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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계지문-34화 (34/916)

34화. 앵무새

석목은 후천초기의 경지에 오른 무인을 사투 끝에 죽여 본 경험이 있었기에 곡곤이 아무리 대단하다곤 하나 진심으로 무섭게 느껴지진 않았다.

쾅!

백석이 뒤로 두 걸음 물러나 들고 있던 두 팔을 내렸다. 그의 얼굴 또한 고통에 일그러져 있었다.

그는 방금 전 방천욱과 같은 자세로 곡곤의 주먹을 막아냈다.

“통비권(通臂拳)이군. 설마 내 주먹을 정면으로 받아낼 줄이야. 게다가 이미 소성의 경지에 올랐어. 너도 통과다.”

곡곤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 뒤 길을 열어주었다.

백석이 두 손을 흔든 후 웃으며 걸어갔다.

몇몇 소년소녀들은 백석이 곡곤의 주먹을 받아내는 것을 보고 다시 나서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실력이 나쁘지 않은 사람이 몇 있군. 아무래도 내가 너희를 너무 얕본 것 같다. 지금까진 진기 7할만 사용했지만, 이제부턴 정말 사정을 두지 않겠다.”

곡곤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석 형제 아무래도 포기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저 자는 지금까지 전력을 다하지 않았어요. 방금 전 백석처럼 운 좋게 지나갈 순 없을 겁니다.”

소명이 석목을 향해 다시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설령 실패한다 하더라도 죽지는 않을 겁니다.”

석목이 소명을 향해 살짝 웃어주곤 앞으로 나섰다.

“방금 경고를 했는데도 겁도 없이 나섰구나. 규정 때문에 죽이지는 못하니 온몸의 뼈를 조각내 1년 내내 병상에만 누워있게 해주지.”

곡곤이 사람들 사이에서 걸어 나오는 석목을 보고 무시무시하게 말했다.

곡곤은 곧 화살처럼 앞으로 튕겨져 나와 팔을 들었다. 그러자 곡곤의 손을 감고 있던 회색 천이 터져나갔고, 잿빛 주먹은 눈 깜짝할 사이 석목의 바로 앞까지 도달했다.

석목도 살기를 내뿜으며 주먹을 뻗었다.

쾅!

두 사람의 주먹이 부딪친 순간, 폭음이 울리더니 기의 파도가 사방팔방으로 휘몰아쳤다.

두 사람은 동시에 반보 뒷걸음질을 쳤다.

둘의 일격은 막상막하였다.

곡곤의 일행들은 곡곤의 일격이 얼마나 강한지 알고 있었기에 놀라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이 됐다.

“말도 안 돼……, 진기도 없이 내 파옥권을 받아 내다니. 방금 사용한 것은 무슨 무예지?”

곡곤이 석목을 매섭게 바라보며 물었다. 도저히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제가 사용한 것은 쇄석권입니다.”

석목이 주먹을 거둬들이며 평온하게 말했다.

“쇄석권? 수련자급의 무예로 어떻게 내가 몇 년간 수련한 파옥권을 받아낼 수 있단 말이냐? 알겠다……, 네놈도 혈맥무인이구나! 그것도 수련자의 경지에서 신체가 크게 강화되는 혈맥!”

곡곤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하다, 무언가를 깨달은 얼굴로 이야기했다.

“그렇게 생각하셔도 됩니다. 이제 지나가도 될까요?”

석목이 말했다.

“지나가도 된다. 신체를 대폭 강화시켜주는 혈맥은 대부분 가장 낮은 등급의 혈맥이니, 네놈은 심법을 수련한다 하더라도 강해지기 힘들 것이다.”

곡곤이 매섭게 팔을 휘둘러 길을 터줬다.

“감사합니다.”

석목은 그에게 가볍게 인사하고 막혀있던 길을 큰 보폭으로 지나갔다.

곡곤은 다시 길을 막고 더욱 무서운 눈빛으로 신입 제자들을 쳐다보았다.

* * *

석목은 돌집이 밀집된 구역에 들어가 비교적 외진 곳에 있는 방을 찾아 들어갔다. 방 안엔 돌 침상과 돌 탁자, 등불이 각각 하나씩 있었고 돌 의자 2개도 함께 있었다.

석목은 방문을 닫고 배낭을 침상의 머리맡으로 던진 뒤 바로 잠들었다.

다음날 이른 아침, 석목은 배가 고파 잠이 깼다.

석목은 품에서 건빵 2조각을 꺼내 먹곤 배낭을 열었다. 작아 보이는 배낭 안에는 검은 옷 몇 장까지 들어있었다. 옷은 굉장히 부드러웠지만 튼튼했고 가벼웠다.

검은 옷 위에는 희고 작은 병 3개와 손가락 두께의 적색 영패도 12개 들어 있었고, 손바닥 크기의 두꺼운 서책도 하나 들어 있었다.

석목은 흰색 병을 꺼내 하나씩 뚜껑을 열어 냄새를 맡아 보았다.

주광은 병에 든 이 혈강단(血罡丹)은 혈기를 북돋고 기를 양성하는 효과가 있다고 했었다. 하루 동안 수련의 속도를 2배 가까이 끌어올려 주기 때문에 막 진기를 수련하기 시작한 자가 복용하기엔 아주 적합했다. 이는 병급 제자가 누릴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자원이었으며 매달 3알씩 받을 수 있었다.

석목은 진기를 수련하기 위한 심법을 아직 배우지 않았기에 단약은 복용하지 않고 냄새만 자세히 기억했다.

석목은 이 병을 품속에 챙기고 다시 적색의 철판을 꺼냈다. 이것이 바로 주광이 말했던 흑염령이었다.

주광의 말에 따르면 흑염령은 유일하게 무공 서적과 맞바꿀 수 있는 물건이었으며, 또한 얻어낼 수 있는 경로가 많지 않은 물건이었다.

흑염령의 표면에 새겨진 화염 구름 모양의 흑색 무늬는 손을 대면 온기가 느껴졌다. 분명 특수한 소재를 사용해 만든듯했다.

석목은 흑염령도 품속에 챙기고 마지막으로 두꺼운 서책을 꺼내 읽었다.

2각(*二刻: 30분) 뒤, 석목은 규정서에 적힌 내용과 마지막 장에 붙어있는 지도도 한 번 살펴 보았다.

규정서에는 많은 규정과 조례가 적혀 있었다. 석목은 규정서를 읽으며 제자들끼리 싸우도록 장려하는 이유가 그중에 선천무인이 될 가능성이 높은 강한 제자를 골라내 자원을 투자하기 위함임을 알게 됐다.

서책에 적힌 주석에 따르면 을급 제자가 매달 받는 자원은 병급 제자의 3배 이상이고, 갑급 제자는 그 을급 제자보다 매달 3배 이상의 지원을 받았다.

또한 매년 이루어지는 비무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내는 제자는 대량의 포상을 받았다. 이는 흑염령을 대량으로 얻을 수 있는 중요한 경로였다.

석목은 규정서를 다시 한 번 자세히 읽고, 추후 자세히 알아볼 필요가 있어 보이는 규정은 따로 기억해둔 뒤 흑마문의 복장으로 갈아입었다.

옷을 갈아입은 석목은 소매에 적색의 화염 문양이 새겨진 것을 발견했다. 그 문양의 중심엔 은색으로 ‘병’자가 적혀있었다.

* * *

곧 석목은 도를 집어 들고 돌집을 나섰다.

돌집을 나선 석목은 길에서 신입 제자 몇을 마주 쳤는데, 그들의 코는 이상하게도 하나같이 전부 파랗게 부어있었다.

놀란 석목이 그들 중 한 명에게 다가가 사건의 전말을 물었다.

전날 석목이 곡곤의 주먹을 받아낸 후 분노한 곡곤이 그에게 도전하는 도전자 여섯을 더 날려버렸고, 그 모습을 본 신입 제자들이 연합해 덤볐다가 대부분 맞고 쓰러졌다는 것이었다.

결국 전부 흑염령 1개를 내고서야 안으로 들어와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고 했다. 길에서 만난 이들은 그중 그나마 상처가 가벼운 자들이었다.

그들도 아마 이 같은 결말을 알았다면 처음부터 그냥 험한 꼴을 보지 않고 흑염령을 순순히 내줬을 것이었다.

석목은 다시 길을 나서며 먼 곳에 위치한 검은 산봉우리를 바라봤다.

규정서의 지도대로라면 그 산봉우리는 13호 산봉우리였다. 13호, 12호, 11호 봉우리는 병급 제자들이 생활하는 장소였고, 10호, 9호, 8호 산봉우리는 을급 제자들이 생활하는 장소였다. 갑급 제자들은 통틀어 10명에 불과하지만 7호, 6호, 5호 총 3개의 산봉우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4호와 3호, 2호는 문주와 장로들의 거처였고, 가장 높은 1호 산봉우리는 문주와 장로들의 허가 없이는 누구도 접근할 수 없는 금지된 지역이었다.

석목은 멀리 있는 산봉우리를 잠시 보다가, 다시 산골 가장 깊은 곳에 있는 푸른색 누각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은 병급 제자들이 이용할 수 있는 장경각(藏经阁)이었다.

석목은 가장 먼저 그곳으로 가 진기를 수련할 수 있는 심법을 얻을 계획이었다. 석목은 길을 따라 산골짜기 깊은 곳으로 걸음을 옮기며, 드디어 진정한 후천무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빠르게 뛰었다.

* * *

“석 형, 이제야 온 겁니까? 주 사형이 어째서 흑염령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는지 이제야 이해했습니다. 어제 그 일격을 버텨낸 보람이 있습니다.”

석목은 누각의 대문으로 들어가자마자 밖으로 걸어 나오던 백석과 소명을 마주쳤다. 허나 소명은 백석과 다르게 매우 의기소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두 사람이었군요. 소 형도 어제 흑염령을 빼앗겼습니까?”

“병상에 쓰러져 한 달을 보내더라도 흑염령을 지키기 위한 시도를 했어야 했습니다. 지금 크게 후회 중이에요.”

소명이 석목의 질문에 대답했다.

“흑염령이 매우 희소하긴 하나, 소 형이 그렇게까지 말할 줄은 몰랐군요.”

석목이 살짝 놀라 말했다.

“직접 들어가 보면 왜 이렇게 말하는지 알 수 있을 겁니다.”

소명이 무언가 말하려 했으나 백석이 먼저 대답했다.

더욱 호기심이 일어난 석목은 그들과 두어마디 얘기를 더 나눈 뒤 바로 계단으로 향했다.

2층에 올라가자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심법은 가운데, 무예는 왼쪽, 술법은 오른쪽.”

무의식적으로 소리가 난 곳을 쳐다 본 석목은 깜짝 놀랐다.

그 층엔 책장 3개가 있었는데, 길이는 무려 십여 장이 넘었다. 그 안에는 두꺼운 서책과 죽간(竹简), 파손된 석판, 심지어 동물의 가죽까지 각양각색의 서적이 있었다.

계단과 가까운 책장의 가장 앞쪽에는 탁자가 있었고, 그 위에는 몇 척정도 돼 보이는 금빛 새장이 있었다. 그 안에선 화려한 날개를 가진 거대한 앵무새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석목을 바라보고 있었다.

“뭘 보는 거야. 말하는 새 처음 보냐? 어서 가서 네 볼일이나 봐! 아침 댓바람부터 와서 귀찮게! 그 늙은이……. 본인이 일하기 싫다고 나를 이곳에 가둬두다니. 내 언젠가 그놈을 한입에 삼켜먹을 거야!”

거대한 앵무새가 부리로 제 날개를 몇 번 쪼며 말했다.

“우리 안에 있는 것이 싫은 것이냐. 그렇다면 역시 네놈을 솥에 끓여 먹는 것이 좋겠구나.”

탁자 뒤에서 갑자기 한 사람이 나타났다.

그 사람은 온 얼굴이 기름져 윤기가 흘렀고, 허리에는 말할 때마다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것 같은 살이 출렁거리고 있었다.

“제발 솥에 넣지 마세요! 주인님,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거대한 앵무새가 뚱뚱한 사내의 말을 듣고 바닥에 엎드려 날개로 눈을 가린 채 온몸을 떨며 소리쳤다.

“선배님, 이건…….”

두 눈이 휘둥그레진 석목이 물었다.

“내 애완동물이다, 놀랄 필요 없어. 이 세계에서 소환해냈지. 처음에 말을 할 줄 아는 것을 보고 큰 운이 따르는구나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말을 할 줄 안다는 것 말곤 쓸데가 없더구나. 소환하는데 내 전 재산을 탕진하지만 않았다면 진즉에 냄비에 넣어 끓여 먹었을 것이야.”

뚱뚱한 사내가 앵무새를 욕하며 설명했다.

“선배님, 전 이번에 새로 입문한 제자입니다. 무공서를 얻으러 왔습니다.”

“옆방에서 게으름이나 피우려 했더니 너희 신입들이 연달아 오는구나. 좀 지나면 아마 더 많은 사람이 오겠지. 방금 앵무새가 한 말은 다 들었겠지? 직접 가서 원하는 서적을 찾아 보거라.

이곳 서적은 모두 흑염령 6개로 교환할 수 있다. 흑염령 12개를 갖고 있을 테니 심법 하나와 무예 하나를 교환하면 딱 좋을 거다.

서적은 모두 금제가 걸려있어 앞쪽의 소개에 관한 부분만 읽을 수 있게 돼있다. 원하는 책을 가지고 오면 옥간(玉简)에 복제해주마. 참, 나는 국 사숙이라 부르면 된다.”

국 사숙이 석목을 향해 말했다.

석목은 그의 말을 듣고 앞서 백석과 소명이 한 말뜻을 이해했다.

흑염령이 부족한 소명은 아마 심법 하나만 골랐을 것 같았다. 이제 후천등급의 무예를 얻기 위해선 꼬박 1년을 기다릴 수밖에 없게 됐으니, 당연히 후회가 막심할 수밖에 없었을 것 같았다.

“감사합니다. 국 사숙.”

석목이 국 사숙을 향해 인사한 후 공법이 가득한 책장으로 갔다.

반석공(磐石功), 혈랑공(血浪功), 삼양밀전(三阳秘典), 혼천일기(混天一气), 청원경(青元经)…….

「반석공. 이 심법의 특성은 중후함. 수련의 난이도는 쉬움. 수련을 위해 필요한 물건은 없음. 이 심법은 총 다섯 단계로 나뉜다. 진기가 다른 속성을 지니지 않는다. 대성하면 12경맥과 임ㆍ독맥이 뚫려 선천무인의 경지에 오를 수 있다. 평범한 자질을 가지고 있는 자가 수련하기에 적합하다.」

「삼양밀전. 양속성(阳属性)의 심법. 수련의 난이도는 보통. 수련을 할 때 대량의 양속성 단약을 함께 복용해야한다. 이 심법은 총 세 단계로 나뉜다. 수련하면 진기가 불의 속성을 띄어 무형의 진기로도 상대를 해할 수 있게 된다. 대성하면 12경맥과 임ㆍ독맥이 뚫려 선천무인의 경지에 오를 수 있다. 중상(中上)의 자질을 가진 자와 어느 정도 자원을 지니고 있는 자가 수련하기에 적합하다.」

「혼천일기. 심법의 특성은 온후함. 수련의 난이도는 보통. 수련을 위해 필요한 물건은 없음. 이 심법은 총 일곱 단계로 나뉜다. 진기가 다른 속성을 지니지 않는다. 대성하면 진기가 심후해져 12경맥과 임ㆍ독맥을 뚫어 선천무인의 경지에 진입하는데 보조적인 효과가 있다. 자질이 조금 떨어지는 자가 수련하기에 적합하다.」

서적의 앞부분에는 이렇게 심법에 대한 설명이 아주 상세하게 적혀있었다. 심법의 특성과 수련의 난이도뿐 아니라 수련에 적합한 대상까지 적혀있었다.

석목은 수련하고자 하는 심법에 대해 대략적으로 생각해 둔 것이 있었다.

우선 그는 어떤 심법을 수련하던지 간에 석후혈맥의 방해를 받기 때문에 난이도가 너무 높은 심법은 고를 수 없었다.

하지만 석목은 이미 후천초기의 경지에 오른 무인을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한 신체를 지녔기 때문에, 신체를 강화하는데 도움이 되는 심법을 고르거나 위력이 뛰어난 심법을 고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야만 비무 대회에서 우수한 성과를 거둬 대량의 자원을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다시 그 자원을 이용해 수련 속도를 늘릴 계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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