 본격적인 공세가 이어졌다. 마치 톱날이 맞물려 돌아가는 듯한 소름 끼치는 소리가 허공에 울리더니 폭음이 터져 나왔다.
콰앙!
파성추였다.
오극의 몸이 들썩이며 뒤로 밀려났다. 하지만 상처를 입지는 않았다. 간발의 차이로 호신강기를 끌어 올려 전신을 보호했기 때문이다.
“놈!”
오극이 노갈을 터트렸다. 그가 느끼는 분노와 당혹스러움이 고함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담호에게 기선을 제압당한 자신을 향한 분노였고, 자신의 예상을 뛰어넘는 담호의 무위에 대한 당혹스러움이었다.
그에게 이런 감정을 느끼게 한 것은 사신제 이후로 담호가 처음이었다. 그나마 사신제는 그와 동시대를 살기나 했지, 자신보다 한참 후에 태어난 담호가 이 정도의 무력을 발휘할지는 정말 예상하지 못했다.
오극이 호천명을 따르는 것은 그에게 감복하기도 했지만, 결정적으로는 그의 무력에 굴복을 당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강호라는 괴물은 시대를 뛰어넘어 또다시 담호라는 걸출한 무인을 배출해 그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오극은 그런 강호에 분노했다.
“더 이상 나의 앞을 막지 마라, 강호여!”
촤르륵!
순간 그의 등에 걸려 있던 무기들이 모조리 허공으로 떠올랐다.
천병천육참(千兵天戮斬).
천 가지 병기로 하늘마저 갈가리 찢어 버린다는 그만의 독문절초였다. 평생을 참오 한 그의 모든 깨달음이 이 한 수에 녹아 있었다.
실제로 천 가지 병기를 사용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가 장착하고 있던 수십 가지의 병장기가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오극의 전신을 휘돌았다.
오극은 수십 가지의 병장기를 호위처럼 부리며 담호를 향해 달려들었다. 담호 역시 물러서지 않고 마주 쇄도했다.
한눈에 보아도 알 수 있었다. 오극이 펼친 수법이 실로 위험하다는 것을. 하지만 그렇다고 피하는 것은 담호의 성격에 맞지 않았다.
그가 만들어 낸 독행류라는 무공은 전진을 할 때 파괴력이 가장 극대화된다. 그리고 담호는 독행류를 믿고 전진했다.
쿠와아!
담호의 주위에 폭강이 휘돌았다. 폭마경을 펼친 것이다. 그 상태 그대로 담호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수십 가지의 무기와 격돌했다.
콰아아앙!
천지를 흔드는 폭발이 일어났다.
엄청난 폭풍이 사방으로 휘몰아치고 대지가 뒤집혔다. 그리고 부서진 병장기의 파편이 흉기가 되어 주위의 모든 것을 파괴했다.
커다란 바위에 동전만 한 구멍이 뻥뻥 뚫리고, 아름드리나무가 잘려 나갔다. 마치 하늘에서 유성이 떨어진 것처럼 일대가 초토화되었다.
그 한가운데 담호와 오극이 서로를 마주보고 서 있었다.
담호의 모습은 실로 처참했다.
전신 곳곳에 산산이 조각난 병장기의 파편이 꽂힌 것이 마치 고슴도치를 연상케 했다. 파편이 꽂힌 상처에서는 개울처럼 피가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눈을 감고 있는 담호의 몸은 마치 바람 앞의 촛불처럼 그렇게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반면 오극은 평온한 모습이었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뜬 채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는 담호를 바라봤다.
“흐흐!”
오극이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자 담호가 눈을 떴다.
그의 눈은 실핏줄이 모조리 터져 온통 붉게 물들어 있었다. 금방이라도 피눈물을 흘릴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오극이 말을 이었다.
“흐흐! 대단하다, 정말 대단해. 아무리 장강의 앞 물결이 뒷 물결에 밀리는 것이 세상의 이치라고 하지만, 너 같은 괴물을 세상에 내보내다니. 하늘이 미쳤구나.”
“호천명은…… 어디에 있지?”
“그 몸 상태로도 그분을 찾는 거냐?”
오극이 정말 질렸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담호가 입은 상처는 한눈에 봐도 중상임이 분명했다. 숨을 유지하고, 서 있는 것이 기적일 정도였다.
오극이 펼친 천병천육참은 그야말로 파천황의 위력을 갖고 있었다. 오극 역시 이렇게 전력으로 천병천육참을 펼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천병천육참에 당하고도 이렇게 살의를 드러내다니.
오극은 인간이 얼마나 집요해질 수 있는지 그 끝을 담호라는 존재를 통해 보았다. 그래서 질렸다. 이렇게 집요하면서도 강한 인간은 오극의 생애를 통틀어서 처음이었다.
담호가 다시 말했다.
“말해! 호천명이 있는 곳을.”
그의 살의가 공기를 타고 생생하게 전해져 왔다.
오극의 표정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하지만 무슨 생각을 했는지 이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좋아! 말해 줘도 상관없겠지. 어차피 그 상처를 입은 채 제시간에 그곳까지 가는 것은 불가능할 테니. 교주께서는 종남산에 계시다.”
“종남산?”
“그렇다. 지금 마교와 창천맹이 한참 싸우고 있는 순양의 평원이 지척인 곳이지. 그곳에서 새로운 세상을 열 것이다. 흐하하!”
오극이 앙천광소를 터트리다 말고 갑자기 몸을 휘청거렸다. 그러고는 이내 검붉은 피를 왈칵 토해 냈다.
“크허헉!”
폭포처럼 쏟아지는 핏속에 잘게 부서진 내장 조각이 가득 섞여 있었다. 겉만 멀쩡했다 뿐이지, 속은 이미 산산이 분쇄되어 있었던 것이다.
털썩!
오극이 무릎을 꿇은 채 담호를 올려다봤다.
“흐흐! 비록 너를 완전히 죽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내 몫은 한 것 같으니 후회는 없다. 그 상처를 입고는 죽었다 깨어나도 교주를 막을 수 없을 테니. 흐흐! 교주, 부디 원하는 바를 이루시길. 나에게 영혼이 있다면 교주가 가시는 그곳까지 따라가겠소이다.”
담호를 죽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동귀어진은 한 셈이다. 지금 담호의 몸 상태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종남산을 갈 수 없었다. 설령 어찌어찌 간다고 하더라도 절대로 호천명을 방해할 수는 없을 터였다.
그것만으로도 오극은 대만족이었다.
저 무서운 젊은 무인의 발목을 자신이 잡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는 생의 마지막을 훌륭히 불태운 셈이었다.
오극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지만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그그극!
담호의 몸에 박힌 수많은 파편이 절로 밀려 나오고 있었다. 마치 담호의 육신이 파편을 거부하는 것처럼 말이다.
투투툭!
담호의 몸에 꽂혀 있던 수많은 파편들이 바닥에 떨어졌다.
“무슨?”
득의 어린 미소를 짓던 오극의 얼굴에 경악의 빛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가 놀라긴 아직 일렀다.
파편이 밀려 나가고 붉은 속살이 드러난 상처가 오므라들며 피를 흘리던 부위가 절로 지혈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기적이나 우연 따위가 아니었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 극한까지 단련된 담호의 육체가 외부의 자극에 맞서 스스로를 보호하려고 반응한 것이다.
오극의 상식으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었지만, 담호에겐 당연한 일이었다.
지난 일 년 동안 담호가 소화산에 틀어박혀서 가장 신경 쓴 것은 바로 요상술(療傷術)이었다. 온몸을 내던져 싸우는 독행류의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상처를 많이 입는다는 것이다.
어지간한 상처 따위야 무시할 수 있었지만, 간혹 운신하기조차 힘든 상처를 입을 때가 문제였다. 담호는 거의 단독으로 행동했기에 스스로 살 방법을 찾아내야 했다. 그래서 만들어 낸 것이 바로 불수의근(不隨意筋)처럼 인간의 의지로는 절대 움직일 수 없는 근육을 의지로 조절해 상처를 봉합하는 것이었다.
그의 상식으로는 불가능한 기적을 목도한 오극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런 그에게 담호가 무심히 말했다.
“죽어서 지켜봐. 내가 종남산을 가는지, 아니면 못 가는지.”
“아, 안 돼!”
오극이 손을 뻗어 담호의 발목을 붙잡으려 했다. 그 순간 담호가 커다란 손으로 오극의 머리를 내리쳤다.
콰직!
오극의 머리가 호박처럼 산산이 부서져 나가며 사방으로 붉은 피와 회백색 뇌수가 튀었다.
그것이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오극의 초라한 최후였다.
담호는 더 이상 오극을 보지 않았다. 그의 얼굴은 핏기 하나 없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순간적으로 너무 많은 피를 흘렸기 때문이다.
근육을 조절해 지혈을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모자랐다. 불수의근을 조절하는 것만으로는 내상을 치료할 수는 없었다.
담호는 품을 뒤졌다. 손에 조그만 목함이 잡혔다. 목함을 꺼내 열자, 한지에 곱게 쌓여 있는 검은색 단환이 보였다.
이름 따윈 없었다. 종리연이 오직 그를 위해 만들어 준 영약이었다. 그녀는 장담했다. 소림사의 대환단이 제아무리 대단한 영약이라고 해도 자신이 만든 영약엔 비할 수 없을 거라고.
이 한 알에 그녀가 이제까지 쌓아 온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담호는 망설이지 않고 영약을 입에 털어 넣고 운기에 들어갔다.
츠으으!
그의 모공에서 뜨거운 김이 피어올랐다.
***
“그랬구나.”
호천명이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의 앞에는 기산월이 멍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마치 넋이 나간 것 같은 모습이었다. 실제로 기산월은 극심한 혼란 상태였다.
마치 누군가 주걱으로 그의 머릿속을 한바탕 휘저은 것 같았다. 머릿속은 혼망한 데다가 가슴은 울렁거려 토악질이 올라왔다. 결국 기산월은 참지 못하고 바닥에 엎어져 속에 있는 모든 것을 게워 냈다.
“우웨엑!”
호천명은 그런 기산월에겐 시선도 주지 않고 중얼거렸다.
“운이 좋은 아이구나. 누구는 평생을 경주해도 가지 못한 곳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반쯤 경험했다니.”
오직 그 한 가지 목표를 위해 평생을 노력했다. 그 과정에서 그와 가까웠던 수많은 이들이 죽어 나갔다. 그가 열망을 가지지 않았다면 죽지 않았어도 될 자들이었다. 그와 엮이지만 않았어도 강호의 대협으로 명성과 호사를 누렸을 것이다.
그렇게 많은 이들의 희생을 치르고 나서야 그는 겨우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앞에 있는 기산월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곳을 먼저 경험하고 왔다. 그것이 비록 반쪽에 불과할 지라도 말이다.
호천명이 손을 들었다. 그러자 바닥에 엎어져 있던 기산월의 몸이 허공으로 둥실 떠올랐다. 그제야 기산월이 정신을 어느 정도 차렸다.
순간 호천명이 다시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기산월의 몸이 쏜살처럼 날아가 커다란 바위에 처박혔다.
“크헉!”
엄청난 충격에 기산월이 피를 토했다. 그가 토한 피가 가슴을 붉게 적셨다. 그런 그를 보며 호천명이 말했다.
“너는 운이 참 좋은 아이다. 운 좋게 가 본 그곳을 다시 한 번 보게 될 영광을 얻었으니까. 여기서 지켜보거라. 이곳에 문이 열리는 것을.”
콰드득!
호천명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바위 조각이 마치 새끼줄처럼 꼬이더니 기산월의 양팔을 조였다. 졸지에 양손이 포박된 기산월은 옴짝달싹할 수도 없는 처지가 되었다.
기산월이 고개를 들고 호천명을 바라봤다.
“그곳, 육도로 가는 문을 열려는 것이오? 교주.”
“그렇다. 그것이 내 필생의 염원이다.”
“미친!”
기산월이 욕설을 내뱉었다.
그는 무서운 눈으로 호천명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호천명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미소를 지었다.
“육도가 열리면 이 세상은 지옥으로 변할 것이오. 그래도 좋단 말이오?”
“그게 대순가?”
“그게 무슨?”
“관점의 차이일 뿐이란다, 아이야. 너의 시선으로 보면 이곳이 꽤나 괜찮은 곳이겠지만, 나의 눈으로 보면 지루하기 그지없는 지옥 같은 곳이란다.”
“그런 궤변을……. 이곳을 지옥으로 만들면서까지 왜 그렇게 그곳으로 가려는 것이오.”
“그곳에…… 육도가 있으니까 가려는 것이고, 가려는 길에 거추장스러운 것이 많으니까 치우는 것뿐이다.
“미친!”
기산월이 몸을 떨었다.
호천명은 보통 사람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사고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에겐 평범한 인간의 기준이나 가치는 통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에겐 세상의 모든 사람이 개미처럼 보일지도 몰랐다.
발밑에 지나다니는 개미를 신경 써 걸음을 옮기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호천명이란 인간에겐 인간의 가치란 딱 그 정도에 불과했다.
그 사실을 이해하자 걷잡을 수 없이 오한이 번져 갔다.
호천명은 더 이상 기산월을 신경 쓰지 않으려 했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바로 종남파가 있던 자리에 세워지고 있는 거대한 제단이었다.
그의 마지막 염원이 저곳에 담겨 있었다.
이제 평생의 꿈을 이룰 순간이 머지않았다.
모든 것이 그의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그때였다.
“절대 당신의 뜻대로 이뤄지지 않을 것이오.”
기산월의 목소리였다.
호천명이 살짝 미간을 찌푸린 채 기산월을 바라봤다. 그러자 기산월이 힘겹게 말을 이었다.
“주군이 당신을 막을 것이오.”
“권마 말인가?”
“그렇소! 곧 주군이 오실 것이오.”
“그런가? 그렇다면 되도록 늦지 않았으면 좋겠군. 그 멋진 풍경을 나 혼자 보고 싶지는 않거든.”
호천명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제단이 완성되었다는 신호가 보였다.
제를 지낼 단이 완성되었으니 이젠 제물이 오기를 기다려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