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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계지문-2화 (2/916)

2화. 조개소녀가 건네준 진주

1각(*一刻: 15분) 후, 어느 해변에 도착한 석목은 곧바로 바다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마치 물고기가 된 듯, 자유로이 유영해 빠르게 아래로 잠수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석목은 약 40장 깊이까지 내려갔다.

이내 석목의 앞에 깜짝 놀랄만한 광경이 펼쳐졌다.

칠흑 같이 검푸른 바다에 한 조그맣고 희미한 백색 빛이 피어난 것이었다. 빛은 점점 더 늘어나기 시작해, 곧 온 바다를 환하게 밝혔다.

그럼에도 석목은 전혀 놀라지 않았다. 그저 숨을 참은 채 더 힘차게 아래로 내려가 몸을 뒤집고, 한 모래 위에 바로 섰다. 이는 바로 백색의 고운 모래가 퍼져있는 해저였다.

그제야 백색 빛을 발산하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건 바로 손바닥정도 되는 크기의 조개였다. 조개는 10개도 넘어보였고, 하나같이 8장 가량 높이의 거대 암초를 둘러싼 채 열렬히 반짝이고 있었다.

석목은 이 빛나는 조개들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빠르게 암초 옆으로 갔다.

곧 암초를 두드리자, 푸- 소리와 함께 핏빛 안개가 분출했다. 안개는 마치 살아있는 듯, 빠르게 석목의 몸을 수차례 돌고 그대로 석목의 몸 안으로 빨려들어갔다. 석목은 그 핏빛안개를 다 들이 마시고 한번 공기를 길게 뱉어낸 뒤에야 자유롭게 숨쉬기 시작했다.

이어 석목은 녹슨 송곳과 망치를 찾아 암초의 아랫부분을 열심히 깎았다.

곧 백색 빛 사이로 암초에 깔린 조개가 드러났다. 항아리만큼 큰 조개는 백옥같이 하얀빛을 내고 있었다. 이 거대한 조개는 이미 반 이상이 암초에 깔려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은색 점들만 간간히 반짝이고 있었다.

석목이 깎은 암초 아랫부분은 이미 거의 다 비어있었고 해저조류로 인해 살짝 흔들리고 있었다.

계속 쉼 없이 암초를 깎아내던 석목은 어언 2각(*二刻: 30분)이 흐르자 차츰 피로해지기 시작했다. 잠시 동작을 멈춘 석목은 숨을 참고 돌연 암초를 3번 두드렸다. 그 소리를 듣고, 아래에 깔린 조개가 겨우겨우 껍질을 살짝 열어 핏빛안개를 내뿜었다.

석목은 핏빛안개를 흡수한 뒤 다시 호흡이 자유로워졌고, 그 힘으로 다시금 작업에 몰두했다.

이 거대한 조개는 석목이 2년 전, 이곳 해저에서 발견한 것이었다.

당시 석목은 조개가 의미 없이 내뱉은 이 핏빛안개를 흡수하고 잠시 동안 매우 자유로이 호흡했었다. 이는 결코 평범한 조개가 아니었다. 이에 너무도 놀란 석목은 서둘러 집으로 가 망치를 챙겨와 암초 아랫부분을 부쉈다.

그 조개는 매우 똑똑했다. 조개는 석목이 자기를 구해주려 한다는 걸 다 안다는 듯, 석목이 오면 핏빛안개를 내뿜어 자유로운 호흡을 도와주었다.

하지만 석목이 아무리 물에서 자유롭게 호흡할 수 있다 한들, 물속에서의 움직임엔 제한이 있었다. 암초는 매우 크고 딱딱했고, 그렇게 암초를 두드린 지 장장 2년이 흘렀다. 그리고 이제 드디어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조개가 내뿜는 핏빛안개의 놀라운 효능은 이 뿐만이 아니었다. 핏빛안개를 흡수하는 횟수가 증가할수록 그 지속력도 늘어나서, 처음엔 물에서 호흡하던 시간이 아주 짧았던 반면 지금은 2각 가까이 호흡하고도 여유가 남게 됐다.

또한 핏빛안개는 신체에도 좋은 영향을 끼쳐서, 수련에도 상당한 도움이 됐다. 평소 좋은 약을 먹지 못해 좀처럼 수련에 진전이 없었던 석목은 핏빛안개를 흡수하고부턴 4성 경지에서 매우 빠르게 7성 경지까지 올랐다.

또한 이전에 생각해도 알 수 없던 일들을 이해할 수도 있게 됐는데, 깨달음을 얻는데도 상당한 효력이 있는듯했다. 덕분에 석목은 또래들보다 훨씬 더 성숙한 면모를 가질 수 있게 됐고, 고작 열 몇 살이 된 석목이 성 집사 앞에서 그토록 냉정한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 * *

석목은 한밤중이 되어서야 피로한 몸을 이끌고 어촌으로 돌아갔다.

평소 같았으면 한번 바다에 들어갔다 나오면 며칠을 쉬어야 했으나, 지금 같은 상황에선 절대 그럴 순 없었다. 하여 다음 날 저녁, 석목은 또 다시 바다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다시 그 다음날 저녁, 해저 깊은 곳에선 쾅- 굉음과 함께 돌조각이 바닥에 떨어지고, 암초가 격렬히 흔들리며 석목이 있는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암초에 짓눌려있던 조개는 크게 반짝이며 온 힘을 다해 바동거렸다.

“성공했다!”

석목은 크게 기뻐하며 양팔을 저어 쓰러지는 암초의 반대편으로 피했다.

또 한 번 큰 소리와 함께 암초가 더 거세게 기울고, 드디어 조개는 가까스로 암초 아래서 빠져나왔다. 하지만 바로 그때, 해저 조류가 돌연 쓰러지는 암초를 향해 강하게 흐르기 시작했다.

꽈르릉! 굉음과 함께 한 쪽으로 기울던 암초가 흔들리며 다시 반대 방향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탈출한지 얼마 안 된 조개는 다시 깔릴 위기에 처했다.

“안 돼!”

깜짝 놀란 석목은 양 다리를 모래에 반 가까이 박아 넣고, 양팔을 휘둘러 맹렬하게 암초를 두들겼다.

석목의 주먹이 암초에 세차게 박히자, 주위의 물이 용솟음치며 솟아올랐고 그 덕에 암초가 기우는 속도도 살짝 늦춰졌다.

조개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반짝 빛을 내며 순식간에 사라졌다.

비틀대며 몇 보 뒤로 물러난 석목의 두 손은 이미 피범벅이 돼있었다. 잠시 후, 석목은 돌연 피를 토하고 눈앞이 깜깜해지는 것을 느끼며 혼절했다.

그 순간, 주위의 바닷물이 일렁이더니 밝은 빛 속에 조개가 모습을 드러냈다. 조개껍질이 천천히 열리고, 그 안엔 핏빛진주를 안고 있는 작은 여자아이가 서 있었다.

7살 정도 돼 보이는 아이는 고작 10센티에 불과했다. 얇은 배두렁이를 걸친 소녀는 눈처럼 새하얀 피부에 매우 아름다운 미모를 가지고 있었으며, 까만 눈망울엔 별처럼 맑은 빛이 일렁이고 있었다.

그 별 같은 눈으로 참혹하게 망가진 석목의 손을 발견한 소녀는 곧 깊이 감동한 듯 벅찬 표정을 지었다.

이윽고 소녀가 핏빛 진주를 높게 들어 올리자 은색 빛이 사방으로 피어났다. 동시에 각기 다른 크기의 무수한 조개가 해저바닥에서 솟아났고, 빠르게 석목의 몸을 둘러싼 조개는 서서히 석목을 위로 들어 올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해수면에 석목의 몸이 떠올랐다.

조개들은 흩어져 다시 바다로 사라졌고, 석목의 주위엔 은빛과 함께 거대한 조개가 나타났다. 껍질이 벌어지고, 그 안에 다시 소녀의 모습이 보였다.

소녀는 혼절한 석목과 손에 든 핏빛 진주를 번갈아봤다. 작은 얼굴엔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렇게 입술을 잘근 깨물던 소녀는 곧 진주를 석목에게 던졌다. 진주는 석목의 위에서 빙글빙글 돌다, 훅- 핏빛안개를 내뿜었다.

* * *

며칠 후, 여자아이는 수만리 떨어진 바다 위에 나타났다.

어느덧 보통 또래만큼 키가 커진 소녀는 궁녀 옷을 입은 한 아름다운 중년 여인과 함께 서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크기의 거북이를 밟고서 물보라를 일으키며 빠르게 이동하고 있었다.

여인은 아이의 손을 잡고,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내려다보며 말했다.

“얘야, 날 만나지 않았다면 봉변을 당할 뻔했구나. 천조영녀(天蚌灵女)야, 넌 타고난 물 속성 술사로구나. 온 역사를 통틀어도 만년에 한 명 있을 법한데……. 우리 동쪽 바다 수족(水族)의 앞날이 아주 밝을 듯하다!

참, 네 이름이 무엇이야? 영주(灵珠)는 어디 있고? 천조영녀는 모두 영주를 하나씩 가지고 있다고 하던데……. 호신법기(护身法器)를 제작하기 위한 최상급 재료로…….”

“아아…….”

여자아이가 옹알옹알 소리를 내며 여인을 향해 손을 휘저었다.

“아, 향주라고 부르는구나! 영주는 선물했고, 네 생명을 구한 은인이라고? 음, 은혜를 갚는 건 당연한 일이지……. 뭐? 그 사람이 인족(人族)이라? 게다가 사내라니.

얘야, 꼭 기억하렴. 인족 사내는 절대 믿어선 안 된다. 다시 만나면 일격에 죽여 버리려무나. 이 사부와 영주를 찾으러 가자. 뭐? 영주가 이미 전에 오염돼 효능을 잃었다고? 그렇다면……. 그래도 절대 그를 다시 만나선 안 돼.”

거대한 거북이는 둘을 태우고 점점 멀어지더니 결국 하나의 점이되어 완전히 사라졌다.

* * *

석목은 정신이 혼미한 와중에도 전신이 타오르는 고통을 느꼈다. 혈액은 마치 펄펄 끓는 것만 같았고 입과 혀는 계속 바싹 말랐다.

그러다 석목이 갑자기 큰 소리를 지르며 벌떡 일어나 앉았다. 석목은 그제야 자신이 해변 모래사장 위에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사방은 조용했고, 주변엔 사람의 그림자조차 보이질 않았다.

석목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숙이고 크게 놀랐다.

피범벅이 돼있어야 할 손이 자그마한 상처하나 없이 아주 매끄러운 모습이었다. 어안이 벙벙해 양손을 수차례 뒤집어 보던 석목은 몸속에 흐르는 혈액도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의아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긴 석목은 잠시 후, 무언가 떠오른 듯 온몸을 만져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석목이 앞섶에서 엄지손가락만한 크기의 진주를 찾아냈다.

“이건…….”

석목은 생소한 물건에 매우 의아해했다.

사실 거대한 조개가 뿜어낸 핏빛 안개는, 여자아이가 가지고 있던 영주에 깃들어있던 외래이혈(外来异血)이 변화된 것이었다.

지금껏 석목에게 흡수된 이혈은 10분의 1에 지나지 않았고, 남은 전부는 석목의 상처 치료를 위해 사용됐다.

그리고 영주는 이미 오염돼 영성을 상실한 탓에 지금은 그저 희귀한 야명주처럼 되어버렸다. 영주가 오염되지만 않았더라면 소녀도 영주를 놓고 가진 않았을 것이었다.

석목은 이 구슬을 들고 잠시 감상하다가, 이것이 결코 평범하지 않은 귀한 물건임을 깨닫고 품속에 조심히 집어넣었다.

이어 석목은 다시 바다에 입수해 붕괴된 암초 사이에서 거대한 조개를 찾아 헤맸으나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낙담한 석목은 그제야 집으로 돌아갔다.

이윽고 노인과 약속한 3일이 되었다.

석목은 오전에 푸른 옷을 입은 성 집사 앞에 나타났고, 곧 석목을 태운 흑색 마차가 기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어촌을 떠나 풍성을 향해 빠르게 달렸다.

* * *

대제국은 동주 대륙 동쪽에 돌출한 반도에 위치해 있었다. 염국과 황국도 같은 반도에 있었고, 뒤로는 동쪽 바다를 등지고 있었다. 또한 서쪽의 황야엔 야만족이 있어 세 나라는 100년간 연맹을 맺고 함께 싸워왔다.

대제국은 반도의 중심에 위치해 두 나라의 도움을 받기 수월했으며, 또한 100만의 상비군을 가진 가장 강성한 나라였다. 그 뒤는 황국이 이었고, 염국은 이 세 나라 중 가장 약소국이었다.

대제국은 수도 이외의 토지를 9부(府) 36주(州)로 나눴고, 36주 모두 많게는 십여 개의 성을 관할했다. 그 밑으론 향(乡), 진(镇), 촌(村), 락(落)이 셀 수 없이 많았다.

풍성은 천주에서 가장 큰 성으로 천주의 주성일 뿐만 아니라 개원부의 모든 성과 비교해 봐도 다섯 손가락에 꼽힐만한 큰 성이었다.

금씨 가문은 바로 이 천주(泉州) 명문가 중 하나로, 성 밖에 수많은 밭과 사유지를 갖고 있으며 일부 약초와 광석 매매에 종사해 천주 전체의 절반에 달하는 막강한 영향력을 자랑하는 집안이었다.

석목은 성 집사에게 이러한 사실 모두를 전해 들었다.

성 집사의 이름은 금성이었다. 금성은 금씨 가문의 외교를 담당하는 사람으로, 금씨 가문 하인들 중에서도 꽤 높은 지위를 가진 인물이었다. 현재 금씨 가문 기사들만 봐도 금성에게 매우 정중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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