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길을 잘못 들다
두 달 후, 이곳은 대제국 남부에 위치한 소주, 개양성 바깥에 위치한 혼용강(混龙江) 부근이었다.
동틀 녘 옅은 안개가 낀 강 어구 나루터에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들고 있었다. 그중엔 화려한 옷을 입고 걸어오는 무리도 있고, 마차를 타고 온 낡은 옷을 입은 무리도 있었다. 하지만 무리 중에는 반드시 나이 어린 소년소녀들이 꼭 한 명씩은 있었다.
1각(*一刻: 15분)도 되지 않아 나루터엔 금세 40명이 넘는 사람이 모였다. 그중에 열대여섯 명은 나이가 어린 소년소녀들이었다.
허나 이리 많은 사람이 모였지만 간혹 일행끼리 낮은 목소리로 대화를 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조용히 제자리에 서 있었다.
근 100평 가까이 되는 나루터를 제외한 주위는 손을 뻗으면 손가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안개가 짙게 끼어있었다. 하여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음에도 굉장히 기이한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었다.
곧 나루터에 도착하는 사람은 차츰 줄어들었다. 그리고 더 이상은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다.
2각(*二刻: 30분)이 지나자 모인 사람들은 점점 초조해하기 시작했다.
꽈르릉!
바로 그때, 강 위 멀지 않은 곳에서 큰소리가 울리더니 짙은 안개가 세차게 용솟음 쳤다.
나루터에 모인 사람들은 두 눈을 크게 뜨고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높이는 5~6장, 길이는 30장정도 돼 보이는 거대한 누선이 안개를 가르고 나타나 나루터를 향해서 느릿느릿하게 다가왔다.
누선은 나루터에서 7~8장 떨어진 곳에서 멈춰 섰고, 갑자기 그 안에서 한 사람이 뛰어 내렸다. 수면 위를 가볍게 달려 나루터에 도착한 그는 대략 30대 정도로 보였고 파란색 옷을 입고 있었다.
사람들은 곧 우르르 몰려가 그를 둘러쌌다.
“현무종에서 온 안내자이십니까?”
“존함이 어찌 되시는지요. 저희 조부님께서도 현무종 문하 제자셨습니다.”
“안내자의 증표를 가지고 계십니까?”
“모두 시끄럽다! 증표를 내놓으라니? 배를 타기 싫은 사람은 모두 이곳에 남으면 된다.”
물위를 달려온 사내가 두 눈을 부릅뜨고 혼란스럽게 떠드는 사람들을 향해 크게 소리를 질렀다.
“여기 있는 사람은 이미 자질을 확인 받았으니 모두가 적어도 본종 하원(下院)의 제자가 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것이다. 상원이나 내문으로 올라갈 수 있는 자격이 있는지는 추후 한 단계의 시험을 더 거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조건에 부합하는 제자는 증표를 들고 와라. 꾸물거리지 말거라! 내게 친한 척 할 필요도 없어! 다른 지역에도 들려야 해서 매우 바쁘단 말이다.”
파란 옷을 입은 사내가 큰 소리로 말했다.
곧 마르고 약해보이는 한 소년이 그 사내에게 다가갔고, 그에 다른 이들도 같이 온 어른들과 몇 마디 나누더니 분분히 그를 따라갔다.
사내가 수수해 보이는 구리거울로 다가온 아이들을 하나씩 비췄다. 그러자 그들의 몸 어딘가에서 흰색 빛이 반짝, 하고 빛났다. 그 크기와 밝기는 모두 제각기 다 달랐지만 사내는 그것엔 전혀 관심이 없어보였다.
5~60명 정도 되는 아이들이 검사를 받고 파란 옷을 입은 사내 뒤에 섰다.
“보아하니 이곳에서 데려갈 사람은 이게 전부인가 보군. 그렇다면…….”
파란 옷을 입은 사내가 사람들을 한차례 훑어보고 한창 말을 하던 그때, 갑자기 안개 속에서 들려온 발걸음 소리에 사내의 목소리가 멈췄다.
곧 안개를 뚫고 나루터에 도착한 한 사람을 보고 모두가 일제히 놀랐다.
열대여섯 살 정도로 보이는 푸른 옷을 입은 소년, 피부는 살짝 까맣고 체격은 거의 성인에 버금갈 정도로 컸다. 그리고 등에는 거대한 활을 메고, 허리춤엔 도를 차고 있는 이 소년은 바로 천주에서 온 석목이었다.
석목은 나루터에 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 것을 보고 잠시 어안이 벙벙했다.
파란 옷의 사내는 말없이 구리거울로 석목을 비췄다. 이내 석목의 몸에서도 흰색 빛이 반짝, 하고 빛났다.
“뭐하다가 이렇게 늦은 것이냐. 네가 마지막이다.”
파란 옷을 입은 사내가 콧방귀를 뀌며 석목을 향해 손짓했다.
석목이 주변 사람들과 그 사내의 뒤에 서있는 소년들을 본 후 물었다.
“현무종에서 오셨습니까?”
“말 같지도 않는 소리를 하는군. 내가 현무종이 아니라면 네놈과 내가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다는 것이냐.”
파란 옷을 입은 사내가 짜증을 참지 못하고 순식간에 석목의 곁으로 다가와 손을 뻗었다. 석목은 깜짝 놀라 허리춤의 칼자루를 쥐었지만, 잠시 머뭇거렸을 뿐 결국 칼을 뽑지는 않았다.
파란 옷의 사내는 석목의 어깨를 잡아 챈 상태로 순식간에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왔다. 그 사내는 이내 다른 한 손으로 열두세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녀도 잡아채더니 함께 누선으로 집어 던졌다.
“꺅!”
어린 소녀가 놀라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쿵! 쿵!
그러나 잠시 후, 두 사람 모두 아주 안정적으로 누선 갑판에 착지했다.
어린 소녀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두 다리도 약간 떨고 있었다.
석목은 사내의 놀라운 힘을 보고 현무종에 들어가기로 결정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금오와 결전을 벌인 그날, 엽홍약은 석목에게 서신과 부적을 건네주고, 얼어붙은 금오를 부숴버리고는 종수와 함께 떠났다.
석목은 즉시 운하산맥을 떠나 한 달간 상처를 치유하는데 집중했고, 그 뒤로 며칠 밤낮을 달려 나루터에 도착했다.
나루터에 도착한 석목은 안내부적에 불을 채 붙이기도 전에 사람들과 현무종의 사내를 마주치고 마음속으로 무언가 잘못 됐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석목은 상황을 판단할 틈도 없이, 사내에 의해 누선에 던져졌다.
* * *
강기슭에서 모든 소년소녀들을 던진 사내가 곧 몸을 날려 배에 올라탔다.
“출항하라!”
사내가 누군가에게 명하자 누선이 살짝 떨리며 천천히 움직였다.
“좋다. 지금부터 하나씩 너희의 신원과 안내자의 이름을 말해라. 사람을 세고 명부에 기입하도록 하겠다.”
곧 사내가 소매에서 두꺼운 서책을 꺼내 지시를 내렸다.
“천주 한씨 가문의 셋째 딸 한채희입니다. 안내자는 공월 선배입니다.”
“장대력입니다. 장주 봉성에 자리 잡은 장씨 가문 사람입니다. 안내자는 조화 선배입니다.”
소년소녀들은 차례로 자신의 신원과 안내자의 이름을 보고했다.
순식간에 석목의 차례가 돌아왔다.
“풍성의 석목입니다. 안내자는 묘음종의 엽홍약 선배입니다.”
석목이 우물쭈물하다가 결국 사실대로 말했다.
“묘음종의 엽홍약? 감히 헛소리를 지껄여 나를 농간하다니 간도 크구나!”
고개를 숙인 채 서책에 받아 적던 사내가 분노해 무섭게 소리쳤다.
“어찌 감히 그러겠습니까. 현무종의 손 선배에게 보낸 서신과 현자령도 가지고 있습니다.”
석목이 품속에서 서신과 현자령을 꺼내 그에게 보여줬다,
“손 선배? 상원의 손천용 사백을 말하는 것이냐? 아니면 내문 현천전(玄天殿)의 손로를 말하는 것이냐?”
파란 옷의 사내가 의심스러운 듯 물었다.
“그건 모릅니다.”
석목이 당당하게 말했다.
“그럼 시험을 치르기 위해 온 제자가 아니라 묘음종의 제자라는 것이냐?”
사내가 물었다.
“제가 이곳에 온 것은 현무종에 들어가기 위해서입니다. 엽 선배께서 손 선배에게 보낸 서신은 아마 추천서일겁니다.”
석목이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 말에 사내가 손을 휘둘러 석목이 든 현자령과 서신을 쳐 날려버렸다.
“하! 현무종에 들어오고 싶은 것이라면 더 이상 말할 필요 없다. 누가 네게 추천서를 주었든 나한테는 폐지와 다를 바 없는 종이다. 모두 당장 아래로 내려가 대기해라! 내 명령이 있기 전에는 누구도 갑판으로 올라와서는 안 된다! 만약 누구든 명령을 위반한다면 처벌을 받게 될 것이다.”
아이들은 전혀 반항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곧 회색 옷을 입은 사람들이 걸어 나와 모두를 선실로 데리고 내려갔다.
석목도 바닥에 떨어진 서신과 현자령을 주워들고 순순히 그들을 뒤따랐다.
사내는 전혀 고집 부리거나 반항하지 않는 석목을 아주 의외라 생각했다.
“허허, 매우 똑똑한 놈이로구나.”
모든 사람들이 선창에 내려가자, 사내의 뒤로 갑자기 검은 기운이 몰아치며 호랑이 가면을 쓴 사람이 나타났다.
“골호, 넌 아직 몸을 드러내선 안 돼. 문주께서 무슨 분부를 하셨는지 잊지 말라고. 이번엔 내가 주도한다.”
사내가 뒤에 나타난 그 사람을 보고 말했다.
“안심해, 방해하진 않을 거야. 그저 방금 저 아이를 배 밖으로 던져 버리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싶어서 말이지. 이미 현무종을 건드렸는데 묘음종까지 건드리는 것은 현명한 생각이 아닌 듯해서 말이네.”
호랑이 가면을 쓴 사람이 말했다.
“하! 대제국의 3대 종문과 우리 염국의 두 종문은 원래부터 잘 맞지 않았네. 우리가 묘음종과 싸운 적이 없는 것도 아니지 않나. 저 놈이 고작 서신 하나 들고 나루터에 왔다는 건 엽홍약과의 관계도 깊지 않다는 뜻이다. 그나저나 저 자식이 눈치가 좋구나. 조금이라도 반항했다면 죽여서 본보기를 보이려 했거늘.”
파란 옷을 입은 사내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야 나도 할 말이 없군. 어쨌든 내가 맡은 임무는 현무종의 사람들이 나타났을 때 너를 도와 싸우는 것이니까.”
호랑이 가면을 쓴 사람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현무종의 안내자가 우리의 협공에 중상을 입어 도망갔으니 선천무인이 온다고 하더라도 아마 꼬박 하루는 걸릴 것이다. 그때 우리는 이미 바람을 타고 두 나라의 국경인 강 하구에 도착할 것이니 걱정할 필요도 없어.”
파란 옷의 사내가 말했다.
“맞는 말이야, 그럼 술법을 펼치도록 하지.”
호랑이 가면을 쓴 사내가 고개를 끄덕이고 품에서 네모반듯한 노란 가죽을 꺼냈다. 표면엔 은색 문자와 알 수 없는 무늬가 흐릿하게 새겨져 있었다.
“마풍호(魔风虎) 가죽을 사용해 만든 순풍부(顺风符)에 담긴 영력이 전부 다 소진될 것 같군.”
사내가 가죽을 보고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현무종에게 복수하기 위해 대제국 국경 넘어 깊숙한 곳까지 들어 왔으니, 어떻게 아무런 희생이 없을 수 있겠나.”
호랑이 가면을 쓴 골호가 담담하게 말한 뒤 엄숙한 표정으로 무언가를 중얼거린 후, 그 가죽을 누선의 위쪽으로 던졌다.
휙-
순간 허공에서 빙글 돈 가죽에 푸른빛이 나오더니 서로 교차하며 빛 그물망을 형성했다. 그리고 한번 반짝이다 누선 위의 가장 큰 돛과 합쳐졌다.
그러자 돛 근처에 느닷없이 광풍이 불기 시작하더니 배가 날아갈 듯 빠르게 앞으로 이동했다.
사내는 그 광경을 보고 크게 웃기 시작했다.
호랑이 가면을 쓴 골호도 허허 웃다가 순식간에 자리에서 사라졌다.
* * *
선실 가장 아래층에 있는 방 8개에 100명이 넘는 아이들이 나뉘어 들어갔다. 석목은 함께 배에 오른 열 몇의 아이들과 같은 방에 들어섰다.
아이들은 누선이 흔들리며 맹렬하게 가속하는 것을 느끼고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신분과 가문을 소개했고 어떤 사람은 현무종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대부분 한 곳에 모였으나 석목만은 묵묵히 구석에 앉아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라버니. 묘음종 사람에게 추천을 받았다는 말이 사실인가요? 한데 어째서 묘음종에 들어가지 않고 현무종에 들어가려고 하는 건가요?”
석목과 동시에 배에 던져졌던 소녀가 석목의 근처에 앉아 웃으며 물어왔다. 소녀는 나이가 어렸지만 생김새가 몹시 수려했고, 체격도 날씬했다.
“묘음종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남자제자를 받지 않는다더군요. 그래서 이곳에 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석목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