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11화 (11/916)

11화. 요화창법(獠火枪法)과 일월도

“오순은 천성이 우둔하고 다리도 편찮아 추한 종수와도 잘 어울리는 짝이라 할 수 있으나 자존심이 강해 분명 이 혼사를 거부할 거야.”

오풍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허허, 우리 오씨 가문에 온 이상 마음대로 하게 둘 순 없지요. 제게 그 아이를 넘겨주신다면, 당장에 그 아이를 고분고분하게 만들어드리겠습니다.”

오동이 섬뜩하게 웃으며 말했다.

“너는 내가 강압적인 방법을 생각해보지 않은 줄 아느냐? 오씨 가문에 처음 왔을 때 종수는 혼자가 아니었다. 종수를 데려 온 사람을 알아보니, 어리지만 금씨 가문과 관계가 있는 사람이었다.”

“뭐? 금씨 가문과 관련이 있어? 그럼 이 일은 이대로 끝내도록 하지. 그 아이에 대해 관심을 끄는 게 좋겠다. 이 일이 까발려져 금씨 가문을 건드리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종씨 가문 조상 중에 혈맥무인이 있다는 것도 애초에 종씨 가문에서 나온 얘기니 사실인지 아닌지도 확실하지 않다.

사실이라도 혈맥무인의 후대에 혈맥무인이 나타날 확률이 조금은 있지만 특수한 비법과 진귀한 약물을 퍼부어 자극을 해야만 한다. 여러 부분을 생각해봐도 그 계집아이는 여러모로 포기하는 게 좋겠구나.”

오씨 가문의 주인, 오량은 갑자기 크게 태도를 바꿨다.

흰 피부의 둘째 오풍은 이에 이견이 없었고, 비단옷을 입은 셋째 오동은 영 내키진 않았지만 형의 결정에 고개를 끄덕였다.

형제는 그 후, 몇 가지 사항에 대해 더 대화를 나눈 뒤 흩어졌다.

“아버지, 그 못생긴 아이와 함께 온 녀석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또 금씨 가문이랑은 무슨 연관이 있는 겁니까?”

교만한 소년, 오화가 아버지 오풍을 따라 어느 방에 도착하자마자 물었다.

“그 석목이란 아이에 대해 궁금한 것이구나. 석목은 금씨 가문과 직접적인 혈연관계는 없는 외척이나, 석목의 호적상 모친은 금씨 가문에서 매우 영향력 있는 사람이니 건드리지 않을 수 있다면 건드리지 않는 게 가장 좋지.”

“호적상 어머니요?”

오화는 살짝 어리둥절해했다.

“응, 이름은 금진. 네가 좋아하는 금씨 가문 금옥진의 고모다. 옥진과 이름이 단 한 글자 차이지만 실력은 천지차이다. 네 큰 백부님과 동등한 경지에 올라있는 인물이야. 대외적으로 잘 알려져 있진 않지만, 금씨 가문 모든 약재사업을 그 여인이 담당하고 있기에, 금씨 가문 내에서 굉장히 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다. 석목 그 아이가 신경 쓰이는 것이냐?”

“소문에 그 아이가 오씨 가문을 떠나 석목에게 돌아갔다고 합니다. 물론 저는 그 아이에게 흥미가 없지만 저와 혼약을 맺었던 사이인데 다른 사내의 곁에 가있다고 하니, 이를 사람들이 알게 되면 굉장히 무안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아버지, 전 그놈에게 혼찌검을 내주고 싶습니다.”

오화가 대답했다.

“허허, 이놈아. 내 방금 말한 것을 어디로 들었느냐? 넌 금옥진과 맺어지고 싶어, 금씨 가문 수많은 자제들과 친분을 쌓지 않았느냐? 허나……, 오씨 가문은 그 녀석에게 손쓰기 힘들겠지만, 금씨 가문 사람이라면 다르겠지.”

오풍이 잠시 생각한 뒤 오화를 사랑스럽게 쳐다보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아버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겠습니다.”

* * *

“얼마 전, 작은 방파의 사람에게 순식간에 당했다던데.”

이곳은 100평정도 되어 보이는 크기의 어느 연무장이었다. 여기 한 백의를 입은 소년이 20대 청년 2명을 차갑게 쳐다보고 있었다.

다들 푸른 옷을 입고, 손에 창을 쥔 한 청년과 허리에 채찍을 차고 있는 이 청년 둘은 흑호회와 난수방의 결투에서 석목에게 순식간에 패배한 바로 그 난수방의 두 고수였다.

두 사람은 앞의 소년이 두려워 진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왕……, 왕 사제. 어찌 그 일을…….”

창을 쥔 청년이 더듬거리며 말했다.

“흥! 내가 마침 무관 제자들이 얘기하는 것을 듣지 않았더라면, 두 사형들은 이 일을 계속 감춰 금강무관(金罡武馆)의 명성을 실추시키려 한 건가요?”

백의의 소년, 왕 사제가 콧방귀를 뀌며 위엄 있게 말했다.

“그렇지 않다. 그저 이번 패배가 너무 비참해서 더욱 정진한 후 다시 흉권에게 도전하려 했던 거야.”

허리에 채찍을 찬 청년이 이마에 식은땀을 흘리다, 급히 기지를 발휘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을 보니 그 자에게 순식간에 패배했다는 소문이 맞나보군요. 당시 상황에 대해 낱낱이 말해보세요.”

왕 사제가 이내 흥미로운 표정을 보였다.

“알겠다. 왕 사제, 처음 흉권과 겨룬 것은 우리 둘이 아니었다. 난수방의 큰 형님이 당시…….”

두 청년은 죄에 대해 사면을 받은 듯 급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결국 결정적인 순간에 여 형님께서 패배를 시인하셨기에 마지막 일격을 피할 수 있었지. 그 공격에 맞았다면 나는 아마 일어나지 못했을 거다.”

“흉권이 나무 몽둥이로 사형의 죽창을 터트리고 이 사형을 끌어당겼다니 아무래도 이미 쉬체지술 10성 이상을 달성한 것 같군요. 사형들로서는 애초에 적수가 되지 않았겠어요.”

왕 사제는 얘기를 듣고 어느 정도 얼굴빛이 풀어졌다.

“맞아, 흉권은 다른 사람에게 정체를 알리지 않아. 그 자는 나타나자마자 흑호회 제일의 고수가 되어 여러 강적을 격퇴시켰지만, 최근 반년 사이 더 강해진 듯하다. 심지어 얼마 전 천록무관의 봉군마저 1대 1 상황에서 흉권의 주먹의 맞아 늑골 8개가 골절됐다. 아직도 병상에서 회복 중에 있지.”

이 사형이 대답했다.

“봉군도 흉권에게 당했다고? 아깝게 개원무원에 입관하지 못했지만 쉬체지술 10성을 달성했을 뿐 아니라, 신체를 단단하게 만드는 외문무공, 철의체(铁衣体)도 수련한 그를 쓰러뜨리다니……. 정체를 숨긴 그 녀석에게 흥미가 생기는군.”

왕 사제는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왕 사제, 그 말은…….”

서로의 얼굴만 보며 어쩔 줄 몰라 하던 청년 중 하나가 조심스레 물었다.

“사형들은 가서 어떻게든 내가 그 자와 싸울 수 있게 약속을 얻어내요. 그가 내 요화창법을 받아낼 수 있는지 한 번 붙어보고 싶군요.”

왕 사제가 주저하지 않고 말했다.

“그건…….”

“알겠다. 우리가 반드시 약속을 얻어내겠다.”

창을 쥔 청년이 망설이는 사이, 이 사형이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왕 사제는 그제야 만족하고 떠났다. 창을 쥔 청년은 그제야 원망스러운 얼굴을 하고 물었다.

“이 사형, 우리가 정말 그 흉권을 찾아가 약속을 받아내야 하나요?”

“왕 사제의 고집을 모르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 만약 대답하지 않았다면 즉시 돌변해 우리를 공격했을 것이다. 됐다, 흑호회에게 사람을 보내 불러내면 그만이다. 그 흉권이 승낙을 하지 않아도 우리가 신경 쓸 일이 아니지.”

이 사형이 능구렁이처럼 말했다.

“그렇군요.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만약 흉권이 승낙하지 않는다면 왕 사제가 분명 흑호회에 찾아가겠지요. 결국 우리의 복수까지도 하게 되고 일거양득입니다. 왕 사제 실력이라면 그 흉권이 아무리 무지막지한 힘을 가지고 있더라도 상대가 안 될 겁니다.”

창을 쥔 청년이 무언가 깨달은 듯 말했다.

“그렇지. 요화창법은 수련자가 사용해도 강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후천등급의 무예지. 아무리 흉권이라도 절대 당해내지 못할 것이다.”

이 사형도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둘은 기뻐하며 무관을 떠났다.

* * *

석목은 자신이 변장했던 흉권이 누군가의 목표물이 된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 허나 소식을 들었다 해도 크게 신경 쓰지도 않았을 것이 분명했다. 이런 일들은 석목이 흉권 행세를 한 지난 반년 간 이미 수차례 있던 일이었다.

천록무관의 봉군은 어느 작은 세력의 사주를 받아 석목에게 도전했었다. 하지만 석목은 쇄석권을 이용해 단 3번의 주먹질 만에 그를 쓰러뜨렸다. 그 후 그는 벌써 반년 째 병상에 누워있는 중이었다.

석목이 흉권으로 변장한 이유는 매우 간단했다.

석목이 유풍무관에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무관에서 수련하고 있던 풍리, 고원은 석목의 쇄석권이 대성의 경지에 근접한 것을 눈치 챘다. 놀란 그들은 석목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고, 흑호회가 다른 세력에게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병사한 흑호회의 고수 흉성을 대신해 달라고 부탁했었다.

그리고 석목은 그에 대한 대가로 거액의 은자를 받아, 약욕때문에 바닥나가던 재산을 다시 채워나갔다.

한편, 이제 막 풍성으로 들어온 석목은 흑호회가 관할하는 어느 낡은 거리에 도착했다. 이 거리는 30장(丈) 정도였고 좌우엔 간혹 상점이 있었다.

석목은 그중 철 망치 모양의 간판이 걸려있는 한 상점에 들어갔다. 석목은 매우 기대하는 표정으로 상의를 벗은 고동색 피부의 사내를 바라보았다.

체격이 좋은 그 사내는 두 눈을 크게 뜨고 손에 든 설계도를 보고 있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미간이 찌푸려지기 시작했다.

“왜 그러시죠? 설마 이 무기를 제작하지 못하는 것입니까?”

석목은 그 모습에 조급해졌다. 체격이 큰 사내는 석목의 말을 듣고 결국 설계도에서 눈을 떼고 잠시 생각한 후에 대답했다.

“이 무기의 설계가 굉장히 묘해서 제작하려 한다면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하겠지만 시간만 충분하다면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유일한 문제는 재료인데 제작에 필요한 한철은 매우 귀해 여기엔 아주 조금 밖에 없습니다. 다른 재료로 대체해도 될까요?”

“안됩니다. 전 이 일월도가 매우 절실히 필요합니다. 쇠를 자르고 옥을 절단 할 수 있게끔 제작할 순 없겠지만, 쉽게 망가지는 것은 원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하지요. 제가 은자 500냥을 더 줄 테니 다른 대장간에서 한철을 구입해주세요. 기한은 늦어도 한 달 안에는 완벽하게 만들어주셔야 합니다.”

석목은 단호하게 말했다.

“은자만 있다면 한 달이면 충분합니다. 때가 되면 와서 무기를 챙기시면 될 겁니다.”

체격이 큰 사내가 고민 없이 대답했다.

“그럼 수고해주세요. 이건 착수금입니다.”

석목은 미소를 지으며 허리에서 은대를 꺼내 그대로 놓고 갔다.

이 대장장이는 흑호회에서 풍리와 고원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흉권의 정체를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고원과는 먼 친척이며 제철기술을 통달했을 뿐만 아니라 도검을 제작하는데 있어선 풍성의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실력을 가진 인물이었다. 흉권이 사용하는 은색 가면도 그가 만든 것이었다.

때문에 석목은 미리 지불한 은자에 대해서도 크게 걱정이 없었으나, 석목의 주머니는 다시 텅텅 비고 말았다. 은자를 모을 방법을 다시 찾아야 했다.

석목은 지난 반년 간 수입 중 절반은 좋은 위치에 자리 잡은 ‘원향주루(远香酒楼)’로부터 벌어들였다. 주변 산에서 사냥한 동물들을 보내기 시작한 후에는 전보다 사업이 더 흥해서 매달 은자 100냥을 넘게 벌어들이고 있었다.

또 다른 절반의 수입은 바로 흉권으로 활동해 벌어들인 것이었다. 그리고 교외 논밭에서 벌어들이는 수입은 대부분 사유지를 유지하기 위해 지출됐다.

이틀 전, 석목의 풍치도법은 이제 한 호흡에 7번 참격을 날릴 수 있는 경지에 올랐다.

석목에게 일어나던 발작과 그로 인해 일어나던 신체능력의 강화는 이미 반년 전에 멈춰버렸다. 이후 석목은 많은 노력 없이 한 호흡에 6번이나 참격을 날릴 수 있게 됐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이었는지를 깨닫게 됐다.

그 변이가 멈추고, 석목은 반년 간 거의 매일 풍치도법을 수련했지만, 한 호흡에 6번의 참격을 날릴 수 있는 수준에서 이제 겨우 한 단계 더 성장했을 뿐이었다.

허나 석목의 스승 여창해는 진기를 운용해야만 한 호흡에 9번의 참격을 날릴 수 있으니, 석목의 성취는 이미 대단한 것이라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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