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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계지문-42화 (42/916)

42화. 영법전(灵法殿)

석목은 사람들의 놀란 시선을 눈치 채지 못한 듯 다시 망치를 휘둘렀다.

땅땅, 망치가 빨갛게 달아오른 철에 닿는 소리가 빠르게 울려 퍼졌다.

석목의 놀라운 움직임은 금세 모든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몇몇 사내들은 석목이 진기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채고 놀라움에 몸서리까지 쳤다.

달궈진 철은 망치로 두드릴 때마다 이물질이 빠져나와 점점 크기가 줄어들었다. 100번 가량 망치질을 했을 때는 극도로 압착돼 처음 크기의 1할 정도로 줄었다. 빨갛던 색도 사라지며 검은 색을 띄었다.

용광로 옆에서 침을 꿀떡 삼키며 바라보던 한 사내가 석목을 멈춰 세운 뒤 정련된 정철을 집게로 옮겼다.

석목은 멈출 생각이 없는 듯 용광로 옆의 사내에게 손을 흔들었다. 사내가 잠시 망설이다가 빨갛게 달아오른 철을 새로 가지고 오자 석목은 다시 망치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세 소년은 석목이 순식간에 정철을 정련해내는 모습을 보고 작업하는 것도 잊고 서로의 얼굴만 바라봤다. 그들 모두 불안에 찬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석목이 연달아 정철 4개를 정련해내고 피곤한 기색도 없이 이어서 작업을 시작하려할 때, 세 소년은 젖 먹던 힘까지 다 써 정철을 겨우 하나씩 정련해냈다. 그들은 다시 여유롭게 망치질하는 석목을 한 번 쳐다 본 후, 진기를 끌어 올린 채 이를 악물고 단조 작업을 이어갔다.

그들이 더 이상은 견디지 못하고 휴식을 취할 때, 석목은 12번째 단조작업에 돌입했다.

석목은 지금 기분이 매우 좋았다. 정철 하나에 보수가 90냥이니 반 시진 만에 벌써 은자 천 냥을 번 것이었다.

안색이 창백하게 질린 세 소년은 여유가 넘치는 석목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이들은 이미 석목과 경쟁하겠다는 의지를 완전히 잃어버린 상태였다.

흥분한 사내들은 석목이 쉬지 않고 앞으로 몇 개의 정철을 더 정련할 수 있을지 내기를 했다. 어떤 사람은 10개를 예상했고 또 어떤 사람은 15개를 예상했다. 가장 크게 예상한 사람은 30개였다.

대장간의 주인 조평도 어느새 석목의 근처에 다가와 그의 동작을 신중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석목은 주위에 반응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오직 빨갛게 달아오른 철에만 온 신경을 집중했다. 정신을 집중하고 규칙적이게 두드려야만 최대한 힘을 아끼고 빠르게 정련해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석목은 102개의 정철을 정련한 후 용광로가 이미 문을 닫은 것을 알아챘다. 더 이상 남은 작업량은 없었다.

이미 녹초가 돼 대장간 구석 바닥에 주저앉아있던 소년들은 아예 얼빠진 사람처럼 석목을 바라보고 있었다. 대장간의 사내들 역시 석목을 마치 괴물을 보듯 바라봤다.

석목은 약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한껏 흥분한 조평에게 말했다.

“조 사형, 임무가 끝난 것 같네요. 보수는…….”

“아, 정말 고생했네, 사제! 여기 9,200냥일세.”

대장간의 주인은 이미 준비해둔 천 냥짜리 은표 9장과 백 냥짜리 은표 2장을 품에서 다급히 꺼내 석목에게 건넸다.

“20냥은 거슬러줄 필요 없네.”

이내 석목이 허리춤 주머니에서 은전을 꺼내자 조평이 급히 손을 저었다.

“감사합니다. 조 사형!”

석목이 은자를 다시 넣으며 말했다.

“선천적으로 뛰어난 신체를 지니고 있는 듯 보이더군. 진기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정철 100개를 정련한다는 건 이미 정상인의 범주를 넘어섰어. 비록 오늘 처음 만났지만 석 사제와는 마음이 굉장히 잘 맞을 것 같은데 우리 이화회에 들어올 생각은 없는가?

우리 조직 내에는 신체를 강화를 위주로 수련하는 제자들이 매우 많네. 매달 대량의 단약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후천 등급의 무공서도 몇 권 가지고 있어. 우리 조직에 들어온다면 1년 후의 승급전에서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할 만한 실력을 갖출 수 있을 거야.”

조평이 용무를 마치고 떠나려 하는 석목을 붙잡고 황급히 말을 쏟아냈다.

“조 사형은 이화회의 사람입니까?”

석목이 의외라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렇다네, 우리 이화회는 혈룡회와 존영각보다 가입조건이 더욱 까다롭고 제공하는 자원도 더욱 후하다네. 긍정적으로 생각해보게나. 자신의 힘만으로 본 문에서 두각을 나타내기는 거의 불가능하다네.”

조평이 다시 한 번 열정적으로 권했다.

이를 옆에서 지켜보던 세 소년은 마음 같아선 자신이 대신 승낙해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화회는 신체강화를 위주로 수련하는 제자들이 가장 동경하는 조직이었다. 이들이 대장간에서 임무를 수행한 것은 돈을 벌기 위한 이유도 있었지만 이 대장간이 이화회에 속해 있다는 것을 알고 부러 온 것이기도 했다. 임무를 핑계 삼아 조평과 가까운 관계를 맺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허나 석목은 세 소년의 생각과는 다르게 즉시 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조평이 언급한 후천등급의 무공서가 석목의 마음을 크게 흔들었다.

석목은 흑염령을 전부 심법과 교환했기 때문에 후천등급의 무예를 얻지 못했다. 줄곧 아쉬움을 가지고 있던 석목은 오늘 백석과 남봉이 겨루는 것을 보고 그에 대한 갈망이 더욱 커져있었다.

“과찬이십니다! 저는 신체를 강화하는 심법을 수련해 그저 다른 사람보다 조금 힘이 센 것뿐입니다. 제 실력이 미천해 조 사형의 기대에 못 미칠 것 같으니 호의를 거절해야 할 것 같습니다.”

잠시 침묵하던 석목이 결국 미안한 듯 웃으며 완곡히 거절했다.

석목은 비록 마음이 흔들렸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게다가 낮에 곽무가 해준 조언도 마음에 걸렸던지라 잠시 고민을 하다 결국 거절해버렸다.

석목의 대답을 들은 세 소년은 다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되었다.

조평은 다시 한 번 권하려 했지만 석목의 확고한 눈빛을 본 후 안타까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석목은 후천등급의 무예가 조금 아쉬웠지만 그 결정을 후회하지는 않았다.

내내 전신이 땀으로 젖어 있어 굉장히 찝찝했던 석목은 조평을 향해 인사를 하고 즉시 자리를 떠났다.

* * *

해질 무렵, 석목은 품에 만 냥 정도의 보수를 챙기고 집으로 향했다.

석목은 간단한 임무로 손쉽게 만 냥을 손에 넣게 돼 기분이 무척 좋았다. 하지만 앞으로도 이런 임무가 계속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집으로 돌아가던 중, 석목이 어느 산기슭 길에서 방향을 꺾었다. 곧 석목의 눈앞에 그리 크지는 않은 회색지붕의 건축물이 나타났다.

대장간에 갈 때는 알아채지 못했지만 둘러보니 이 산골짜기엔 상당히 많은 건축물이 있었다.

이 회색건축물의 문 위엔 ‘영법전’이라 크게 적힌 현판이 걸려 있었다.

어째서인지 영법전 문 앞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도 보였다. 10명이 넘는 그 사람들은 호기심을 가득 품고서 전당 안쪽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누구도 그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석목은 그 모습에 호기심이 일어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바로 그때, 갑자기 전당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광풍이 몰아쳤다.

훅-

대문과 꽤 거리가 있는 곳에 서있던 석목은 광풍의 영향을 받지 않았으나 전당 안에서는 한 사람이 광풍에 떠밀려 큰 비명소리와 함께 밖으로 내동댕이쳐졌다.

내동댕이쳐진 사람은 피부가 살짝 검고 석목과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소년이었다. 그는 초록색 넝쿨에 전신이 꽁꽁 싸여서 머리와 두 다리만 보였다.

상당히 강하게 내던져진 듯, 그는 한참을 끙끙대며 일어나지 못했다.

“악 형!”

구경꾼들 사이에서 두 소년이 소리를 지르며 달려 나왔지만 전당 안쪽을 공포에 찬 눈빛으로 바라볼 뿐 선뜻 손을 내밀어 부축하지는 못했다.

“고작 이 정도의 소질을 가지고 찾아와 이 몸의 시간을 빼앗은 것이냐!”

전당 안쪽에서 상당히 나이 들어 보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에는 짜증이 가득 차있었다.

바닥에 엎어져 있던 소년은 잠시 발버둥 치다가 다른 두 소년의 도움을 받아 힘겹게 넝쿨에서 벗어났다. 소년이 벌개진 얼굴로 전당 안쪽을 바라봤다.

“말도 안 돼! 입문 전 가문에서 측정을 했을 때는 분명 술사의 소질이 있다고 했었습니다! 게다가 이미 전 술법의 기초를 익히고 있다고요!”

소년이 붉으락푸르락한 얼굴로 소리쳤다.

“흥! 이곳에서 술사를 인정하는 기준이 바깥과 같을 것이라 생각하는 게냐? 술사를 육성하는데 드는 자원이 무인의 10배 이상 드는 것을 모르느냐? 본 문에서 고작 네놈같이 하찮은 소질을 가진 술사를 육성하기 위해 대량의 자원을 투자할 것이라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술사 학도로서 정식적으로 등록하고 싶다면 최소 3급 이상의 친화력을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다.”

전당 안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더욱 짜증스러워졌다.

검은 피부의 소년은 그 말을 듣고 납득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결국 다른 두 소년에게 부축을 받아 그 자리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밖에 있는 사람들은 잘 생각하도록 해라. 앞으로 소질이 없는 사람이 들어온다면 방금처럼 던져버리는 것만으로 끝내진 않을 것이다.”

전당 안에서 다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곧 조용해졌다.

구경하던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 어쩔 줄 몰라 하며 작은 소리로 대화하기 시작했다.

석목은 사람들의 대화를 듣고서야 이곳이 술법의 재능을 확인하는 장소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소질을 확인하는데 드는 비용은 한 사람당 3천 은화였다.

술사로서의 소질이 부족하다면 돈을 날리게 될 뿐만 아니라 전당 안에 있는 성격이 고약해 보이는 자에게 치욕까지 당할 확률이 굉장히 높아보였다.

전당 밖에 모인 이 소년들 중, 술사로서의 소질을 확인해 보고 싶은 자가 또 있는 듯했지만 검은 피부의 소년이 호되게 당하는 모습을 보고 아무도 선뜻 들어가지 못하고 있었다.

석목의 두 눈이 반짝였다. 광원전에서 술사들만 받을 수 있었던 임무가 떠오른 까닭이었다. 석목은 잠시 소매 속 두꺼운 은표를 만지작거리다 곧 전당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었다.

석목이 전당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본 소년들은 의아한 표정으로 석목의 정체에 대해 서로 묻기 시작했다.

허나 석목은 사람들의 반응을 신경 쓰지 않고 느릿한 걸음으로 전당 안쪽으로 걸어갔다.

* * *

안으로 들어가 몇 장 길이의 넓은 복도를 지나자 장엄하고 엄숙해 보이는 전당이 나타났다.

전당의 내부는 매우 넓었지만 장식품은 얼마 없었다. 그리고 왼쪽의 붉은 원목탁자에는 회색 옷을 입은 한 노인이 나른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그는 손에 노란 두루마리를 들고 흥미진진하게 읽고 있었다.

대전 우측에는 바닥에서 1척정도 솟아있는 원형 석판이 있었다. 석판은 1장 정도의 크기로 위에는 구불구불한 문자가 가득 새겨져 있었다.

그 석판 주위로는 또 한 뼘 굵기의 수정기둥들이 서있었다. 각기 다른 색의 기둥들은 모두 아래에서부터 아홉 층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석목은 의아한 표정으로 바닥의 석판과 수정 기둥을 바라봤다.

그때, 두루마리를 읽고 있던 노인이 석목의 발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었다.

노인은 작고 말랐으며 머리카락은 희끗희끗했다. 또한 세모눈을 가진 노인은 인상이 전체적으로 매우 까칠해보였다.

노인이 두루마리만 내려놓고 앉은 자세 그대로 석목을 바라봤다.

“이름과 신분을 말해라.”

회색 옷을 입은 노인이 차갑게 말했다.

“두 달 전 본 문에 입문한 석목입니다.”

석목이 말했다.

노인은 석목을 위아래로 한번 쳐다보고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방금 밖의 상황을 보지 못했느냐? 네놈도 요행을 노리고 온 것이겠지?”

석목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 노부는 네놈 같은 것들을 굉장히 많이 봐서 잘 알고 있지. 열심히 수련하지는 않고 머릿속에 허황된 꿈만 가득해. 영법전이 술사로서의 재능을 확인하는 곳이 맞긴 하다만 돈도 날리고 수치도 느끼고 싶은 것이 아니라면 어서 꺼지는 것이 좋을 것이다.”

노인이 다시 차갑게 말했다.

“선배님. 저는 이미 마음의 준비를 하고 이곳에 들어왔습니다. 여기 3천 냥입니다. 측정을 부탁드립니다.”

석목이 품에서 은표 3장을 꺼내 탁자 위에 올려두었다.

노인은 석목을 잠시 바라보다가 결국 몸을 일으켰다.

“흥! 배짱이 나쁘지는 않구나. 이리 와서 저 석판 위에 서거라.”

노인은 석판 옆으로 다가가더니 품속에서 막대기를 하나 꺼냈다. 막대기에 새겨져 있는 각양각색의 문자는 돌판 위에 새겨진 문자와 상당히 비슷했다.

석목이 노인의 말대로 석판 위에 급하게 올라가 섰다.

곧 회색 옷의 노인은 무언가를 읊조리기 시작했다. 이내 그의 몸에서 녹색 빛이 피어오르더니 손에 들고 있는 막대기에 주입되었다.

막대기에 새겨진 문자가 빛나기 시작했다.

노인이 막대기를 휘두르자 오색찬란한 빛이 나와 석판으로 흡수되었다.

웅~ 웅~

원형 석판 위의 문양이 빛을 뿜어내더니 공기가 진동하는 소리를 냈다.

석판에서 뿜어져 나온 빛은 서서히 석목의 몸을 덮었고, 석목은 발아래에서부터 온몸으로 따뜻한 기운이 쏟아져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그 기운은 석목의 몸을 빠르게 한 바퀴 돌고 다시 석판으로 돌아갔다.

석판 문양은 다시 빛을 잃고, 주위의 수정기둥엔 변화가 생겨났다.

파란색, 적색, 검은색 수정기둥이 동시에 빛나기 시작했다.

수정 기둥은 가장 아래 칸부터 빛나기 시작해 점차 위로 빛이 차올랐다.

파란색 수정 기둥은 가장 아래 한 칸만 빛났고 적색 기둥은 두 칸, 그리고 검은 수정은 순식간에 다섯 칸까지 빛이 차올랐다.

그 광경을 본 노인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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