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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계지문-53화 (53/916)

53화. 이계 방문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하시지요.”

석목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 도는 날카로움이나 단단함의 정도가 완벽에 가깝다고 할 수 있어. 허나 석 사제는 이 도가 왜 이렇게 무거운지 궁금하지 않은가? 이토록 무거운 도는 웬만한 힘을 가진 무인도 사용할 수 없다네.”

조평이 천천히 말했다.

석목의 눈빛이 흔들렸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석목 역시도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도법은 검법만큼 날렵함과 고상함을 추구하지는 않지만 변화를 주로 여기기 때문에 너무 무거운 도는 일반 무인에게 있어 장점보단 단점이 더 컸다.

석목처럼 타고난 힘을 가진 사람이 힘을 더 늘려주는 심법을 수련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을 것이었다.

“당시 운철을 얻은 나는 미칠 듯이 기뻐 심혈을 기울여 이 도를 단조했지. 말을 해도 석 사제가 믿을지 모르겠지만 이 도는 막 단조했을 때 중량이 고작 100근 정도였다네.”

조평이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고작 100근이라고요?”

조평의 말을 들은 석목이 매우 놀랐다.

“이 도를 단조한 나는 당장 판매를 할 생각이 없었지. 한데 며칠이 지나자 괴상한 일이 벌어졌어. 도의 무게가 시간이 지날수록 무거워진 거야. 한 달 후 무게가 2배가 되더니 두 달 후엔 100근이 더 무거워졌다네.”

조평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정말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석목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

“믿기 힘들지만 분명 있었던 일이라네. 이후 무거워지는 주기가 점점 길어졌지만 현재에 이르러선 거의 500근이 됐네. 후에도 분명 더 무거워 질 거야. 그 탓에 줄곧 아무도 사용하지 못하고 계속 가게에 보관하고 있었다네.”

조평이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확실히 이상한 일이군요. 분명 소재로 사용한 운철이 문제겠죠.”

석목이 천천히 말했다.

도의 무게가 이유 없이 증가하는 일은 들어본 적이 없었지만 조평의 표정을 보니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해서 종문 내 선배를 모셔 이 도를 보여줬다네. 하지만 이것이 무슨 광석인지 알아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네. 이 도가 앞으로 더 무거워 질 것이라는 것과 높은 가격에도 개의치 않는다면 이 도를 기쁜 마음으로 팔도록 하겠네.”

조평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좋습니다. 이리 신비한 도라니 더 사고 싶어졌습니다. 얼마가 필요하죠?”

석목이 잠시 생각한 후에 말했다.

반야천상공을 수련할수록 그의 힘도 점점 강해질 것이기 때문에 도의 무게가 더욱 무거워 지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조평은 석목의 말을 듣고 잠시 머뭇거리다가 손가락 다섯 개를 폈다.

“5만 냥이요?”

석목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50만 냥이라네.”

조평이 제시한 금액에 석목은 안색이 어두워졌다.

“석 자세, 내가 터무니없는 가격을 부르는 것은 아니라네. 이 도를 단조할 때 귀한 재료를 무수히 많이 사용했다네. 심지어 일부는 법기를 제작할 때나 사용하는 진귀한 재료였지. 50만 냥도 고작 재료값 정도라네.”

석목의 안색이 변하는 것을 본 조평이 급하게 설명했다.

허나 석목은 여전히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석목이 현재 갖고 있는 은자를 전부 합해도 40만 냥 정도였다. 석목이 가진 다른 물건들까지 전부 덤으로 얹어야만 겨우 50만 냥의 값어치가 될 것이었다. 이 도가 아무리 마음에 들어도 전 재산을 다 쏟아 붓는다는 건 그리 현실적이지 않았다.

“만약 은자가 부족한 것이라면 먼저 6할만 지급하고 부족한 것은 석 사제가 부적을 만들어주는 것으로 대신하는 것이 어떤가?”

조평은 석목의 표정을 보고 눈을 한 바퀴 돌리다, 다시 제안해왔다.

“좋습니다. 어떤 부적을 원하죠?”

석목이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기다리게나.”

조평이 급하게 안쪽 방에서 흰 종이를 들고 나와 석목에게 건넸다.

“좋습니다. 약속하지요.”

석목이 종이에 적힌 내용을 읽고서 곧바로 대답했다.

“부적 제작에 필요한 재료들은 얼마 후 사람을 시켜 보내겠네.”

조평이 매우 기뻐하며 말했다.

석목이 고개를 끄덕이며 30만 냥의 은표를 조평에게 건넸다.

“참, 조 사형이 방금 이 도를 단조할 적에 법기를 제작할 때 사용하는 재료를 사용했다고 했지 않았습니까? 그럼 이 도에 부문을 새겨 법기로 만들 수도 있는 겁니까?”

석목이 물었다.

그는 법기에 대한 지식이 많진 않았지만, 법기가 무기에 부문을 더해 일반 무기는 갖지 못한 위력이나 능력을 가지게끔 하는 것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예를 들어 무기에 화속성 부문을 새기면 무기가 화염을 뿜어내는 공격을 할 수 있게 돼, 일반적인 무기보다 강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무기를 법기로 만들기 위해선 무기에 사용된 재료 역시 매우 중요했다. 일반적인 도검은 법력의 주입을 견딜 수가 없기 때문에 뛰어난 재료를 사용해 단조한 무기만 법기가 될 수 있었다.

또 법기의 위에는 영기(灵器)라는 것이 있었다. 그건 정말로 영성을 가진 보물로 무기의 범주를 넘어 신선들이나 사용하는 물건이었다. 그 영기 위에도 더 대단한 존재가 있다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석목도 몰랐다.

“그건 나도 생각해 본적이 있지만 도의 무게가 올라갈수록 도신이 점점 단단해져서 일반적인 화염으론 제련할 수 없게 됐다네. 겉에 부문을 새기는 것은 더욱 어렵겠지.”

조평이 고개를 저으며 씁쓸하게 웃었다.

그 말에 석목의 얼굴이 순간 어두워졌다.

그가 50만 냥을 내고서라도 이 도를 사고자 했던 이유 중 하나는 그 재질이 특수해 법기로 만들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전혀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라네. 장경각 국 사숙이 이계에서 소환한 화금석(化金蜥)을 기르는데, 그 도마뱀이 뱉어내는 독액이 모든 금속을 부식시켜 무르게 만들 수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네.”

석목의 표정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 조평이 급하게 말을 덧붙였다.

“정말입니까?”

석목이 놀라 물었다.

“사실이네! 그 선배가 국 사숙에게 독액을 받아 검에 부문을 새기는 것을 내가 직접 봤다네. 이 도의 재질이 아무리 특수하다지만 결국 금속이니 문제없을 것이네.”

조평이 긍정적으로 답했다.

“조언 감사합니다. 저는 국 사숙에게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잠시 생각하던 석목이 작별인사를 하고 나무상자를 챙겨 밖으로 나갔다.

* * *

반 시진 후, 석목이 장경각에 도착했다.

“또 너냐? 이번엔 또 뭐 하러 온 거야?”

장경각 2층에 오르자마자,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대한 금색 새장에서 날개를 흔들던 앵무새 채아가 머리를 갸우뚱하며 석목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국 사숙을 만나러 왔는데 자리에 계시니?”

석목이 말을 하며 주위를 둘러봤지만 국 사숙은 보이지 않았다.

“주인님은 옆방에서 수련하고 있으니 이곳에서 기다려라.”

채아가 부리로 자신의 날개를 빗질하며 짜증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석목이 고개를 끄덕이고 의자를 찾아 앉았다.

석목은 반년간 장경각에 수차례 방문하며 국 사숙과 상당한 친분을 쌓았다. 그 과정에서 덩달아 앵무새 채아와도 여러 번 만났었다.

석목이 부적 제작을 시작한 후, 국 사숙은 석목의 잠재력이 남다르다 생각했는지 석목을 특히 온화하게 대했다. 석목은 그런 국 사숙에게 부적이나 진법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주인님은 무슨 일로 찾아온 것이야?”

석목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오히려 심심해진 채아가 물었다.

곧 채아를 한번 본 석목이 물었다.

“국 사숙이 이계에서 소환한 화금석에 대해서 알고 있니?”

“그 죽일 놈의 도마뱀? 당연히 알지. 아주 야만스러운 놈이지. 저번에는 나를 거의 물 뻔했어. 언젠간 내가 그놈을 한입에 삼켜버릴 거야!”

채아가 석목의 말을 듣고 욕지거리를 했다.

그 말을 듣고 석목은 눈을 빛냈다.

“근데 그 도마뱀은 왜 물어보는 거지?”

채아가 한참 욕을 하다, 석목을 흘겨보며 말했다.

석목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국 사숙에게 화금석의 독액을 얻으려 한다는 사실을 말했다. 그러자 채아는 무언가 생각하는 표정을 짓더니 입을 닫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뭔가 알고 있어?”

석목이 물었다.

석목을 흘끗 바라본 채아가 입은 여전히 닫은 채, 거만하게 날개를 뻗어 우리 안에 있는 밥그릇을 두드렸다.

석목이 살짝 웃으며 품에서 갓난아이의 주먹 크기정도 되는 검은색 견과를 꺼내 우리에 넣어 주었다.

이내 채아는 환호성을 지르며 빠르게 견과를 쪼아먹었다.

그 모습에 석목도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이 시끄러운 앵무새는 알고 있는 정보가 상당히 많았다. 그래서 석목은 장경각에 올 때마다 앵무새가 제일 좋아하는 견과를 챙겨서 왔다.

“채아야, 이제 말해줘.”

“쩝……. 이따가 주인을 만나면……, 얼마든지 요구를 해……. 쩝……, 주인은 지금 실험을 하고 있기 때문에 가진 돈이 얼마 없어……. 돈만 준다면 분명 나눠줄 거야……. 쩝…….”

채아가 쩝쩝거리며 견과를 먹는 동시에 어물거리며 말했다.

석목은 무언가 생각에 빠진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국 사숙이 원하는 것이 있다는 건 석목에게 있어서도 좋은 일이었다.

“맞다……. 쩝……, 이따가 요구를 할 때……, 그 뚱뚱하고 멍청한 도마뱀의 독액을……, 쩝……, 최대한 많이 뽑아달라고 해……. 쩝…….”

채아가 잠시 음험한 표정을 지었다가 다시 집중해서 먹기 시작했다. 금세 복수할 궁리를 하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이 앵무새가 화금석 때문에 상당한 고생을 한듯했다.

“무엇을 많이 요구하라는 거지? 채아야, 최근 털이 많이 길었나보구나. 꼬리털을 다시 뽑아줄까?”

바로 그때, 거대한 금색 새장 앞이 반짝이더니 살이 뒤룩뒤룩 찐 사람이 나타났다. 국 사숙이었다.

그는 나타나자마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새장 안의 채아를 보며 말했다.

“주인님 살려주세요! 꼬리털은 제발 뽑지 말아주세요. 저번에 뽑힌 깃털이 아직까지도 자라지 않고 있어요!”

놀란 채아가 먹고 있던 견과를 떨어뜨렸다. 급하게 날개로 머리를 가리고 온 힘을 다해 꼬리를 몸 아래로 숨긴 채아는 몸을 달달 떨면서 소리쳤다.

“조금 있다가 혼내주마.”

국 사숙이 콧방귀를 뀌고 더는 채아를 상대하지 않고 석목을 바라봤다.

“안녕하십니까.”

석목이 일어나 공손하게 인사했다.

국 사숙은 석목을 위아래로 보다 망설이는 얼굴로 침묵했다.

“사숙, 제가 이번에 온 것은 사숙에게…….”

“아직 귀가 먹지 않았으니 2번 말할 필요 없다. 방금 이 시끄러운 앵무새와 하는 대화를 전부 들었어.”

국 사숙이 석목의 말을 끊었다.

막 날개 사이로 눈을 살짝 드러내려던 채아는 국 사숙의 말을 듣고 다시 필사적으로 머리를 가렸다.

“그렇다면 화금석의 독액을 줄 수 있겠습니까? 보수는 제가 지금 가지고 있습니다.”

석목이 말했다.

“돈은 필요 없다. 네가 가진 그 정도의 돈은 이 몸의 눈엔 전혀 차지 않아. 네게 화금석 독액을 줄 테니 대신 네가 내 일을 하나 도와주는 걸로 하자.”

석목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국 사숙은 경지가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높은 사람인데 자신이 무엇을 도와줄 수 있단 말인가?

“제가 무엇을 도울 수 있는지 말해주셨으면 합니다.”

석목이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이 멍청한 새가 말한 대로 최근 나는 하나의 실험을 하고 있다. 어느 이계에 방문하고 싶으나 작은 어려움에 직면해 있지. 넌 공간 원소 친화력이 5급이나 되니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국 사숙이 말하는 동시에 석목의 반응을 관찰했다.

“다른 이계에 방문하고자하는 건 위험한 일 아닙니까? 저는 술사학도가 된지 얼마 되지도 않았습니다.”

석목이 씁쓸하게 웃으며 물었다.

“위험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지. 하지만 걱정할 필요 없다. 그저 내가 말하는 대로 하면 별다른 문제는 생기지 않을 것이다. 이계에 방문하는 것도 한두 번 해본 게 아니니 믿어도 된다.”

국 사숙이 새장 안의 거대한 앵무새를 보며 거만하게 말했다.

“그렇군요.”

석목이 무언가 생각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방문하고자 하는 이계는 사령계(死灵界)다. 지금까지 어느 혼사도 그곳의 생물을 소환해낸 적이 없지. 그곳의 강력한 사령만 건드리지 않는다면 괜찮을 것이다.”

석목이 여전히 결정하지 못하고 머뭇거리자, 국 사숙이 말을 덧붙였다.

“중요한 일이니 며칠 생각할 시간을 주시겠습니까?”

석목이 신중히 말했다.

“당연히 가능하다. 허나 반드시 5일 안에는 답변을 줘야한다. 이쪽의 준비는 거의 끝났으니 네가 수락하지 않더라도 방문은 예정대로 진행될 것이다.”

“네, 그럼 가보겠습니다.”

석목이 허리 숙여 인사했다.

“가거라.”

국 사숙이 손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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