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후천무인
석목은 오동이 공격 범위 안에 들어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주저 없이 일월도를 휘둘렀다. 순식간에 일곱 개의 검영이 휘몰아치며 쏟아져 나갔다.
“일식칠참! 소문이 사실일 줄 몰랐구나. 정말 풍치도법이 소성의 경지를 넘어섰어. 하지만 속도로 대결하고자 하는 것이라면 상대를 잘못 골랐단다.”
오동이 작게 감탄하며 손에 쥔 검을 휘둘렀다. 곧 일곱 개의 검영이 쏘아져 나가며 석목의 공격을 흩어버리곤 다시 하나로 합쳐지더니 이내 석목의 명치를 향해 밀어닥쳤다.
“일식팔검(一息八剑)!”
깜짝 놀란 석목이 일월도를 다시 휘둘러 날아오는 검영을 매섭게 벴다.
깡!
석목은 상대의 강력한 힘에 양팔을 부들부들 떨며 반보 뒷걸음질을 쳤다.
잠시 놀란 표정을 지은 오동은 다시 검을 흔들었다. 앞부분은 마치 살아있는 독사처럼 휘어지더니 일월도를 지나쳐 석목의 목을 노리고 날아갔다. 그 일격은 너무 빨라 마치 한줄기 빛처럼 보였다.
하지만 석목은 뛰어난 시력으로 날아오는 검을 정확히 보고 목을 빠르게 옆으로 꺾었다. 오동의 검은 석목의 볼을 스치고 지나 얕은 상처를 남겼다.
석목은 포효하며 일월도를 연속으로 휘둘렀다.
이번엔 검영이 오동을 향해 쏟아졌다.
날아오는 검영을 보던 오동의 몸에서 매서운 기운이 폭발하듯 흘러나왔다. 오동은 검영을 향해 검을 두 손으로 강하게 3번 휘두르며 외쳤다.
“개산삼참(开山三斩)!”
쾅! 쾅! 쾅!
그 전보다 몇 배 이상 커진 검영이 쓸고 지나갔다. 그 바람에 오동을 향해 날아오던 수많은 검영은 순식간에 흩어져 사라졌고, 오동의 반격에 석목은 몸을 비틀거리며 세 걸음 뒤로 물러났다. 일월도를 쥐고 있던 석목의 손바닥은 찢어져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이전까지의 전투에서는 석목이 줄곧 괴력으로 상대를 제압했는데 지금은 반대로 상대방의 힘에 눌리고 있었다.
오동의 검에는 석목이 그동안 말로만 듣던 진기가 담겨 있었다. 만약 석목이 괴력을 지니지 않은 보통의 수련자였다면, 지금까지의 공격을 단 하나도 받아내지 못하고 죽었을 것이 뻔했다.
반면, 오동은 개산삼참을 펼쳐도 석목이 쓰러지지 않자 어안이 벙벙했다. 그리고 석목처럼 손바닥이 찢어지진 않았지만, 그 역시 검을 쥔 양손에 큰 고통을 느꼈다.
“석후혈맥을 각성한 자는 후천무인의 경지에 오른 후 수련 속도가 다른 무인에 비해 떨어지지만 수련자의 경지 내에서는 남들보다 강한 힘과 신체를 가지게 된다고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설마 했는데 네놈을 보니 그 소문이 정말 사실이었나 보구나. 하지만 네가 그 힘으로 정말 후천무인과 대적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큰 실수를 한 것이다.”
오동은 말을 마치고 갑자기 5~6장 높이를 뛰어 올랐다. 이내 허공에서 팔을 벌려 한 바퀴 돈 그는 거대한 매처럼 석목을 덮쳤다.
석목은 곧장 들고 있던 일월도를 위로 휘둘러 막았다.
쾅!
오동은 일월도와 자신의 검이 부딪히는 충격을 이용해 다시 하늘로 튕겨져 올라갔다. 똑같이 허공에서 한 바퀴를 돈 그가 다시 석목을 덮쳤다.
석목은 다시 검을 휘둘러 막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오동은 공중에서, 석목은 땅에서 무기를 휘두르는 것이 8번이나 반복됐다.
검이 충돌 할 때마다 오동은 마치 몸무게가 전혀 없는 듯 계속해서 날아올랐고, 석목은 반대로 오동이 매번 덮쳐올 때마다 그의 공격이 점점 무겁게 느껴지고 있었다. 손바닥의 상처에서도 점점 고통이 밀려왔고, 두 다리는 위에서 내려찍는 힘에 의해 반 척 정도 바닥에 파묻혔다.
“하하. 애송아. 응비구천의 맛이 어떠하냐. 어디 몇 번이나 더 버틸 수 있는지 보자꾸나. 후천무공에 당해 죽는 것을 영광으로 알거라!”
공중에서 오동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다시 허공을 한 바퀴 돌며 석목을 덮쳤다.
석목은 이번엔 도를 휘두르지 않고 두 무릎을 구부렸다. 절반정도 작아진 그는 도를 쥐지 않은 손으로 하늘을 향해 매섭게 주먹질을 했다. 석목의 손엔 어느새 검은색 장갑이 끼워져 있었다.
“죽음을 자초하는구나!”
오동이 검을 거둬들여 주먹을 피한 후 다시 기이한 각도로 검을 휘둘러 석목의 어깨를 찔렀다.
챙!
검 끝은 석목의 몸에 박히지 않고 미끄러지며 어깨에서부터 석목의 옷을 찢었다. 곧 찢어진 옷 사이로 금색 갑옷이 드러났다.
“금사갑!”
오동은 금사갑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소리 내 말했다.
석목은 공격을 허용하면 오동이 다시 날아오르지 못할 것을 예상하고 장갑 낀 손으로 그의 칼날을 잡았다. 금세 장갑이 갈라지고 손가락이 피에 물들었지만 석목은 오히려 흥분하며 말했다.
“마침내 잡았구나. 어디 도망갈 수 있을지 보자!”
오동이 눈을 차갑게 번뜩이며 검을 쥔 손을 흔들어 석목의 손가락을 절단내려했다.
하지만 석목이 빨랐다. 그가 일월도를 휘두르자 순식간에 아홉 개의 검영이 쏘아져 나갔고, 그 속도는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일식구참! 도법을 대성했구나!”
오동은 소리를 지르며 쥐고 있던 연검을 놓고 공중제비를 돌아 3장 뒤에 착지했다.
오동은 그 정도 거리라면 석목의 공격범위에서 완전히 벗어 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중심을 바로 잡기도 전, 무언가 잘못 됐음을 느꼈다. 아홉 개의 검영이 마치 거머리처럼 그의 바로 앞까지 따라 온 것이었다.
“안 돼!”
피할 겨를이 없는 오동은 급하게 기를 끌어올렸다. 그는 푸른빛이 감도는 두 손으로 날아오는 검영을 쳐낼 수밖에 없었다.
펑- 펑-
오동의 손이 검영과 수차례 부딪히며 굉음을 냈다.
오동은 두 손으로 대부분의 공격을 막아냈지만, 어깨에 한차례 공격을 허용했다. 일월도는 오동의 어깨에 감도는 푸른빛을 가르고 몇 촌 깊이의 상처를 냈다.
오동이 공격을 막아낸 것을 매우 기뻐하며 뒤로 물러나려던 찰나, 갑자기 일월도의 손잡이에서 소리가 났다. 그 순간 어깨에 박혀있던 일월도가 튀어 오르며 그의 목을 베고 지나갔다.
목에 한 줄의 혈흔이 생긴 오동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바닥에 꽂혀 있는 칼을 쳐다보았다. 그는 그제야 손잡이에서 검은색 얇은 줄을 발견했다. 그 전까진 어두워 전혀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금사갑만 아니었다면……. 저 줄만 일찍 발견했다면……. 네놈의 도법을 미리 알았더라면…….”
오동은 두 손으로 목을 눌러 뿜어져 나오는 피를 필사적으로 막으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곧 머리가 살짝 기울어지며 결국 목에서 떨어져 굴러갔다.
흙 위에 떨어진 그의 머리는 여전히 눈을 뜨고 있는 상태였다. 죽어서도 끝내 눈을 감지 못하는 듯했다.
이내 얇은 사슬이 흔들리며 일월도가 다시 날아와 석목의 손에 쥐여졌다.
석목은 그제야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마지막에 일부러 공격을 당해 허점을 만들지 않았다면 살해당한 것은 오동이 아니라 석목이었을지도 몰랐다.
잠시 후, 석목은 크게 웃기 시작했다.
“내가 후천무인을 상대로 승리하다니! 오동이 후천무인 중에서는 가장 약한 편에 속하고 내게 행운이 따랐다지만 승리한 건 승리한 것이지! 개원무원 심맥 사자가 이를 알게 되면 나에 대한 평가가 바뀔지 궁금하구나.”
석목은 혼잣말을 하고는 옷에서 작은 약병을 꺼내 손과 얼굴의 상처에 발랐다. 그런 뒤 몸을 일으켜 오동의 시체에 다가갔다.
잠시 후, 석목의 손엔 옥 상자와 기묘하게 설계된 허리띠가 들려있었다.
허리띠에는 오동이 사용하던 연검이 들어 있었고, 옥 상자 안에는 7~8만냥에 달하는 은표가 들어 있었다.
석목은 두 물건을 모두 챙긴 후, 그 자리를 떠났다.
* * *
잠시 후, 숲의 끝자락에선 종수가 조금의 틈도 없이 석목을 강하게 끌어 안고 있었다. 종수는 너무 기뻐서 주체가 안 되는 듯했다.
“오라버니, 무사해서 정말 다행이에요!”
“종 낭자, 안심하세요. 이제 괜찮아요…….”
석목은 종수에게서 나는 향기를 맡고, 어쩔 줄 몰라 몸이 굳어버렸다.
“미안해요, 제가 추태를 부렸어요. 오라버니, 앞으로 어떡할 거죠?”
종수는 빠르게 정신을 차리고 급하게 뒤로 물러나 얼굴을 붉히며 물었다.
“원래 있던 길로 돌아가죠.”
석목은 주저하지 않고 말했다.
* * *
숲의 다른 곳에선 오화가 마차에 몸을 기대고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마차를 지키기 위해 남은 두 기사는 매우 책임감 있게 근처를 경계하고 있었다. 이 세 사람과 멀지 않은 곳에서는 청풍마 10여 마리가 고개를 숙이고 바닥의 풀을 뜯어먹고 있었다.
푹- 푹-
기사들이 날아오는 화살에 반응조차 하지 못하고 머리를 관통당한 채 날아가 바닥에 내팽개쳐졌다.
“으악!”
마차에 기대고 있던 오화는 큰 소리를 지르며 빠르게 청풍마를 향해 달려갔다. 허나 차마 몇 걸음 걷기도 전에 세 번째 화살이 그의 등을 꿰뚫고 바닥에 박혔다.
오화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필사적으로 등 뒤의 화살을 뽑아내려 했지만 화살은 마치 땅에서 자라나기라도 한 듯 전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곧 숲에서 발걸음 소리가 퍼지며 석목이 자강궁을 들고 걸어 나왔다. 바로 뒤에는 종수가 따라오고 있었다.
“말도 안 돼! 어떻게 셋째 백부님의 추격을 피한 것이냐. 날 살려다오! 날 인질로 삼는다면 셋째 백부님께서도 너희를 놓아줄 것이다.”
석목과 종수의 모습을 본 오화가 겁에 질려 크게 외쳤다.
“필요 없다! 오동 곁으로 보내주마!”
석목이 허리에 찬 일월도를 뽑아 오화의 목을 즉시 내리쳤다.
이윽고 석목은 바로 말이 모여 있는 곳으로 걸어가, 그중 가장 덩치가 큰 청풍마 두 필을 골라 마차에 연결했다.
잠시 후, 석목은 회색마차를 끌며 다시 길 위를 질주했다.
마차를 모는 석목은 근심에 싸여있었다. 뒤에서 쫓아오는 금오가 후천무인 중기의 경지라는 것을 이미 들어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실력은 분명 오동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할 것이었다.
석목의 마차로부터 30리 뒤쳐진 곳엔 금씨 가문 사람들이 석목을 뒤쫓고 있었다. 그들 주변 하늘 위에선 매 세 마리가 날고 있었는데, 그 매의 몸은 온통 하얬지만 머리만은 청록색이었다.
* * *
날이 밝고, 석목과 종수는 운하산맥 끝자락에 도착했다.
석목은 주저 없이 마차를 버리고 종수와 함께 산으로 들어갔다.
두 시진 후, 금씨 가문 사람들이 그곳에 나타났다.
적색 말에 탄 금오는 근처에 버려진 회색 마차와 청풍마 두 마리를 보고 옆의 크고 작은 두 사람에게 말했다.
“벽두응은 더 낮게 날게 하고, 모든 혈견을 풀어 쫓게 해!”
키가 큰 응부는 고개를 끄덕이고 품에서 은색 호루라기를 꺼내 불었다.
호루라기에서 긴 소리 한 번, 짧은 소리 세 번이 울리자 높게 날던 세 마리의 매가 즉시 급강하하기 시작했다.
원숭이 같이 생긴 견부는 말에서 뛰어내려와 검은색 마차로 걸어갔다. 마차 문을 열자 안에서 송아지만한 개 다섯 마리가 나왔다.
그 개들은 청록색 눈을 가졌으며 몸은 붉었고, 털은 없었다. 그리고 입에는 어렴풋이 매우 날카로운 이빨이 보였다.
견부는 곧 가방에서 회색 옷을 꺼내 바닥에 던졌다. 혈견들은 그 냄새를 맡고 으르렁 소리를 내더니 산맥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따라가시죠, 혈견들이 벌써 옷 주인의 냄새를 찾은 것 같습니다.”
견부가 그 모습을 보고 기뻐하며 말했다.
“잘됐구나. 그놈 집에 직접 찾아가 그놈 옷을 찾아낸 보람이 있어, 가자!”
흉악한 표정으로 말한 금오가 말에서 내려 혈견을 쫓아 산속으로 들어갔다. 견응이복 역시 그의 뒤를 바짝 따랐다.
어느새 그들이 있던 자리에는 무공을 모르는 마부만이 남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