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단조
두 사람은 잡담을 하며 광장으로 나란히 걸어갔다.
“석 형제, 그러고 보니 아직 어디서 왔는지 물어보지 않았군. 반야천상공을 수련하기 위해선 돈이 꽤 필요할 텐데 역시 어느 큰 가문의 자제인가?”
곽무가 물었다.
석목은 그 말을 듣고 속으로 씁쓸하게 웃었다. 그는 두 달 사이 수만 냥 어치의 단약을 사용해 겨우 반야천상공 1단계에 올랐다.
그는 전에 진 이모와 금오로부터 받은 돈을 이미 거의 다 썼다. 허나 상황을 보니 반야천상공 2단계에 오르기 위해선 더 많은 단약이 필요할듯했다.
게다가 석목이 알기론 종문 내에서도 대력마원 탈태결을 수련하기 위해 필요한 재료를 팔기는 하지만 가격이 줄골단 보다도 훨씬 더 비쌌다.
“큰 가문의 자제라니요. 그저 운이 좋아 겨우 흑마문에 들어올 수 있었을 뿐입니다. 제가 가진 은자도 이미 거의 다 사용했고요. 마침 곽 사형과 마주쳤으니 하나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종문 내에서 비무 대회를 제외하고 은자를 벌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석목이 씁쓸하게 웃으며 물었다.
곽무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석목을 쳐다봤다. 재산도 얼마 없는 사람이 매우 많은 자원을 필요로 하는 심법을 고른 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돈을 벌고 싶다면 12호와 13호 산봉우리 사이에 있는 광원전에 가보는 게 좋겠네. 그곳엔 보통 제자나 잡역제자도 받을 수 있는 임무가 있어.”
곽무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그 말이 사실입니까? 종문 내에 그런 곳도 있었군요.”
석목이 그 말을 듣고 기뻐하며 말했다.
“정말 한동안 방 안에 박혀서 수련만 했나 보군. 신입 제자라 하더라도 보통 이 정도는 다 알고 있을 텐데 말이지.”
곽무가 하하, 웃으며 말했다.
“하하, 맞습니다. 한동안 밖으로 거의 나가지 않아 소식이 어둡습니다.”
석목이 살짝 부끄러워하며 말했다.
담소를 나누며 걸어온 두 사람은 곧 광장에 도착해 헤어졌다.
* * *
석목은 얼마 남지 않은 은자를 모두 사용해 줄골단과 혈강단을 구매한 후 광원전으로 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석목은 두 산봉우리 사이에 있는 웅장한 대전에 도착했다. 열려있는 거대한 대문 사이로는 검은 옷을 입은 보통 제자와 잡역제자가 수시로 들락날락하고 있었다.
대문에는 ‘광원전’이라고 크게 적힌 현판이 걸려 있었다.
석목은 현판을 한 번 본 후 대문을 향해 걸어갔다.
광원전의 정문에 들어가자 서늘한 기운이 덮쳐왔다. 앞으로는 그리 길지 않은 통로가 쭉 뻗어 있었고 통로의 양측에는 1장 간격으로 큼직한 횃불이 놓여 있었다. 바람에 따라 흔들리는 불빛이 통로를 환하게 비췄다.
통로 끝에서 왁자지껄한 소리가 조그마하게 들려왔다.
석목은 주저하지 않고 앞으로 걸어갔고, 통로를 따라 10여 장을 걸어가다 방향을 꺾으니 순간 눈부실 정도로 환한 빛이 쏟아졌다.
길이가 수십 장에 이르고 폭이 20여장(丈)에 이르는 이 거대한 전당에는 벽에 횃불이 가득 걸려 있어 마치 대낮처럼 밝았다.
전당의 중앙엔 수십 개의 커다란 병풍이 놓여있었고, 그 병풍 주위로 100여명에 달하는 제자들이 있었다. 시끄러운 소리는 대부분 그들이 내뱉는 감탄성이나, 투덜거리는 소리, 토론을 하는 소리 등이었다.
대부분 병풍엔 파란색 혹은 검은색 작은 글씨가 가득 적혀 있었다. 하지만 검은색 글씨가 대부분이었고 파란색 글씨는 극히 적었다.
검은 옷을 입은 잡역제자가 병풍에 글을 적고 지우는 일을 맡고 있었다.
미약한 흰색 빛이 감도는 붓으로 병풍에 적힌 글자를 가볍게 쓸면 신기하게도 병풍에 적혀있던 글자가 즉시 사라졌다.
석목은 눈에 띄지 않는 구석에서 대전의 상황을 상당히 흥미롭게 보았다.
그때, 한 잡역제자가 병풍의 한곳에 있는 글자를 지우고 그 자리에 검은색 글자를 적어 넣었다. 그가 글씨를 다 적자 병급 제자 셋이 병풍의 주위를 둘러싸고 그 글을 읽었다.
그중 왼쪽 얼굴에 반점이 있는 병급 제자가 잡역제자를 불러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곧 고개를 끄덕인 잡역제자는 품에서 검은색 명패를 꺼내 그 병급 제자에게 건넸다.
명패를 받은 제자는 흥분한 얼굴로 광원전을 떠났다. 그 잡역제자는 붉은색 도장을 꺼내, 떠난 제자가 보던 글씨 위에 가볍게 찍었다. 검은 글자 위에 선홍색 화염무늬가 찍혔다.
검은색 글씨 위에는 대부분 도장이 찍혀 있었지만 파란색 글씨에는 거의 도장이 찍혀있지 않았다. 그리고 드물지만 한 줄에 2개 이상의 도장이 찍혀 있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석목은 그제야 가장 가까운 병풍으로 다가가 첫 번째 줄에 검은색으로 적혀있는 글씨를 읽었다.
「30년 이상 묵은 풍령초 세 포기 구합니다. 가격은 은자 3천 냥, 기한은 석 달입니다!」
석목은 풍령초가 뭔지 몰랐지만 높은 보수에 두 눈을 반짝였다. 곧바로 다음 줄을 읽으니, 역시나 어느 약초를 구하는 의뢰였다. 이 보수는 500냥으로 기한이 없는 장기 임무였다.
빠르게 병풍 하나를 전부 다 읽은 석목이 바로 다음 병풍으로 이동했다.
반각 후, 그는 병풍에 적힌 임무 20여개를 읽고 천천히 평정을 되찾았다.
병풍에 있는 임무 중 가장 많은 것은 연단술사, 부적술사 등 술사만이 할 수 있는 임무였고 이는 다른 임무에 비해 보수가 매우 후했다.
예를 들어 목행술사(木行术士) 학도가 밭의 성숙을 촉진시키는 임무를 수행하면 보수로 몇 천 냥의 은자를 얻었다. 단약 제작, 부적 제작, 진법포진 등의 임무에 대한 보수는 진귀한 영석(灵石)으로 대신 되기도 했다.
가장 낮은 등급의 영석이더라도 2, 3만 냥은 하는데다, 영석은 항상 공급이 부족해 쉽게 구하기 어려웠다.
술사는 영석 안의 영기를 흡수해 자신의 법력으로 전환할 수도 있었고 각종 진법과 일부 법기의 발동에 있어 꼭 필요하기에 매우 귀중했다.
석목은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술사의 능력이 매우 부러웠다. 그가 술사였다면 반야천상공과 대력마원 탈태결을 수련하더라도 돈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었다.
곧 소명도 술사라는 것을 떠올린 석목은 혹시 자신에게도 술사의 자질이 있을까 궁금해졌다.
그러나 석목은 고개를 젓고 갑자기 술사에 대한 생각을 한편으로 던져두었다.
그가 영근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은 매우 희박했다. 당장 석목에게 가장 급한 일은 우선 가장 빠르게 은자를 모을 수 있는 임무를 찾는 것이었다.
술사들의 임무를 제외하고도 병풍에 적혀있는 임무들은 다양했다. 어느 진귀한 약초나 진귀한 광석을 찾기도 했고, 심법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자나 곤란한 문제를 처리해 줄 수 있는 자를 찾기도 했다. 보수는 적게는 수백 냥부터 많게는 6천 냥까지 다양했다.
파란색 글씨로 적힌 문파임무는 포상이 컸지만 난이도가 높은 편이었다. 대부분 여러 명이 필요한 임무였고, 보수 중에는 특별한 경로가 아니면 얻기 힘든 흑염령도 있었다.
현재 석목의 상황에서는 전혀 해낼 수 없는 임무였다.
그러다 석목의 시선이 병풍 앞 어느 검은색 글자에 꽂혔다.
「힘이 강한 후천무인을 모십니다. 정철 정련 200개, 개당 수수료 90냥!」
후천심법을 수련하기 전에도 석목은 이미 천근의 힘을 갖고 있었다. 반야천상공 1단계를 완성한 지금은 그때에 비해 3~400근의 힘이 더 증가했고 체내의 천상진기를 운용하면 그보다 2배가량의 강한 힘을 낼 수 있었다.
석목에게 이 임무는 매우 적합해 보였다. 게다가 보수도 적지 않았다.
벌써 도장이 몇 개 찍혀있는 걸 보니 다른 사람들이 이미 이 임무를 받은 것 같았지만 임무에 인원 제한 같은 것은 표기돼 있지 않았다.
석목이 손을 흔들자 대전 깊은 곳에 있던 한 잡역제자가 빠르게 다가왔다.
잠시 후, 석목은 검은색 명패를 받았다. 명패의 뒷면에는 화염 모양이 새겨져 있었고 앞면엔 ‘칠십삼’이 새겨져 있었다.
석목은 미소를 지으며 밖으로 걸어 나갔다.
* * *
뜨거운 오후, 내리쬐는 햇빛이 산골짜기를 뒤덮고 있었다.
산골짜기의 한 대장간은 활활 타오르는 용광로의 불길 때문에 가만히 있어도 견디기 힘들 정도로 더웠다. 그 대장간의 입구엔 체구가 우람한 세 소년이 상의를 벗어 던진 채 앉아서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임 사형, 이대로라면 오늘 안에 100개는 가능하겠어요.”
그중 키 작은 소년이 기쁜 표정으로 말했다.
“앞으로 50개만 더 정련하면 한 사람당 거의 3천 냥 씩은 나눠 가질 수 있을 거다.”
입 꼬리에 콩만 한 점이 있는 소년이 쌓여있는 정철을 보고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3천 냥의 보수는 다른 임무의 보수에 비해 많은 편이라곤 할 순 없었다. 하지만 보수가 수만 냥씩 하는 임무들은 하루 안에 완수할 수 없는 일이 대부분이었고, 열흘이나 보름, 혹은 더 오랜 시간이 걸리기에 이렇게 하루에 3천 냥의 보수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매우 놀라운 일이었다.
“우리가 남들보다 뛰어난 신체능력을 가졌기에 이렇게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것 아니겠느냐.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
한 피부가 까만 소년이 자신의 어깨를 만지며 거만하게 말했다.
“정철 200개를 전부 정련하면 최소 3일간 몸을 쉬어야할 것 같구나.”
검은 소년이 말에, 다른 두 명도 공감했다. 그들 역시 전신이 너무도 쑤셨다. 정철을 정련하는 일은 정말 고된 업무였다.
달궈진 철을 200근 무게의 망치로 300번은 두드려야 겨우 정철이 하나 만들어지는 데다, 대장간의 온도는 너무 높아서 정철을 1개 정련하고 나면 땀이 비처럼 흘러 잠시 휴식을 취해주는 게 필수였다.
이 세 소년은 올해 흑마문에 입문한 병급 제자였다. 그들은 신체를 강화하는 심법을 수련한다는 공통점 때문에 평소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보아하니 누군가 또 임무를 받았나보군!”
검은 피부의 소년이 미간을 찌푸리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다른 두 사람이 그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대장간의 주인 조평이 체구가 거대한 병급 제자를 데리고 오는 것이 보였다.
“흥! 아마 오래 못하고 금세 힘들어서 포기할 거다. 모두 힘내자고!”
입 꼬리에 점이 있는 소년이 콧방귀를 뀌며 말한 뒤, 일어나 대장간 안으로 들어갔다. 다른 두 명의 소년도 곧 그의 뒤를 따랐다.
잠시 후, 대장간 안에 다시 땅땅 철을 두드리는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그때, 조평이 대장간 입구 앞에 멈춰서, 그 체구가 큰 소년에게 말했다.
“석 사제, 직접 정련한 정철은 몸 뒤에 놓도록 하게. 정철의 질량이 합격 수준에 도달해야지만 90냥 은자를 보수로 줄 것일세.”
체구가 큰 소년은 바로 흑마문의 제자, 석목이었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조 사형.”
석목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 뒤, 빠르게 대장간 안으로 들어갔다.
뜨거운 열기가 가득한 대장간에 들어가자 가장 먼저 굉장히 큰 용광로가 보였다. 대장간의 직원으로 보이는 사내 여섯이 용광로 주위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용광로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단조 작업을 위한 선반이 있었다. 길이는 약 2장이었고 폭은 1장정도 되었다. 2척 정도의 두께를 가진 선반은 주철로 만들어져 있었는데, 건장한 체격의 세 소년들이 땀을 비 오듯 흘리며 선반을 둘러싼 채 거대한 망치로 빨갛게 달궈진 철을 두들기고 있었다.
그들은 정철을 두드리면서도 곱지 않은 시선으로 석목을 바라봤다.
석목은 그들의 반응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주위를 둘러보다가 세 소년의 뒤에 쌓여 있는 정철 50개를 발견했다. 200개의 정철을 정련하는 임무가 반나절 만에 벌써 4분의 1이나 끝난 것이었다.
석목은 급하게 상의를 벗어 던지고 다시 한 번 주위를 둘러봤다. 모퉁이에 세 소년이 들고 있는 것과 같은 망치 2개가 보였다. 석목은 성큼성큼 다가가 그 망치 하나를 가볍게 들어 올려 두어 번 휘둘러봤다.
석목의 입가에 살짝 미소가 걸렸다.
망치의 무게는 200근을 넘어가는듯했다. 단조 작업을 하려면 최소 500근의 힘이 있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이건 석목에겐 매우 쉬운 일이었다. 진기는 사용할 필요조차 없어 보였다.
바로 그때, 용광로 옆에서 분주히 일하던 한 사내가 빨갛게 달궈진 철을 선반위에 올려놨다.
석목은 선반으로 다가가 손에 쥐고 있던 망치로 매섭게 내려찍었다.
땅!
망치와 빨갛게 달궈진 철이 부딪치며 불똥이 사방으로 튀었다. 조금이었지만 철이 눈에 보일 정도로 작아졌다.
맞은편에 있던 세 소년의 동작이 약속이나 한 듯 동시에 멈췄다.
“굉장한 힘이구나!”
문 앞에서 구경하던 대장간 주인 조평이 매우 기뻐했다. 힘이 강할수록 작업의 속도는 당연히 빨라진다. 석목 덕에 작업 완료 시기가 많이 앞당겨질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