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15화 (15/916)

15화. 경지에 오르다

이 단약은 석목이 도감에서 수차례 보았던 그 기령단이 분명했다.

석목은 여전히 믿을 수가 없는 듯, 눈을 크게 뜬 채 단약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코앞에 대고 킁킁 냄새를 맡으니 매운 냄새가 느껴졌다.

‘정말 기령단이 맞구나!’

시중에 있는 기령단의 공식적인 가격은 은자 만 냥이었다. 하지만 암시장에선 은자 2~3만 냥에까지 거래되기도 했고, 그 가격에도 물건이 없어 사고 싶어도 사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석목은 뜻밖의 수확에 매우 즐거우면서도, 한편으론 이 기령단을 아무렇지도 않게 줄 수 있는 그녀에게 더욱 크게 놀랐다. 아마 그녀는 청혼을 하는 석목을 보고 분수를 한참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지도 모르겠다.

이내 그녀가 제시한 조건이 석목의 가슴을 부담스럽게 죄어오기 시작했다. 스스로도 자신이 서른 이전에 선천무인의 경지에 오르는 것은 불가능 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허나 굳은 심지를 가진 석목으로선, 태어나 처음으로 가슴을 뛰게 한 여인을 이대로 포기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피할 수 없다면 이젠 착실히 목표를 향해 걸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현재는 기를 느껴 후천무인이 되는 것이 급선무였다.

석목은 크게 심호흡하며 머릿속의 여러 잡념들을 떨쳐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금 들고 있던 기령단에 집중했다. 이 기령단 외에도 금씨 가문에게 받을 기령단이 하나 더 있기에, 석목은 결국 자신이 기를 느끼게 될 것이라 크게 확신했다.

* * *

며칠 후, 유풍무관 뒤뜰에 문이 굳게 닫힌 방에서 마치 폭우가 내리는 소리와 같은 타격음이 들려왔다.

석목은 상반신을 벗은 채 마보자세로 여창해가 휘두르는 몽둥이를 맞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피부는 평소와 다르게 빨갛게 붓지 않고 어렴풋이 창백하기만 할 뿐이었다.

몽둥이가 석목의 몸을 두드릴 때마다 땅-땅-! 하고 마치 말뚝을 때리는 것 같은 괴이한 소리가 났다. 석목도 몽둥이에 수도 없이 맞으면서도 전혀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몹시 상기된 얼굴이었다.

여창해도 겉옷을 벗고 반소매 옷만 입어서 온몸에 잡힌 튼튼한 근육이 모두 드러나 있었다. 그는 손에 쥔 몽둥이를 끊임없이 휘두르느라 온몸에 땀이 줄줄 흘렀지만 절대 몽둥이질을 멈추거나 땀을 닦진 않았다. 그 역시도 석목처럼 몹시 흥분한 듯했다.

콰쾅!

몽둥이가 석목의 가슴에 위치한 혈을 때렸을 때, 돌연 천둥소리와 같은 굉음이 울려 퍼졌다,

석목의 안색은 순간 닭 피를 끼얹은 것처럼 검붉어졌다가 순식간에 평소와 같은 색으로 돌아왔다. 다시 검붉어졌다가 돌아오길 수십여 차례 반복하자 석목의 몸안에서 갑자기 폭죽이 터지는 것 같은 소리가 발생했다. 덩달아 피부와 근육도 울룩불룩하게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

“하하. 성공했어! 이 철련지법을 반년이나 견딜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하다니, 드디어 쉬체지술 11성의 경지까지 올랐구나!”

이내 여창해가 들고 있던 몽둥이를 내 던지고 호탕하게 웃기 시작했다.

“모두 여 사부님께서 반 년간 심혈을 기울여 도와주셨기 때문입니다.”

석목이 숨을 깊이 들여 마시자 폭죽 터지는 소리는 갑자기 멈추고 피부와 근육도 평소의 모습대로 돌아왔다. 석목도 매우 기뻐하며 말했다.

“그저 돈을 받고 한 일이니 고마워 할 것 없다. 너 같이 타고난 사람이 아니고서는 다른 사람은 애초에 견디지도 못했을 것이다.”

여창해는 손을 흔들며 말했다.

“뭐라고 말씀하시던 스승님 덕분에 쉬체지술 11성을 달성할 수 있었습니다. 이 제자, 한없이 감사드립니다.”

석목은 대답하며, 팔다리를 움직여 전과 달라진 신체의 변화를 느껴보았다.

“흥! 나에게 감사한다면 며칠 뒤 비무 대회에서 우승을 안겨다오.”

여창해가 말했다.

“헤헤, 문제없습니다.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석목이 웃으며 말했다.

* * *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났다.

이곳은 천록무관(天禄武馆)의 대문 앞이었고, 곰처럼 커다란 몸을 가진 천록무관 주인, 봉영선은 무관의 한 사부와 함께 손님들을 반기고 있었다.

손님은 바로 유풍무관에서 온 여창해와 일행들이었다. 여창해와 붉은 얼굴의 사내 뒤엔 석목, 그리고 또 다른 두 사람이 함께 따라 오고 있었다.

“하하, 여 형, 민 형. 겨우 몇 달 안 본 사이에 원기가 더욱 왕성해졌군요.”

“별말씀을요. 봉 관주야말로 안 본 사이에 풍채가 더 좋아지셨습니다.”

“허허, 지금 살이 쪘다고 놀리는 겁니까?”

“어찌 감히 그러겠습니까. 우리 4대 무관 중에서 봉 형만이 유일하게 실질적인 업무를 관장하는 관주 아닙니까. 어디 직책만 있고 일이 없어 평소에 사람도 잘 만나지 않는 저희 세 사람 같겠습니까? 참, 비홍무관의 전 여우와 금강무관 왕로는 도착했습니까?”

“하하. 전 형제가 본인을 여우라고 부르는 것을 알게 되면 분명 화를 낼 것입니다. 안심하세요, 그들은 이미 도착해 연무장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같이 온 세 사람이 비무 대회에 참가하는 제자들인가요?”

봉영선은 마치 보살처럼 크게 웃으며 석목과 두 사람을 관찰했다.

“이 셋은 모두 실력이 출중하지만 관주님의 조카 봉 군에 비할 바는 못 됩니다. 이번 대회도 꼴등은 비홍무관이나 우리 유풍무관이 아니겠습니까.”

여창해가 낮게 웃으며 말했다.

붉은 얼굴의 사내는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듯 여창해의 옆에 서서 그저 웃기만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 말은 틀릴 것 같습니다. 이번엔 비홍무관이 꼴등을 하고 싶어도 그러긴 힘들 겁니다.”

봉영선이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음? 무슨 뜻인지요?”

여창해는 약간 놀란 듯이 물었고, 옆에 있던 붉은 얼굴의 사내도 의외라는 얼굴을 했다.

“소식이 너무 늦는 것 아닙니까? 최근 비홍무관에서 후토지체의 제자를 받았다는 얘기를 듣지 못했나요?”

봉영선이 정색하며 말했다.

“후토지체?”

붉은 얼굴의 사내가 저도 모르게 입을 열어 소리를 냈다,

“비홍무관이 꼴등을 피하기 위해 필사적인가 보군……. 그래, 우승을 차지하기 위해선 조금도 물러서려 하지 않겠지.”

여창해는 혼잣말을 하곤, 속으로는 석목이 쇄석권으로 후토지체를 깨뜨릴 확률이 얼마나 될지를 계산했다.

석목은 그때, 다른 두 명의 수련자와 함께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천록무관의 대문을 관찰하고 있었다.

대문에는 금색 장식용 못이 줄지어 박혀있었고, 양쪽에는 거대한 사자상이 놓여있어 유풍무관보다 더 으리으리해 보였다.

이내 봉영선은 일행을 무관의 안쪽으로 안내했다.

문을 지나자 거대한 연무장이 보였고 그 중앙에는 연무대가 세워져 있었다. 연무대는 전체가 두꺼운 원목으로 지어져 있었으며, 높이는 약 1장, 길이와 너비는 각 10장 정도였다.

연무대 옆에는 수련자 10여명이 세 무리로 나뉘어 서있었다. 이는 다른 3대 무관의 사람들로 보였다.

“너희 셋은 저곳에 가서 기다리거라. 나와 민 사부가 곧 찾아 갈 것이다.”

여창해는 세 사람에게 지시하곤, 얼굴이 붉은 사내와 함께 봉영선을 따라 연무장 뒤에 위치한 밀실로 향했다.

“석목, 손준, 우리도 가자. 저들의 실력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야.”

여창해와 사부들이 떠나자, 세 수련자 중 가장 나이가 많은 건장한 청년이 석목과 키가 크고 마른 청년에게 말했다.

“이미 여기 모두 모였는데 이제와 상대방 실력을 안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나저나 나와 이 사형은 수련자급 무예를 소성했으니 문제가 없지만, 막 무관에 들어온 네놈은 쉬체지술 10성 경지에 올랐다 해도 무예를 수련하는 꼴은 본 적이 없으니 제대로 싸울 수나 있을지 모르겠구나. 여 사부님이 대체 무슨 생각으로 네놈을 데려온 건지 당최 이해할 수가 없어.”

키가 크고 마른 청년이 갑자기 석목에게 불만을 토해냈다.

“헤헤, 저도 이 비무에 참여하고 싶지 않았지만, 여 사부님께서 지명하시니 안 올 수도 없지 않겠습니까.”

“너…….”

“그만해라, 손준, 다른 무관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고 싶은 건 아니겠지?”

한마디 더 하려던 키가 크고 마른 청년의 말이 끊어졌다. 그는 나이 많은 청년을 두려워하는 듯, 언짢아하는 기색을 보자마자 즉시 말을 멈췄다. 결국 마른 청년은 콧방귀만 두어 번 뀌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연무대를 향해 걸어가며 근처의 다른 수련생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어?”

석목이 연무대 근처 사람들을 한번 훑어보다가 눈에 익은 사람 몇 명을 발견했다. 모두 흉권으로 변장했을 때 싸웠던 상대들이었다.

그들 중 가장 석목의 관심을 끌었던 이는 천록무관 제자 몇 명에게 둘러 싸여있는 키 큰 청년과 홀로 바닥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칠흑 같은 장창을 닦고 있는 백의의 소년이었다.

“봉군, 왕천호!”

석목은 순식간에 그 둘을 알아보았다.

그들 중 한 명은 호신공으로 석목의 주먹을 3번 받아냈고, 나머지 한 명은 놀라운 창술을 가졌지만 싸우지 않고 도망가 그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었다.

그러나 그 둘은 석목을 전혀 알아보지 못해서 세 사람이 다가오는 것을 한 번 슥, 쳐다볼 뿐 그다지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석목은 봉군과 왕천호를 훑은 뒤에야 다른 사람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이 비무 대회에 참가했다는 것은 모두 4대 무관의 걸출한 제자라는 뜻이었다. 하나하나의 기세가 확실히 다른 일반 수련자들과는 명확히 달랐다.

그때, 비홍무관의 옷을 입은 곰보얼굴의 한 청년이 지나가는 석목 일행을 보고 반갑게 인사하며 다가왔다.

“이운풍, 이제야 도착했구나. 그럼 이제 곧 비무를 시작하겠군. 자네의 망골권(蟒骨拳)을 다시 경험할 생각에 참을 수가 없구나.”

“허허, 곡충, 붙게 된다면 사정을 봐주지 않을 것이네. 그나저나 방금 전에 무관입구에서 몇몇 사부가 하는 말을 들어보니, 너희 무관에 후토지체의 제자가 새로 들어왔다던데……, 사실인가?”

이운풍은 곡충의 말에 답한 뒤 비홍무관의 다른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

그 둘 중 한 청년은 통통한 체격에 곡충과 나이가 비슷해보였고, 다른 한명은 열네다섯 정도 돼 보이는 소년이었다. 몸은 말랐고 피부는 까맸지만 다소 원숭이를 닮은 외모는 볼품이 없었다.

“아아, 고 사제는 저번 비무에서 만나 봤을 테니 소개해 줄 필요가 없겠지. 이쪽이 한 달 전에 본관에 입관한 철련 사제라네.”

곡충이 웃으며 소개하자 통통한 청년이 일어나 인사했다.

그러나 철련이란 소년은 눈동자만 굴려 쳐다볼 뿐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본 이운풍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아, 나쁘게 생각하진 말았으면 하네. 철련 사제는 어려서부터 외딴 섬에서 자라 말하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아. 참, 뒤의 두 사제를 소개시켜 주겠나?”

곡충은 급히 웃으며 중재한 후 석목과 손준을 보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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