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청풍마(青风马)
석목은 구슬이 폭발하는 순간 구덩이 속에 몸을 웅크려 아슬아슬하게 위험을 넘겼다. 허나 만약 말을 던지고 바닥을 차 흙구덩이를 만드는 동작이 조금만 늦었더라면, 석목의 결말은 검은 숯처럼 변한 말과 같았을 것이었다.
석목은 놀라움과 분노를 동시에 느꼈다. 그에 석목은 고통스러워하는 금전의 옷섶을 잡아 억지로 일으켜 세운 후 얼굴을 연속으로 후려쳤다.
퍽! 퍽! 퍽! 퍽!
금전의 얼굴은 두 눈을 뜨는 것조차 매우 힘들 정도로 부어, 흡사 돼지 머리처럼 변해버렸다.
“멈춰!”
“그 정도면 됐잖아! 설마 금전을 죽이기라도 하겠다는 거야?”
엎드려 있던 금씨 가문 자제들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석목을 말렸다. 두 사람은 석목을 저지하려 직접 급하게 다가오기도 했다.
석목은 이 말에 금진과 석옥환의 얼굴을 떠올렸다. 끝내 석목은 콧방귀를 뀌며 금전의 옷섶을 놓아줄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그 순간 얼굴이 돼지처럼 부은 금전이 눈에 독기를 품고 소매 속에 석궁을 꺼내 석목을 향해 쐈다.
이는 석목의 반응속도가 아무리 빠르더라도 도저히 막을 수 없는 가까운 거리였다. 석목은 심장이라도 피하려 급히 몸을 비틀었다.
캉!
석궁은 결국 석목의 가슴을 명중했으나, 곧 금속에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튕겨져 나왔다.
석목과 금전 모두 잠시 얼이 빠졌으나, 석목은 금방 정신을 차리고 두 눈에 분노를 불태우며 금전을 사정없이 발로 찼다.
금전의 금사갑이 적지 않은 충격을 흡수했음에도, 금전은 순식간에 하늘 높이 떠올라 왈칵 피를 뿜어내며 몇 장 떨어진 바닥을 향해 날아갔다.
‘반드시 죽일 거야! 어떻게든 저놈을 죽인다!’
금전은 극심한 고통에 분노하며 하늘 높이 떠오른 곳에서도 독을 품었다.
“안 돼!”
“어서 피해!”
금전은 곁눈질로, 멀지 않은 곳에 있던 소년들의 놀라는 표정과 다가오던 두 소년이 자신을 받기 위해 전속력으로 달려오는 것을 보았다.
‘이상하네……. 내가 저들과의 관계가 이렇게 좋았던가?’
금전이 마음속으로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순간, 금전이 바닥으로 추락했다. 그리고 그대로 바닥에 꽂혀있던 검에 목을 꿰뚫렸다.
금전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피거품을 문 채 웅얼거리다 몸에 경련을 일으키며 끝내 의식을 잃었다.
달려오던 두 소년은 곧장 그 자리에 멈춰 섰다. 흙투성이의 시체와 목을 뚫고 나온 검……. 소년들은 공포에 질려버렸다.
석목도 그 광경을 보고 아연실색했다.
바닥에 꽂혀있던 건 석목이 두 동강 냈던 금전의 검이었다. 석목에게 차인 금전은 하필 그곳으로 추락해 목에 검이 꽂혀 사망해버린 것이었다.
재수가 없었다고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만약 목이 아닌 다른 신체 부위로 떨어졌다면 금사갑을 착용했기에 절대 크게 다치지 않았을 것이었다.
“네놈이 금전을 죽였어!”
“다섯째 어르신과 금씨 가문에서 네놈을 절대 가만히 두지 않을 거야.”
“우리는 상대가 안 되니 어서 가문에 돌아가 보고하자!”
금씨 가문의 자제들은 멍하게 서 있다가 한 명의 외침을 필두로 다들 서서히 정신을 차렸다. 그런 뒤 검을 꺼내들며 말에 올라탄 그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풍성을 향해 질주해 달려갔다.
석목은 멀어지는 소년들을 보며 낯빛을 굳혔으나 쫓아가진 않았다.
석목은 절대로 금전의 죽음을 의도하지 않았다. 하지만 과연 금씨 가문 사람들이 이를 곧이곧대로 믿어줄까? 그 다섯째 어르신이란 사람은 십중팔구 반드시 금전의 복수를 고집할 것이 뻔했고, 이는 금진이 석목을 대신해 용서를 구해도 아무 소용없을 것이 확실했다.
석목은 살기 위해 반드시 풍성과 천주를 떠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고개를 돌리자 장쇄가 핏기가 다 가신 얼굴로 사유지를 향해 달려가는 것이 보였다. 장쇄도 도망을 치려는 생각인 것 같았다. 그런데 그때, 장쇄는 무언가 생각이 났는지 얼마 안가 다시 금전의 시체 쪽으로 돌아왔다.
* * *
반나절 후, 금씨 가문 저택 큰 방에서 금전의 아버지 금오가 두 눈을 부릅뜬 채 금씨 가문 가주를 향해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소리치고 있었다.
“형님, 이게 무슨 소리입니까! 금전이 석목의 손에 죽었다니요!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방에는 가주의 형제 여덟 명과 금전의 사망을 목격한 금씨 가문의 자제 대여섯 명도 함께 있었다. 소년들은 가문의 어른들이 지켜보는 사이에서, 핏기 하나 없는 얼굴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었다.
“여봐라. 금전의 시체를 올려라.”
금씨 가문의 가주가 한숨을 쉬며 한 손을 좌우로 흔들었다.
그의 지시가 떨어지자 하인 2명이 즉시 흰 천으로 감싼 시체 한 구를 운반해 방의 가운데로 옮겨 놓았다.
금오는 몸을 떨면서 차마 천을 들어 올릴 엄두도 내지 못했다.
“이……, 이것이 정말 금전이란 말입니까?”
금오가 가주를 돌아보며 물었다.
“다섯째야. 이 아이들이 모두 금전이 죽는 광경을 목격했다.”
금씨 가문 가주가 말했다.
금오는 안색이 창백해진 채 다시 몸을 돌려 다리로 바닥을 쓱, 훑었다.
휙-
광풍이 일며 흰 천이 날아가고 덮여 있던 금전의 시체가 드러났다. 금전이 몸에 착용하고 있던 금사갑은 어디로 갔는지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전아…….”
금오는 마치 돼지 머리처럼 크게 부어올라 검푸르게 멍든 금전의 얼굴과 목의 자상을 보고 두 주먹을 강하게 쥐었다.
“다섯째야. 너무 상심하지 말거라. 구체적인 상황은 이 아이들이 잘 알고 있다. 금무야,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시 한 번 말해 보거라.”
가주가 한숨을 쉬며 비교적 나이가 많아 보이는 소년에게 지시했다.
“네, 백부님. 사건의 경과는 이렇습니다. 오늘 아침 금전과 저희들이 교외에 나가 사냥하기로 약조해서…….”
금무는 매우 불안해보였지만 금씨 가문 가주의 지시에 따라 사건의 경과를 자세히 설명했다. 금오는 자초지종을 멍한 표정으로 듣다가 금전이 금사갑과 풍화통을 훔쳤다는 얘기를 듣고 표정이 살짝 변했다.
“형님, 그럼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 생각입니까?”
금오가 숨을 깊이 들여 마시고 물었다.
“금전 그 아이가 먼저 손을 썼을 뿐더러 가문의 풍화통까지 훔쳤으니……. 상당히 복잡하구나.”
금씨 가문 가주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금전이 생전에 무슨 잘못을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유일한 제 아들이 죽었습니다. 바로 형님의 친 조카요! 석목 그 놈을 반드시 갈기갈기 찢어 죽여 불쌍한 제 아이의 혼을 달랠 것입니다. 복수를 허락하지 않는다면 더 이상 형님이라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금오가 성난 목소리로 외쳤다.
“다섯째야! 네가 미쳤구나. 지금 큰형님께 뭐라고 말하는 것이냐?”
“형님, 형님이 힘든 건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금씨 가문은 명문대가입니다. 규칙을 지켜야합니다.”
곁에 있던 형제들도 서둘러 금오를 말리기 시작했다.
“흥! 자신들 아들이 죽은 게 아니라고 아주 쉽게 말하는군요. 석목 그 놈이 금진의 아들이기 때문에 행동하기 꺼린다는 걸 다 알고 있습니다! 금씨 가문에서 나서지 않겠다면 제가 직접 나서서 손을 쓸 겁니다.”
금오가 사람들을 향해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소란을 피우는 금오를 보고, 가주가 낯빛을 굳히고 무언가 말하려던 찰나, 갑자기 방안에 위엄 있는 음성이 메아리쳤다.
“다섯째야. 내가 만약 복수를 허락하지 않는다면 나 역시도 아비라 생각하지 않을 셈이냐?”
“아버지!”
“조부님!”
그 목소리를 듣고 방에 있던 사람들이 분분히 무릎을 꿇으며 절했다.
목소리의 주인은 진해신침(镇海神针)이었다. 그는 후천무인 대원만의 경지에 오른 금씨 가문의 가장 큰 어른이었다.
금오가 두려움 가득한 얼굴로 급하게 대답했다,
“아버지, 제가 어찌 감히 그런 불효한 생각을 하겠습니까. 그저 제 아들 금전이 너무 처참하게 죽어 아비가 되어 대신 복수를 해주지 않는다면 가문에 남아있을 면목이 없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풍성의 다른 가문들도 이 일로 우리 금씨 가문을 크게 비웃을 것입니다.”
“흥! 금전 그 아이가 화를 입은 것은 사실 절반 이상은 네 탓이 아니더냐. 네가 그 아이를 응석받이로 키우지 않았다면, 그 아이가 어찌 이런 사건을 일으키고 목숨까지 잃었겠느냐.”
노인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제 잘못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복수를 해 원한을 풀 수 있도록 허락해주시길 바랍니다. 그 이후에는 저를 때리고 벌주시더라도 전부 받아들이겠습니다.”
쿵- 쿵-
금오가 무릎을 꿇은 채 바닥에 머리를 2번 박고, 파랗게 부은 이마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목이 쉬도록 외쳤다.
“허허, 네가 잘못을 깨닫고 뉘우친다니 다행이구나. 네가 말한 대로 금전이 잘못을 저질렀더라도 우리 금씨 가문의 직계자제다. 가문에서 나서지 않는다면 풍성의 다른 가문이 분명 우리 금씨 가문을 무시 할 테지. 첫째야. 다섯째에게 사람을 몇 명 붙여 금전의 복수를 할 수 있게 도와라. 일곱째에겐 한동안 풍성 밖으로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하게 내 직접 엄명을 내릴 것이다.”
노인은 한동안 침묵하다가 허허 웃으며 말했다.
“네.”
금씨 가문의 가주가 즉시 대답했다.
노인의 말이 끝나자 사람들도 차례로 바닥에서 일어났다.
“아버지께서 직접 명하셨으니 다섯째 네가 원하는 사람을 붙여주마. 얼마든지 얘기하렴.”
가주가 상냥한 얼굴로 말했다.
“형님, 다른 사람은 필요 없습니다. 추적이 특기인 혈견(血犬)과 벽두응(碧头鹰)을 원합니다.”
금오가 망설임 없이 말했다.
“좋다. 수련자 한 명을 상대하는데 다른 후천무인을 데리고 갈 필요는 없겠지. 혈견과 벽두응을 다룰 수 있는 견응이복(犬鹰二仆)를 붙여주겠다.”
금씨 가문의 가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감사합니다. 석목 그놈도 고작 반나절 밖에 이동하지 못했을 테니, 지금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이삼일 내에 그놈의 목숨 줄을 끊어버릴 것입니다.”
금오가 매우 기뻐하며 말했다.
* * *
같은 시간, 풍성에서 수십 리 떨어진 길 위에 검은말 2마리가 회색마차를 끌며 질주하고 있었다.
말에 타고 있는 석목은 허리춤에 일월도를 차고 자강궁을 메고 있었다. 얼굴엔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
“오라버니 혼자면 분명 더 쉽게 도망칠 수 있을 거예요. 절 두고 가세요.”
그때, 마차 안에서 소녀의 미성이 들렸다. 곧 휘장이 걷히고 그 사이로 종수의 근심 가득한 얼굴이 나타났다.
“안 돼요. 낭자를 풍성에 홀로 두고 가면 오씨 가문에게 해코지를 당할 수도 있을뿐더러 금씨 가문 사람들이 날 잡지 못하면 낭자를 가만 두지 않을 게 분명해요.”
석목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럼 도중에 내려줘도 돼요. 혼자서도 몸을 숨길 장소를 찾을 수 있어요.”
종수가 잠시 생각하다가 작게 말했다.
“종 낭자, 금씨 가문 힘을 너무 얕잡아 보는 것 같군요. 천주 안에서는 어디라도 안전하게 몸을 숨길 수 없을 거예요. 적어도 천주를 벗어난 후에 내려주도록 할게요.”
석목이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알겠어요. 헌데 다른 계획이 없는 건가요? 이대로 길만 따라서 달리면 금씨 가문에게 따라 잡히는 건 시간문제일 거예요.”
“이 길을 따라가면 서쪽으로 200리 떨어진 곳에 운하산맥이 있어요. 끝없이 이어진 그 산맥엔 천주와 운주의 경계가 있으니 산맥에 들어가기만 하면 더 쉽게 추적을 피할 수 있을 거예요.”
“운하산이라면 확실히 도망치기 좋겠네요. 헌데 거기까지 가려면 시간이 꽤 많이 소요될 텐데……. 그 사이에 금씨 가문 사람들에게 따라 잡히지 않을까요? 명문대가에서는 뛰어난 영마(灵马)를 전문적으로 키운다는 소문을 들었어요. 우리들 말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빠를 거예요.”
종수가 말했다.
“그럼 어쩔 수 없지요. 사건이 일어난 후 바로 낭자와 풍성을 떠났으니 그들보다 반나절은 먼저 나왔을 겁니다. 허나 그들에게 따라잡히기 전에 운하산맥에 도착할 수 있을 지는 나도 단언할 수 없네요. 그저 필사적으로 달리는 수밖에 없어요. 속도를 더 올릴 테니 자리에 앉아요. 말들이 산맥까지 버텨줬으면 좋겠군요.”
석목이 신중하게 말했다.
종수는 다시 자리에 앉았고, 석목도 다시 채찍을 휘둘렀다. 두 말은 큰 소리로 울며 더욱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회색마차는 점점 조그맣게 작아지다가 이내 완전히 모습을 감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