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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491화 (49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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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1화 6장. 모든 것은 하나로 귀결된다(1)

콰앙!

굉음과 함께 초연운이 바위에 처박혔다. 집채만 한 바위가 산산조각 나고 초연운은 무릎을 꿇은 채 피를 울컥 토해 냈다. 선혈이 그의 가슴을 붉게 물들였다.

“크으!”

초연운이 소매로 입가에 흘러내리는 피를 닦으며 고개를 들었다.

콰르르!

하늘을 새까맣게 뒤덮은 불길한 검은 기운 안에서 뇌전이 번쩍이면서 천둥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대지는 ‘쩌적’ 갈라지고, 거센 폭풍이 휘몰아쳤다.

세상의 종말이 찾아온 것 같았다.

도저히 인간과 인간이 싸우는 것이라곤 상상도 할 수 없는 광경에 사람들은 말을 잃었다.

창천맹의 무인들도, 마교의 무인들도 그저 입을 벌린 채 두려운 시선으로 전장을 바라봤다.

그곳은 신들의 전장이었다.

인간의 한계를 아득히 벗어난 자들이 벌이는 미친 싸움이었다.

이곳에 수많은 무인들이 있었지만, 누구도 감히 저들의 싸움에 끼어들 엄두를 내지 못했다.

“도대체…….”

“맙소사!”

경악을 하는 이들 중에는 마교의 사대군장 한 명인 요사란도 있었다. 담호를 제외하고는 단 한 번도 적수다운 적수를 만난 적이 없던 그녀였다. 그만큼 경천동지할 무위를 지니고 있었지만, 지금 눈앞에서 펼쳐지는 신들의 싸움에는 감히 개입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콰르르릉!

하늘이 무너지고, 대지가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질렀다.

누구보다 많은 싸움을 경험한 요사란이었지만, 맹세코 이런 광경은 처음이었다.

“이건…….”

그녀가 몸을 부르르 떨 때 숨을 고른 초연운이 홀연히 일어섰다.

비록 피투성이가 되고, 온몸이 처참히 망가졌지만 그의 얼굴엔 한 점의 두려움도 존재하지 않았다.

“챠앗!”

그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다시 전장으로 몸을 던졌다. 한참 척관혈과 싸우던 검율천이 곁눈질로 흘깃 바라봤다.

“늦었군!”

“미안! 잠시 숨 좀 고르느라.”

초연운의 대답에 검율천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언뜻 보면 담담한 듯 보였지만, 이를 악물고 있는 것이 그 역시 거의 한계에 달한 상태였다. 초연운이 빠진 그 잠깐 동안 전신에 막대한 부하가 걸린 것이다.

초연운이 합류하자 그는 잠시나마 숨을 돌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위기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우우우웅!

그 순간에도 척관혈의 마기는 맹위를 떨치고 있었다. 사위가 그의 마기에 잠식당해 요동을 치고 있었다.

공간감은 물론이고 거리감마저 마기에 침습당해 정확하지 않았다. 이곳은 마치 세상과는 분리된 별개의 공간 같았다.

그 중심에 척관혈이 있었다.

마기에 휩싸인 척관혈은 이미 같은 인간이라고 볼 수 없었다. 그는 마신(魔神), 그 자체였다.

“죽어랏!”

츄화학!

음습한 목소리와 함께 마기의 편린이 그들을 향해 날아왔다.

“챠앗!”

초연운이 힘찬 기합과 함께 팔황신권의 절초를 펼쳐 냈다.

비록 전신이 상처투성이에 기혈이 들끓어 올랐지만, 초연운은 개의치 않고 전력을 발휘했다.

‘반드시 놈을 막고 난세를 종식시킨다.’

그의 머릿속에는 오직 그 생각 하나뿐이었다.

이 싸움 뒤에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척관혈을 쓰러트리지 못한다면 미래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검율천 역시 마찬가지였다.

비록 신마련을 만들긴 했지만, 그는 마교에 누구보다 큰 애정을 갖고 있었다. 만일 마교가 그가 생각하는 올바른 길을 가고 있다면 굳이 이렇게 반기를 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음유경, 신무월, 명천, 그리고 많은 이들의 기대가 그의 양어깨에 걸려 있었다.

‘교주의 폭주를 반드시 막아야 한다. 그러지 못한다면 신교에 미래 따윈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교의 존속을 위해서라도, 교도들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척관혈을 제거해야 했다. 천사교에 이용당하는 그의 존재는 중원뿐 아니라 마교에도 해악일 뿐이었다.

‘교주!’

한때는 누구보다 존경했던 사람이었다.

일차 정마대전 이후 지리멸렬했던 마교가 지금의 성세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온전히 그 덕분이었다. 하지만 그의 존재는 더 이상 마교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가 있음으로 해서 마교는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고 있었다.

누군가는 그의 폭주를 멈춰 세워야 했다. 그리고 그 주인공은 자신이어야 했다. 그래야만 마교를 원활히 이끌 수 있었다.

검율천의 눈은 보다 먼 곳을 보고 있었다.

콰아아!

그는 혼신의 힘을 다해 뇌격술을 풀어냈다. 그때마다 그의 전신에서 뇌전이 명멸했다.

호교심공인 천마심공을 익혀 위력이 배가 된 뇌격술이었다. 그런데도 척관혈에게 별다른 피해를 입히지 못하고 있었다.

척관혈은 거대한 벽이었다.

이제까지 검율천이 상대해 왔던 그 어떤 상대보다 강한 존재였다. 그의 강렬한 존재감이 검율천의 어깨를 무겁게 짓눌러 왔다.

인정하기 싫었지만 혼자서는 척관혈을 이길 수 없었다. 초연운이 튕겨 나가고 홀로 척관혈을 상대한 후에 내린 결론이었다.

검율천의 시선이 초연운을 향했다. 우연처럼 초연운의 시선 또한 그를 향하고 있었다.

눈빛을 보는 순간 서로의 의중을 알 수 있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이심전심(以心傳心)이었다.

‘힘을 합친다.’

‘협공을.’

그때부터 그들의 움직임이 유기적으로 변했다.

검율천이 척관혈의 시야를 흔들어 놓으면 초연운이 일격을 먹였고, 반대의 경우엔 검율천이 공격했다.

두 사람의 움직임이 유기적으로 변하자 척관혈도 잠시 혼란스러워했다. 평소의 이성을 유지하고 있다면 훨씬 더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겠지만, 지금 그는 광기에 휩싸여 냉정하게 생각할 수 없었다.

검율천과 초연운의 협공은 척관혈의 광기를 증폭시켰다.

“모두 죽여 주마.”

콰아아!

커다란 보자기를 펼친 것처럼 하늘을 뒤덮었던 검은 마기가 척관혈의 몸에 흡수되는가 싶더니 몸 주위에서만 하늘거렸다. 언뜻 보면 위력이 약해진 것 같았지만 초연운과 검율천은 겉모습에 현혹되지 않았다.

마기가 응축되었기에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차라리 방금 전까지 하늘을 뒤덮었을 때가 상대하기 편했다. 응축된 마기는 단지 위력만 배가 된 것이 아니라 효율성 역시 배가되었다.

츄화하학!

마기가 마치 검은 채찍처럼 뻗어 나와 검율천과 초연운을 공격했다.

콰쾅!

“크윽!”

“음!”

마기로 만들어 낸 채찍에 강타당한 두 사람이 답답한 신음성과 함께 뒤로 물러났다. 급히 호신강기를 끌어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충격이 내장을 진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두 사람은 이내 무서운 속도로 다시 척관혈을 향해 쇄도했다.

콰콰쾅!

연신 폭음이 터져 나왔다.

마기가 출렁이고, 뇌전이 명멸했다. 그리고 팔황신권의 거력이 공기를 일렁이게 만들었다.

피가 튀고, 살이 찢겨 나갔다.

초연운은 이목구비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히 망가져 있었고, 검율천의 모습 또한 그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눈빛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에 척관혈이 더욱 분노했다.

“이 버러지 같은 것들이…….”

슈슈슉!

순간 그의 몸에 어려 있던 어둠이 칼날이 되어 두 사람을 향해 날아들었다. 마기를 뭉쳐 강기처럼 만든 것이다.

마선회륜강(魔旋廻輪罡), 천포마공에서 가장 폭발적인 위력을 자랑하는 초식이 펼쳐졌다.

초연운과 검율천이 눈을 부릅떴다. 그들 역시 마선회륜강에 담겨 있는 극악한 위력을 알아본 것이다.

마치 매미의 날개처럼 얇디얇은 강기의 날이 위태롭게 떨리고 있었다. 살짝 건들면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말이다.

“제기랄!”

“크윽!”

초연운과 검율천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호신강기를 끌어올려 전신을 보호했다.

쿠와아앙!

그 순간 마선회륜강으로 날린 강기의 칼날이 폭발했다.

“컥!”

“크흡!”

폭발에 휩쓸린 두 사람이 가랑잎처럼 날려 갔다.

“맹주!”

“련주님!”

그 모습을 본 두 세력의 무인들이 경호성을 내뱉었다. 하지만 누구 한 명 감히 나서서 그들을 도울 수 없었다. 그들보다 앞서 척관혈이 몸을 날렸기 때문이다.

척관혈은 단박에 그들의 숨통을 끊을 기세로 달려들고 있었다. 그의 전신에 마기가 폭풍처럼 소용돌이쳤다. 그는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사막의 용권풍이 되었다. 그리고 검율천과 초연운을 집어삼켰다.

쿠르르!

검은 폭풍이 울부짖었다.

그 속에서 순백의 뇌전이 명멸하고, 미증유의 거력이 뻗쳐 나왔다. 그에 휩쓸린 이들이 순식간에 재가 되어 사라졌다.

“크읍!”

“물러서!”

창천맹의 무인들이고, 마교의 무인들이고 가릴 것 없이 급히 뒤로 물러났다. 그런 그들의 얼굴엔 공포심이 가득했다.

그들의 상상할 수 있는 영역을 아득히 넘어선 싸움이었다. 꿈에서조차 이런 싸움을 상상해 본 적이 없었기에 그들이 느끼는 두려움은 더욱 컸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그들은 검율천과 초연운의 승리를 염원했다. 척관혈이 승리하는 순간 어떤 결과가 나올지 빤히 예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척관혈이 이기면 분명 이 자리에 지옥이 펼쳐질 것이다.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다.

부르르!

몸이 절로 떨렸다. 마치 감기에 걸린 것처럼 오한이 느껴졌다. 지금 이 순간 모두가 공통적으로 느끼는 현상이었다.

쩌저적!

그들이 딛고 있는 대지가 거미줄처럼 금이 쩍쩍 가더니 터져 나갔다.

“사숙! 조심하십시오.”

명경이 현소 진인 앞에 내려섰다. 그는 검을 휘둘러 폭발에서 현소 진인을 보호했다.

현소 진인은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세 사람이 뒤엉켜 싸우는 전장을 바라봤다. 비록 용권풍에 가려 세 사람의 모습을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그들의 사나운 기파만큼은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척관혈에서 뻗쳐 나오는 마기가 초연운과 검율천을 압도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선전하고 있었지만 척관혈에게는 역부족이었다.

척관혈의 무위는 파천황(破天荒)에 가까웠다.

하늘 아래 과연 어떤 무인이 있어 그를 감당할까 싶은 마음이 들었다.

‘호야!’

문득 그의 제자가 보고 싶었다.

담호라면 능히 척관혈을 상대할 수 있을 거란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사부가 되어서 언제까지나 제자에게 의지만 할 수는 없었다. 담호에겐 그만의 싸움이 있었다. 이곳에서의 싸움은 이곳에 있는 이들이 끝내야 했다.

‘내가 도와야 한다.’

문득 현소 진인의 눈빛이 깊이 가라앉으며 현묘한 빛이 일렁였다. 그리고 그의 입을 비집고 한 줄기 음성이 흘러나왔다.

“마도가 아무리 성하더라도 하늘의 그물은 뚫지 못함이니, 이는 곧 마가 정을 이길 수 없음이로다. 하늘의 도는 실로 오묘해서 미치지 않는 곳이 없고, 닿지 않는 곳이 없도다. 길이 아니면 걷지를 아니하고, 정이 아닌 사도(邪道)는 그 어느 곳에도 발붙일 곳이 없도다. 이는 하늘의 뜻이니 온갖 삿된 것들은 제힘을 잃고 사그라질지어다.”

그의 음성은 나직했지만 묘하게도 선명하게 사람들의 귀를 파고들었다. 현소 진인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사람들은 이상하리만큼 가슴이 차분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의 음성은 마기를 뚫고 검율천과 초연운에게도 전해졌다. 현소 진인의 도력이 담긴 진언이 두 사람에게 큰 영향을 주지는 못했다. 하지만 반대로 척관혈에게는 큰 영향을 끼쳤다.

“크윽!”

척관혈이 마치 쇠망치로 두들겨 맞은 것처럼 신음을 터트렸다. 실제로 현소 진인의 음성이 그에게 영향을 줬기 때문이다.

광기로 가득했던 그의 두 눈에 순간적으로 초점이 돌아왔다.

도력이 가득한 현소 진인의 음성은 그의 뇌리를 잠식하고 있던 사기를 순간적으로 뒤흔들어놓았다. 그래서 척관혈은 순간적으로 이지를 되찾을 수 있었지만 반대로 몸놀림이 둔해졌다.

궁지에 몰려 있던 검율천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챠아앗!”

그가 마지막 힘을 쥐어짜내며 척관혈에게 몸을 날렸고, 초연운이 그 뒤를 따랐다.

척관혈은 심령이 흔들리는 가운데서도 그들의 움직임을 감지했다.

“이놈들!”

콰아아!

그가 양손을 활짝 펼치자 미증유의 거력이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심령이 흔들린 탓에 좀 전처럼 완벽하지는 않았다.

검율천은 뇌격술의 제사 식인 뇌전갑(雷電鉀)을 펼쳤다. 그러자 뇌전이 갑옷처럼 엮여 그의 전신을 보호했다.

빠지직!

마치 콩 볶는 듯한 소리와 함께 마기가 뇌전갑에 터져 나갔다.

뒤이어 뇌격술의 최강 초식인 일벌백계(一罰百戒)가 펼쳐졌다. 순간 마기로 뒤덮여 있던 검은 하늘이 하얗게 물들었다.

“크읍!”

이제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강렬한 위력에 척관혈이 충격을 받고 잠시 몸이 굳었다. 그사이 초연운이 한 마리 용이 되어 몸을 날렸다.

검율천의 공격이 초연운에게 길을 열어 줬다. 초연운의 눈에는 검율천이 열어 준 길이 선명하게 보였다. 초연운은 그곳으로 질주를 했다.

파스스!

그의 옷이 가루가 되어 바람에 흩날리고 맨살이 드러났다. 그리고 이제까지 꽁꽁 숨겨져 있던 검은색 의족이 모습을 보였다.

검율천이 발산한 뇌기가 강철로 된 의족에 깃들었다. 온몸에 전류가 흐르는 고통에 초연운이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움직임을 멈추지는 않았다.

지금이 그들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초연운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초연운은 이번 일격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이제까지 그가 쌓아 온 모든 내공과 팔황신권의 모든 정수를.

쩌어엉!

그의 의족이 척관혈의 관자놀이를 강타했다. 그 반동으로 강철로 된 의족이 먼지처럼 부서지고 초연운의 몸이 뒤로 튕겨나갔다.

“커헉!”

척관혈이 피를 토했다.

초연운의 의족에 서려 있던 기운과 뇌전이 그의 머릿속으로 흘러들어 왔기 때문이다.

순간적으로 척관혈의 정신이 아득히 날아갔다. 하지만 머리와 달리 몸은 본능적으로 반응했다. 정신이 날아간 와중에도 호신강기를 펼쳐 스스로를 보호한 것이다.

콰아아!

척관혈의 몸 주위로 마기가 소용돌이쳤다. 하지만 이제까지와 달리 불완전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이미 모든 힘을 소진한 검율천과 초연운은 그를 공격할 수 없었다.

척관혈은 우두커니 선 채 눈을 끔뻑였다.

풍월제 단공월의 기습을 받은 이후 언제나 안개가 낀 것처럼 뿌옇기만 하던 그의 머릿속이었다. 그런데 뇌전이 어린 초연운의 일격이 그의 머릿속에 끼어 있던 안개를 걷어 내고 있었다.

광기가 사라지고 이성이 돌아왔다. 뒤이어 그가 흐릿했던 기억들이 선명하게 되살아났다.

그가 잊어버렸던 기억의 한 조각.

애써 묻어 두었을지도 모르는, 혹은 봉인당했는지도 모르는 기억이.

―살고 싶으냐?

호천명이 물었고, 척관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호천명은 그의 머릿속에 심마의 씨앗을 심었다. 은밀히 심어진 씨앗은 척관혈의 광기를 키웠고, 단공월의 기습에 개화를 했다.

그것이 진실이었다.

까득!

이제야 모든 진실을 알게 된 척관혈이 이를 악물었다.

“호천명!”

그가 갑자기 고개를 들고 사자후를 터트렸다.

“크으윽!”

“허억!”

그의 사자후에 군웅들이 몸을 휘청거렸다.

척관혈의 시선이 문득 서쪽으로 향했다. 종남산이 있는 바로 그곳이었다.

“그곳이냐?”

인간의 감각으로 감지하기엔 턱없이 먼 거리였지만 척관혈은 알 수 있었다. 그가 자신을 부르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이곳에 있다.

그, 호천명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척관혈의 부름에 답했다.

“죽이겠다.”

척관혈이 몸을 날렸다.

순간 현소 진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무서운 예감이 엄습했기 때문이다. 단순히 착각이었으면 좋겠지만, 그처럼 도력이 높은 도인이 느끼는 예감은 미래에 일어날 일을 미리 감지하는 예지력에 가까웠다.

“아, 안 돼! 그를 막아야 해. 그가 가는 것을 막지 못하면 무서운 일이 일어날 거야. 명경, 나를 업어다오. 그를 따라가야 한다.”

“예! 사숙!”

명경이 영문도 모른 채 현소 진인을 등에 업었다. 그리고 척관혈을 따라 몸을 날렸다. 그 모습을 본 몇몇 사람들이 뒤를 따랐다.

초연운은 방진보에게 부축을 받아 따랐고, 검율천도 음유경의 도움을 받았다. 종리연도 화산파의 무인들의 보호를 받으며 몸을 날렸다.

그들이 떠난 자리에 정적이 찾아왔다.

순식간에 수뇌부들이 사라지자 남겨진 사람들은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하지만 이내 십삼지파의 무인들이 마교의 무인들을 설득하여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창천맹의 무인들은 그들이 물러나는 모습을 망연히 바라봤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이제 그들의 전쟁이 끝났음을.

그들의 손이 닿지 않는 먼 곳에서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자들의 전쟁은 이어지고 있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감히 예단할 수 없었다.

마침내 마교의 무인들이 모두 물러나고, 인간들의 전쟁은 막을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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