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35화 (35/916)

35화. 탈태결(脱胎决)

석목은 곰곰이 생각하며 책장에 진열된 수십 권의 심법서를 모두 훑어보고 잠시 후 어느 죽간 앞으로 돌아와 심법에 대한 설명을 다시 읽었다.

“반야천상공, 심법의 특성은 괴력. 수련이 난이도는 간단. 수련을 위해 필요한 자원은 줄골단(淬骨丹). 이 심법은 총 11단계로 나뉜다. 한 단계가 오를 때마다 코끼리 한 마리와 비슷한 힘을 가질 수 있게 된다. 허나 대성하기 위해 필요한 시간이 매우 길고 대량의 단약이 필요해 재산이 풍부한 자가 수련하기에 적합하다…….”

석목은 심법의 속성과 난이도가 모두 자신에게 딱 적합하다고 생각했지만 대량의 단약이 필요하다는 문구에 표정이 굳어졌다.

추후에는 비무 대회를 통해 어떻게든 자원을 마련할 수도 있겠지만 수련 초기엔 자원을 구할 방법이 없었다. 게다가 줄골단이란 이름만 들어도 절대로 쉽게 구할 수 있을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심법이 그가 생각하는 만큼 위력이 대단하지 않다면, 추후에 비무 대회에서 좋은 성과를 얻기도 힘들어질 것이 분명했다.

석목은 죽간 앞에 서서 한참을 고민하다 무언가 떠오른 듯 다시 국 사숙에게 걸어갔다.

“심법을 골랐느냐?”

국 사숙은 나무 몽둥이로 우리 안에 있는 앵무새를 찌르며 괴롭히다가 석목의 발걸음 소리만 듣고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물었다.

“국 사숙, 혈맥무인을 위한 혈경각이 있다고 들었는데 지도에는 표시가 되어있지 않습니다. 위치를 알 수 있을까요?”

석목이 공경하게 물었다.

“응? 너도 혈맥무인이냐? 혈맥광조의 시기가 도래했으니 이상할 것도 없긴 하지. 이 시기에는 많은 혈맥무인이 나타나니까…….”

국 사숙이 말했다.

“네, 혈맥무인이 맞습니다.”

석목이 주저 없이 대답했다.

“네 말만 믿고 들여보내줄 순 없으니 우선 정말로 혈맥을 각성했는지 확인을 하겠다. 본 문에선 본인의 의지로 혈맥을 공개할 수도, 비밀로 할 수도 있다. 혈맥의 종류까지는 확인하지 않을 것이니 걱정은 하지 말거라.”

국 사숙이 말했다.

“역시 혈경각은 장경각 안에 있었나보군요.”

그의 말을 들은 석목이 기뻐하며 말했다.

“본 문에는 각각 갑급과 을급, 병급의 제자에게 제공되는 장경각이 총 세 곳 있다. 혈경각은 오직 하나뿐이지만 다른 세 개의 장경각과는 진법으로 통해있지. 그럼 이제 혈맥을 확인 하도록 하자.”

국 사숙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무언가 중얼거리던 그는 언젠가부터 들고 있던 동경(铜镜)으로 석목을 비췄다.

휙-

동경에서 손가락 굵기의 빛이 뿜어져 나와 석목의 몸에 들어갔다.

순간 몸을 비틀거린 석목은 곧 온몸의 혈액이 뜨겁게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마치 몸 안에서 화염이 타오르는 것만 같았다.

웅- 웅-

동경이 소리를 내더니 붉게 물들었다.

“혈맥무인이 확실하군. 따라오너라.”

그 모습을 본 국 사숙이 동경을 품속에 넣고 근처 문 쪽으로 걸어갔다.

석목은 얼른 그의 뒤를 바짝 쫓아갔다.

* * *

잠시 후, 두 사람은 몇 장 되지 않는 넓이의 작은 방에 도착했다.

방의 바닥에는 은색 문양과 알아볼 수 없는 문자가 거대한 원형으로 빼곡하게 새겨져 있었다.

그 원 중심에 석목이 서자, 국 사숙은 한 손으로는 인을 맺고 다른 손으로는 노란 부적을 던졌다. 곧 부적은 스스로 타오르더니 불덩이로 변해 바닥에 새겨진 알 수 없는 진법 안으로 흡수됐다.

휙-

불덩이를 흡수한 진법에서 흰 빛이 터져 나와 석목을 감쌌다. 빛에 뒤덮인 석목은 모습이 점점 흐릿해지더니 끝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혈맥무인이 얼마나 더 올지 모르니 전송부(传送符)를 몇 장 더 신청해놔야겠구나.”

국 사숙이 뒷짐을 진 채 중얼거리며 떠났다.

순간 석목은 정신이 아찔해짐과 동시에 자신이 어느 낯선 방에 와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벽과 바닥이 온통 옥석으로 깔린 이 방은 100평 정도로 굉장히 넓었다. 위의 허공엔 얇고 반투명한 빛으로 된 장막이 깔려있었고, 그 안에는 다양한 크기의 빛이 떠다니고 있었다.

그때, 아무도 없는 방에서 갑자기 맑은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난 혈경각의 책임자 몽고다. 네가 올려다보고 있는 빛에는 본 문이 수천 년 동안 모아온 심법과 무예, 술법이 담겨있다. 그것들 모두 각각 적합한 혈맥을 가진 자만이 수련할 수 있지. 피 한 방울을 허공에 뿌리면 너의 혈맥과 적합한 빛이 내려올 것이니 그중에서 원하는 것을 선택하면 된다. 물론 적합한 무공서가 없다면 아무것도 건지지 못할 수도 있다.”

석목은 목소리의 주인이 대체 어디에 있는 것인지 궁금했지만, 주저하지 않고 손가락을 물어 하늘에 뿌렸다.

날아간 선혈 한 방울은 어떤 힘에 이끌려 공중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그때, 갑자기 빛으로 된 장막이 넘실거리더니, 은색 실이 뻗어져 나와 핏방울을 꿰뚫었다. 핏방울은 점차 옅어지고, 빛의 장막에는 핏빛 문자가 하나씩 새겨지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전체를 빼곡히 메웠다.

빛의 장막 위에 둥둥 떠 있던 빛들은 순간 멈춰서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휙- 휙-

그중 크고 검은 빛과 작고 붉은 빛이 빛의 장막을 뚫고 내려왔다.

석목은 양손을 들어 내려오는 빛을 받았다.

새카만 뼛조각과 알 수 없는 동물의 붉은색 가죽이었다.

“적합한 무공서가 2개나 있다니 운이 좋구나. 그것들을 이마에 가져다 대면 무공서와 관련된 정보를 자연스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몽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석목은 먼저 동물의 가죽을 이마에 가져다 댔다. 그러자 가슴이 철렁하는 기분이 들더니 머릿속에 생생한 그림이 차례로 떠올랐다.

첫 번째로는 아담한 적색 원숭이가 화염 속에서 태어나는 장면이 보였다. 두 번째는 조금 성장한 원숭이가 화산에서 마그마로 목욕을 하고 있었고, 세 번째는 원숭이가 입에서 화염을 뿜어 괴물을 녹여버리고 있었다. 그리고 네 번째는 화염 날개를 가진 원숭이가 하늘에서 괴수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그림은 곧 다 사라지고 이번엔 머릿속에 글자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적원화경(赤猿火经), 심법의 특성은 양속성. 고대의 비천화원(飞天火猿)으로부터 계승. 수련의 난이도는 보통. 수련을 할 때 대량의 지양단약(至阳丹药)이 필요. 원숭이과 혈맥을 각성한 자가 수련 가능. 지양진기심법 하나와 보조 무예 2개가 포함돼있다. 매우 뛰어난 자질을 가진 자가 수련하기에 적합하다. 흑염령 50개와 교환 가능하다…….」

거기까지 본 석목은 생각할 가치도 없다는 듯 동물의 가죽을 이마에서 떼고 뼛조각을 이마에 가져다 댔다. 다른 건 다 제쳐두더라도 석목은 흑염령 50개를 갖고 있지도 못했다.

이내 살짝 차가운 뼛조각이 석목의 이마에 닿는 순간, 석목의 머릿속에서 쾅, 하는 소리와 함께 검은 거대 원숭이가 두 손으로 가슴을 두드리는 장면이 보였다. 잠시 후, 그림이 사라지더니 바로 문자가 나타났다.

「대력마원탈태결(大力魔猿脱胎决), 심법의 특성은 신체강화. 대력마원(大力魔猿)의 능력을 계승. 보조 비급이므로 다른 심법과 함께 수련해야 함. 수련 난이도는 쉬움. 원숭이과 혈맥을 각성한 자가 수련 가능. 수련을 할 때 원숭이의 정혈이 필요.

이 심법은 총 아홉 단계로 나뉜다. 단계가 오를 때마다 벌모세수가 이루어지며 신체가 크게 강화된다. 하지만 그 과정이 매우 고통스럽다. 칼 10,000개로 찌르는 것 같은 고통을 느낄 수 있으니 의지가 약한 자에게는 적합하지 않다. 흑염령 6개와 교환 가능하다.」

심법에 대한 소개를 전부 본 석목이 뼛조각을 이마에서 떼며 외쳤다.

“선배님. 이 심법을 선택하겠습니다.”

“정녕 그 심법을 택하겠느냐? 그 심법은 교환에 필요한 흑염령은 적으나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 수련의 난이도는 낮으나 단계가 높아질수록 느껴지는 고통이 강해진다.

이 심법은 본 문에서 보관하기 시작한 이래, 3명의 제자가 수련했었다. 그중 두 사람이 3단계까지 수련했으나 신체가 강화되는 고통을 참지 못하고 스스로 포기했고, 한 사람은 굳센 의지로 5단계를 돌파했으나 고통을 참지 못하고 주화입마에 빠져 사망했다.

게다가 수련 초반부에는 일반 원숭이의 정혈만 필요하지만 갈수록 요구사항이 높아져 5단계에 이르면 요후(妖猴)의 정혈까지 필요로 한다. 즉, 일반적으로 3단계까지 밖에 수련하지 못하는 심법을 사는 것이기 때문에 교환 단가가 낮은 것이다.”

몽고가 담담하게 설명했다.

“선배님의 충고에 감사드립니다. 제 스스로의 역량에 맞춰 가능한데까지 수련하도록 하겠습니다.”

석목은 그녀의 말을 듣고 살짝 걱정이 됐지만 그래도 꿋꿋하게 말했다.

“좋다. 그렇게 말하니 더 이상 막지 않겠다. 뼛조각과 흑염령 6개를 하늘로 던지면 복제품을 만들어 주겠다.”

몽고가 말했다.

석목은 곧 뼛조각과 동물의 가죽, 흑염령 6개를 위로 세게 던졌다.

뼛조각과 동물의 가죽은 번쩍, 하며 다시 빛의 장막 안으로 들어갔고, 흑염령 6개는 순간 허공에서 사라졌다.

잠시 후, 석목은 위에서 떨어지는 적색 옥간을 받아냈다.

“옥간은 금제가 걸려있어 사흘 후면 저절로 사라진다는 것을 잊지 말거라. 안의 내용은 전부 암기하되 절대로 타인에게 전수해서는 안 된다. 만약 그런 짓을 저지른다면 무공을 폐하거나 목숨을 빼앗기는 처벌을 받게 될 것이다.”

몽고의 목소리가 다시 한 번 울렸다.

“명심하겠습니다.”

석목이 적색 옥간을 품속에 챙겨 넣으며 대답했다.

“좋다. 이만 떠나도록 해라.”

석목의 대답에 만족한 듯 몽고가 평온한 목소리로 축객령을 내렸다.

석목이 나가는 방법에 대해서 막 물으려는 순간, 위에 있던 빛의 장막이 물결을 치더니 순간 흰 빛이 터져 나와 석목의 몸을 덮었다.

눈앞이 새하얘졌다가 다시 시력이 되돌아오자, 석목은 자신이 어느새 장경각 작은 방으로 돌아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방을 둘러본 그는 국 사숙이 자리에 없는 것을 확인하고, 원형 진법의 중심에서 벗어나 그것을 구성하는 문양과 문자를 자세히 살펴봤다.

물론 석목은 문양과 문자들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 진법이 국 사숙이 말했던 혈경각과 통하는 통로이고, 국 사숙이 사용한 황색 부적이 있어야만 작동을 하는 것이라 추측했다.

석목은 곧 품에서 묘음종의 선천무인 엽홍약이 준, 현무종의 노란색 안내부적을 꺼냈다.

당시 석목은 운하산맥을 떠나 상처를 치료하는 동안 그 부적에 대해서 연구했었다. 이는 그저 긴 종이에 기괴한 문양과 글자를 아무렇게나 그려놓은 것 같았지만 부적은 상식을 벗어난 신기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석목은 금오에게 골절됐던 양팔이 엽홍약의 회춘부로 인해 눈 깜짝할 사이 완치되는 경험을 한 적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방금 전에는 부적으로 작동한 진법을 통해 혈경각으로 순간이동하기도 했다.

석목은 이런 신기한 능력이 부러웠다.

엽홍약과 국 사숙이 부적을 꺼낸 후 사용하기까지의 시간은 매우 짧았으나 석목은 뛰어난 시력으로 부적에 적힌 문양, 문자를 필사적으로 일부 외웠다.

전송진법을 발동시키는 노란 부적에 그려진 글자와 문양은 안내부에 그려진 것보다 조금 더 복잡했고 회춘부는 그것보다도 더 복잡했다.

바닥에 새겨진 진법은 석목이 지금 들고 있는 안내부와 전체적인 모양은 전혀 달랐지만 뜯어보면 글자는 일부 문양과 비슷한 구석이 있었다.

잠시 생각하던 석목은 안내부적을 다시 품속에 넣고 작은 방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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