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49화 (49/916)

49화. 부적술

통성명을 한 후 소명은 상대를 주시하며 빠르게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체내의 법력이 들끓고 곧 허공에 뜨거운 파동이 물결치기 시작했다.

“술사다!”

연무대 아래에서 누군가 놀라 소리쳤다.

몸집이 비대한 사내가 성난 얼굴을 하고 발로 바닥을 강하게 내리찍었다.

쾅!

충격으로 연무대가 흔들렸고, 사내는 반동을 이용해 빠르게 소명에게 다갔다. 동시에 양손을 주먹 쥐고 앞으로 뻗자, 산에서 굴러 떨어지는 거대한 바위 같은 중후한 기세의 권풍이 소명을 향해 양각으로 날아들었다.

거센 권풍이 가까워지자 소명의 옷이 펄럭이기 시작했다.

그 순간 소명이 두 다리를 빠르게 움직였다. 소요보를 시전해 상대의 공격을 피하려 한 것이었다. 하지만 곧 소명의 안색이 굳었다.

소명은 체내의 진기가 맹렬한 권풍의 압박에 영향을 받아 운용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느꼈다. 원래는 유창했던 보법이 허점투성이가 된 것이었다.

마음이 조급해진 소명이 이를 악물고 오른 손 검지로 상대를 가리켰다. 그러자 곧 허공에서 사람의 머리만한 화염구가 나타나더니 상대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속도는 석목이 처음봤을 때 보다 3할은 더 빠른 듯했다.

허공에 떠있어 공격을 피할 수 없었던 사내는 이내 황토색 빛으로 뒤덮인 주먹을 휘둘러 권영을 빼곡히 날렸다.

쾅!

권영에 가격당한 화염구가 허공에서 터지며 불똥이 사방으로 튀었다. 강력한 기의 폭발이 생기며 사내의 몸이 살짝 멈칫했지만 곧 소명을 향해 다시 도약했다.

두 사람의 간격이 극도로 좁혀지자 소명은 어쩔 수 없이 주문을 외우는 것을 포기했다. 소명은 소요보를 전력으로 펼쳐 뒤로 피했지만 사내는 그림자처럼 집요하게 소명을 쫓았다.

소명은 힘으로 부딪히면 자신이 이길 수 없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술법을 펼칠 기회를 전혀 찾지 못하고 반각 정도 내내 쫓기던 소명은 결국 스스로 연무대에서 뛰어내리며 패배를 시인했다.

그 모습을 본 석목이 한숨을 쉬고 망설임 없이 광장을 떠났다.

* * *

며칠 후, 석목은 자신의 집에서 반야천상공을 수련하고 있었다.

“석 사형, 계십니까? 순위전의 포상을 전달하러 왔습니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낯선 사내의 소리가 들려왔다.

석목이 대답을 하고 침상에서 내려와 문을 열었다. 밖에는 배낭을 든 어린 잡역 제자가 문 앞에 공손한 자세로 서 있었다.

“제가 석목입니다. 물건은 저에게 주면 됩니다.”

석목이 말했다.

잡역제자는 이미 석목의 거주지를 알고 온 것이기에, 그냥 석목을 한번 바라보곤 많은 질문 없이 배낭을 넘겨줬다.

배낭엔 약병 2개와 5만 은표가 들어있었다.

병을 열어 냄새를 맡아보니 이 약은 혈강단이었다.

하지만 석목이 무엇보다 제일 기분이 좋았던 것은 5만 은표를 받은 것이었다. 최근 단약이 거의 다 떨어진데다 은자도 얼마 남지 않아서, 석목은 이 5만 냥의 은표로 쉬골단과 혈강단을 구매하기로 결심했다.

오만 냥을 챙겨 상점에서 대량의 약을 사온 석목은 한동안은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 * *

석목은 가부좌를 틀고 돌 침상에 앉아 무언가 고민에 잠겨있었다.

지금과 같은 속도로 소비를 했을 때, 오만 냥의 은자는 고작 계란으로 바위치기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게다가 심법의 단계가 올라갈수록 필요한 지출은 앞으로 점점 많아질 터였다. 아무래도 이젠 장경각에서 얻어 온 부적서과 진법서를 수련할 때가 온 것 같았다.

이내 석목이 영부보경이 기록된 옥간을 이마에 가져다 댔다. 곧 대량의 문자가 머릿속에 한가득 떠올랐다.

한참 후, 석목은 한숨을 쉬며 들고 있던 옥간을 내려놓고 지끈지끈한 머리를 주물렀다. 이어 진도입문대전이 적힌 은색 옥간을 머리에 갖다 댔다.

2각 동안 두 비급을 대강 한 번씩 읽은 석목은 국 사숙이 말이 옳았음을 깨달았다. 확실히 진법술과 부적술은 큰 연관이 있었다.

부적은 진법의 일부분을 축소화한 것이라고 볼 수 있었다.

진법술보다 간단한 부적술은 위력적인 면에서 진법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부적은 휴대가 용이하고 빠르게 사용할 수 있었고, 법력의 소모가 극히 적다는 등의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

부적 제작은 본래 넓고 심오한 술사의 학문이었다. 부적을 만드는 것은 진법술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각고의 수련을 통해야만 겨우 부적 제작 입문의 경지에 오를 수 있었다.

진법과 부적의 관계를 명확히 이해한 석목이 곧 턱을 손으로 괴고 생각에 빠져들었다.

진법과 부적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많이 있어 서로 참고를 할 수 있지만 부적술이 상대적으로 조금 더 간단했다. 그럼 부적술을 먼저 수련해 기초를 쌓은 후 진법을 수련하면 한결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결정을 내린 석목은 영부보경 전반부의 기초 문자에 대한 소개를 읽었다.

진법과 부적에 사용되는 문양과 문자 즉, 부문(符文)은 하늘에서 내려준 문자로 자연의 기를 포함하고 있고 모든 부문에 힘이 깃들어 있었다.

부적을 제작하기 위해선 반드시 먼저 부문을 깨우치고 그릴 수 있어야했다. 모든 부문은 오행(五行)의 부문을 조합해 만들어지고, 기초가 되는 오행부문을 정통해야만 서로 다른 조합으로 많고 복잡한 부문을 만들 수 있었다.

부문을 깨우치는 것은 극도로 어려웠다. 수많은 부적술사를 지망하는 학도들이 몇 년간 수련을 하고도 오행부문 하나를 그려내지 못하고 결국에 포기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서적의 설명을 읽은 석목의 안색도 좋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이미 술사학도였다. 벌써 큰 대가를 치러 서적까지 교환했으니 중도에 포기할 수는 없었다.

석목은 가부좌를 틀고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신체 상태를 조절했다.

그리고 옥간을 다시 이마에 가져다 댄 석목은 오행부문이 적힌 부분을 확인했다.

석목은 영부보경에 기록된 수백 개의 기초부문 중, 획이 가장 적고 가장 간단해 보이는 화속성의 부문을 선택했다.

* * *

눈 깜짝할 사이에 3일이 흘렀다.

석목은 여전히 침상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두 눈은 꼭 감고 있었고 미동도 하지 않았다.

곧 석목의 머릿속에 흐릿한 붉은빛이 나타났다. 그 빛은 어떤 문자로 변하려는 듯 형태가 끊임없이 달라졌다.

붉은 빛의 위쪽은 여러 번의 변화를 거쳐 기괴한 부호로 변했고 아래쪽은 아직도 여전히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순간 붉은색 빛이 흔들리더니 갑자기 펑, 하고 폭발했다.

석목은 끙끙 앓으며 두 눈을 떴다. 거칠게 숨을 쉬는 그의 전신은 땀에 온통 다 젖어 있었고 안색도 매우 창백했다.

그때, 석목이 갑자기 코를 만졌다. 코피가 터져 축축한 것이 느껴졌다.

석목은 넋이 나간 듯 한숨을 쉬었다. 이내 코피를 깨끗이 닦고 일어난 석목이 창가로 가서 살짝 어두워진 하늘을 멍청하게 올려다보았다.

서적에 적혀있던 대로 부문을 깨우친다는 건 굉장히 어려웠다. 가장 간단해 보이는 화속성의 부문 하나도 무려 사흘간이나 깨우치지 못하고 있었다.

“설마 부적술사로서의 재능이 없는 걸까?”

중얼거리던 석목이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부문을 깨우치는 것은 겨우 첫걸음일 뿐이었다. 부적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그 뒤로도 2단계가 더 남아 있었다.

모든 오행술법엔 각각 짝을 이루는 부적이 있었다. 가령 화염구와 같이 간단한 술법은 대여섯 개의 부문을 이용해 부적으로 만들어 사용할 수 있었다. 복잡한 술법은 수십에서 수백 개의 부문을 사용해야했다.

부적을 그릴 때는 사소한 실수도 있어선 안 됐다. 모든 부문은 전부 다 정확해야했고, 그러기 위해선 필시 오랜 세월 수련을 거듭해야만 가능했다.

부적을 그렸다면 마지막 세 번째 단계는 상대적으로 간단했다. 바로 법력을 주입하는 것이었다.

이 단계에선 법력을 부적에 주입해주면 됐다. 술법을 시전하기 위해 필요한 법력을 사전에 미리 부적에 저장해 두는 것이었다. 그럼 추후 아주 조금의 법력만으로도 부적을 작동시킬 수 있었다.

물론 이 단계에서도 상당한 제한이 있었다.

대부분의 부적술사는 겨우 두세 가지 원소 친화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주입할 수 있는 법력의 속성이 제한됐다. 다른 속성은 영석으로 보충해야만 하는데 이 영석의 가치가 굉장히 비쌌다.

“이제 겨우 시작 단계니 뒤의 2단계까지 생각하긴 너무 일러.”

한동안 묵묵히 있던 석목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안 좋은 생각을 털어냈다.

그후, 석목은 반 시진 넘게 창밖만 멍하니 바라봤다.

하늘에 초승달이 천천히 떠오르며 은색 빛을 뿌렸고, 석목의 얼굴에 비로소 기쁜 표정이 떠올랐다.

며칠간 줄곧 날씨가 좋지 않아 한동안 탄월식 수련을 하지 못했었다.

석목은 부적에 관한 생각은 잠시 내려두고 방 안의 물건을 정리해 조심스럽게 집을 나섰다. 1각 후, 석목은 골짜기의 풀밭에 도착했다.

* * *

석목은 가부좌를 틀고 앉아 매우 빠르게 꿈속으로 들어갔다.

밝은 달빛 아래 흰 원숭이가 두 손을 하늘로 향한 채 탄월식의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허공에 나타난 무수한 빛은 흰 원숭이의 두 눈을 통과해 머릿속으로 들어갔다.

빛이 모이는 속도가 전에 비해 빨라진 것을 확인한 석목은 매우 기뻤다. 그의 법력이 많아지면서 탄월식으로 흡수하는 빛도 점차 많아지는 듯했다.

점점 많은 빛이 그의 머릿속에 들어오며 청량한 느낌이 끊임없이 느껴졌다. 부문 수련을 실패하며 생겼던 불편함도 곧 아주 빠르게 사라졌다.

점차 빼곡한 빛이 석목의 머릿속에서 연기로 변하더니 천천히 한곳에 모이기 시작했다. 역시 이 연기는 전과 같은 우윳빛 구름으로 변했다.

석목은 문득 이 우윳빛 구름과 부문을 수련할 때 머릿속에 생겨난 붉은빛이 참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석목이 정신을 집중해 머릿속의 구름으로 부문을 만들어 봤다.

그저 아무생각 없이 시도해봤을 뿐인데 곧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머릿속 우윳빛 구름이 빠르게 움직이더니 손쉽게 부문을 형성했다. 그가 여러 번 시도했지만 결국 성공하지 못했던 화속성의 부문이었다. 다른 점은 색이 우윳빛이라는 것이었다.

잠시 후, 머릿속 흰색 부문이 붕괴되며 다시 우윳빛 구름으로 변했다.

‘꿈속에서 부문을 만들어봐야 소용이 없잖아?’

석목이 씁쓸하게 웃으며 다시 마음을 가라앉히고, 흰 원숭이가 탄월식을 통해 달빛을 흡수하는 것을 바라봤다.

순식간에 밤이 지나고 하늘이 밝아지며 달빛은 자취를 감췄다.

석목은 몸을 움찔거리며 꿈에서 깨어났다. 꿈에서 깨어나니 석목은 정신이 상쾌하고 온몸이 아주 편안해진 것을 느꼈다.

숨을 길게 뱉어내고 자리에서 일어난 석목이 머릿속 잠재의식을 점검했다.

순간 석목의 얼굴이 갑자기 굳어지고, 석목은 제자리에 멈춰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붉은색 부문이 그의 머릿속에서 부드러운 빛을 뿌리며 표류하고 있었다. 그가 사흘간 아무리 노력해도 깨우치지 못했던 그 화속성의 부문이었다.

“이게…….”

도저히 믿기지가 않는 상황에 석목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러다 석목은 곧 몹시 기쁜 표정을 지었다. 허나 주위 누군가 그를 발견할까봐 큰소리를 내 웃지는 못했다.

잠시 후, 얼굴에 웃음기가 사라진 석목은 마음의 평온을 되찾았다.

그 꿈의 신비함은 석목이 생각하던 것을 아득히 초월하는 듯했다.

석목은 몸에 뭍은 이슬을 털고 빠르게 집으로 돌아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