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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계지문-50화 (50/916)

50화. 쟁투

며칠 후, 석목은 한 3층 누각 앞에 도착했다.

붉은 유리로 된 지붕이 인상적인 이곳은 바로 술사의 물품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오행루(五行楼)였다. 단향각의 바로 근처에 있어, 석목이 일전에 단약을 사러 왔을 때 눈여겨봤던 곳이었다.

누각 1층에 들어가니, 가게 안에 손님이 아무도 없었다.

가장 먼저 석목의 눈에 띈 것은 바로 계산대였는데, 그곳엔 마른 체격에 수염을 산양처럼 기른 중년 사내가 계산대 뒤에서 두꺼운 괴수의 가죽을 집어 들고 있었다. 주위에 있는 잡역제자 2명도 어떤 물건을 점검하고 있었다.

“물건을 사러 온 것입니까? 아니면 물건을 팔러 온 것인가요?”

석목이 들어오는 것을 발견한 중년 사내가 동작을 멈추고 웃으며 물었다.

“물건을 팔수도 있습니까?”

석목이 물었다.

“그렇습니다. 술사와 관련된 각종 물건을 모두 사들입니다. 혹시 무슨 좋은 물건을 가지고 있나요?”

말라서 앙상한 중년 사내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그건 아닙니다. 부적을 제작하기 위한 재료를 사기 위해 왔습니다. 추천해 주실 수 있을까요?”

석목이 웃으며 말했다.

“부적을 제작하기 위한 재료는 법붓과 법먹, 부적지입니다. 이것은 우리 가게의 가장 좋은 부적지입니다. 백년 이상의 자영목(紫灵木)에 각종 귀한 재료를 혼합해서 만들었지요. 법먹에 대한 흡수성이 매우 뛰어나 부적의 위력을 한층 강화할 수 있습니다.”

사내가 곧 뒤에 있는 선반에서 독특한 향을 내뿜는 부적지를 꺼냈다.

“이 부적지는 얼마죠?”

석목이 물었다.

“비싸지 않습니다. 은자 3만 냥입니다.”

중년 사내가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세 손가락을 펼쳤다.

석목은 마음의 준비를 하고 왔음에도 엄청난 가격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3만 냥에 백장이니 1장에 3백 냥인 셈이었다.

“그……, 그럼 가장 저렴한 부적지는 얼마인가요?”

석목이 물었다.

“1,500냥입니다.”

중년 사내는 석목의 말을 듣고 천천히 웃음기를 지웠다.

사내는 부적지를 내려놓으며 차갑게 대답했다.

“그럼 가장 저렴한 법먹과 법붓은 얼마인가요?”

석목이 속으로 암산을 하며 물었다.

“법먹과 법붓은 각각 3천 냥입니다.”

“그렇게 하나씩 주세요.”

석목은 속으로 이를 악물고 총 7,500냥의 은표를 건넸다.

중년 사내는 무표정한 얼굴로 석목이 건넨 은표를 받아들고 잡역 제자에게 손짓했다. 잡역제자가 다가오자 그는 몇 마디를 지시한 뒤 돌아서 가죽을 집어 들었다.

석목은 중년 사내의 태도가 변한 것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여유롭게 가게 내에 있는 물품을 관찰했다.

“사형, 여기 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잡역제자가 석목에게 물건을 건넸다.

무슨 요수(妖兽)의 털로 만들었는지 모를 저가의 법붓 1개와 주사(朱砂)에 요수의 정혈을 섞어 만든 법먹 1병, 노란색 부적지 100장이었다.

석목은 만족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인사한 뒤 급하게 집으로 향했다.

* * *

집으로 돌아온 석목은 침상에서 잠시 숨을 돌리며 몸을 최고의 상태로 조절했다. 그 후, 나무탁자 앞으로 걸어간 석목이 방금 사온 부적지를 1장 꺼내 조심스럽게 탁자위에 펼치고 법먹과 법붓을 옆에 두었다.

법먹의 뚜껑을 열자 피비린내가 퍼져 나왔다.

석목은 오른손으로 법붓을 쥐고 정신을 집중하며 눈을 감았다. 머릿속에 빙글빙글 회전하는 붉은색 부문이 나타났다.

잠시 후, 석목이 눈을 뜨고 숨을 길게 내뱉었다. 그는 머릿속의 붉은색 부문을 자세히 떠올리며 법붓에 법먹을 먹여, 부적지에 극히 느린 속도로 부문을 그리기 시작했다.

하나의 부문을 적는데 거의 2각이 걸렸다.

부문을 다 적고난 석목의 전신도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석목은 조심스럽게 부적지를 들어 한참을 바라보다가, 실수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다시 내려놓았다.

이어 석목은 오른손 검지를 뻗어 가볍게 부적을 찍은 채 체내의 법력을 끌어 올린 후, 영부보경에 적힌 요령대로 부문에 법력을 천천히 주입했다.

법력을 주입할수록 부문이 점점 빛나더니 주입을 완료하자 부문 전체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반짝였다.

모든 것이 굉장히 순조로웠다. 석목은 기뻐하며 들고 있던 법붓을 내려놓고 방금 제작한 부적을 집어 들었다.

부적을 가볍게 흔든 후 공중에 던지자 펑, 소리와 함께 부문이 스스로 타오르더니 콩만 한 불똥으로 변했다. 부적지는 순식간에 타오르며 법력의 파동을 내뿜었다.

석목은 순간 기쁜 표정을 지었지만 곧 평정심을 되찾았다.

가장 기초적인 화속성 부문일 뿐이라 부적을 제작한다 해도 위력이 극히 제한적이었다. 정말 굳이 사용하고자하면 불을 붙이는 데나 사용할 수 있을 것이었다.

영부보경에는 기초적인 부문 외에도 여러 종류의 초급 오행술법 부적이 기록돼있었다.

이외에도 흑마문 내 희귀한 부적은 모두 영롱각에서 판매하고 있다고 했었다. 물론 그 값 또한 결코 저렴하지 않을 것이었다.

석목은 고개를 저으며 탁자 위 물건을 정리한 후,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진정한 부적술사가 되면 광원전에서 임무를 받아 대량의 수련 자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석목은 그렇게 즐거운 상상을 하며 품에서 영부보경이 기록된 옥간을 꺼내 다음 부문을 연구했다.

* * *

반년 후, 석목의 집 앞 정원에는 검은 옷을 입은 사람 8명이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조용히 서있었다,

일행의 대표는 금발의 청년 금환이었다.

그들 외에도 10명이 넘는 신입 제자들이 살짝 떨어진 곳에 모여서 무언가 열띠게 귓속말을 하고 있었다.

“금 사형, 석 사제가 외출을 한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한동안 돌아올 것 같지 않으니 이곳은 저희가 지키고 있겠습니다.”

금환의 옆에 있던 곽무가 말했다. 집 문이 굳게 잠겨있는 것으로 보아 석목은 외출을 한 것이 분명해 보였다.

“아니다. 어차피 오늘은 별다른 일이 없으니 이곳에서 기다리도록 하겠다. 부적은 매우 유용하니 어떠한 변수도 있어서는 안 된다. 반드시 석 사제에게 제작을 약속 받아야 해.”

금환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곽무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고, 곽무의 곁에는 또 백석과 소명도 함께 서 있었다.

“이전부터 비범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영근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부적 제작에 있어서도 천재적인 소질을 가지고 있었을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고작 반년 사이에 하급 부적까지 제작할 수 있게 되다니…….”

백석이 감탄을 하며 말했다.

금환과 곽무도 곧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금환의 웃음은 어딘지 모르게 씁쓸해 보였다.

반년 전, 석목은 자신이 부적제작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며 수많은 제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흑마문 내에 그리 많지 않은 술사학도 중에서도, 부적을 제작할 수 있는 자는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적었다.

이제 종문 내 몇 없는 부적술사 중의 한 사람이 된 석목은 겨우 하급의 오행술법 부적 몇 개를 만들 수 있을 뿐이지만 대부분의 제자들을 절대 그와 척을 지고자 하지 않았다.

석목의 부적제작 성공률은 다른 술사학도인 부적술사보다 훨씬 높았다.

하여 석목이 제작한 부적을 찾는 제자가 너무 많아지자, 석목도 어쩔 수 없이 요청을 일부 거절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지금도 금환과 존영각 사람들이 집 앞까지 찾아와 기다리고 있던 것이었다.

금환은 마음이 굉장히 씁쓸했다.

석목의 능력을 진즉 알았다면 존영각에 가입시키기 위해 온갖 자원을 다 갖다 바쳤을 것이었다. 허나 이젠 석목의 명성이 널리 퍼져서 그를 영입하고 싶어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심지어 종문의 일부 장로들까지도 석목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결국 금환의 입에서 짙은 한숨이 새어나왔다.

옆에 있던 소명의 표정도 살짝 복잡하긴 마찬가지였다.

소명 역시 존영각에 가입하고 반년동안 줄곧 부적제작을 시도했지만 지금까지 고작 기초적인 부문 두세 개 밖에 깨닫지 못했었다.

그때, 갑자기 주위에서 구경하던 제자들이 소란스러워졌다. 새로운 무리가 구경하던 이들을 가르고 석목의 집 앞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소란스러운 소리에 고개를 든 금환은 곧 미간을 찌푸렸다.

다가오는 자들은 곤곡을 필두로 한 흑룡회의 제자들이었다.

곡곤은 석목의 집 앞에 서있는 금환 무리를 보며 웃으며 다가왔다.

“존영각의 거물이 이런 곳에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군. 설마 석 사제를 찾아 왔는가?”

“피차일반이지. 혈룡회의 거물인 곡 형도 오지 않았는가.”

금환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하하, 석 사제의 기량이 대단하니 직접 찾아 올 수밖에.”

곡곤이 하하 웃으며 말했다.

“쓸데없는 말은 그만하지. 반년 전 흑룡회에서 고의로 보수를 높여 부적제작 의뢰를 가로챈 것에 대해 본 각에서도 별다른 개입을 하지 않았지. 이제 당분간은 우리 존영각에서 부적제작을 의뢰할 차례네.”

금환이 차갑게 말했다.

“높은 가격을 제시한 사람이 필요한 물건을 얻는 건 당연한 걸세. 석 사제가 우리 의뢰를 받아들이는데 금 형의 동의는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만?”

곡곤의 표정도 갑자기 차갑게 가라앉았다.

두 사람이 대치하며 스산한 기운이 퍼져나가자 주위에서 구경하던 제자들은 혹시 자신들에게까지 화가 미칠까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모두 하나같이 재밌는 구경거리를 발견한 듯 조금 흥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날카로운 눈빛으로 곡곤을 바라보는 금환의 표정이 점점 차가워졌다. 그의 옷은 바람도 없이 스스로 펄럭였다.

“보아하니 이곳에서 나와 실력을 겨루고 싶은 모양이군?”

“얼마 전 곡 형이 천랑소월(天狼啸月)이라는 검법을 익혔다는 소식을 듣고 줄곧 몸소 경험해 보고 싶었다네. 날을 잡는 것보다 이런 우연한 기회가 더욱 반가운 법이지. 실력을 겨뤄서 진 사람이 포기하는 것이 어떤가?”

금환이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

“하하, 부적 제작을 부탁하러 와서 싸울 필요가 어디에 있는가? 정말 원한다면 얼마 남지 않은 등급전에서 겨루도록 하지.”

곡곤이 하하 웃으며 대답했다.

“겁을 내는 것인가? 그렇다면 나 역시 억지로 싸우고자 하지는 않겠네. 실수로 상처를 입힐 수도 있으니 말이야.”

금환이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존영각은 얼마 전 임무 도중 큰 손실을 입어 큰 금액을 운용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었다. 가격 경쟁을 하게 된다면 흑룡회의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 뻔했기 때문에 이런 얄팍한 술수를 쓰게 된 것이었다.

주변에 있던 존영각 사람들은 금환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비꼬는 눈빛으로 혈룡회 제자들을 바라봤다.

“흥! 그토록 원한다면 어디 한 번 놀아보도록 하지. 마침 내 혈곡(血哭)도 피를 맛보지 못한지 오래되었거든.”

주위를 빠르게 훑어본 곡곤이 차갑게 말하며 허리춤의 검을 쥐었다.

금환보다 순위가 조금 낮은 곡곤은 금환을 상대로 승리할 거란 확신이 없었다. 하지만 이처럼 구경꾼들이 있는 상황에선 혈룡회의 명성을 고려해서라도 싸우는 수밖에 없었다.

반년동안 수련의 경지가 상당히 높아진 곡곤도 설령 승리는 할 수 없더라도 최소한 비길 자신은 있었기에 내린 결정이었다.

금환이 차갑게 웃으며 주위의 사람들을 물렸다.

곡곤의 주위에 있던 혈룡회 제자들도 먼 곳으로 이동해 두 사람이 싸울 자리를 마련해 줬다.

휙!

곡곤이 검을 뽑아 들었다.

그 검은 일반적인 검보다 반 척정도 더 길었고 검신이 붉은색을 띠었다. 검은 많은 피에 절여진 듯 구역질나는 피비린내를 풍겼다.

반면 금환은 무기를 사용할 생각이 없는 듯 두 팔을 늘어뜨렸다.

“받아라!”

맨손으로 대적하려는 금환을 보고 분노한 곡곤이 소리를 지르며 웅장한 기세로 검을 베었다.

검이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마치 귀곡성 같이 울려 퍼졌다.

금환은 곧 푸른 눈을 번쩍이며 발로 바닥을 박찼다.

순간 몸에서 강한 기운이 터져 나오는 동시에 금환이 자리에서 종적을 감췄고, 곡곤의 살초는 허공을 갈랐다.

곧이어 폭발음과 함께 갑자기 나타난 수많은 금빛 각영(脚影)이 곡곤을 향해 쏟아졌다. 금환의 공격은 마치 은하의 별들이 떨어지는 것 같은 거센 기세를 품고 있었다.

표정을 굳힌 곡곤이 검을 매섭게 휘두르자 곧 붉은색 검영(剑影)이 전신을 뒤덮으며 그를 보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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