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혈맥(血脉)무인
7일 후, 사유지 광장의 중심엔 콩이 가득 찬 물독이 세워졌다.
석목은 상의를 다 벗고 검은색 바지만 입은 채 손에는 두꺼운 장갑을 끼고 온 힘을 다해 물독에 가득 찬 콩을 두드리고 있었다.
“잘 듣거라, 쇄석권의 위력은 힘의 크기에 따라 결정되지만 주먹 자체의 단단함 역시 중요하다. 힘이 아무리 강해도 주먹이 물렁하다면 돌을 때렸을 때 다치는 건 바로 자신의 양손뿐이겠지.
쉬체지술이 상당한 경지에 올랐지만 이제 네 주먹의 강도는 고작 나무를 격파할 수 있는 정도 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네게 장갑을 줄 테니 이 콩을 치거라. 수련을 통해 주먹을 단련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손이 크게 다칠 정도까진 두들기지 않아야 빠르게 단련할 수 있다. 네 일격이 물독 바닥까지 닿는다면 안의 내용물을 돌조각으로 바꿀 것이고 장갑도 한 겹 줄일 것이다.
네가 또 다시 일격에 바닥까지 뚫는다면 철가루를 채워 넣을 것이다. 철가루까지 뚫으면 암석을 사용해 훈련할 것이다. 집중! 왼손의 흔들림이 크다!”
여창해는 팔짱을 낀 채 옆에 서서 무표정하게 이야기 했다.
“예!”
석목은 대답하며 양손을 휘둘렀다.허나 석목은 이후 쉬체지술 수련에 전념하기 위해선 먼저 쇄석권을 완전히 터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주먹은 물독에 반 척의 깊이만큼 들어갔고, 석목은 땀에 흠뻑 젖어 정신없이 팔을 휘둘렀다. 석목의 근육도 연신 춤을 추듯 계속 불끈거렸다.
반각 후, 석목이 갑자기 기합을 내지르며 주먹을 더 강하게 휘둘렀다. 그 일격에 석목의 팔은 물독의 절반 깊이까지 파고 들어갔다.
“멈춰라! 내 분명 너에게 너무 큰 힘을 사용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더냐! 손이 다치진 않았느냐! 어서 내게 보여 봐라.”
여창해가 크게 외치며 품에서 빠르게 약병을 꺼냈다.
“여 사부님, 괜찮습니다.”
석목이 팔을 꺼내며 말했다.
“하! 괜찮은지 안 괜찮은지는 내가 판단한다. 어서 장갑을 벗어라.”
여창해가 빠르게 말했다. 석목이 결국 장갑을 벗고 손을 보여줬다. 석목의 손은 아주 살짝만 빨개진 상태였다.
“호오……. 정말 괜찮은 모양이구나. 이상하다, 손이 피투성이가 되어야 정상일 텐데……. 이리와 이 장작을 온 힘을 다해 쳐 보거라.”
여창해는 석목의 주먹을 자세히 살펴보곤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더니 근처의 두꺼운 장작을 가리키며 지시했다.
“예.”
석목은 깊게 한번 숨을 들이마신 후, 장작 앞으로 갔다.
쾅! 석목이 뻗은 주먹에 장작은 무참히 부러졌다. 장작의 윗부분은 휙-, 소리와 함께 건물의 외벽까지 날아갔고, 곧 장작이 부딪히자 건물이 살짝 흔들릴 정도의 파괴력을 보였다.
하지만 천천히 거둬들인 석목의 주먹엔 놀랍게도 아무런 상처가 없었다.
“이제 막 쇄석권을 수련하기 시작했는데 이 정도까지 해내다니……. 이런 것은 처음 보는구나. 설마 혈맥을 활성화한 것이냐?”
엄청난 광경에 여창해는 차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혈맥이라뇨?”
석목이 물었다.
“아니야, 내가 착각했겠지. 혈맥무인은 매우 희소하단다. 그저 남들보다 피부가 약간 두꺼운 것일 게다. 네 신체는 거친 훈련에 잘 맞는듯하니 쇄석권을 가르치길 정말 잘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여창해는 크게 한번 웃고,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여 사부님, 혈맥무인이 무엇입니까?”
석목은 호기심이 일어 물었다.
“음, 어찌 말하면 좋을까……. 혈맥무인이란 몸속 혈맥을 활성화해 특수한 힘을 발휘하는 체질을 가진 무인이다. 허나 세간에 혈맥무인은 매우 적다. 만 명 중에 한 명 있을까 말까하지. 네가 혈맥무인일리는 없을게다.
혈맥무인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개원무원에 입교하거라. 그곳엔 전문적인 가르침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게다. 혈맥무인은 하나하나가 모두 괴물 같은 존재들이다. 동일한 경지에 오른 사람을 가볍게 제압할 수도 있지.
만약 마주친다면 반드시 피해라. 혈맥무인은 시기와 질투를 받기에 신분이 좋다면 그나마 괜찮겠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미처 다 성장하기도 전에 말살 당한다. 참, 이번 개원무원에 입교를 하려는 많은 천재들 중에 어쩌면 혈맥무인이 있을 수도 있겠구나.”
여창해가 간단하게 대답했다.
석목은 고개를 끄덕이고 더 이상 묻지 않았지만, 어쩌면 이 혈맥무인과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가 연관이 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너는 쇄석권을 수련하기 적합한 신체를 가졌으니, 수련의 단계를 높이도록 하겠다. 지금의 수련강도로는 효과가 없겠구나.”
여창해가 웃으며 말한 뒤, 물독에 뾰족한 돌조각을 채워 넣고 장갑을 한 겹 벗긴 뒤에 다시 수련을 재개했다.
석목은 전과는 다르게 주먹을 휘두를 때마다 바늘에 찔리는 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 하지만 여창해는 수련을 중지시킬 기미도 보이질 않아서 석목은 이를 악물고 돌조각을 두들길 수밖에 없었다,
“기억해라. 쇄석권 수련방법은 너무 과격해 근골이 쉽게 상할 수 있다. 아무리 네 신체조건이 훈련에 적합하더라도 한 번 수련한 후엔 무조건 사흘가량은 쉬어야 할 게다.
허니 회복기간엔 쉬체지술을 연마하고 손이 완벽히 낫거든 다시 쇄석권을 연마해라. 그럼 반년 내에 쇄석권을 어느정도는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여창해가 말했다.
“예.”
석목은 돌 조각을 가격하며 대답했다.
* * *
저녁 무렵, 석목은 의자에 앉아 탁자 위에 두 손을 올려놓고 있었다.
장갑을 벗은 손은 빨갛게 부어올라 평소보다 2배는 더 두꺼워져 있었다. 피부 역시 거의 투명해 보일 정도로 얇아진 상태였다.
석목은 처참해진 두 손을 보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여창해는 두 손이 부어오를 정도로 훈련을 해야만 성과가 있다고 했지만, 이렇게 부은 손으론 약조차 바르기 어려웠다.
석목은 품에서 약을 꺼내 겨우겨우 손에 바르며 고통에 땀을 줄줄 흘렸다.
* * *
다음날 아침, 석목은 잠에서 깨 무의식적으로 손을 확인하고 잠시 멍해졌다. 어제까지만 해도 터질듯이 부어있던 손이 전부 회복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손등에 피멍이 남아있지 않았다면 어제 일이 꿈같이 느껴질 정도였다.
“이게 어찌된 일이지?”
석목은 소리치며 팔을 휘두르고 손가락도 열심히 움직여보았다, 하지만 모든 게 평소와 같았고 조금의 통증도 없었다.
석목은 어제의 수련이 정말 꿈처럼 느껴져 연신 눈만 깜빡거렸다. 믿을 수 없어 손만 바라보던 석목은 잠시 후 침상을 꽉 움켜쥐었다.
으드득! 시원한 소리가 울림과 동시에 침상이 단번에 으깨져 조각이 났다.
“정말로 나았어! 설마 내가 정말 혈맥을 활성화 한 건가? 사실이라면 전에 그 거대한 조개를 구했던 것과 관계가 있는 것이겠지. 설마 그 조개가 뿜은 핏빛안개가 날 혈맥무인으로 만든 건가?
허나 사부님 말대로라면 내가 혈맥무인임을 밝히는 것은 신상에 좋지 않을 거야. 회복력이 이렇게 좋으니 쇄석권을 매일 수련할 수 있겠는걸? 수련의 속도를 몇 배 이상 올릴 수도 있겠어!”
놀라움에 멈춰있던 석목이 이내 기뻐하며 혼잣말을 했다.
점심 무렵, 석목은 양손을 백색 헝겊으로 꼼꼼히 휘감고 허리와 다리에는 무거운 모래주머니를 단 채 광장을 질주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석목의 온몸이 금세 땀에 흠뻑 젖었다.
여창해는 한쪽에서 그 광경을 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서 있었다.
오후가 됐을 땐, 사유지 어느 굳게 잠긴 방에서 펑펑-! 하는 요란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바로 석목이 아무도 없는 큰 방에서 내는 소리였다.
석목은 손에 두른 백색 헝겊을 벗고 얇은 장갑만 착용한 채 물독에 채워 넣은 돌조각을 미친 듯이 치고 있었다. 너무도 고통스러웠지만 석목은 이를 악물고서 독하게 주먹을 내질렀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늦은 저녁, 석목은 마침내 침상에 누워 잠들었다.
피로가 역력해 보이는 석목은 발라당 누워 거의 혼절한 자세로 잠들어 있었다. 그리고 빨갛게 부은 두 손엔 백색 연고가 아주 두껍게 발라져 있었다. 무의식중에도 손가락을 구부리며 매우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는 듯했으나, 석목은 오래도록 깊은 잠에서 깰 줄을 몰랐다.
* * *
“뭐라? 철련지법(铁炼之法)을 배우고 싶다고?”
여창해가 두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네, 사부님께서 쉬체지술을 몇 배 이상 빠르게 수련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말씀해주시지 않으셨습니까? 그 수련법을 익히면 개원무원 모집 전에 쉬체지술 11성을 달성할 수 있을 겁니다. 그 후에 기령단을 먹으면 기를 느낄 수 있는 확률은 더 크게 늘겠지요.”
대답하는 석목의 두 손엔 두꺼운 헝겊이 감겨 있었다.
“그래, 얘기한 적이 있었지. 분명 철련지법의 효과는 뛰어나지만 큰돈도 필요하고, 수련과정이 매우 위험해 잘못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여창해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반년 안에 쉬체지술 11성에 오를 수만 있다면 어떠한 위험이라도 감수할 각오가 되어있습니다. 마음 놓고 가르침을 주십시오.”
석문은 결연한 모습으로 대답했다.
“수련에 따르는 위험을 알고 있음에도 기어코 배우겠다면 가르치지 않을 이유가 없지. 수련 초기에는 반드시 타인의 도움이 필요하니 무관으로 와야 할 것이다. 괜찮겠느냐?”
“예, 괜찮습니다. 무관에 오가는 귀찮음을 줄이기 위해 수련기간 동안 성에서 지내려 합니다.”
“무관 근처에서 지낸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 내일 백은 천 냥을 갖고 무관에 오너라. 난 돌아가 수련에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겠다.
내일 즉시 철련지법을 전수해주마. 이 수련법은 이름 그대로 신체를 철과 같이 쉬지 않고 두드려 담금질해 신체를 강화시키는 방법이다. 이 기간 동안 보통 사람은 절대 견디기 힘들 고통을 참아야하고 매일 약욕을 해야 한다.
단 하루라도 쉬면 몸이 버틸 수 없을 게야. 네가 만약 이 수련법을 견뎌낸다면 나도 더 이상 수련자 단계에선 네게 가르칠 것이 없을 것이다.”
여창해는 허허 웃곤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런 뒤 여창해는 곧 쇄석권의 힘을 발산하기 위한 기술을 가르치고 떠났다.
이내 사유지에 돌아온 석목은 장쇄에게 한동안 풍성에서 지낼 것이니 성내 깨끗한 방을 구하라고 말했다. 장쇄는 대답 후 은자를 챙겨 문을 나섰다.
* * *
이후 반년이 지났다.
콩알만 한 빗방울이 우르르, 소리를 내며 퍼붓고 비구름 사이에 천둥번개까지 간간히 내리치는 이곳은 풍성 밖 민둥산, 어느 외진 산길이었다.
이 폭우를 뚫고 마치 표범처럼 달리는 한 사람이 보였다. 그는 한 걸음에 무려 보통 사람의 다섯 걸음을 나아갔다. 그렇게 순식간에 작은 산을 넘은 그는 무성한 숲을 향해갔다.
잠시 후, 그의 주변에 검광이 번쩍이더니 콰르릉, 소리와 함께 열 몇 그루의 나무가 분분히 잘리어 쓰러졌다.
바로 그때, 하늘에서 번개가 내려치며 그의 모습을 환하게 비췄다. 하지만 밀짚모자에 비옷을 입은 그는, 나무가 흔들리는 틈을 타 순식간에 암흑 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한 시진 뒤, 산속 한 사찰의 낡은 대문이 쿵, 소리를 내며 열렸다. 그 후 무거운 발소리와 함께 거대한 물체를 짊어진 이가 비바람을 몰고 들어왔다.
마침 이 산속 사찰 대전에서 모닥불을 쬐고 있던 두 사람은 낯선 사람의 등장에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응? 손님이 있었네? 제 목재를 사용한 겁니까?”
낯선 이가 어깨에 들쳐 멘 무언가를 내려놓고 빗물을 털며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