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밀림추격
같은 시간, 풍성의 서문에선 검은 천으로 덮인 마차가 달려 나왔다.
마차를 끌고 있는 건 화염과 같이 붉은 털을 가진 말 3마리였다. 이 말은 영마 중에서도 매우 유명한 추염마(追焰马)였다. 하루에 천리를 달릴 수 있어 평상시 탈 것으로도 아주 유용했고, 화가 나면 입에서 불을 뿜어서 적을 공격하는 데에도 용이한 매우 귀한 말이었다.
마차의 앞엔 푸른 옷을 입은 마부가 채찍을 휘두르고 있었고, 마차의 뒤로는 세 사람이 추염마를 타고 달려오고 있었다.
그중 한 명은 얼굴이 길고 짧은 수염을 가진 금전의 아버지 금오였다.
노란 옷을 입은 다른 한 사람은 외모가 원숭이를 닮아 다소 추했고, 키는 4척 정도로 작았다. 또 다른 한 명은 키가 매우 컸고 은색 옷을 입고 있었으며, 매처럼 형형한 눈빛을 자랑하고 있었다. 이렇게 세 사람은 조금도 멈추지 않고 바람처럼 달려 서문을 통과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원숭이같이 생긴 사내가 말에서 뛰어내려 길 위에 생긴 바퀴자국을 세밀하게 관찰한 뒤, 다시 말에 올라 앞으로 달려갔다.
* * *
“금오가 견웅이복(犬鹰二扑)을 데리고 떠났군. 좋아, 우리는 북문으로 출발 한다. 조금 돌아가지만 그들보다 먼저 석목을 쫓을 수 있을 것이다. 혈견과 벽두응이 아무리 추적에 능하더라도 천리향보다 더 뛰어날 수는 없겠지.”
10여명의 기사들 사이에서, 비단 옷을 입은 한 사내가 하인의 보고를 듣고 크게 웃었다.
“셋째 백부님, 우리가 금씨 가문보다 석목을 먼저 잡게 되면 반드시 제가 직접 그 자의 다리를 분지를 수 있게 해주십시오.”
무리 중, 한 소년이 거만하게 말했다.
이들은 바로 오씨 가문의 오동과 오화였다.
오씨 가문은 무원의 입관 시험이 끝난 후 종수를 납치할 계획을 세우고 있어 한동안 암암리에 사람을 시켜 사유지의 동태를 감시하고 있었다. 그 덕분에 금전이 석목에 의해 죽었다는 소식을 누구보다 먼저 알았다.
석목에게 손을 쓰기에는 여전히 조금 거리낌을 느끼고 있던 오씨 가문은 이 사건을 계기로 완전히 마음을 놓았고, 즉시 오동을 포함한 추격대를 편성해 금씨 가문보다 먼저 종수를 납치해 올 계획을 짰다.
오화가 추적대에 포함된 것은 본인이 강하게 요구했기 때문이었다.
오씨 가문의 기사들이 타고 있는 말 역시 그들 가문에서 전문적으로 키워낸 영마였다. 말들은 온몸이 푸르렀고, 털에선 윤기가 흘렀다. 이 말들은 바로 영마 중에서도 유명한 청풍마였다.
청풍마는 풍호(风狐)의 혈맥을 가지고 있어 속도가 극에 달하면 다리에서 바람을 생성하는 속도가 영마들 중에서도 가장 빨랐다. 때문에 오씨 가문 사람들도 자신들이 금씨 가문보다 먼저 석목을 따라 잡을 수 있을 것이라 확신 하는 것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오씨 가문의 추격대가 북문에서 출발했다. 이들은 지름길을 통해 금씨 가문을 제치고 석목이 도망간 방향을 향해 달렸다.
곧 풍성에는 금전이 석목에게 살해당했다는 소식이 퍼졌다. 많은 사람이 놀랐지만 무원의 입관 시험에 관한 화제로 인해 금방 묻혀버렸다.
* * *
반나절이 지났으나, 회색마차는 여전히 길 위를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속도는 이미 천천히 느려지기 시작했고, 길 양쪽에는 작은 산과 언덕들이 있었지만 하늘이 다 어두워진 까닭에 잘 보이진 않았다.
석목은 어두운 얼굴로 채찍을 휘둘렀다. 그러나 두 말은 뜨거운 콧김만을 뿜어낼 뿐 전혀 빨라지지 않았다.
“오라버니. 이래서는 안돼요. 말들이 너무 지쳤어요. 쉬어줘야만 해요.”
마차에서 종수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알아요. 하지만 잠시 지체하는 사이에 따라잡힐 수도 있어요.”
석목이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말이 죽을 때 까지 채찍질 한다 해도 더 이상 빨리 달릴 수 없을 거예요. 잠시 쉬면서 먹을 것을 먹인 후에 다시 출발하도록 해요.”
종수가 계속해서 권했다.
“낭자 말이 맞아요. 말들이 확실히 한계에 이르렀어요. 저 쪽 숲속에서 반각정도 쉬면서 우리도 뭘 좀 먹죠.”
온 몸에 땀을 흘리는 두 말을 본 석목은 결국 종수의 말에 동의했다. 그런 뒤 석목은 즉시 말고삐를 당겨 숲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종수가 마차에서 내리는 순간이었다.
멀지 않은 길 쪽에서 어렴풋하게 말발굽 소리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하하! 문향충(闻香虫)이 반응을 하는구나. 바로 근처에 그들이 있다!”
“석목을 생포하면 반드시 저에게 넘겨줘야 합니다. 제가 직접 놈의 다리를 부러뜨릴 거예요.”
무리 이동속도는 매우 빨라서, 말발굽 소리는 금세 가까워져왔다.
“큰일이에요. 추격자들이 왔어요. 어서 이동하죠.”
석목은 즉시 종수의 허리를 꼭 끌어안은 채 숲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쫓아온 무리는 청풍마를 탄 오씨가문의 추격대였다. 그들은 추염마보다 더 빠른 청풍마와 천리향 덕에 단 반나절 만에 석목을 추격하는데 성공했다.
* * *
잠시 후, 오씨 가문 기사들도 숲으로 들어왔다.
앞장 선 이는 사나운 눈을 가진 중년 사내였다. 사내의 손엔 나무상자가 들려 있었는데, 안에는 하늘소와 비슷하게 생긴 분홍색 곤충이 쉬지 않고 날갯짓 하며 웅웅, 소리를 내고 있었다.
“역시 이쪽으로 도망갔군.”
뒤에서 걸어온 40대 사내가 버려진 회색마차와 말 두 필을 보고 차갑게 웃었다. 오씨 가문 오동이었다.
“무엇을 기다리느냐. 어서 쫓아라. 그들이 도망가게 두어서는 안 된다.”
오동 뒤에 있던 오화가 거만하게 말했다.
“허허, 너무 조급해 마라. 마차 안에 그리 오래 있었으니 천리향이 그들의 몸에도 배었을 게다. 향이 밤새 유지될 텐데 그 사이에 수련자 한 명을 잡지 못할까! 자, 너희 둘은 남아서 오화와 말을 돌보고 나머지는 나를 따라라.”
오동은 허허 웃으며 수하 2명에게 지시했다. 지목받은 둘은 즉시 허리를 숙이며 대답했다.
나머지 사람들은 각자 무기를 꺼내들고 나무상자를 든 사내와 함께 숲속으로 들어갔다. 기사들은 전부 수련자였지만 몸놀림이 재빠른 것을 보아 상당한 경지에 올라있는 듯했다.
오동은 오화에게 몇 마디 더 당부한 후 천천히 숲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 * *
반 시진 후, 숲속 깊은 곳.
석목이 종수를 안고 숲속을 질주하고 있었다.
석목의 옷은 이미 나뭇가지에 찢겨 너덜너덜해져 있었고, 팔과 다리에는 촘촘한 상처가 나 있었다. 허나 석목은 상처를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일정한 거리마다 방향을 바꿔가며 달리는 데만 열중했다.
종수는 몸을 웅크린 채 석목의 품에 안겨 두 팔로 그의 목을 감고 있었다. 얼굴을 빨갛게 물들인 종수는 아무 말이 없었다.
달빛이 흐린 밤, 석목과 종수는 그렇게 마치 연인처럼 붙어있었다.
석목에게 안겨있는 종수의 부드러운 피부와 어렴풋이 퍼져 나오는 향기는 매우 유혹적이었지만, 석목은 그저 시력에 의지해 필사적으로 이동하기 좋은 지형만 찾아 움직일 뿐, 종수에 대해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숲속을 달리던 석목이 갑자기 몸을 비틀어 한 나무 뒤에 숨었다. 깊은 숨을 한번 몰아쉰 석목이 머리를 살짝 기울여 들려오는 소리를 경청했다.
반면, 종수는 석목의 품에서 고개를 들고, 석목의 진지한 표정을 올려다보며 온 정신을 빼앗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소란스러운 발걸음 소리와 호되게 꾸짖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석목은 바로 몸을 돌려 다시 질주하기 시작했다,
“저들이 특수한 추적법을 가지고 있는 게 분명해요. 그렇지 않고선 넓은 숲속에 이렇게 빠르고 정확하게 우리를 쫓을 순 없겠죠. 오라버니, 저를 두고 도망가세요. 저만 없다면 달아날 수 있을 거예요.”
종수가 순간 정신을 차리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종 낭자, 그런 말 하지 마요. 제가 영웅은 아니지만 절대 여인을 버리지는 않아요. 거기다 낭자 아버님께서 임종 전 낭자를 제게 맡겼잖아요.”
석목이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하지만…….”
“하지만은 없어요! 낭자를 안는 건 크게 부담되지 않아요. 밤새 뛰어 다니더라도 전혀 문제없을 거예요.”
석목이 매우 평온하게 말했다.
“알겠어요. 오라버니와 생사를 같이 하겠어요,”
종수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며, 석목의 목을 감은 팔에 더욱 힘을 줬다.
하지만 종수의 말을 전혀 듣지 못하고 숲속을 달리던 석목은 갑자기 다시 걸음을 멈췄다. 앞쪽 나무는 이제 듬성듬성만 나 있었고, 탁 트인 시야로 멀리 있는 초원까지 어렴풋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석목이 어두운 얼굴로 품 안의 종수에게 말했다.
“보아하니 이번엔 싸우지 않을 수 없겠군요. 종 낭자, 꽉 잡아요!”
“네.”
종수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석목은 근처 나무로 빠르게 올라가 종수가 나뭇가지를 강하게 안을 수 있게 만들어준 뒤 당부의 말을 전했다.
“여기서 기다려요. 그들을 무찌르고 돌아올게요.”
말을 마친 석목이 휙, 나무에서 뛰어 내려가 지나왔던 길로 다시 돌아갔다.
종수는 나뭇가지에 기댄 채 멍하니 석목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았다. 종수는 아주 창백하게 질려있었지만, 어두운 밤이 종수의 이마 반점을 가려주어서, 아름다운 종수의 얼굴은 더 할 수 없이 매우 아름답게 빛났다.
* * *
숲속을 달리던 석목은 갑자기 큰 나무 뒤로 이동했다. 그런 뒤 무릎을 꿇고 눈을 가늘게 뜬 채 등에 메고 있던 거대한 자색 활을 꺼냈다.
앞쪽 수백 장 거리에서 10여명이 석목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그들은 이렇게 칠흑같이 어두운 밤, 누군가 몇 백 장 뒤에서 자신들을 선명하게 보고 있을 것이라곤 전혀 생각지 못한 채 필사적으로 석목이 있는 쪽을 향해 다가왔다.
한 시진이 넘도록 숲속 추격을 하다 보니, 오씨 가문 사람들 역시 대부분 석목처럼 꼴이 엉망이었다. 심지어 몇몇은 숨이 가빠 식식거리기까지 했다.
석목은 그 모습을 보고 매우 아쉬워했다. 숲의 끝자락까지 추격당하지 않았더라면 곧 대부분의 추적자를 따돌릴 수 있었을 텐데, 석목은 그렇게 생각하며 가죽 주머니에서 화살을 뽑아 활에 걸었다.
“문향충이 다시 강하게 반응하는구나. 그들이 멀지 않은 곳에 있어!”
잠시 후 어떤 사람이 놀란 소리로 외쳤다. 그에 빠르게 질주하던 오씨 가문 사람들이 순간 속도를 늦췄다.
그 중 한 사람이 불만에 차서 말했다.
“또 반응이 있다고요? 문향충이 문제가 있는 것 아닙니까? 어떻게 매번 그놈들이 앞에 있다고 하더니 가보면 아무것도 없죠? 계속 이렇게 달리다가는 형제들이 버티지 못할 겁니다.”
“흥! 우리 모두가 실수를 한다 해도 문향충은 절대 실수하지 않아. 지금까지 그놈을 잡지 못한 것은 그 놈이 빠르고 너희들이 너무 느려서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놈도 도망가지 못할 것이다. 어르신이 오기 전에 처리하면 더 좋겠지. 어르신도 오랜 시간 그놈을 쫓으며 이미 화가 많이 나셨을 거다.”
나무상자를 들고 있는 사나운 눈의 사내가 말했다.
* * *
오씨 가문 기사들은 둘이서 한 조로 앞쪽을 천천히 수색해 나갔다.
석목은 그들과 멀리 떨어져 있어 대화내용은 듣지 못했지만, 나무상자를 든 사내가 말하는 태도를 보고 그가 무리의 우두머리라고 판단했다.
석목은 또 추격자들의 발걸음이 무거운 것을 보고, 그들 중에 후천무인이 없다는 것을 간파했다.
수련자뿐이라면 석목이 두려워할 필요는 없었다.
석목은 가죽 주머니에서 화살 여러 개를 꺼내 하나씩 흙 위에 꽂았다. 그 후, 숨을 크게 들여 마시자 석목의 몸에서 폭죽이 터지는 것과 같은 소리가 나더니 석목의 두 팔이 순식간에 굵어졌다.
석목은 곧 자강궁 시위를 끝까지 당겨 정면을 조준했다.
숲이 매우 조용해서 석목의 몸에서 난 소리는 꽤 멀리까지 퍼졌다.
“무슨 소리지?”
“어디에 있는 것이지?”
“석목 그놈이 분명하다! 어서 가. 도망가게 둬서는 안 된다!”
잠시 놀랐던 오씨 가문의 기사들은 금세 석목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