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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계지문-26화 (26/916)

26화. 활로 무찌르다

눈이 매서운 사내는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 석목의 행적이 노출 됐으니 이번에야말로 석목을 잡을 절호의 기회였다.

이내 사내가 나무상자를 닫으려던 순간 갑자기 멀리서 폭음이 들렸다.

그와 함께 광풍이 불어왔고, 사내의 몸은 거대한 동물에 부딪힌 듯 순식간에 뒤로 날아가버렸다.

쾅!

사내가 큰 나무에 부딪히며 나뭇잎들이 분분히 떨어졌다.

매서운 눈의 사내는 그제야 자신이 하늘에 떠있고 목에 화살이 꽂혀있다는 걸 깨달았다. 화살에 목을 관통당한 채 뒤쪽 나무에 박혀있던 것이었다.

“우…….”

눈이 매서운 사내는 울먹이는 소리를 내며 두 다리를 몇 번 뻗다가 온몸에 힘이 축, 빠져 그대로 사망했다. 그는 마지막 숨이 넘어가기 직전, 어렴풋이 동료들도 폭음과 함께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

‘다행히 혼자 죽진 않는구나. 지하에서 너무 적적하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어.’

툭, 그가 들고 있던 나무상자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안에 있던 작은 벌레는 홀연히 날아올라 풀숲으로 사라졌다.

“어서 흩어져! 조석두와 공장이 죽었다!”

“안 됩니다. 화살이 너무 빨라요. 피할 수 없습니다! 어서 나무 뒤에 숨어요. 악……!”

“그가 돌도 뚫을 수 있는 강궁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손이구와 이광도 나무 뒤에 숨었으나 목이 뚫려 죽었습니다. 이제 어쩌면 좋습니까?”

“멍청아. 바닥에 엎드려!”

사나운 기세로 석목을 향해 달려들던 오씨 가문 기사들은 몇 번의 폭음 이후 전부 바닥에 엎드려 일어날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러나 석목은 전혀 다급해 하지 않고, 새로운 화살을 다시 활에 걸어 백여 장 떨어진 전방을 조준했다.

“둘째도 죽었다. 화살이 어느 방향에서 날아왔는지 본 사람이 있느냐? 정확한 위치만 안다면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나이가 비교적 많아 보이는 자가 바닥에 엎드린 채 물었다. 이 자는 그래도 어느 정도 평상심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였다.

“큰 형님, 화살이 너무 빨라 제대로 보지는 못했지만, 정면에서 날아온 것 같았습니다.”

옆에 엎드려 있던 기사가 허둥지둥하며 말했다.

“좋다. 위치를 알았으니 내가 가겠다.”

큰 형님이라 불린 기사가 등에 메고 있던 두꺼운 원형 가죽방패를 꺼냈다. 그는 몸을 최대한 움츠려 온몸을 방패 뒤에 숨긴 채 석목을 향해 달려갔다.

“다행이군! 큰 형님이 도순지술(刀盾之术)에 능하다는 것을 잠시 잊었어. 살 수 있겠구나!”

“모두들 준비해라. 큰 형님이 근접하면 우리도 돌진한다. 최대한 빨리 놈을 제압해야한다.”

살아남은 몇 사람은 그 모습을 보고 기뻐하기 시작했다.

펑!

방패에 몸을 숨긴 채 달려 나가던 기사가 폭음과 함께 뒤로 5~6장 나가 떨어져 그대로 죽었다.

“큰 형님의 가죽방패도 소용이 없다! 철 방패가 있어야 막을 수 있을 것 같구나. 으악……!”

한 기사가 그 광경을 보고 놀라 고개를 들어 소리치는 순간, 머리에 화살을 맞고서 바닥을 몇 바퀴나 굴렀다. 그러자 다른 기사들은 더욱 필사적으로 머리를 바닥에 처박고 조금도 떼지 못했다.

그들은 이렇게 어두운 밤에 이토록 먼 거리에서 쏘는 화살이 어떻게 족족 명중을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그들이 벌벌 떨며 엎드려 움직일 엄두를 내지 않자 석목 역시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았다.

잠시 후, 기사 중 한 사람이 참지 못하고 크게 소리쳤다.

“네 이놈! 너무 의기양양 하지 말거라. 좋은 궁을 가지고 있고 활을 조금 쏠 줄 안다고 해서 정말 도망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잠시 후 동 어르신이 오면 네 껍질을 벗겨내 형제들의 복수를 할 것이다!”

“오씨 가문의 오동? 금씨 가문이 아니라?”

“흥! 금씨 가문 사람들도 당연히 올 것이다. 그것도 금씨 가문의 다섯째어르신이 직접! 우리의 청풍마가 그들보다 더 빨라 네놈을 먼저 찾아냈지. 네놈이 운 좋게 우리의 손아귀에서 벗어난다 하더라도 결국 금씨 가문의 추격까지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씨 가문의 기사가 표독스럽게 말했다.

그의 말을 듣고 다른 이들이 정신을 번쩍 차렸다. 자신들은 석목을 어찌할 수 없어도 후천무인인 오동이 도착한다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었다.

“좋다. 그렇다면 네놈들을 먼저 해치워야겠구나.”

석목은 그대로 발을 세차게 굴러, 화살처럼 빠르게 그들 쪽으로 달려갔다.

“어서 일어나라. 저 놈이 활을 쏘지 않고 뛰어온다.”

한 기사가 다가오는 석목을 발견하고 재빨리 말했다.

제일 앞에 있던 두 사람은 몸을 일으켜 각자 창과 도를 쥔 채 석목을 향해 덤벼들었다.

남아있던 세 사람도 빠르게 바닥에서 일어나 무서운 표정으로 뒤따랐다.

바닥에 껌 딱지 마냥 딱 달라붙어 있던 그들은 석목이 활을 두고 자신들을 향해 달려오자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

무거운 갑옷을 입고 산속을 달리며 단련해왔던 석목, 지금 이들을 향해 달려가는 석목은 마치 한 마리의 늠름한 표범 같았다.

석목은 광풍을 동반하며 앞의 두 사람을 향해 돌진했다.

가장 앞에 있던 기사 2명은 석목의 엄청난 속도에 깜짝 놀라 약속이라도 한 듯 좌우로 갈라져 창과 도를 휘둘렀다. 그러자 예리한 창끝과 도의 커다란 검영이 허상을 만들며 동시에 석목을 덮쳤다.

석목은 콧방귀를 뀌며 한쪽에서 날아든 창을 향해 강하게 주먹을 뻗었다.

쾅!

창을 쥔 사내가 두 손에 작열감을 느낀 순간, 창은 그의 손을 벗어나 허공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석목의 거대한 힘에 의해 세 걸음 정도를 밀려났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 자리 그대로 굳어버렸다. 석목의 힘도 힘이지만 한 눈에 허상을 꿰뚫어 보는 능력에 더욱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챙!

석목이 허리춤에서 일월도를 뽑아 들고 날아오는 도를 향해 달려들었다.

휙- 휙-

석목이 일월도를 휘두르자 순간 검영 6개가 쏘아져 나가며 날아오는 검영을 다 쪼갰다. 이어 석목은 다시 한 번 검을 휘두르고, 몸을 비틀어 도를 든 기사 뒤로 이동했다.

이내 도를 든 기사의 목에 한줄기 혈흔이 생겼다. 그대로 머리는 바닥에 툭, 떨어져 데굴데굴 굴러갔다. 목이 없어진 시체는 그렇게 잠시 비틀거리다 바닥에 완전히 쓰러졌다.

단 칼에 목을 벤 석목은 망설임 없이 다시 창을 든 사람에게 다가갔다.

“안 돼!”

창을 쥐고 있던 사내는 겨우 중심을 잡고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그 순간, 자신을 향해 쏘아져 오는 석목을 보고 혼비백산했다.

창을 들고도 석목의 공격을 받아내지 못한 그는 살기위해 도망을 선택했지만 겨우 두 발짝을 내딛었을 즈음, 매서운 광풍과 함께 순간 허리가 서늘해지는 걸 느꼈다.

석목의 도는 그의 허리를 가르고 지나갔다. 곧 피가 솟구치며 두 동강난 시체가 바닥에 내팽개쳐졌다.

석목은 다시 한 손으로 도를 들고 뒤를 돌았다. 그리곤 다가오는 세 기사를 차갑게 쳐다봤다.

그들은 석목이 순식간에 두 동료를 해치운 것을 보고 공포에 질려 서로만 바라보고 있었다.

“도망쳐선 안 된다! 도망간다면 하나씩 격파당할 뿐이야. 삼재진(三才阵)을 펼쳐 오동 어르신이 올 때까지 시간을 끈다!”

눈가에 검흔이 있는 사내가 소리쳤다.

다른 두 사내는 금세 그의 곁으로 모여 석목을 향해 검을 뽑아 들었다.

“삼재진?”

석목은 그 말을 듣고 살짝 동요했지만, 그대로 그들을 향해 다가갔다.

세 기사는 석목이 가까워오는 걸 기다려주지 않고, 큰 기합과 함께 서로 몸을 교차했다. 그리고 검을 휘두르자 그들을 보호하는 검막이 형성되었다.

“꼭 거북이 등딱지 같구나!”

석목은 그 모습을 보고 콧방귀를 뀌더니 일월도를 휘둘러 여섯 개의 검영을 쏘아 보냈다.

펑! 펑!

석목의 공격이 닿자 검막이 흩어지고 기사들 역시 비틀거렸으나 공격은 막아낼 수 있었다. 그들은 다시 검을 휘둘러 검막을 만들었다.

“재미있구나!”

석목은 일식육참을 펼쳤을 뿐 아니라, 매 일격에 상당한 힘을 담았기에 그들이 공격을 막아냈다는 것을 다소 의외로 생각했다. 허나 석목은 그들이 고작 간단한 진형만으로 자신의 공격을 받아 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 매우 가소로웠다. 그건 그저 크나큰 오산에 불과했다.

석목은 숨을 깊게 들이마신 뒤 몸을 회전하며 사방으로 도를 휘둘렀다. 그가 도를 휘두를 때마다 대여섯 개의 검영이 쏘아져 나가며 순식간에 은빛 원을 이뤘다. 원은 그대로 검막을 향해 날아가 꽂혔다.

찰나에 폭우가 내리듯, 굉음이 빠르게 수차례 울렸다.

오씨 가문 두 기사는 불안정하게 비틀대며 물러났다. 그들이 들고 있던 검은 금이 가 곧 부러질듯했고, 가슴에는 거대한 상처가 여러 개 나있었다. 이미 너덜너덜해진 몸을 보니 살아남을 가능성이 전혀 없어 보였다.

얼굴에 검흔이 있는 사내는 뒤로 후퇴해 가슴의 상처는 면했지만, 검을 쥐고 있던 팔이 온데간데없어져 피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는 곧 자신의 상처를 돌보지도 않고 빠르게 몸을 돌려 뒤쪽으로 도망갔다.

회전을 멈춘 석목은 그 모습을 보고 콧방귀를 뀐 뒤 가죽 주머니에서 화살을 꺼내 손으로 가볍게 던졌다.

휙-

석목이 손으로 던진 화살도 일반 활로 쏜 화살만큼이나 빨랐다.

푹-

곧 얼굴에 흉터가 있는 사내도 화살에 몸이 꿰뚫린 채 바닥에 쓰러졌다.

석목은 큰 걸음으로 다가가 일월도로 마지막으로 그의 머리를 베어버렸다.

먼저 쓰러진 두 기사는 자신들이 흘린 피 웅덩이 위에 쓰러져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석목은 다시 그들의 목을 베기 위해 다가가다가 갑자기 한쪽으로 빠르게 몸을 피했다.

휙-

석목이 서있던 자리에 3촌 길이의 비도가 날아와 박혔다.

“드디어 도착했군. 모습을 보이시지.”

석목은 몸을 돌려 근처 나무를 매섭게 쳐다보며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렇게 먼 거리에서 나를 발견하다니. 감이 좋구나.”

담담한 목소리와 함께 나무 뒤에서 비단옷을 입은 사내가 걸어 나왔다. 그는 추격대의 유일한 후천무인인 오동이었다.

석목은 그가 들고 있는 물건을 보고 살짝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건 바로 석목이 놓고 온 자강궁이었다.

보아하니 오동은 진작 도착해 그들이 싸우는 사이 자강궁을 챙긴듯했다.

그가 자강궁을 사용해 석목을 기습하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자강궁은 천근의 힘이 없으면 당길 수가 없었다. 그리고 석목이 쏜 화살 몇 개를 제외하곤 다른 화살은 전부 석목이 메고 있는 가죽 주머니에 들어 있었다.

오동이 진기를 이용해 억지로 궁을 당긴다 해도 화살이 없어 사용할 수가 없었을 것이었다.

“미리 도착했음에도 고작 활 하나 때문에 수하들이 죽는 것을 그저 두고만 본 것이냐?”

석목이 일월도를 쥔 손에 힘을 주며 차갑게 물었다.

“한낱 수하들일 뿐이다. 오씨 가문이 명문대가라고 불릴 정도는 아니지만 이 정도의 하인은 수도 없이 많다.

여기 오기까지 네가 자강궁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활솜씨까지 뛰어나니 아마 내가 직접 상대했더라도 어느정도 위험이 따랐겠지.

허나 고작 수련자급 몇 명의 목숨과 활을 맞바꿀 수 있었으니 매우 수지가 맞는 거래였다. 스스로 무기를 버리다니 멍청한 짓을 했구나.”

오동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후천무인의 강대함은 수련자가 당해낼 수 없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오늘 그 말이 정말 사실인지 경험해 볼 수 있겠군요.”

석목이 오동을 보며 천천히 말했다.

“하하, 고작 수련자 따위가 감히 내 앞에서 그런 말을 하다니. 너의 대담함을 칭찬해야 하는지 무지함을 비웃어야 하는지 모르겠구나. 됐다. 너에게 후천무인의 무서움을 맛보게 해주마.”

오동은 잠시 멍하게 있다, 크게 웃으며 손에 들고 있던 자강궁을 던졌다.

쿵!

자강궁이 나무에 부딪히며 한 척 정도 박혀 들어갔다.

바로 그 순간 오동이 허리띠에서 흐느적거리는 연검을 뽑아 들었다. 이어서 그가 검을 쥔 손을 한 번 흔들자 연검이 순식간에 꼿꼿해졌다.

오동이 한 손으로 검을 쥔 채 어깨를 으쓱거리며 석목을 향해 걸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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