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화. 도전
광장의 검은 비석에 적힌 신입 제자의 순위는, 비무가 진행됨에 따라 쉬지 않고 반짝이고 있었다. 비석 위에 적힌 이름은 비무의 결과에 따라 자동으로 오르내렸다.
순위전이 시작 된지 반나절이 지나자, 몇몇 사람들의 이름이 눈에 띄었다.
백석, 구양명, 남봉……. 여러 사람들이 신입 제자 순위의 정상에 올랐다.
비석 근처엔 또 나이가 조금 많은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들은 바로 입문한지 1년이 지난 병급 제자였다. 신입 제자들의 비무였음에도 상당히 많은 기존 제자들이 광장에 와있었다.
“이번 신입 제자들 중엔 실력이 나쁘지 않은 사람이 몇 있군. 특히 백석은 화속성 심법인 지양공을 이미 상당한 경지까지 수련한듯하네.”
음흉하게 생긴 청년이 비석을 보며 말했다.
“설마 저 녀석이 우리에게 위협이 되진 않겠지?”
음흉하게 생긴 청년의 곁에 있던 뚱뚱한 사람이 서늘한 눈을 하고 웃었다.
“말도 안 되지!”
음흉하게 생긴 청년이 차갑게 웃으며 거만하게 말했다.
“듣자하니 이번 신입 제자 중에 술사 학도가 있다던데 사실인가?”
뚱뚱한 남자가 갑자기 생각난 듯 눈을 빛내며 물었다.
“응, 그런 것 같더군. 석 달 전 입문한 제자들 중 화속성 친화력이 상당히 높은 술사 학도가 들어왔다고 하네. 이미 존영각에 들어갔다고 하더군.”
음흉하게 생긴 청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의 말을 들은 뚱뚱한 사내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가 수련한 심법이 바로 술법과 상극이기 때문이었다. 만약 내일 혹시라도 술사가 그에게 도전한다면 곤란해 질수도 있었다.
“누군가 또 올라왔다.”
음흉하게 생긴 청년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어느 붉은색 이름이 가장 아래서부터 상위 30위 안쪽까지 올라가 멈췄다.
신입 제자간의 비무에선 자신보다 순위가 높은 사람이 100명 이상일 때 자신의 바로 위 50순위에게 도전을 할 수 있었다.
또 100위 안에 든 다음부턴 도전할 수 있는 범위가 점점 줄어들었다. 심지어 상대에게 패배하거나 도전에 응하지 않으면 모두 패배한 것으로 간주해 도전할 권리를 잃고 다음날 기존 제자에게 도전할 기회도 잃게 된다.
30위 안에 들어갔다는 건 실력이 어느 정도 출중하다는 뜻이니 기존 제자들의 시선을 끌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석목이라……. 들어본 적이 없는 이름이군…….”
뚱뚱한 사내가 눈썹을 치켜 올리며 말했다,
* * *
어느 연무대 위, 석목이 도를 맹렬하게 휘두르고 있었다.
동시에 쏘아져 나간 9개의 검영은 앞에 있는 소년을 향해 날아갔다. 쌍검을 든 소년은 빠르게 두 검을 휘둘러 검영을 그물처럼 펼쳐 몸을 보호했다.
금속이 격돌하는 굉음이 연속으로 울렸다.
소년은 9개의 검영을 겨우 받아내긴 했지만 검영에 담긴 힘을 견디지 못하고 몇 보 뒷걸음질 쳤다. 저릿한 두 팔은 검을 쥐는 것도 힘들어 보였다.
소년이 숨을 돌리기도 전에 석목이 귀신처럼 그의 곁에 바짝 다가가 도를 쥐지 않은 손으로 소년의 가슴을 가격했다.
소년은 석목의 동작을 정확히 봤지만 팔이 저려 반응이 반 박자 늦었다.
퍽!
석목의 주먹이 쌍검을 쥔 소년의 가슴에 강하게 꽂혔다. 소년은 그대로 연무대 밖으로 날아가 바닥에서 나뒹굴었고, 선혈을 뿜어낸 소년은 두 눈을 뒤집으며 그대로 기절했다.
“승자, 석목!”
수염이 덥수룩한 을급 제자가 놀란 얼굴로 석목을 한번 바라보고 큰 소리로 선포했다.
석목은 아직 반야천상공을 1단계밖에 완성하지 못했지만 타고난 힘과 진기가 결합한데다 풍치도법과 쇄석권까지 대성해 대부분의 신입 제자들을 여유롭게 상대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석목이 고른 상대는 대부분 다 몸놀림이 빨랐지만, 석목은 뛰어난 시력으로 상대방이 어떻게 해볼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석목은 곧 고개를 돌려 비석을 쳐다봤다. 그가 방금 승리한 사람의 이름은 소목백이었다. 신입 제자들 사이에서는 강한 편에 속했다. 소목백은 신입 제자들 중 17위였지만 비무가 끝나자 이내 석목의 이름으로 대체됐다.
연무대 주위의 제자들이 떠들썩해졌다.
석목은 곡곤과 겨룬 뒤 석 달간 틀어박혀 수련만 했기에 같이 입문한 신입 제자들도 그에 대해 거의 잊고 있던 상태였다. 그런데 그런 그가 갑자기 실력을 드러내며 20위 안에 들었으니 크게 놀랄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신입 제자들도 놀라는 걸 보니 지금껏 실력을 드러내지 않았었나 보군.”
연무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던 기존 제자들 중, 한 사람이 석목을 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그런 사람은 매번 순위전마다 한두 명씩 꼭 있지. 방금 펼친 도법은 분명 수련자급 무예였지만 굉장히 노련했어. 그마저도 전력을 다하지 않은듯해.”
다른 제자가 흥미로운 눈빛으로 말했다.
연무대에서 천천히 걸어 내려온 석목은 다시 다른 연무대로 향했다.
5호 연무대에선 마침 처참한 몰골을 한 사람이 연무대에서 굴러 떨어졌다. 그의 옷은 심하게 훼손돼있었고 온 얼굴은 피로 얼룩져 있었다.
연무대의 위에는 크고 마른 소년이 서 있었다. 그는 이같이 치열한 비무에서도 아무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는 듯 매우 차분해 보였다.
소년이 검은색 긴 채찍을 한 번 휘두르자, 채찍은 마치 살아있는 듯 그의 허리춤에 감겼다.
연무대 아래의 일각에서 그의 동작을 보고 있던 석목이 눈빛을 반짝였다. 채찍을 운용하는 능력이 이미 상당한 경지에 오른 것 같아보였다.
그의 이름은 원지였다. 현재 신입 제자들 중 9위였고 그 순위에 오르기까지 8명의 도전자를 격퇴시켰는데 대부분 다 5초안에 깔끔히 승리했다.
석목이 눈빛을 빛내며 연무대 위로 올라갔다.
“석목입니다. 귀하에게 도전하겠습니다.”
석목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광경을 본 사람들이 떠들썩해졌다.
17위에 오른 석목 역시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었고, 순위가 높은 2명이 겨루려하자 모두가 흥분한 것이었다.
5호 연무대의 심판을 맡은 을급제자는 얼굴이 홀쭉한 청년이었다.
석목이 연무대에 올라오자 심판의 눈에 순간 차가운 빛이 스쳐지나갔다.
“당신의 도법이 강할지 저의 채찍이 더 강할지 궁금하군요.”
원지가 석목을 위아래로 몇 번 훑어보더니 신중한 눈빛으로 말했다. 그리고 곧 원지의 두 눈이 날카로워 졌다.
“비무 시작!”
심판의 말이 끝나자, 석목은 순식간에 원지를 향해 화살처럼 날아갔다. 동시에 석목이 쥔 도가 반짝이며 9개의 검영이 원지를 정면으로 베었다.
석목의 빠른 몸놀림을 예상 못한 듯 원지의 눈에 놀란 기색이 스쳤다.
하지만 한 자리 순위를 오래 지켜낸 원지의 실력도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그가 기합과 함께 진기를 주입한 채찍을 휘두르자 똑같이 9개의 그림자가 생겨나 석목의 검영과 충돌했다. 연무대 위에 기의 폭풍이 휘몰아쳤다.
휙!
바로 그때, 검은색 채찍이 마치 독사처럼 검은 궤적을 그리며 불가사의한 각도로 석목의 가슴을 찔러왔다. 검처럼 찔러오는 그 기세는 매우 드셌다.
석목은 정면으로 덮쳐오는 채찍을 미리 예측이라도 한 듯 가볍게 몸을 왼쪽으로 틀어서 손쉽게 공격을 피했다.
석목이 다시 도를 휘두르자 이번엔 10개의 검영이 원지를 향해 날아갔다.
원지는 놀랐지만 매우 빠르게 반응했다. 급하게 손을 휘둘러 채찍을 회수한 그는 다시 채찍을 휘둘러 공격을 막았다.
석목은 차갑게 웃으며 동작을 그대로 이어갔다.
콰콰쾅!
채찍이 검영에 부딪히며 크게 흔들렸지만 전부 다 막아냈다.
석목은 곧 체내의 진기를 일으켜 쥐고 있는 도에 주입했다. 도는 웅웅, 떨면서 은은한 흰색 빛을 발했다.
“하!”
석목이 기합을 내지르며 도를 강하게 내리찍었다. 새하얗게 빛나는 도의 곁에 10개의 검영이 더 나타나 아래를 베는 힘에 더욱 더 강하게 실렸다.
‘일식십일참! 역시 실력을 숨기고 있었군. 소 사제가 막아내지 못한 것도 이해가 가.’
심판을 맡은 얼굴이 홀쭉한 을급제자가 그 광경을 보고 매우 놀라워했다.
원지 역시 크게 놀랐다. 그는 공격을 막아낼수록 한 단계씩 강해지는 공세에 완전히 압도당했고, 반격은커녕 필사적으로 채찍을 휘둘러 막는 데에만 급급해졌다. 이내 원지의 이마에 콩알만 한 땀이 맺혔다.
쾅!
원지가 휘두른 검은색 채찍이 끊어졌다. 조각난 채찍은 원지가 쥐고 있던 손잡이 부분만 살짝 남았을 뿐이었다.
곧 원지가 무슨 반응을 보이기도 전, 원지의 눈앞이 다시 한 번 번쩍였다.
이번엔 11개의 검영이 원지를 조각낼 기세로 덮쳐왔다.
바로 그때, 심판을 맡은 을급 제자가 원지의 앞을 가로 막았다.
그 자는 꺼내든 은색 단창으로 석목의 검영을 막았고, 곧 창머리가 흔들리더니 굉음과 함께 11개의 검영이 모두 흩어져 사라졌다.
석목은 칼에서부터 몸으로 전해지는 거대한 힘에 깜짝 놀랐다. 체내가 헤집어지는 것 같이 괴로워 견디기 힘들었으나, 석목은 그 거대한 힘을 흘려보내며 반보 후퇴해 균형을 바로 잡았다. 석목의 안색이 살짝 창백해졌다.
“생명을 뺏으면 안 된다는 것을 모르느냐! 종문의 규칙을 무시하려한다면 나 낙운기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청년이 단창을 거둬들이며 말했다. 말투는 차가웠지만 그의 눈에선 꽤 놀란 기색이 잠시 머물렀다가 사라졌다.
원지에 앞서 석목에게 패배했던 쌍검을 사용하는 소목백, 그 소년과 낙운기는 서로 잘 아는 사이었다. 낙운기는 소목백이 신입 제자들 중에 10위 안에 들기를 바랐기에 석목이 곱게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마침 좋은 기회가 생겨 출수한 것이었다.
그러나 낙운기는 후천후기의 무인인 자신이 골탕 먹일 작정으로 한 공격을 석목이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낼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공격을 제때 거둬들이지 못했습니다. 사형께서 용서해 주십시오.”
석목이 도를 거둬들이고 공손히 말했다.
석목을 차갑게 쳐다본 낙운기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연무대의 한쪽 구석으로 걸어갔다. 다들 쳐다보고 있는 상황에서 더 이상의 행동을 취하기는 어려웠다.
석목을 지긋이 바라보던 원지는 손에 쥐고 있던 채찍 조각을 버리고 연무대 아래로 내려갔다.
“승자, 석목!”
연무대 주위의 사람들이 그제야 환호성을 내질렀다.
석목의 이번 경기는 기세도 대단했고 시원스러웠다. 게다가 엄청난 살기에 구경하던 사람들도 매우 놀랐다. 다들 압도적인 경기에 놀라, 한동안 감히 석목에게 도전장을 내미는 사람이 없었다.
석목도 다른 상대에게 도전을 하지 않았다. 어차피 신입 제자의 상위 10위내라면 포상의 차이가 없을 테니 너무 주목을 끄는 것도 좋지 않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종료가 가까워졌을 때, 석목은 도전 2번을 더 받았으나 역시 가볍게 승리해 순위를 지켰다. 석목이 아는 사람들 중 10위 내의 인물은 5위인 남봉과 7위인 백석이 있었다.
소명은 술사로서 인상 깊은 능력을 선보였다. 게다가 무인과의 결투에서 술사가 유리한 부분이 있었기에 소명은 신입 제자들 중 27위를 기록했다. 상위 1할에 든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