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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계지문-5화 (5/916)

5화. 맹세

빛은 천천히 마당 한 구석 장작이 세워져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곧 여창해가 숨을 크게 한번 들이키자, 빛은 광풍에 휩싸여 장작을 향해 날아갔다. 이내 바람소리는 사라지고, 빛도 동시에 자취를 감추었다.

펑-펑-! 몇 번의 파열음이 울리고, 장작은 일곱 토막이 되어 데굴데굴 굴러갔다. 단 한 번의 일격에 무려 6배의 타격이 가해진 것이었다.

“진기를 사용하지 않고 한 호흡에 6번의 검격을 날리시다니! 사부님의 풍치도법은 단연 최고입니다!”

석목은 그제야 크게 숨을 뱉고, 박수를 치며 찬사를 쏟아냈다.

“진기를 사용해 한 호흡에 9번까지 성공시킨 적도 있단다. 이 도법을 대성하면 한 호흡에 무려 13번의 검격을 날릴 수도 있어! 난 아직 그 경지까진 멀었구나.

듣기론 풍치13검법은 선천무인 등급의 도법이었으나 누군가에 의해 나눠져 수련자도 훈련할 수 있게 됐고 위력도 크게 줄었다고 한다. 당연히 진짜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풍치도법이 만약 정말 선천도법이었다면 이리 쉽게 유출될 리도 없고 진즉에 고수들이 회수해갔을 것이니.”

여창해가 웃으며 말했다.

“한 호흡에 13번의 참격이라니! 정말 가능합니까? 가능하다면 누가 감히 그 공격을 받아낼 수 있을까요?”

석목이 매우 놀라 되물었다.

“네가 만약 정말 그 수준에 올라서면 아마 모든 후천무인을 휩쓸어 버릴 수 있을 게다. 이제 이런 건 그만 생각하고 네게 다시 마지막으로 이 풍치도법의 요지를 가르쳐주마. 이 도법은 13식으로 보이나 일단 시작하면 도법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광풍을 이용해 속도는 더 빨라져 결국 그 기세가…….”

여창해는 열심히 설명했고, 석목은 정신을 집중해 여창해의 말을 한 자도 놓치지 않고 가슴에 담았다.

“그럼 풍치도법은 여기까지 하고 이어서 쇄석권을 전수해 주겠다. 이 권법은 풍치도법과 다르게 순수한 외문무예다. 초식이 매우 간단하고 위력은 전부 주먹에 달려있다. 쇄석권은 이름 그대로 대성하게 되면 돌과 암석을 부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여창해는 주위에 놓여있던 세숫대야 크기만 한 돌덩이를 향해 걸어갔다. 한번 크게 숨을 들이마신 그가 곧 매우 빠른 속도로 다리를 휘둘렀다.

쾅-!

엄청난 소리와 함께 커다란 돌이 부서져 하늘로 날아올랐다. 여창해가 이렇게나 마른 몸으로 큰 돌덩이를 발로 차 하늘로 날려버린 것이었다.

쿵!

여창해가 다시 한 번 위풍당당하게 공중으로 주먹을 뻗었다. 그의 모습은 마치 밀림의 수사자를 보고 있는 듯했다.

쾅!

이내 떨어지는 돌덩이들은 여창해의 주먹에 맞아 폭발했다. 곧 무수한 돌조각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내렸다.

석목은 두 눈을 반짝이며 숨도 못 쉬고 이 광경을 바라보았다.

“잘 듣거라. 네가 이후에 도법을 수련하든, 검법을 수련하든, 도검을 가지고 있지 않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그때에 적을 만난다면 의지할 수 있는 건 오직 자신의 주먹뿐이다.

이 쇄석권은 간단하면서도 수련자 단계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를 대성하게 되면 다른 높은 단계의 권각무예를 익힐 때도 좋은 기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권법은 위력이 강하지만 잘 알려지지 않아 수련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이 무공을 익히기 위해선 외부의 힘을 빌려 주먹을 강화해야한다. 수련하기 위해 꽤 많은 고생을 겪어야하기 때문이다.

이 권법은 수련자의 역량에 따라 위력이 좌우되기에 비범한 능력을 가졌다면 작은 노력으로도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지금 이 시범에도 진기는 사용하지 않았다.”

여창해가 무표정하게 설명을 했다.

“사부님이 어느 정도의 힘을 낼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석목이 물었다.

“진기를 사용하지 않고도 500근 정도는 거뜬히 들 수 있다.”

여창해가 곧바로 마당에 있는 돌덩이 쪽으로 걸어갔다. 그 돌덩이는 성인 반 정도의 크기로 언뜻 봐도 매우 무거워 보였다.

이내 여창해가 숨을 살짝 들이쉬고 허리를 구부려 돌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석목은 이를 보고 탄성을 금치 못했다.

진기를 사용하지 않고도 저 정도의 돌을 쉽게 들 수 있는 후천무인은 풍성에도 몇 없을 것 같았다. 마른 사내도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 * *

반 시진 후, 여창해는 사유지를 떠났고 석목은 홀로 마당에 서 있었다.

손에는 엄지손가락만한 약병과 흰색 서책을 들고 있었는데, 약병은 바로 여창해가 만든 비약으로 쇄석권의 수련을 돕는 약이었고, 서책은 쇄석권의 비급이 적힌 책이었다.

석목은 병뚜껑을 열어 냄새를 한번 맡고 옆으로 치워놓았다. 그리곤 풀밭에 앉아 천천히 서책을 펼쳤다.

석목이 어촌 근처의 서당에서 몇 년간 아무 대가도 없이 가르침을 받지 않았더라면, 일찍이 부모님 없이 자랐던 석목은 지금까지 글을 읽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석목은 빠른 속도로 서책을 읽고 다시 머리를 숙여 약병을 바라보았다.

“힘은 세면 셀수록 좋지!”

석목은 곧 서책을 치우고 가장 큰 돌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그 돌은 거의 탁자 정도의 크기로 여창해가 들었던 돌의 2배가량은 더 컸다. 대략 봐도 1,000근은 될 듯했다. 곧 석목은 쪼그려 앉아 오른손으로 돌덩이를 잡았다.

훅!

그리고 석목은 이 거대한 돌덩이를 한손으로 가볍게 들어올렸다.

“가벼운 것 같은데? 더 무거운 것도 들 수 있겠어.”

석목은 조용히 혼잣말을 하고 돌덩이를 던져버렸다.

그러자 온 마당이 뒤흔들렸다.

석목은 두 손을 자세히 내려다보았다. 단단했지만 가느다란 손은 어떻게 보더라도 1,000근을 들어 올릴 만한 힘이 있어 보이진 않았다.

석목은 잠시 망설이다가 무기 거치대에서 장도를 거머쥐었다.

잠시 후, 석목이 도를 휘두르자 마치 이무기가 승천을 하는듯한 기세로 검영이 폭발할 것처럼 날아올랐다.

휙-! 순식간에 백색 명주가 나와 근처의 장작을 향해 날아갔고 펑, 하는 소리가 수차례 터져 나옴과 동시에 장작은 눈 깜짝할 새 일곱 토막이 났다.

한 호흡에 6번이었다.

석목의 도법은 여창해가 보여준 수준보다 결코 뒤떨어지지 않았다.

검영이 사라지자 석목은 다시 칼을 제자리에 가져다 놓았다. 그리고 무언가 생각에 잠겨 토막 난 장작만 하염없이 내려다보았다.

* * *

해질 무렵, 석목은 어떤 초라한 방 안에 누워있었다.

육중한 나무문은 안쪽으로 잠겨있었고, 석목은 바로 중앙에 위치한 한 침상에 누워있었다.

석목의 피부 전체는 벌건 색을 띠고 있었고, 온몸도 땀에 흥건히 젖어있었다. 석목은 때때로 몸을 웅크리며 앓는 소리를 내기도 했고, 사지는 끊임없이 경련을 일으켰으며, 혼미해 정신을 차리지도 못하는 상태였다.

그로부터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차츰 고통에 찬 소리가 잦아들기 시작했다. 석목의 피부도 원래의 색을 되찾았고, 석목은 곧 온몸을 다시 천천히 펴고서 아주 피곤한 기색으로 눈을 떴다.

석목은 깊이 숨을 한번 들이 마시고 침상에서 내려와 팔다리를 풀었다. 그런 뒤 탁자를 움켜쥐고 힘을 줬다.

우지직! 이내 매우 단단해 보이던 원목탁자가 소리를 내며 부서졌다.

“힘이 더 강해지긴 했지만 저번만큼은 아니야. 거의 한달 만의 발작이고 시간도 반각 정도만 지속됐어. 이리 강해지는 것도 마지막일 수 있겠어.”

석목이 조용히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사실 이 같은 발작은 석목이 사유지에 입주한 이후 몇 차례나 찾아왔던 것이었다. 석목은 이로 인해 날이 갈수록 놀라운 힘을 가질 수 있게 됐다.

발작이 처음으로 시작 된 건 사유지에 들어 온지 꼭 한 달이 됐을 때였다.

석목은 그날 밤새 고통으로 몸부림쳤고, 다음날 언제 그랬냐는 듯 고통은 멎고 원래의 상태로 되돌아와 있었다. 그리고 석목은 반응 속도와 더불어 자신의 힘이 놀랍도록 커졌다는 걸 대번에 느꼈다.

그날 밤, 또다시 발작이 시작됐다. 그 후 석목은 몇 달간 10차례 이상이나 이 같은 현상을 겪었고, 매번 발작을 일으키고 난 다음날이면 언제나 놀라울 만큼 강해져 있는 자신을 느낄 수 있었다.

발작이 지속되는 시간은 점점 더 짧아졌다. 반면 발작은 점점 더 긴 기간을 두고 일어났고, 반응 속도와 힘이 늘어나는 정도도 점점 더 줄어들었다. 이번 발작도 처음 일어났던 발작에 비하면 아주 조금 더 강해졌을 뿐이었다.

허나 석목은 이미 1,000근 이상을 들어 올릴 있을 만큼 강해져 있었고, 반응 속도 역시 일반인의 몇 배에 달할 만큼 빨랐다.

석목은 이 신비로운 현상이 바로 그 해저에 갇힌 거대한 조개를 구한 일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곧바로 눈치 챘다.

이는 석목이 아무리 둔한 사람이라도 금세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석목이 강해지기 위해 겪었던 이 발작은 정말 죽을 정도로 고통스러웠으나, 당시 해변에서 깨어난 후에 느꼈던 감각과 매우 흡사했다. 그때에도 석목은 피가 들끓고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느낌과 거대한 고통을 느꼈었다.

석목은 한때 책을 통해서나 전해지는 이야기로, 전설적인 고수들의 기연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서 이를 매우 부러워했었다. 하지만 이제 그러한 기연이 자신의 몸에도 찾아온 것이었다.

석목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매우 기뻤고, 또한 반년 후에 있을 개원무원의 입교시험에도 든든한 자신이 생겼다.

사부 여창해는 석목의 나이가 입교조건에 맞고, 앞으로 기를 느끼게 된다 할지라도 무원에 입교하려면 격렬한 경쟁을 해야 한다고 말했었다.

실제 개원무원의 자원도 한계가 있기에 늘 한정된 인원을 모집하곤 했다. 하여 신청자는 언제나 인원에 몇 배에 달하는 수가 몰렸다.

석목은 자신의 재능이 아주 평범하기에 기령단을 복용한다 해도 기를 느낄 확률이 타인에 비해 그리 크게 높지 않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여창해는 쉬체지술 9성에 이르면, 그 다음은 기를 느낄 확률이 대폭 상승한다고 말했었다. 10성을 달성하면 평범한 자질을 가진 사람도 기를 느낄 확률이 3할 이상으로 뛴다고 했고, 쉬체지술 13성을 대성하게 되면 실패할 확률은 절반 이하로 뚝 떨어진다고 했다.

이것이 바로 자질이 떨어지는 수련자라 할지라도 30세가 넘어서도 충분히 후천무인이 될 수 있는 이유였다. 쉬체지술 13성에 오르기만 하면 여러 차례 기령단을 복용해 끝내는 후천무인이 될 수 있었다.

허나 이에 소모되는 시간과 비용은 일반 수련생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당연히 그리 늦은 나이에 기를 느낀다면 무인이 수련할 수 있는 황금시기를 완전히 놓치는 것과 다름이 없으니, 이후 수련에도 어려움이 있을 것이었다.

그리되면 다음 단계인 후천무인 중급에 오르는 것도 자연히 큰 어려움이 따를 것이고, 후천무인 상급에 오르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했다.

일부 세가의 귀한 자제들은 진귀한 단약을 구해, 기를 느낄 수 있는 확률을 높이기도 했다. 그런 단약은 기령단의 몇 배 이상의 가치를 갖고 있었다.

여창해는 쉬체지술을 12성까지 수련한 뒤, 20세가 넘어 두 번째 기령단을 복용한 후에야 가까스로 후천무인의 단계에 올라섰다. 이 이야기를 할 때마다 여창해의 얼굴엔 안타까움이 가실 줄을 몰랐다.

석목에겐 진귀한 단약을 구한다는 건 애초에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때문에 그저 쉬체지술을 더욱 열심히 수련하는 길밖에 답이 없었다.

허나 쉬체지술 9성을 넘기기 위해 필요한 시간은 상상을 초월했다. 15세 이전에 쉬체지술 12성에 오를 수 있는 사람은 뛰어난 천재만이 가능했고, 이는 모든 대제국의 역사를 통틀어도 단 몇 명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석목은 몇 달 새 발작과 동시에 찾아온 신체의 변화를 겪으며 어느덧 쉬체지술 9성에 올라 10성의 경지에도 매우 근접해 있었다.

이대로만 간다면 반년 안에 쉬체지술 10성에 오르는데는 전혀 문제가 없을 것이었다. 그래도 아직 11성을 달성하는 건 기약이 어려웠다.

기를 느낄 확률은 단 3할에 불과해 석목은 좀체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결국 석목이 11성에 오르기 위해선, 전에 여창해가 언급했던 편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어 보였다.

여창해는 그 수련법은 어느 고수가 무의식중에 깨우친 것으로 방법이 매우 간단하고 거칠지만 그 효과는 아주 놀랍다 말했었다. 다만 모든 과정에서 큰 위험과 고통을 동반하고, 심할 경우엔 수련하는 도중 요절할 가능성도 있어 수련자들에겐 잘 전수되지 않는 것이라 했었다.

만약 석목이 과거에도 큰돈을 갖고 있었다면 당장에 아주 기쁜 마음으로 돈을 지불하고 수련법을 전수 받았을 것이었다.

석목은 어머니의 묘 앞에서 반드시 고수가 되겠다고 맹세했었다.

고수가 된다는 건 가시밭길과 같은 고된 길은 아주 당연한 것이었고, 석목 역시 그 길을 피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고된 길을 걷게 되리라는 건 스스로가 더 잘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때문에 석목은 위험을 감수하는 걸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허나 석목은 이후 쉬체지술 수련에 전념하기 위해선 먼저 쇄석권을 완전히 터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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