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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계지문-14화 (14/916)

14화. 천음차녀(天阴姹女)

휙-휙-

7개 검영이 금색 잔상들을 향해 날아가, 금빛 잔상과 실체에 명중했다.

“찍찍!”

주먹 크기의 금색동물은 날카롭게 울다가 함정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기습공격을 한 석목은 매우 기뻐하며 급하게 목검을 던져 버리고, 소매에서 큰 그물을 꺼내 함정을 덮었다.

금사서는 함정을 탈출하려다 석목이 설치한 그물에 막혀 다시 아래로 떨어졌다. 계속해서 탈출을 시도했지만 그럴수록 힘은 점점 더 떨어져 결국 함정 안에서 꼼짝도 하지 못했다.

석목은 그제야 함정 앞으로 가 안쪽을 살펴봤다.

금사서가 구덩이 바닥의 점액에 엉켜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석목은 비로소 안심하며 돌아서 배낭을 숨긴 바위로 갔다. 배낭에서 철장을 꺼내고 다시 함정으로 향하던 그 순간, 석목의 안색이 크게 변했다.

분명 아무도 없었던 함정 주변에, 청색 옷을 입고 등에 검을 멘 사내가 나타나 금사서를 들고 관찰하고 있었다. 원래라면 금사서는 석목의 함정에서 기절해 있어야만 했다.

“선배님은 누구이신지요. 그 금사서는 제가 잡은 것입니다!”

석목은 거세게 뛰는 심장을 진정하려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물었다.

“뭐라고? 이 애송이가 이몸이 네놈의 사냥물을 뺐었다고 말하는 것이냐?”

청의의 사내가 천천히 돌아서 차갑게 말했다.

석목은 그제야 그 사내의 얼굴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나이는 30대 정도로 보이는 그는 짙은 눈썹과 칼처럼 날카로운 눈빛을 가진 도사였다. 그를 둘러싼 모든 것이 그는 매우 독살스러운 사람이라 말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 금사서는 이 후배가 온힘을 다해 겨우 잡은 것…….”

석목이 어렵게 말을 꺼낸 그 순간, 돌연 엄청난 한기가 쏟아졌다. 곧 석목의 온몸은 순식간에 뻣뻣이 굳기 시작했다. 사내가 두말도 하지 않고 석목을 공격한 것이었다.

“깔깔깔! 명성 높은 한연검이 수련자를 죽여 강도짓을 하려 하다니. 이 일을 소문낸다 한들 사람들이 믿어줄지도 의문이구나!”

몸은 굳어 조금도 움직일 수 없게 되고 정신까지 차츰 모호해질 무렵, 홀연 석목의 귓가에 한 아름다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 * *

쏴-

바람이 부는 대나무 숲에서 흰 옷을 입은 요정 같은 소녀가 걸어 나왔다.

열대여섯 살 정도로 보이는 소녀는 굉장히 아름다웠고, 전체적인 곡선이 유연하고도 유려했다. 겉으로 드러난 두 다리는 마치 눈처럼 새하얬고, 새까만 머리카락은 허리까지 닿아있었다.

거기다 두 눈동자에 어린 요염한 빛까지, 세상 어느 사내도 저항할 수 없을 것 같은 눈빛이었다. 말하자면 소녀는 흡사 세상에 몹시 고혹적인 매력을 흩뿌리고 있는 사람 같았다.

“천음차녀, 이 요녀가! 아직도 따라오고 있었는가? 설마 나 한연검이 정말 네 차녀공(姹女功)이 두려워 도망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

도사는 마치 흉측한 것이라도 본 듯 메고 있던 장검 손잡이를 쥐었다.

“한연검, 내가 널 쫓는 이유를 잘 알고 있지 않느냐. 너만을 사랑한 가련한 남예사매를 어찌 외롭게 지하에 혼자 둔단 말이냐?”

소녀는 천천히 도사를 향해 다가갔다.

“요녀야. 내가 몇 번을 말했느냐. 그녀의 죽음은 나와 관계가 없어. 누군가가 나와 그녀가 만나는 장소를 몰래 듣고 그녀를 죽인 거라고!”

도사는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푸른빛이 맴도는 장검을 슥, 뽑아 들었다.

“네놈이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상관없다! 네놈이 남예사매와 생사를 같이 한다 맹세했으니, 난 그 맹세를 도우려는 것뿐이다. 감사할 필요 없다!”

맨발의 소녀는 웃으며 말하다 갑자기 소매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옥처럼 희고 짧은 자와 같은 그 물건은 채 반 척도 되지 않았고, 폭은 두 촌 정도였다. 특히 연기가 펄펄 끓듯 피어오르는 표면이 매우 신비로웠다.

“현……, 현빙척(玄冰尺)! 그건 너희 천음종(天阴宗)의 귀물이 아니더냐? 이 미친 계집이 죽은 사람 때문에 그토록 귀한 것을 훔쳐 나오다니. 너희 천음종이 그 사실을 아는 것이 두렵지도 않더냐! 그들이 알면 너의 무공을 바로 폐할 것이다!”

백의의 소녀와 목숨을 걸고 겨루려던 도사는 그녀가 꺼내든 물건을 보고, 표정이 크게 급변해 말까지 더듬기 시작했다.

“깔깔깔, 그건 네가 걱정할 일이 아니지. 내가 먼저 너를 죽일 것이니!”

맨발의 소녀는 웃으며 한빙척을 가볍게 흔들었다. 그러자 순식간에 허공에 파동이 일더니 하얀 연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연기는 뱅뱅 돌면서 그릇 크기의 흰 꽃모양을 만들었다.

“날 죽이겠다고? 꿈이 참 크구나!”

휙-

도사는 들고 있던 금사서를 그녀에게 매섭게 던지고, 뒤쪽으로 날아가듯 빠르게 뛰어올랐다. 그리곤 허공에서 몸을 돌려 뒤쪽 가까이에 있던 검은 수풀 속으로 들어갔다.

“요녀! 현빙척에 대한 소문이 퍼지면 네가 천음종에 어떻게 변명할지 보도록 하겠다!”

도사의 표독스러운 목소리는 이미 수풀을 넘어 아득하게 들렸다. 벌써 멀리까지 도주한 듯했다.

“얼간이! 모방품에 놀라서 도망가는 꼴이라니! 추혼향이 적중했으니 네놈은 어디로도 도망 못 간다. 어디 한 번 최대한 멀리 도망 가보려무나. 어머! 이 아이, 이미 영안이 열렸구나!”

맨발의 소녀가 손을 들어 금사서를 가볍게 받으며, 비꼬듯 중얼거렸다. 그러더니 금사서를 보고 크게 놀랐다.

“한연검 정도 되는 사람이 어째서 고작 금사서를 탐내 강도짓을 하나 했더니……. 곧 영물이 되는 영동서(灵瞳鼠)였구나.”

소녀는 한빙척을 집어넣고 금사서를 품에 안은 채 쓰다듬었다.

금사서의 녹색 빛 눈동자는 멈추지도 못하고 이리저리 굴러만 다녔다. 그렇게 금사서는 소녀의 손길에서 벗어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맞다. 한 놈이 더 있었지.”

한참 금사서를 쓰다듬던 소녀가 마치 석목을 이제야 발견한 듯 말했다.

석목은 그 자리 그대로 얼어붙어, 눈만 가까스로 움직여 소녀를 바라봤다.

이내 소녀가 꺄르르, 웃으며 천천히 걸어왔다.

석목의 눈동자도 소녀의 움직임을 따라 천천히 움직였다.

“재미있어.”

소녀는 석목의 모습이 재미있다는 얼굴로 석목의 좌우를 오갔다.

석목은 조금도 몸을 움직이지 못했지만, 눈동자만은 그녀를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쫓았다. 정말 그 모습은 굉장히 익살스러워 보였다.

“깔깔깔, 너무 재밌어.”

맨발의 소녀는 순간 석목의 앞에 멈추더니, 금사서를 안고서 허리까지 숙이며 웃었다. 배가 다 아프다는 듯 웃는 모습까지도 매우 요염했다.

그렇게 한참을 웃던 소녀가 다시 몸을 펴고 소매를 들췄다. 그러자 순식간에 하얀 안개가 뿜어져 나와 석목의 몸 안으로 들어갔다. 얼어있던 석목의 몸은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르게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쿵!

석목은 몸이 경직된 채 앞으로 털썩 넘어져 진흙 위에 패대기쳐졌다. 그래도 팔다리에 힘이 없어서 몸을 일으키지도 못하고 겨우 머리만 들어올렸다. 그러자 석목의 눈앞에 그녀의 부드러운 발이 보였다. 붉은 염료가 발라져 있는 발톱은 꽃잎같이 매혹적이었다.

“내 발이 그렇게 예쁘니?”

발의 주인이 느릿느릿하게 물었다.

석목은 그 말을 듣고 얼굴이 빨개지더니 힘을 쥐어짜 천천히 일어났다. 이내 석목은 앞의 절세미인을 묘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꼬마야, 네 나이가 두 살만 더 많았다면 즉시 네 눈깔을 파냈을 거다.”

소녀는 요염한 눈빛과는 다르게 입으론 모골이 송연해지는 말을 뱉었다.

“이름이 무엇입니까?”

석목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메말랐지만 매우 차분한 목소리였다.

“내가 왜 가르쳐줘야 하지?”

소녀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이름을 알아야 당신의 집에 찾아가 청혼을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석목이 소녀를 보며 열정적으로 말했다.

“뭐라고? 내가 잘못 들었나?”

소녀는 자신이 잘못 들었을 거라 생각하며 아름다운 두 눈을 크게 떴다.

“당신을 아내로 맞이하고 싶습니다. 당신과 혼인할 거예요.”

석목은 주저하지 않고 매우 열심히 말했다.

“무……, 무슨 허튼 소리를 하는 거야! 너 내 나이가 몇 살인지는 알아? 감히 누군 줄은 알고 그런 말을 하는 거야?”

소녀는 악랄하게 말했지만 마음은 심란했다.

“설마 이미 혼약을 했거나 나이가 사십이 넘었습니까?”

석목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건 아니지. 난 이제 겨우 20대……. 내가 왜 이런 질문에 대답하고 있지? 너…….”

소녀는 저도 모르게 대답을 하다, 부끄러움을 못 이기고 화를 냈다.

“20대고 혼약을 하지 않았다면 됐습니다. 낭자가 누구시든 전 이미 낭자를 처음 본 순간부터 반했습니다. 허니 저와 혼인해 주십시오.”

석목은 한시름 놓고 진지하게 말했다.

“깔깔깔. 네가 날 좋아한다고 날 가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느냐! 네가 고작 수련자 수준밖에 안 되는 건 둘째치더라도 아니, 네가 선천무인이 된다 해도……. 됐다, 이런 얘기가 다 무슨 소용이겠느냐. 난 사내들이 내뱉는 어떤 달콤한 말도 믿지 않는다. 일찍이 평생 혼인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어.”

소녀는 마침내 정신을 차리고 웃으며 말했지만, 저도 모르게 석목의 눈을 피하고 있었다.

“어머님께선 항상 진심으로 좋아하는 여인을 만나면 부부의 인연을 놓치지 않도록 빨리 마음을 표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 석목은 이 자리에서 굳게 맹세합니다. 한평생 눈앞의 당신만을 아내로 맞이하겠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만개의 화살에 가슴이 뚫려 죽을 것입니다.”

석목이 손을 들고 맨발의 소녀 하나만 바라보며 맹세했다.

그때, 우연의 일치인지 석목의 말이 끝나는 순간, 하늘에선 까닭 없이 천둥소리가 울려퍼졌다.

소녀는 빨간 입술을 살짝 벌리고 아름다운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석목을 바라봤다. 그리곤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이내 요염한 미소를 지었다.

“너……, 너무 재미있구나! 나 천음차녀가 스물도 채 안 되는 꼬맹이에게 청혼을 받는 날이 오다니. 좋다, 좋아. 네게 기회를 주마. 네가 만약 서른이 되기 전에 선천무인이 된다면, 만농산(万珑山) 천음종으로 날 찾아오너라. 그때 네게 내 본명을 가르쳐주도록 하지. 그리고 이건 영동서에 대한 보수다.”

소녀는 웃음을 멈추고 석목에게 작은 병을 하나 던져줬다. 그 후, 소매에서 한 병을 더 꺼내 깨트렸다.

훅-

돌연 광풍이 일며 허공에 뭉게구름이 나타났다. 구름은 소녀의 몸을 10장(丈) 가까이나 들어 올렸고, 그녀는 한 마디를 남기고 그대로 멀리 날아갔다.

“하나만 말해주지. 아까 금사서는 구덩이에서 기절한 척을 한 거였어. 만약 한연검이 나타나 강도짓을 하지 않았다면, 이미 이 금사서는 도망치고 없었을 거야.”

이 모든 건 찰나 순간에 일어났다.

그리고 소녀는 뭔가 허겁지겁 도망가듯 서두르는 모양새였다.

석목은 작은 병을 쥐고 한동안 멍하게 소녀가 사라진 방향만 쳐다보다, 혼잣말을 했다.

“사람이 하늘을 날다니. 천음차녀…….”

한참 후, 석목은 정신을 차리고 병과 함정을 번갈아 보며 씁쓸히 웃었다.

“수백 냥의 은자를 쓰고 이 병 하나를 얻었으니 본전도 안 되겠군.”

그렇지만 석목은 곧 병 안에 든 물건에 대해 호기심이 생겼다.

‘그토록 신비한 낭자니 어쩌면 선물한 물건도 일반적인 것은 아니겠지.’

석목은 그렇게 생각하며 병을 열어 뒤집었다. 데굴데굴, 엄지손가락 크기의 흰색 단약이 굴러나왔고, 표면엔 보일 듯 말 듯한, 은실이 덮여 있었다.

‘기령단.’

석목은 단약을 본 후 저도 모르게 큰 소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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