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화. 순위전
탄월식을 수련하면서 석목의 머릿속에 생겼던 결정이 갑자기 진동하더니 법력의 일부를 머릿속으로 끌어당겼다.
쾅!
법력이 결정과 부딪히며 결정이 살짝 흔들렸다. 그 충격으로 결정이 조각나 초승달 모양으로 변했다.
곧 조각난 결정 표면에 은색 빛이 이리저리 움직이더니, 일부가 사라지며 매우 정순한 법력으로 변했다. 이내 법력은 기존의 법력의 흐름에 합류해 체내의 경맥을 순환했다.
석목은 전신의 경맥이 부풀어 오르는 것을 느끼고 얼굴이 굳어졌다. 전신의 경맥이 억지로 벌어지는 듯해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로 괴로웠다.
결정이 점점 흩어질수록 법력은 폭증했고, 법력의 흐름도 계속해서 더 거대해지고 거세졌다.
크게 놀란 석목은 전신의 고통을 참으며 급하게 온신술을 운기 해 법력이 올바른 길을 따라 흐르도록 시도해봤다.
이 거대한 법력의 흐름은 굉장히도 세찼지만 다행히 온신술을 운기하니 점점 석목의 단전으로 흘러들어가기 시작했다.
얼마 후, 석목의 머릿속에 있던 결정이 남김없이 정순한 법력으로 변해 단전으로 흘러들어갔다.
그리고 결정이 있던 곳은 텅 비어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다.
잠시 후, 석목은 서서히 두 눈을 뜨고 숨을 길게 뱉었다. 믿을 수 없는 이 상황에 미친 듯이 기뻐 가슴이 다 터질 것만 같았다.
어떻게 된 사정인지 모르겠지만 방금 전의 운기로 석목은 단숨에 온신술 1단계를 완성했고 단전에도 상당한 법력이 틀을 갖췄다.
석목은 법력뿐만 아니라 시력과 정신력도 이전에 비해 대폭 강화된 것을 느꼈다. 머리에선 형언할 수 없는 상쾌함과 편안함까지 느껴졌다.
“어떻게 된 거지? 그 결정이 왜…….”
마음을 진정시킨 석목이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에 몰두했다. 한참 후 무언가 떠오른 그는 다시 한 번 법결에 따라 온신술을 수련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석목이 씁쓸하게 웃었다.
머릿속의 결정이 사라지자 체내에 법력이 쌓이는 속도는 매우 느려졌다.
“결정……, 탄월식…….”
석목이 눈빛을 반짝였다.
만약 그의 추측대로라면 탄월식은 술법수련의 성과를 증폭시켜주는 신통한 법결임이 분명했다. 허나 고작 한 번의 경험만으로 확신할 순 없었다.
* * *
며칠 후, 석목이 고대하던 달이 뜬 밤이 찾아왔다.
그는 익숙한 길을 통해 풀밭에 도착해, 주위를 꼼꼼히 둘러본 후 즉시 탄월식의 자세를 취해 꿈속으로 들어갔다.
여느 때와 같이 석목은 은색 바위 위에 있는 흰 원숭이로 변해 있었다.
흰 원숭이는 하늘의 보름달을 바라보고 있었고 무수한 흰 빛들이 신비한 힘에 이끌려 금빛 눈동자를 향해 밀려 들어왔다.
시원하고 편안한 느낌에 석목은 정신이 바짝 들었다.
석목의 머릿속에 다시 힘의 소용돌이가 생겨났다. 석목은 이미 이 과정에 익숙해져서 크게 놀라워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탄월식이 술법수련의 효과를 대폭 증진시켜 줄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다시 마음이 들뜨기 시작했다.
잠시 후, 석목의 표정이 변했다.
머릿속 우윳빛 소용돌이는 이전보다 더 컸다. 석목은 곧 빼곡한 빛이 두 눈에 흘러 들어오는 속도 역시 전보다 빨라진 것을 눈치 챘다. 정도가 크지 않아서 처음에 눈치 채지 못했던 것뿐이었다.
석목이 다시 꿈속에서 깨어났을 때 하늘은 여전히 어두웠다. 그러나 머지않아 날이 밝을것으로 보였다.
곧이어 체내의 법력을 가늠해본 석목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가득했던 법력이 어느새 바닥나있던 것이었다.
석목은 그 이후 가부좌를 튼 채 한참동안 생각에 빠져있었다.
이후 한 달간 석목은 광원전을 2번 더 찾아갔다. 그리곤 그 임무를 통해 얻은 은자로 수련에 필요한 단약을 구매한 것을 제외하고, 매일같이 낮에는 반야천상공과 풍치도법을 수련했고 달이 뜨는 저녁에는 탄월식을 수련했다.
일반인의 기준을 월등히 뛰어넘는 끈기로 수련을 한 것이었다.
한 달 후, 석목의 머릿속에 이전보다 조금 더 큰 결정이 생겨났다.
석목이 천천히 온신술을 운기하자 머릿속의 결정은 다시 조각나더니 법력은 또다시 대폭 증가했다. 이제 2단계에 오르는 것도 머지 않아보였다.
탄월식의 도움으로 수련의 성과를 빠르게 낼 수 있게 되자, 석목은 이것이 기쁘면서도 불안했다. 비상식적인 성장속도에 무언가 숨겨져 있는 것은 아닐지 걱정스러웠다.
석목은 다시 한 번 묵묵히 온신술을 운행해 봤지만, 달리 이상한 점을 찾지 못하자 알 수 없는 초조함에 휩싸였다.
석목은 결국 침상에서 일어나 칼을 집어 들고 풍치도법 초식을 시전하기 시작했다.
천천히 마음의 평온을 천천히 되찾은 그는 칼과 하나가 되어 잡념을 떨쳐냈다. 검광은 끊임없이 개화하는 연꽃처럼 휘몰아쳤고, 좁은 방에서 매섭게 휘둘러지는 칼은 놀랍게도 그 어느 물건도 건드리질 않았다.
검의 움직임은 점점 더 빨라지고 섬세해졌다. 전엔 해내지 못했던 세세한 부분도 이젠 완벽히 해낼 수 있게 됐고 그로 인해 속도도 상당히 향상됐다.
“하!”
석목이 기합을 내지르며 팔을 휘두르자, 순식간에 눈이 어지러울 정도로 수많은 검영이 생겨났다. 촘촘한 거미줄 같은 검영은 전방 1장 가량을 피할 구석 없이 다 덮어 버렸다.
드디어 일식십이참을 달성한 것이었다.
석목의 얼굴에 기쁜 표정이 스쳐지나갔다. 이제 풍치도법의 위력이 더욱 강해져 대원만 경지의 바로 문턱 앞까지 왔다.
석목은 온몸이 땀에 젖어있어도 정신은 오히려 맑고 상쾌했다. 잠시 몸을 더 움직인 석목은 기혈이 완전히 안정되자 돌 침상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원래대로라면 반야천상공을 수련할 시간이었지만 현재는 혈강단과 줄골단이 다 떨어졌다. 가진 돈도 거의 남지 않아 광원전에 가서 임무를 받는 것을 고려해봐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일반 무인의 임무는 힘과 시간이 많이 드는데다 보수가 적어 영 내키질 않았다. 이제는 온신술을 상당히 수련했으니 장경각에서 새로 얻은 흑염령과 진법 입문서를 교환하는 것도 고려해 볼만했다.
영법전의 진법서는 고작 흑염령 12개로 욕심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석목은 진법서를 교환하고 남은 흑염령 6개로 무예비급과 교환할 계획을 세웠다. 무예실력을 향상시켜 이후의 비무에서 승산을 높이겠단 생각이었다.
석목은 즉시 흑염령을 전부 챙겨 장경각으로 향했다.
* * *
“또 왔다……, 또 왔어!”
장경각 2층, 화려한 새장 안의 거대한 앵무새가 계단으로 올라오는 석목을 발견하고 날개를 푸드덕거리며 큰 소리로 말했다.
쿵! 쿵!
탁자 뒤에 있던 거대한 사람은 시끄러운 소리에 기분이 나빴는지 막대기로 앵무새의 머리를 두들겼다. 머리를 맞은 앵무새는 고통에 꽥꽥 소리를 지르며 용서를 빌었다.
“너구나. 아직 1년이 지나지 않았는데 무슨 일로 온 것이지? 설마 흑염령을 더 얻은 것이냐?”
마찬가지로 석목을 발견한 국 사숙이 몹시 의외라는 듯 물었다.
“몇 달 전에 새롭게 술사학도가 됐습니다……. 진법서 한 권과 무예비급을 얻기 위해서 왔습니다.”
석목이 공손하게 말했다.
“술사학도가 되었다고?”
놀란 국 사숙이 두 눈을 깜빡이며 석목을 위아래로 훑어봤다.
“어떤 속성의 영근을 가졌느냐?”
국 사숙이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석목이 영법전에서 있었던 일을 숨기지 않고 모두 설명했다.
“공간속성? 그래서 진법을 배우려 하는 것이냐?”
국 사숙이 오른손으로 탁자를 두드리다가 갑자기 물었다.
“맞습니다. 선택의 여지가 많지 않았습니다.”
석목이 어쩔 수 없다는 듯 대답했다.
“그렇다면 이번엔 무예비급은 선택하지 않기를 권하고 싶구나.”
“어째서입니까?”
국 사숙의 말을 들은 석목이 놀라서 물었다.
“대신 부적술과 관련된 서적을 하나 교환하길 권하고 싶구나. 부적술과 진법술은 서로 보완하는 관계라 함께 익히면 수련의 효율이 대폭 상승한다. 부적술은 어찌보면 진법술이란 큰 나무에서 갈라진 가지라 볼 수 있지. 분명 하나만 수련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수련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국 사숙이 말했다.
“제가 부적술을 수련할 수 있습니까?”
국 사숙의 말을 들은 석목은 놀라서 잠시 멍해졌다. 하지만 이미 수차례 부적의 대단함을 체험한 석목은 곧 기뻐했다.
“나는 본래 혼사지만 공간술에 대해서도 상당히 이해하고 있다. 허나 선택은 너의 몫이란다.”
국 사숙이 말했다.
“조언 감사합니다. 숙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정신을 차린 석목이 국 사숙에게 예를 표하며 말했다.
“가 보거라.”
국 사숙이 담담히 고개를 끄덕이고 살찐 손을 휘저었다.
석목은 술법이 꽂혀있는 책장을 꼼꼼히 뒤적였다.
1각이 흐르고, 석목이 두 비급을 들고 다시 국 사숙에게로 돌아왔다.
한 권은 부적술에 관한 설명이 담긴 영부보경(灵符宝经)이었고, 다른 한 권은 진법입문서인 진도입문대전(阵图入门大全)이었다.
국 사숙은 별다른 말없이 흑염령 12개를 받고 옥간 2개를 복제해줬다.
두 옥간을 받아든 석목은 감사를 표한 후 기뻐하며 장경각을 떠났다.
* * *
집에 돌아가는 길에 석목은 무언가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했다.
신입 제자들이 모두 흥분한 기색으로 하나둘 골짜기 밖을 향하고 있었다. 대부분 도검과 같은 무기를 소지한 그들은 왠지 몸이 근질근질한 듯 보였다.
석목은 미간을 찌푸리고 생각하다 곧 씁쓸하게 웃었다.
보아하니 종문 내에 무슨 큰 사건이 있는 듯했으나 석목은 한 달간 틀어박혀 수련만 하느라 종문이 돌아가는 상황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석 사제.”
석목이 누구에게 물어봐야하나 고민하는 사이, 체격이 큰 소년이 다가왔다. 곽무였다.
검은 옷을 입은 곽무는 등에 크고 날이 넓은 양날도끼를 메고 있었다. 크고 건장한 곽무의 몸과 합쳐지자 전체적으로 굉장히 무시무시해 보였다.
“곽 사형!”
석목이 기뻐하며 급하게 반겼다.
“하하, 석 사제가 나오는 것을 보기 쉽지 않군. 드디어 순위전에서 수련의 성과를 보이려는 것인가?”
곽무가 하하 웃으며 말했다.
“순위전…….”
입문 제자들의 규정서에는 승급전이 3달에 한 번씩 이루어진다고 명시돼있었다. 세어보니 석목이 입문한지도 거의 석 달이었다. 시간이 흐르는 것도 모르고 그저 수련만 하니 순위전에 대해선 완전히 잊고 있었던 것이었다.
“설마하니 순위전에 대한 것을 모르고 있었던 것인가?”
곽무가 석목의 표정을 보고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솔직히 말해서 잊고 있었습니다.”
석목이 예를 표하며 말했다. 그러자 곽무가 하하, 웃었다.
“어쩌면 매우 정상적인 거야. 그만큼 열심히 수련에 매진하고 있다는 반증 아니겠는가. 석 사제의 주먹이 놀라울 정도로 강하고 또 도법에도 능하다고 들었는데 요 근래 진기까지 수련했으니 분명 실력이 더욱 늘었겠군! 사제의 실력이라면 이번 순위전에서 분명 높은 순위를 얻어낼 수 있을 것이네. 순위전에서 높은 순위를 차지한다면 큰 포상도 받을 수 있다네!”
석목은 순간 급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규정서에 적혀있는 대로라면 순위전의 포상은 석목과 같은 신입 제자에게는 매우 큰 자원이었다.
“흥미가 있다면 지금 나와 같이 가는 것은 어떤가? 참, 백 사제와 소 사제도 이미 연무대로 향했다네. 백 사제는 존영각에 들어온 후 실력이 더욱 일취월장했지. 분명 이번 순위전에서 두각을 드러낼 거야.”
곽무가 미묘한 말투로 얘기했다.
“곽 사형, 급하지 않다면 잠시 기다려 주겠습니까? 돌아가 무기를 챙겨오겠습니다.”
석목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하하, 얼마든지 다녀오게나.”
곽무가 기뻐하며 답했다.
고개를 끄덕인 후 석목은 빠르게 집으로 향했다. 석목은 순식간에 곽무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곽무는 석목의 뒷모습을 기이한 눈빛으로 지켜봤다.
바로 그때, 어디선가 나타난 금환이 곽무의 곁으로 다가왔다.
“금 사형.”
곽무가 그를 보고 급하게 예를 갖춰 인사했다.
“잘했다. 저 석목이란 아이는 줄곧 혼자 다니며 다른 사람들과 교류를 거의 하지 않던데 너와는 상당히 마음을 터놓는 듯하구나.”
석목이 사라진 방향을 보며 금환이 담담히 이야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