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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496화 (496/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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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6화 7장. 천사(天邪)의 바람이 거세다(3)

“이것 놔라!”

현소 진인이 몸부림을 쳤다.

만일 초연운과 명경이 곁에서 붙잡지 않았다면 화를 참지 못하고 호천명에게 달려가고 말았을 것이다.

그때 검율천이 현소 진인의 앞을 막아서며 말했다.

“저자의 세 치 혀에 더 이상 놀아나지 마십시오, 현소 진인. 진인께서 흥분해서 냉철한 판단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저자의 노림수입니다. 냉정해지셔야 합니다.”

검율천이 호천명의 강렬한 기파와 눈빛에서 현소 진인을 보호했다. 그러자 현소 진인이 조금씩 안정을 찾았다.

호천명의 시선과 검율천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또 만났구나, 아이야.”

“이번에는 전처럼 쉽게 도주할 수 없을 것이오, 선배.”

“이번에는 나 역시 물러설 생각이 없단다. 이곳에서 오랜 꿈이 이뤄질 것이라서 말이야.”

“안타깝구려. 꿈이 무언지는 모르지만 이뤄지는 것을 보지 못할 테니까. 당신은 오늘 이 자리에서 죽을 것이오.”

“너는 분명 인세에 드문 인재다. 그 정도면 충분히 오만해도 되지. 허나 오만이 너무 과하면 오히려 독이 되기 마련이란다. 너는 네가 익힌 성물 안의 무공을 자신하는 모양이지만, 그것은 나에게 아무 소용이 없단다.”

순간 검율천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그러자 호천명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왜 믿기지 않느냐?”

그의 속삭임에 검율천의 표정이 더욱 굳었다. 그때 음유경이 그의 손목을 붙잡지 않았다면 검율천은 화를 참지 못하고 호천명에게 달려들었을 것이다.

“격장지계예요.”

“알고…… 있다.”

“절대 넘어가서는 안 돼요.”

“알고 있어.”

검율천이 두 번이나 대답을 한 후에야 음유경이 손을 놓았다.

호천명의 시선이 음유경을 향했다.

“현명한 아이구나. 너 역시 예전부터 눈여겨보고 있었지.”

“영광이군요.”

“너는 충분히 그 정도의 가치가 있는 아이란다.”

호천명은 마치 자신의 손녀를 보듯 그렇게 따스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음유경은 그런 호천명의 시선이 부담스러울 뿐만 아니라 무섭게 느껴졌다.

음유경은 호천명의 눈에서 공허한 하늘을 봤다. 구름 한 점 없이 광활하게 펼쳐진 하늘엔 어떠한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인간이라면 응당 가져야 할 감성과 욕망도 말이다. 그래서 무서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떠한 욕망도 가지지 않은 자가 어떻게 천하를 상대로 이런 무서운 음모를 꾸미고 진행할 수 있는지 말이다.

호천명 한 명 때문에 천하가 피로 물들었다. 이루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들이 피를 흘렸고, 온 천하에 죽음의 기운이 가득했다.

물론 그 근간에는 인간의 추악한 욕망이 자리하고 있었지만, 조금 더 근원을 파고들면 그 한가운데 호천명이 존재하고 있었다.

음유경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궁금했다. 도대체 호천명이 무슨 목적으로 이런 일을 저지른 건지, 또 이런 제단을 쌓은 건지. 그리고 제단 위에서 일어나는 현상은 무엇인지 말이다.

하지만 한 가지만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지금 제단 위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끝나면 무서운 일이 일어날 거란 사실을 말이다.

그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지금이라도 마음을 돌릴 수는 없는 건가요?”

“무얼 말이냐? 저거?”

호천명의 시선이 제단 위를 향했다. 이제 척관혈은 넋이 완전히 나간 것처럼 위태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호천명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럴 수는 없지. 너의 말 한마디에 물거품으로 돌리기엔 그간 내가 쏟아부은 노력이 너무 막대하구나.”

“도대체 이렇게까지 해서 당신이 얻는 게 무엇인가요?”

“조금 있으면 자연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참으로 말이 많구나. 네 사부는 너처럼 말이 많지 않았는데.”

사부를 언급하자 음유경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곳에 오기 전 사부인 단운향이 척관혈을 암습했다가 죽임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이젠 이름밖에 남지 않은 사제관계였기에 상관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녀는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

호천명의 말은 비수가 되어 사정없이 그녀의 아픈 부위를 찌르고 있었다. 음유경은 안색이 하얗게 질려 말을 잇지 못했고, 호천명은 그런 그녀를 재밌다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그때였다.

“늙은이, 아주 입으로 사람을 작살 내 놓는구먼. 입에 걸레를 물었나? 어떻게 쏟아 내는 말들이 하나같이 그렇게 더럽냐?”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호천명의 귓전을 자극했다. 호천명의 시선이 목소리의 주인을 향했다.

“취운룡, 아니 이제는 창룡신협인가? 자네도 내가 주의 깊게 보고 있는 후배들 중 한 명이지.”

“누가 누구 후배라는 거야? 나는 당신과 같은 선배 둔 적 없으니까 함부로 주둥이 놀리지 말라고.”

“흠! 자네 입심이 제법이라 들었는데, 역시 대단하군. 하긴 다리가 불편하니 입심이라도 좋아야겠지.”

호천명의 시선이 향한 곳은 초연운의 다리였다. 초연운을 항상 든든히 지탱해 주던 의족이 부서진 지금 그는 한쪽 다리로 위태롭게 서 있었다.

“흥! 내가 다리 불편한데 뭐 보태 준 거 있나?”

초연운이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그는 다리 한쪽이 잘려 나간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 비록 스스로 원해서 창천맹의 맹주가 된 것은 아니었지만, 맹주로서의 경험이 그의 정신을 더욱 단단하게 만든 것이다.

지닌바 무공은 호천명에 비할 수는 없었지만, 그의 의지와 정신력은 결코 뒤지지 않았다. 호천명이라는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적을 두고도 초연운의 눈빛은 결코 꺾이지 않고 있었다.

그 모습이 호천명에겐 무척이나 인상적인 모양이었다.

“확실히 너는 대기만성의 그릇이 분명하구나. 이대로만 성장한다면 분명 큰 그릇이 될 게다.”

“늙은이에게 그딴 소리 듣는 것 하나도 기쁘지 않다구. 주둥이만 살아서 독설이나 내뱉는 주제에…….”

순간 호천명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마음 수양이 누구보다 깊은 그였지만 초연운의 독설은 그의 신경을 꽤나 자극하고 있었다.

초연운이 낭랑한 목소리로 화룡정점을 찍었다.

“곡불일욕이백(鵠不日浴而白)하고, 오불일검이흑(烏不日黔而黑)이라.”

백조는 날마다 목욕을 하지 않아도 희고, 까마귀는 날마다 검댕을 묻히지 않아도 검다.

장자 외편에 나오는 말로 어떠한 상황에서도 그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표현을 빗댄 것이다.

자신을 까마귀로 빗대는 초연운의 말에 호천명의 눈에 기광이 일렁였다. 이번엔 초연운의 말이 비수가 되어 그의 가슴을 날카롭게 후벼 팠기 때문이다.

“너의 그 요망한 혀부터 잘라 놔야겠구나.”

호천명의 차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순간 일대의 공기가 바뀌었다.

“큿!”

마치 바늘로 미간을 쿡쿡 찌르는 것 같은 위기감에 초연운이 급히 자리를 피했다. 순간 ‘서걱’ 하는 소리와 함께 그가 이제까지 서 있던 자리에 깊은 검흔이 새겨졌다.

소리도, 기척도 없이 이뤄진 공격이었다.

간발의 차이로 호천명의 공격을 피한 초연운의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피하는 것이 조금만 늦었으면 단지 혀만 잘리는 것이 아니라 몸뚱이가 두 동강이 날 뻔했기 때문이다.

온몸에 소름이 다 끼치고, 위기감이 엄습했다. 이제야 자신이 어떤 상대를 자극한 건지 실감이 되었기 때문이다.

소리도 없이 또다시 호천명의 이 격이 들이닥쳤다. 의족을 잃은 초연운이 감히 피할 엄두를 낼 수도 없을 만큼 빠른 공격이었다.

쾅!

초연운의 몸이 들썩였다. 하지만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검율천이 대신해 공격을 막아 줬기 때문이다.

검율천은 어느새 마음의 동요를 가라앉히고 냉철한 표정을 회복하고 있었다.

“괜찮은가?”

“괜찮아!”

초연운이 대답을 하며 허리에서 검을 꺼내 들었다. 이곳에 올라올 때 주운 검이었다. 아마 죽은 종남파의 제자가 사용했던 검일 것이다.

초연운은 검을 잘려 나간 다리에 대고 가죽 끈을 칭칭 동여맸다. 의족 대신 검을 지지대로 삼은 것이다.

퍼버벙!

그사이 호천명의 연격이 들어왔지만 검율천이 모조리 막아 냈다. 검율천의 전신에는 어느새 뇌전이 명멸하고 있었다.

검율천뿐만이 아니었다. 명경과 음유경, 방진보도 어느새 무기를 꺼내 들고 대전에 참여하고 있었다.

오직 현소 진인만이 화산파 무인들의 보호를 받으며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명경의 검이 날카롭게 파고들고, 방진보의 주도가 공간을 갈랐다. 검율천의 뇌전이 허공을 하얗게 물들이고, 초연운의 팔황신권이 공간을 갈랐다.

검율천과 초연운은 물론이고, 명경과 음유경도 강호 최정상의 무인이라고 할 수 있었다. 거기에 미약하지만 방진보까지 합세했다.

강호 최고 수준의 무인 다섯 명이 합격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누구 한 명 호천명의 옷깃 하나 건드리지 못했다.

호천명은 마치 유령 같았다.

보이기는 하지만 실체가 없는 유령처럼 잡히지 않았다.

검율천이 초연운에게 외쳤다.

“우리가 그를 공격할 테니 자네는 저 제단을 부수게.”

“알았어!”

초연운이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움직임은 더욱 빨랐다. 그는 순식간에 전장을 벗어나 제단을 향해 경공을 펼쳤다.

촤아악!

의족 대신 검을 달았지만, 그의 움직임은 질풍보다 빨랐다. 초연운은 순식간에 제단 아래 도착했다. 그는 단숨에 제단 위로 비상하려 했다.

“헛!”

순간 초연운이 눈을 치떴다. 어느새 그의 눈앞에 호천명이 나타나 있었기 때문이다.

쾅!

“커헉!”

강렬한 충격에 초연운이 뒤로 튕겨 나갔다. 어느새 호천명의 일격이 가슴에 작렬했기 때문이다.

초연운이 피를 토하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그나마 순간적으로 공력을 끌어 올려 심맥과 장기를 보호했기에 망정이지, 반응이 조금이나마 늦었다면 이번 일격으로 숨이 끊어질 뻔했다.

“멈춰랏!”

뒤늦게 검율천 등이 호천명을 쫓아와 공격했다. 그들의 얼굴엔 당혹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한창 그들과 함께 어울려 싸우던 호천명이 순간적으로 시야에서 사라지더니 초연운 앞으로 순식간에 이동했기 때문이다.

검율천이나 명경 모두 절대지경에 든 고수였지만 호천명이 어떻게 이동했는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챠합!”

검율천의 전신에서 뇌전이 뻗쳐 나갔다.

뇌전갑(雷電鉀)을 전신에 두르고 뇌격술의 절초를 펼치는 그의 모습은 뇌신(雷神), 그 자체였다.

빠지직!

뇌전이 훑고 지나간 자리가 새까맣게 타며 매캐한 연기를 피워 올렸다. 하지만 그의 뇌전은 호천명에게 그 어떤 영향도 끼치지 못했다.

호천명의 몸 주위로 순식간에 반투명한 막이 형성되었다가 사라지며 검율천의 뇌전을 막아 내는 것이다.

서걱!

“큭!”

순간 검율천이 나직한 신음을 토해 냈다. 어느새 그의 가슴에 깊은 자상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검율천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어떻게 상처가 난 것인지, 무슨 초식에 당한 것인지 눈치채지 못했기 때문이다.

천마심공을 익힌 그의 감각은 최고조에 달해 있었다. 방원 수십 장 안에 있는 개미의 움직임조차 감지할 수 있는데, 호천명이 어떻게 공격을 했는지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사실이 그를 당혹스럽게 만든 것이다.

“허윽!”

“큭!”

비명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음유경과 명경이 연이어 상처를 입고 물러난 것이다.

“명경 사형!”

명경이 피를 뿌리는 모습에 방진보가 달려가려 했다. 하지만 갈 수가 없었다. 어느새 호천명이 그의 앞을 막아서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

방진보의 눈동자에 격랑이 일었다.

마치 넘을 수 없는 거대한 벽이 서 있는 것 같았다. 그 어떤 수를 쓰고, 몸부림을 쳐도 무너지지 않을 커다란 벽이. 그래도 몸부림은 쳐 봐야 했다.

“이야압!”

방진보는 매화도를 펼쳤다.

허공에 매화 수십 송이가 피어났다. 그러자 호천명이 미소를 지었다.

“훌륭한 공부구나. 기초가 탄탄해! 하지만 세기가 부족하구나. 그러니까 이렇게 허점이 보이지.”

호천명의 손이 마치 뱀처럼 휘어지며 매화 사이를 파고들었다.

파앙!

“컥!”

방진보가 비명을 내지르며 십여 장이나 뒤로 날아가 커다란 나무 밑동에 처박혔다.

가슴이 쪼개지는 것 같아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방진보가 억지로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들었다. 금방이라도 피가 터질 것처럼 눈이 온통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허억, 허억!”

방진보는 호천명에게서 절망을 봤다.

오르지 못할 산을 봤다.

검율천과 초연운이 이를 악물고 다시 호천명에게 달려드는 모습이 보였다.

창천맹과 무림맹의 최고수라 할 수 있는 두 사람의 합공을 호천명은 마치 장난처럼 상대하고 있었다.

방진보는 알 수 있었다. 호천명은 아직 전력을 내보이지 않다는 것을. 두 사람의 합공에 음유경이 합류했음에도 호천명의 진신 실력을 끌어내기엔 역부족이었다.

세 사람을 상대하면서도 호천명의 시선은 제단 위를 향해 있었다.

문득 그가 중얼거렸다.

“아마 너희는 영원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정상에 홀로 존재하는 자의 고독을.”

“개소리 마라.”

초연운이 악을 썼다. 그러자 호천명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너의 눈에는 내가 느끼는 고독이 보이지 않겠지. 허나 그라면 알 것이다. 그라면 나의 고독을 이해할 수 있겠지.”

“그?”

“권마! 오직 그만이 나와 같은 높이에서 시선을 맞출 만한 자격을 겨우 가지고 있음이다. 그에 비하면 너희들은 한참 멀었다.”

“헛소리 하지 마라, 늙은이!”

콰르릉!

초연운의 일격에 대지가 뒤집어졌다. 하지만 그런 막강한 공격도 호천명에겐 어떤 타격도 입히지 못했다.

현소 진인이 망연히 그 광경을 바라봤다.

“어떻게 인간이……. 정녕 저자를 막을 방법이 없단 말인가?”

무공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그가 봐도 호천명이 초연운 등을 가지고 놀고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그때였다.

호천명이 장난처럼 손을 그었다.

순간 현소 진인은 공간이 뒤틀리는 것을 보았다. 이 세상을 유지하고 있는 공간이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다.

호천명이 펼친 시공검에 시간과 공간이 난자당한 것이다.

쿠와아앙!

그 순간 이제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굉음이 터져 나왔다. 공간이 잘려 나가면서 엄청난 압력이 현소 진인을 덮친 것이다.

후폭풍에 휩쓸린 현소 진인은 순간적으로 정신을 잃었다.

시간이 얼마가 지났는지 몰랐다. 찰나일 수도 있었고, 아주 많이 지났을 수도 있었다.

“으음!”

현소 진인이 나직한 신음성과 함께 겨우 눈을 떴다. 그런 그의 눈에 들어온 전경은 실로 처참했다.

검율천과 초연운은 담벼락에 처박힌 채 꿈틀거리고 있었고, 음유경도 어깨에 큰 상처를 입고 피를 흘리고 있었다.

‘진보는?’

그는 본능적으로 방진보의 행방을 찾았다.

힘겹게 고개를 돌리던 그의 눈에 방진보가 들어왔다. 현소 진인의 목소리가 절로 떨려 나왔다.

“진……보야!”

방진보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방진보의 어깨와 옆구리엔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다. 방진보는 손으로 구멍을 틀어막으며 어떻게든 지혈을 하려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끄으, 끄으으!”

마치 온몸이 해체되는 것 같았다.

입을 열면 그나마 심맥을 간신히 보호하고 있는 한 줌의 내공마저 흩어져 버릴 것 같기에 신음마저 간신히 삼켜야 했다.

음유경과 명경 또한 처참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혈인이 된 채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나마 대부분의 충격이 초연운과 검율천에게 집중되었기에 이 정도에 그쳤지, 직격당했으면 진즉 숨이 끊어졌을 터였다.

이 순간 그들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절망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호천명을 쓰러트릴 수 있을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 어떤 희망도 빛도 보이지 않았다.

‘끝인가?’

‘이렇게 허무하게…….’

그렇게 모두의 얼굴에 절망의 기운이 감돌 때였다.

“아!”

전권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어 화를 겨우 면한 종리연이 갑자기 탄성을 내뱉었다.

그녀의 귀에 낯익은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스르륵! 쿵!

처음엔 착각인 줄 알았다. 하지만 똑같은 발소리가 또다시 들려오자 그녀의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드디어 그녀가 기다리던 남자가 나타난 것이다.

종리연의 시선이 발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향했다.

그가 종남산을 올라오고 있었다.

한쪽 발로 대지를 찍고, 한쪽 발을 끌며.

종남의 바람이 그의 전신을 사납게 할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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