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화. 손에 맞는 무기
완성된 부적을 본 석목은 매우 기뻤다. 그는 법붓을 내려놓고 주문을 외우며 부적을 발동시켰다. 하지만 부적에서는 어떠한 반응도 없었다.
다시 한 번 시도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한숨을 쉰 석목은 실패한 부적을 버리고 다시 침상으로 돌아가 가부좌를 틀고 문제점을 찾았다.
반 시진 후, 무언가 어렴풋이 깨달은 석목이 세 번째 부적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반 시진 후, 새롭게 완성한 부적을 발동시키자 어김없이 또 허공에서 불타올랐다. 이번에도 제작에 실패한 것이었다.
그렇게 시간은 계속 흘러 반나절이 지나갔다.
석목은 탁자 앞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법붓을 움직이고 있었다.
이번이 벌써 일곱 번째 시도였다. 지금까지 그린 부적들은 전부 부문을 그리는데 실패했거나 발동되지 않았고, 발동 후 절로 타오르는 경우도 있었다.
손에 쥔 영석은 서서히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이제 안의 영기가 얼마 남지 않아 보였다.
석목은 부문을 전부 그리는 순간 법력까지 동시에 주입되는 제작방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이 방법은 영부보경에 적힌 방법으로 사용하면 대량의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다.
잠시 후, 일곱 번째 부적 제작도 실패로 돌아갔다. 석목의 얼굴은 보기 흉할 정도로 일그러졌다.
그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다시 천천히 내뱉기를 여러 번 반복하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 후, 영부보경이 기록된 흰 옥간을 꺼내 이마에 가져다 대고 다른 한 손으로 무언가를 끊임없이 허공에 적었다.
한참 후, 석목이 눈을 반짝이며 천천히 흰색 옥간을 내려놓았다.
이제껏 발견하지 못했던 오류를 하나 찾아냈다. 하지만 석목은 만일의 실수에 대비해 침상에서 호흡을 다시 조절하고 탁자로 돌아와 법붓을 들었다.
“이번엔 틀림없다! 경신부를 제작하기가 이렇게 어려울지 상상도 못했구나. 12개 부문으로 이루어진 경신부는 중급 부적은 아니지만 하급 부적 중에선 제작하기 가장 어려운 것은 분명하다.
전에 하급 부적을 많이 제작해 봤지만 대부분이 대여섯 개의 부문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풍속성 영석이 필요하기에 사전에 여러번 연습을 했지. 경신부를 제작하기 위해 주어진 기회가 얼마 되지 않으니까. 다른 부적술사 학도였으면 성공할 가능성이 없었겠지만 나는 이 능력이 있어…….”
그때, 석목의 두 동공이 순간 수축했다가 갑자기 확대되더니 금색으로 변했다. 석목은 눈의 능력을 극한까지 사용했다.
이내 석목 눈앞의 푸른 부적지가 이전보다 더욱 크고 자세하게 보였다.
석목은 마음을 진정시키고 호흡을 억제하며 정신을 집중해 여덟 번째 부적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무언가 기이한 느낌이 마음속에서 용솟음쳤다. 법붓은 매우 무겁게 느껴졌지만 마음은 매우 편안했다.
석목은 전보다 2배 이상의 시간을 들여 부적을 완성했다.
12개 부문을 다 그리자 부적에 적힌 부문이 푸른빛을 발하며 풍속성 원소의 힘이 감돌았다.
“드디어 성공했어!”
석목은 매우 기뻐했다.
곧 석목의 동공도 원래의 색으로 돌아오며 시야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기쁨에 가득 찬 석목이 푸르게 빛나는 경신부를 자세히 관찰했다. 푸른색 부적지에 기이하고 복잡한 붉은색 부문이 서로 얽혀 정교하고 아름다운 술법진을 이루고 있었다.
흥분한 석목은 경신부의 위력을 시험하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 했다.
석목이 이내 한 손으로 부적을 집어 진기를 살짝 주입하자 부적이 스스로 불타오르더니 그 사이에서 푸른빛이 나타났다. 석목은 타오르는 부적을 망설임 없이 몸에 가져다댔다.
휙!
푸른빛이 반짝이더니 기이한 기운이 석목의 몸을 감쌌다.
석목은 몸의 중량이 절반으로 줄어든 듯 전신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바람이라도 불면 날아갈 수도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놀란 석목이 자신의 몸을 위아래로 관찰했지만 평소와 다른 점은 없었다. 다시 팔과 다리를 뻗으며 움직여보자 날아갈듯 가볍고 빨랐다.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기묘한 느낌이었다.
석목은 순간 현재 상태에서 풍치도법을 시전해보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이윽고 석목이 침상 머리에 놓여있던 도를 쥐었다.
체내의 천상진기를 끌어올려 도신에 진기를 주입하자 도의 표면이 하얗게 빛나더니 부르르 떨며 울음소리를 냈다.
“핫!”
석목이 기합을 크게 내지르며 허공에 검을 가볍게 휘둘렀다.
그러자 흰 검광이 흔들리며 순식간에 13개로 나누어졌다. 마치 해일같이 매서운 검기가 온 방을 가득 메웠다.
“십삼참!”
검광이 사라지고, 석목은 한껏 상기된 눈빛으로 벽에 뚜렷하게 남은 13개의 검흔을 봤다. 경신부의 도움 덕에 풍치도법 대원만의 경지인 일식십삼참을 일시적으로 해낸 것이었다.
흥이 식지 않은 석목은 연이어 도를 휘둘렀다.
서늘한 백련이 피어나듯 흰 검광이 그의 몸을 완전히 덮었다.
풍치도법을 몇 번 더 시전하자 경신부의 효력이 완전히 다해 사라졌다. 방 안에 만연했던 검기도 사라지며 석목의 몸이 다시 드러났다.
석목은 멈춰선 그 자리 그대로 생각에 잠겼다.
방금 끊임없이 도를 휘두르는 동안 알 수 없는 힘이 터져 나오려는 듯 전신의 피가 끓어올랐지만 줄곧 무언가에 가로막혀 있는 느낌을 받았다.
풍치도법 대원만의 경지인 십삼참 뒤에도 아직 여전히 무언가 더 남아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석목은 순간 도법을 전수 받을 때 여창해에게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풍치십삼식은 사실 선천등급의 도법 중 한 초식이고 그 부분만 발췌하여 십삼식으로 만든 것이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지.’
여창해가 당시에 말한 것이 거짓이 아닐지도 몰랐다. 허나 이는 잠시 스쳐간 생각이었을 뿐, 곧 뒷전으로 밀려났다. 현재 석목에게 가장 급한 일은 영석의 법력이 전부 소진되기 전에 최대한 많은 경신부를 만드는 것이었다.
석목은 탁자에 다시 부적지를 깔고 정신을 집중해 부문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미 한 번 제작에 성공해 그대로 모방만 하면 됐기 때문에 속도는 전보다 훨씬 빨랐다.
태양이 질 때까지, 석목은 경신부 3장을 더 제작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마지막 세 번째 경신부를 제작하던 중, 풍영석(风灵石)의 영력이 완전히 소진됐고 결국 성공한 것은 2장 뿐이었다.
석목은 방금 제작한 두 경신부를 보고 무언가 생각에 잠겼다.
부적이 복잡해질수록 눈의 능력을 이용한 복제 성공률도 감소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래도 석목은 매우 만족스러웠다. 매번 감각에 의존해 부적을 제작하는 다른 부적술사들은 이 정도 복잡한 부적을 제작할 때면 제작 성공률이 극도로 낮았기 때문이었다.
석목은 현재 온신술과 반야천상공을 전부 3단계까지 수련했다. 게다가 경신부라는 숨겨둔 패까지 마련했으니 등급전에서 비교적 높은 순위를 차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등급전 포상은 순위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그러나 그 전에 새로운 무기를 마련해야 했다.
석목은 방금 연속으로 풍치십삼식을 시전하며, 도가 천상진기를 모두 담지 못해 완전한 실력을 발휘할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이에 계획을 세운 석목은 침상으로 돌아가 가부좌를 틀고 반야천상공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 * *
다음날 이른 아침, 석목이 익숙한 길을 따라 조평의 대장간 앞에 도착했다.
“석 사제 같이 바쁜 사람이 무슨 일로 이런 작은 대장간에 왔는가?”
조평이 웃으며 석목을 반겨주었다.
“놀리지 마세요, 조 형. 등급전을 앞두니 좋은 무기를 하나 구해야겠다 싶었습니다. 해서 조 사형의 대장간이 가장 먼저 생각났습니다.”
석목은 반년동안 단약을 사러 갈 때마다 대장간에 들러 구경을 했다. 그는 줄곧 종공밀전에 기록된 일부 물건에 흥미를 느꼈지만 이전까진 가진 은자도 많지 않았고 대장간의 수준도 너무 낮아 얼마 제작은 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이제 가진 돈이 풍족해지자 석목은 조평에게 일부 정교한 장치를 제작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오고 가며 만나다 보니, 두 사람은 어느덧 매우 친한 사이가 되어있었다.
“그렇게 된 것이었군. 어서 안으로 들게나.”
조평이 하하 웃으며 석목을 가게 안으로 들였다.
아직 시간이 일러, 가게는 손님은 물론 잡역제자마저 없어 조금 썰렁했다.
양쪽으로 설치된 전시대에는 다양한 무기가 전시되어 있었다. 도, 창, 검, 극과 건곤권(乾坤圈), 원앙월(鸳鸯钺) 등 특이한 병기도 있었으나, 이미 여러 번 본적이 있는 석목은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무슨 무기를 원하지? 이곳에 있는 것들은 다 고급 무기는 아니라네. 진정 좋은 무기는 더 안쪽에 있지. 이리 들어와 보게나.”
조평은 말을 하며 멈추지 않고 계속 안쪽을 향해 걸어갔다.
도착한 곳은 밖에 있는 방에 비해 절반정도의 크기였다. 이곳엔 2, 30개의 무기가 있었는데 확실히 품질이 밖에 있는 것보다 좋아보였다.
“도를 하나 추천해 주십시오.”
석목이 주위를 둘러본 후 말했다.
조평은 고개를 끄덕인 뒤 길이가 2척이 넘는 은백색 도를 건네며 말했다.
“이 도는 해저의 한정철(寒晶铁)로 단조한 것이라네. 단단하고 날카로울 뿐만 아니라 차가운 기운이 서려있지.”
석목이 도를 건네 받고 흔들어 보더니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좋은 도였지만 그에게는 깃털 마냥 너무 가벼웠다.
“나쁘지 않지만 너무 가볍습니다. 조금 무거운 것으로 바꿔주십시오.”
석목이 도를 돌려주며 말했다.
조평은 석목의 말에 잠시 멍해졌다. 무게가 50근이 넘는 이 한철도는 진기의 주입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후천무인이 사용하기에 충분한 무기였다. 하지만 조평은 곧 석목이 철을 두드리던 모습을 떠올렸다.
조평이 다시 몸을 숙여 고동색 도를 건넸다.
“이 도는 적동석(赤铜石)으로 단조한 보도라네. 무게는 137근이지. 한 번 만져보게나.”
석목이 도를 쥐고 살짝 흔들었다.
쉭! 쉭!
날카로운 소리가 연달아 울리며 오싹한 한기를 내뿜었다.
그 모습을 본 조평이 매우 놀란 표정을 지었다. 곧 후천무인 중기를 앞둔 그의 눈에도 도법의 변화가 잘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석목이 다시 살짝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직 좀 가볍습니다. 더 무거운 것은 없습니까?”
무게가 100근이 넘는 도가 가볍다니! 조평은 더욱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이 가게에서 가장 무거운 도 역시 별반 차이가 없을 거라네. 그보다 더 무거운 도는…….”
조평이 씁쓸하게 웃으며 말하다가 갑자기 말을 멈추고 머뭇거렸다.
“무슨 일인가요?”
석목이 물었다.
“더 무거운 보도라면 이 가게에 하나 더 있긴 하다네. 하지만 그 도는 좀 특별해…….”
조평이 망설이다가 말했다.
“어떤 점이 특별한가요? 말해주세요.”
석목이 눈을 반짝이며 흥미로운 표정으로 물었다.
“먼저 본 후에 말하도록 하지. 잠시 기다리게나.”
조평이 말을 하며 더 안쪽의 공간으로 들어가더니 잠시 후 양손에 붉은 상자를 가지고 나왔다.
순간 석목의 두 눈이 반짝였다. 상자를 안고 있는 조평의 양팔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고 발걸음 역시 매우 무거웠다. 한 눈에 봐도 상자안의 물건은 아주 무거울 것 같았다.
쿵!
조평이 곧 탁자 위에 나무 상자를 올려놓자 육중한 소리가 울렸다.
석목이 눈을 반짝이며 상자를 열었다.
상자 안엔 기다랗고 검은 도가 들어있었다. 언뜻 보면 평범해 보였지만 조금만 자세히 보면 절대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더불어 도신엔 은은한 검은 빛이 감돌고 있었다.
살짝 흥분한 석목이 도를 잡아들었다.
곧 석목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도는 매우 무거웠다. 적어도 500근은 나가는 듯했지만 어떤 재료를 사용해 만든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좋은 도군요!”
석목이 검신에 손가락을 살짝 가져다대자 차가운 느낌이 전해져왔다. 이어 손잡이를 잡으니, 석목은 점점 더 도를 휘둘러 보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하여 석목이 팔을 휘두른 그 순간, 검은 빛이 번뜩이더니 옆에 있던 시도석(试刀石)을 베었다.
쾅!
철로 주조한 시도석 중간이 절단되며 둘로 나뉘어졌다. 베인 흔적은 매우 매끄러웠다.
“역시 엄청난 힘이군. 이 도는 운철(陨铁)로 단조해 만든 것이라네. 진귀한 재료를 무수히 사용했고 제작하는 데만 무려 3달이 걸렸지. 내 평생 만들어 낸 무기 중 최고라 말할 수 있다네.”
500근이 나가는 도를 가볍게 휘두르는 석목을 보고, 조평이 엄지를 치켜세우며 자랑스럽게 소개했다.
석목은 검은색 도를 위아래로 관찰하다가 잠시 후 상자에 돌려놓으며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좋군요! 이 도를…….”
“우선 급하게 결정하지 말게나. 이 도에 관해서 아직 해줄 말이 있다네.”
조평이 손을 저으며 석목의 말을 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