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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499화 (499/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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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9화 8장. 이 세상에서도, 저 세상에서도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3)

담호의 전신에서 흐르던 피는 어느새 멈춰 있었다. 환골탈태를 하면서 전신의 근육을 조여 지혈을 했기 때문이다.

불수의근(不隨意筋)마저 뜻대로 조절할 수 있는 담호에겐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비록 이미 많은 피를 흘려 정신이 혼미하긴 했지만, 담호의 눈에 어린 투지는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정녕 끝까지 가 보자는 거구나.”

그제야 호천명은 깨달았다.

담호와 같은 자를 멈추게 하는 방법은 지인을 죽여 절망감을 안겨 주는 것 따위가 아니라, 오직 그의 숨을 확실하게 끊어 놓는 것뿐이라는 사실을.

이제까지 미소를 지우지 않던 그의 얼굴에 살기가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쓰고 있던 가면을 벗어던진 것이다.

“오냐, 너의 숨을 확실하게 끊어 주마. 오너라!”

팟!

그 순간 담호가 충보를 펼쳤다.

호천명도 공간보를 펼쳐 모습을 감췄다. 공간을 찢고 이동한 것이다.

스륵!

그 순간 담호의 검고 칙칙한 눈동자가 움직였다. 그의 눈은 정확히 공간의 벽 뒤에 숨어 이동 중인 호천명을 향하고 있었다.

정확히 호천명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호천명은 모골이 송연해짐을 느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시공검과 공간보를 믿었다.

감으로 그의 행적을 감지했다고 해서 공간을 찢고 이동하는 움직임까지 따라올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츄화학!

시공검이 공간을 찢고 담호를 찔러 가는 순간이었다.

콰앙!

폭음이 터졌다.

“큽!”

호천명의 입에서 처음으로 답답한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담호의 파성추가 그의 시공검과 격돌하면서 적잖은 충격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의 공격이 막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공격이 막히자 호천명이 다시 공간보를 펼쳤다. 마치 순간이동을 한 것처럼 그가 다시 담호의 뒤쪽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야말로 빛보다 빠른 반응이었다. 하지만 담호의 반응이 그의 움직임을 따라잡았다.

어느새 담호가 몸을 돌려 그와 시선을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쾅!

시공검을 펼치기도 전에 담호의 반격이 이어졌다.

“커업!”

호천명이 큰 충격을 받고 뒤로 물러났다. 그런 그의 눈동자에 흔들림이 생겨났다. 감정의 요동이 눈동자를 통해 드러나는 것이다.

호천명은 애써 동요를 감추며 공간보를 펼쳤다. 하지만 담호는 그런 호천명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고 따라붙었다. 아니, 미리 움직일 곳을 선점했다.

속도가 달랐다. 파괴력이 차원을 달리했다.

공간을 찢고 이동하는 호천명보다 오히려 담호가 빨랐다. 단지 다리가 완전해진 것만으로 담호는 이전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무력을 선보이고 있었다.

인정해야 했다.

장애를 벗어난 담호는 이전의 그와는 전혀 다른 존재였다.

이전에도 그는 완벽에 가깝다고 평가되었지만, 지금은 완전(完全) 그 자체였다.

그 어떤 흠도, 결점도 없는 완전무결한 무인.

그것이 담호였다.

쩌엉!

단공벽을 펼쳐 호천명이 타고 움직이는 공간에 충격을 줬다. 공간이 흔들리면서 공간보에 파탄이 생겨났다.

“큭!”

호천명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의 경로 자체가 원천적으로 차단당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단양타와 오지암파경이 연이어 펼쳐졌다.

호천명에게 큰 충격을 줄 수는 없었지만, 움직임을 미묘하게 방해하기엔 충분했다. 담호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콰가가가가!

그의 연환격이 폭풍처럼 들이닥쳤다.

담호는 호천명이 공간보를 펼칠 여유를 주지 않았다. 아니, 반격할 기회 자체를 주지 않았다.

담호는 알고 있었다. 호천명에게 움직일 기회를 주는 순간 그가 멀리 멀리 도망갈 거란 사실을. 공간보를 펼쳐 도주하면 잡을 방법이 없었다.

그러니까 죽든, 살든 여기서 모든 것을 끝내야 했다.

“떨어져라!”

호천명이 뒤로 물러나며 시공검을 펼쳤다. 담호는 폭마경을 펼쳐 전신을 보호하며 전진했다. 어떻게든 호천명을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서걱!

시공검은 폭마경을 베어 버린 것도 모자라 담호의 어깨에도 큰 상처를 남겼다. 하지만 담호는 비명 한번 내뱉지 않고 자세를 바꿔 육합혈산하를 펼쳤다.

독행류의 최종장이었다.

그는 이 한 수에 모든 것을 걸었다.

“노옴!”

그에 맞서 호천명 역시 시공검의 위력을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콰아아!

육합혈산하와 시공검이 격돌했다.

순간 종남산 정상에 대폭발이 일어났다.

마치 화산이 터진 것처럼 분진이 폭풍에 실려 일대를 뒤덮었다.

종남산 정상에 있던 모두가 폭풍에 휩쓸려 뒤로 날아갔다. 초연운과 검율천 등은 물론이고, 백여 명의 혼술사들과 제단까지 모조리 날아갔다.

후욱!

폭발과 함께 밖으로 밀려 나갔던 공기가 다시 제자리를 찾아 돌아오면서 다시 한 번 먼지바람이 일어났다.

종남산 정상을 가득 채운 먼지는 잠시 후 서서히 가라앉았다. 그제야 장내의 전경이 드러났다.

담호와 호천명은 서로를 마주 보고 서 있었다.

그나마 멀쩡해 보이는 호천명에 비해 담호의 모습은 실로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상처를 입은 곳보다 입지 않은 곳을 찾는 것이 더 힘들어 보일 정도로 그는 망가져 있었다.

마치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담호가 흔들리고 있었다. 그 상태로 쓰러지지 않은 것이 그저 놀라울 정도였다.

육합혈산하는 단 한 호흡에 이십사연격을 날리는 독행류 최강의 초식이었다. 이제까지 그 어떤 이도 이십사연격을 모두 받아 내지 못했다. 하지만 호천명은 이십사연격을 모두 받아 냈다.

물론 그 때문에 속이 말이 아니게 망가졌지만, 그래도 그는 굳건히 서 있었다. 시공검을 깨달은 후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호천명이었다.

육신이 제아무리 부서지고, 그 어떤 심한 내상을 입더라도 단 한 번만 숨을 쉴 여유가 있으면 순식간에 회복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담호의 육합혈산하는 실로 극악한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내장은 완전히 짓이겨졌고, 기경팔맥도 가닥가닥 끊어졌다. 무엇보다 두 다리와 두 팔의 관절과 근육이 뒤틀리고 파괴되었다.

이렇게 엄중한 상처는 단 한 번도 입어 본 적이 없는 호천명이었다. 지난 수십 년간을 무적으로 군림했기에 이런 상처를 입을 일이 없었다.

시공검을 깨달은 이후는 더욱 그랬다. 같은 반열에 올라 있던 사신제마저도 발아래로 내려다보았기에 육신에 상흔이 남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예상치 못했던 중상을 입었기에 회복시키는 시간이 더딜 수밖에 없었다.

‘열 호흡이면 충분하다. 그 정도면 다시 몸이 완전히 회복하리라.’

입을 열 수는 없었지만 미소는 지을 수 있었다.

그도 중상을 입었지만, 담호가 입은 상처는 그보다 더 심각했다. 움직이는 것은커녕 지금 서 있는 것 자체가 기적일 정도로. 때문에 그는 담호를 앞에 두고도 몸을 회복시킬 수 있었다.

몸을 회복시키는 즉시 담호의 목을 비틀어 죽일 생각이었다. 이미 그의 몸은 반쯤 회복이 된 상태였다.

그때였다.

태풍에 휩쓸린 갈대처럼 위태롭게 흔들리던 담호가 눈을 번쩍 떴다.

실핏줄이 터져 금방이라도 핏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붉은 두 눈이 호천명을 바라보고 있었다.

‘설마?’

호천명은 근원을 알 수 없는 섬뜩한 감정을 느꼈다. 하지만 그는 담호가 절대 움직일 수 없을 거라고 애써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안했다. 담호의 몸 상태는 그보다도 처참했기 때문이다.

쩌적!

순간 호천명의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담호가 움직였다.

호천명의 짐작처럼 그의 몸 상태는 최악이었다. 움직이기는커녕 아직도 살아서 숨을 쉬고 있는 것 자체가 기적이었다.

온몸이 해체되는 것 같고, 한 걸음을 뗄 때마다 속에서 피가 울컥 토해져 나왔다. 그래도 담호는 움직였다.

이 정도의 상처는 그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보다 심한 상처를 입고 싸운 적도 있었다.

숨만 끊어지지 않으면 된다.

마지막 호흡을 내뱉는 순간까지 싸우는 권(拳), 그것이 바로 독행류였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담호가 호천명에게 다가왔다. 그의 족적을 따라 엄청난 피가 흘러내렸다.

호천명의 얼굴에 절로 다급한 표정이 떠올랐다. 그의 내상은 아직 완전히 치유가 되지 않았는데 담호가 가까워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얼굴에 처음으로 공포의 빛이 떠올랐다.

인간의 감정이란 애당초 모두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 혈귀가 된 채 다가오는 담호의 모습은 그에게 잊고 있던 인간의 감정을 다시 떠올리게 만든 것이다.

“크으!”

그래도 입을 열 수 없었다. 움직일 수도 없었다.

그에게 남은 방법은 최대한 빨리 육신을 회복시키는 것뿐이었다. 후유증이 남더라도 어쩔 수 없었다. 그는 호흡의 간격을 좁혔다.

여섯, 일곱, 마침내 여덟 번까지 호흡을 했다. 그사이 내상이 어느 정도 회복됐다. 하지만 뒤틀린 두 다리의 근맥은 아직도 회복 전이었다.

이제 두 번의 호흡만 남았다.

단 두 번의 호흡만 하면 그의 육신은 회복을 하게 되고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콱!

아홉 번째 숨을 들이쉬는 순간 담호가 그의 멱살을 움켜잡으며 당겼다. 호천명은 숨이 턱 막혀 호흡을 할 수 없었다.

호천명의 몸이 확 딸려 오며 두 사람의 눈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담호의 눈은 흉흉하게 빛났고, 호천명의 눈엔 공포의 빛이 떠올라 있었다.

“신인 척하지 마.”

“크읍!”

“너도 인간이니까.”

콰아아!

순간 호천명의 몸이 용권풍에 휩싸여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 담호가 지천격을 펼친 것이다.

두 다리가 대지에서 떨어지면서 아찔한 부유감이 호천명을 엄습했다. 생전 처음 경험하는 생소한 느낌에 호천명이 몸을 떨었다.

단 두 번만 숨을 더 쉬면 되는데, 그것을 할 수가 없었다.

하늘과 땅이 뒤집혔다.

담호에게 멱살을 잡힌 그대로 호천명의 몸이 대지로 내리꽂혔다.

콰앙!

거꾸로 대지에 박힌 호천명의 몸이 잠시 흔들거리더니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지천격을 펼친 담호도 그와 뒤엉킨 채 잠시 일어나지 못했다.

한동안 거친 숨을 몰아쉬던 담호가 겨우 상체를 일으켜 호천명을 바라봤다.

호천명은 머리가 반쯤 함몰된 채 힘없이 널브러져 있었다. 함몰된 머리뼈 사이로 회백색 뇌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크흐으!”

호천명의 입에서 가죽 부대에서 바람 빠지는 듯한 숨소리가 흘러나왔다. 언제나 넘쳐흐르던 생기는 사라지고, 오직 죽음의 기운만이 가득한 숨소리였다.

제아무리 시공검을 깨달은 호천명이라 할지라도 뇌수가 흘러내리는데 육신을 회복시킬 수는 없었다. 단지 고강한 내공으로 잠깐 숨을 붙잡아 놓고 있을 뿐이다.

담호가 그런 호천명에게 말했다.

“상처 입고, 피 흘리고…… 똑같잖아!”

“흐으! 그……런가?”

호천명은 부인할 수 없었다.

담호는 신의 영역에 존재하던 그를 인간의 영역으로 끌어내렸고, 죽음의 철퇴를 내렸다.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전신의 신경이 완전히 절단돼서 통증조차 전달되지 않는 것이다. 그에겐 어떤 희망도 존재하지 않았다. 남은 것은 죽음뿐.

문득 보고 싶은 얼굴이 하나 있었다.

‘이……관!’

철혈무신이라 불리던 희대의 무인.

자신보다 늦었지만 그 역시 육도를 봤다. 하지만 그가 본 것은 또 자신과 달랐다.

자신은 다른 세상을 보았다면 그는 먼 미래를 보았다.

육도와 뒤섞인 절망 가득한 미래를 봤기에 스스로의 이지를 봉인해 수명을 늘리는 길을 택했다. 절망이 가득한 미래에 깨어나 그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며.

호천명은 그런 이관의 어리석음을 비웃으며 이용했다. 그때는 그것이 옳은 줄 알았지만, 이렇게 되자 이관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궁금했다.

그때였다.

쿠우우우!

갑자기 하늘이 비명을 내지르며 요동을 쳤다.

모두의 시선이 하늘을 향했다.

하늘엔 거대한 균열이 형성되어 있었다.

균열 안에선 칠흑보다 검은 암흑이 빠져나오려 하고 있었다. 촉수처럼 줄기줄기 뻗쳐 나오는 암흑 속에 언뜻 환영 같은 편린이 비쳤다.

“저건?”

현소 진인이 눈을 치떴다.

그도 생전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이런 이야기는 어디서도 들은 적이 없었다.

현소 진인이 급히 호천명에게 물었다.

“육도가 열린 겁니까? 혼술사들은 분명 대법을 완성하지 못했는데.”

그의 말처럼 혼술사들은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고, 제물이 되었던 척관혈은 벽에 처박힌 채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아직 그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대법의 실패를 의미했다.

호천명이 초점이 흐릿해진 눈으로 균열을 바라보며 말했다.

“차라리 대법이 완성되게 놔뒀으면 좋았을 것을. 오히려 최악의 결과를 초래했구나.”

“그게 무슨 뜻입니까?”

“대법이 마지막 순간에 깨지면서 육도를 구분하는 벽이 전체적으로 약해졌다. 곧 여기저기가 찢겨 나가고 균열이 생길 것이다. 균열은 점점 커져 통로가 될 것이고.”

“설마?”

“이 세상이 육도를 연결하는 중간 교착지가 되었다는 의미다. 인과의 벽에 의해 철저히 구별되어 있던 이들이 이곳을 통해 다른 곳으로 넘어갈 수 있게 된 거지.”

“원시천존이시여.”

현소 진인이 자신도 모르게 원시천존을 찾았다.

호천명의 말에 담긴 의미를 알아차린 것이다.

“균열 사이로 어떤 놈이 이 세상으로 넘어올지 알 수 없다. 차라리 내가 저 너머로 가는 것이 나았다. 그랬다면 이렇게까지는…….”

호천명의 시선이 담호를 향했다.

담호는 더 이상 호천명을 보고 있지 않았다. 그의 눈은 균열을 향해 있었다.

쩌저적!

그 순간에도 균열은 점점 커져만 가고 있었다.

하늘의 균열은 이제 종남산 정상으로까지 번져 있었다.

균열에서는 불길한 기운이 뭉게구름처럼 피어나 종남산 정상을 자욱하게 뒤덮고 있었다.

쿠우우!

종남산이 울고 있었다.

중원이, 강호가 울고 있었다.

균열은 이 세상의 상처였다. 상처를 비집고 각기 다른 기운이 새어 나오고, 또 뒤섞이고 있었다.

“크윽!”

“이게 무슨?”

초연운과 검율천이 이를 악물었다.

절대지경에 오른 만큼 감도 타인보다 월등히 발달해 있었다. 그런 그들의 감이 무서운 일이 일어날 거라고 예고하고 있었다.

손발이 덜덜 떨리고, 온몸의 털이란 털이 모조리 곤두섰다.

균열에서 삐져나온 기운에 노출된 순간 그들은 숨이 턱 막혀 오는 것을 느꼈다. 호천명에 의해 중상을 입은 그들에겐 저항할 기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것은 방진보나 음유경 등도 마찬가지였다.

화산파의 도사들 또한 균열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에 노출되자 안색이 하얗게 질려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정신이 혼미해지고, 온몸의 기혈이 미친 듯이 날뛰었다. 금방이라도 온몸이 녹아 버릴 것 같은 느낌에 금방이라도 미칠 것 같았다.

실제로 균열에서 흘러나온 기온에 노출된 종남산의 동식물들은 새까맣게 죽어 가고 있었다. 마치 역병처럼 번져 간 기운은 종남산 전체를 검게 물들이고 있었다.

그렇게 종남산은 순식간에 죽음의 대지가 되었다.

그나마 현소 진인이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균열의 기운이 몸에 닿자 그의 몸에서 은은한 선기가 흘러나오면서 보호를 하는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현소 진인은 일행을 모조리 자신의 주위로 모았다.

그러나 단 한 명, 담호만은 현소 진인의 선기가 미치지 않는 곳에 홀로 서 있었다.

“이리 오너라, 호야.”

현소 진인이 손을 뻗었지만, 담호는 그 손을 붙잡지 않았다.

종리연이 애타는 눈빛으로 담호를 바라봤다.

“제발, 이리 와요.”

담호는 종리연을 말없이 바라봤다. 한없이 깊게 가라앉은 그 눈빛을 보는 순간 종리연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설마! 당신?”

균열에서 흘러나온 기운이 담호 주위에 넘실거리고 있었다. 모두를 질식케 만든 혼돈의 기운이었지만, 담호를 어쩌지 못하고 있었다. 오히려 담호를 위로하듯 부드럽게 일렁이고 있었다.

마치 어미 뱃속의 양수처럼 오히려 담호에겐 편한 느낌마저 주었다.

그때였다.

“…….”

인간의 귀로는 들을 수 없는 소리가 균열 안에서 터져 나왔다.

모두가 휘청였다.

종남산 정상에 있는 이들 뿐 아니라 일대에 있는 모든 이들이 무너지며 속에 있는 모든 것을 게워 냈다.

분명 귀로는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는데, 머릿속에서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메아리치고 있었다.

―모두 무릎을 꿇어라. 왕이 강림할지니.

영혼을 강제하는 목소리였다.

종남산 일대에 있던 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꿇었다.

백정 앞에서 소가 꼼짝을 못하듯 그들 역시 목소리에 꼼짝을 하지 못했다.

균열 사이로 한없이 짙은 암흑이 보였다. 그 모습이 마치 무언가의 눈 같았다. 아니, 눈이 분명했다.

이 세상과 저쪽 세상을 막고 있던 균열이 찢어지고 가장 깊은 곳에 있던 무언가 깨어나 이곳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것은 균열이 더 커지기만을 기다렸다. 조금만 더 벌어지면 그를 옭아매는 모든 법칙과 족쇄를 풀고 이곳으로 넘어올 수 있을 테니까.

그는 스스로를 ‘왕’이라 칭했다.

모두가 왕의 위엄에 무릎을 꿇고 있었지만, 담호는 홀로 버티고 서 있었다.

균열을 닫지 못하면 이 세상에 재앙이 일어날 것이다.

육도의 교착지가 된 이 세상은 절대 재앙을 이겨 내지 못할 것이다.

담호의 시선이 현소 진인을 향했다.

그의 눈빛을 보는 순간 현소 진인은 깨달았다. 담호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현소 진인의 목소리가 떨려나왔다.

“호……야!”

“가겠습니다.”

“아!”

현소 진인이 탄식을 내뱉으며 눈을 감았다.

말리고 싶었다. 하지만 말릴 수가 없었다.

저 눈의 주인이 균열을 넘어오는 순간 이 세상이 지옥으로 변할 거란 사실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현소 진인에게서 시작한 담호의 시선이 초연운, 검율천, 방진보 등을 거쳐 종리연에게서 멈춰 섰다.

운명을 예감한 종리연의 눈에 뿌연 습막이 차올랐다.

막을 수도 없고, 막아서도 안 됐다.

차라리 철없이 가지 말라고 앙탈이라도 부릴 수 있으면 좋으련만…….

종리연은 눈물을 흘리며 품에 손을 집어넣었다. 다시 나온 그녀의 손에는 조그만 목함이 들려 있었다.

그녀는 담호를 향해 목함을 힘껏 던지며 외쳤다.

“돌아와요. 언제까지라도 기다릴 테니까.”

담호는 목함을 받아 열었다.

목함 안에 있는 것은 새까만 영약이었다.

담호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영약을 입에 털어 넣었다. 그러자 고갈되었던 기력과 내공이 다시 차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반드시 돌아오겠다.”

그 말을 끝으로 담호가 뒤돌아섰다.

초연운과 방진보가 그 모습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무어라 말이라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할 수가 없었다. 자신들이 내뱉은 말이 그의 족쇄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쩌저저적!

균열은 더욱 커져 갔고, 이 세상으로 빠져나오는 혼돈의 기운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갔다.

담호는 뭉게구름처럼 세상을 뒤덮을 듯 피어오르는 기운 정중앙 균열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등 뒤에서 호천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가라! 너는 이곳보다 그곳이 더 어울리니. 나 대신 끝없는 싸움을…… 부럽구…….”

호천명의 목소리가 사그라졌다. 마침내 숨이 끊어진 것이다.

그것이 수십 년 동안 음지에서 강호를 뜻대로 움직여 온 거인의 최후였다.

그는 죽어서도 눈을 부릅뜬 채 담호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쿠우우!

균열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이 더욱 거세졌다.

왕의 눈이 똑바로 걸어오는 담호를 향했다.

―어리석은 자여, 감히 저항하려는가?

담호가 충보를 펼쳐 균열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의 등이 활처럼 휘었다.

순간 강대한 인력이 발생했다. 파성추를 펼칠 때 일어나는 특유의 현상이었다.

담호의 몸에서 발생한 인력은 균열 밖으로 뻗쳐 나온 기운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잡아끌었다.

쿠오오오!

마치 그물에 잡힌 고기처럼 혼돈의 기운이 발버둥을 쳤다. 하지만 담호가 만들어 낸 인력의 그물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그 모든 기운을 끌어안고 담호는 거대한 눈을 향해 파성추를 터트렸다.

콰아앙!

예상치 못한 일격에 왕이 비명을 터트리며 물러섰다.

한없이 커져 가던 균열이 마치 담호라는 이질적인 존재를 다시 토해 내려는 듯이 요동쳤다. 하지만 담호를 밀어낼 수는 없었다.

담호는 한 걸음, 또 한 걸음 균열 깊은 곳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의 눈앞에 거대한 세상, 육도가 펼쳐졌다.

이곳은 새로운 세계, 그의 전장이었다.

그의 등 뒤로 균열이 닫히고 있었다.

그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의 시선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도 담호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는 홀로 전진하는 자.

독행류의 주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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