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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계지문-57화 (57/916)

57화. 중첩

두 사람은 곧 어느 방에 도착했다. 이곳은 바로 대장간의 화로방이었다.

이는 20여 장이 족히 되는 상당히 큰 방으로, 10개 이상의 화로가 차례로 놓여 있었고 화로마다 뜨거운 불이 타올라 방을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땅! 땅! 땅! 땅!

석실에는 상체가 빨갛게 달궈진 사내 몇 명이 끊임없이 무기를 두드리고 있었다. 사내들은 조평과 석목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분분히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했다.

조평은 그들을 신경 쓰지 않고 석목을 가장 안쪽에 위치한 밀폐된 방으로 안내했다.

“이곳은 내 전용 화로방이라네. 밖에 있는 것들보다는 조금 더 낫지.”

조평이 말을 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그를 따라 들어가자 순간 뜨거운 열기가 덮쳐왔다.

석목이 들어가자 조평이 다시 문을 닫았다.

알 수 없는 재질의 검은 돌로 지어진 이 방은 크기가 그렇게 크진 않았다. 화로가 하나 놓여 있었지만 이 역시 밖의 것들에 비해선 많이 작았다.

화로에서 뿜어내는 화염은 살짝 백색을 띄었고 뿜어내는 온도는 밖의 것 보다 더 뜨거웠다. 화로 위 공기가 뜨거운 열기로 물결무늬를 치고 있었다.

석실엔 화로 말고도 단조대가 하나 있었으나 이외엔 아무 물건도 없었다.

그리고 화로 위에는 빨간색으로 새겨진 부문이 동그랗게 술법진을 이루며 법력의 파동을 내뿜고 있었다.

“이것은 진법술사에게 요청해 설치한 집양진(聚阳阵)이라네. 화염의 온도를 높여주지.”

조평이 석목의 의아한 눈빛을 보고 설명을 해주었다.

석목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운철도를 제조한 후 법기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줄곧 궁리했기에 모든 과정에 대해서 대부분 생각해두었다네. 부족한 것은 화금석의 독액과 도의 무게에 대한 대책뿐이었지. 석 사제가 법기 제작에 대해서 깊게 연구를 했을 테니 부족한 부분에 대해 지도를 해주게나.”

조평이 품속에서 서책을 하나 꺼내 석목에게 건네며 말했다.

“지도라니 당치도 않습니다. 며칠간 사방팔방으로 법기 제작에 관한 자료를 찾았으니 조 사형과 의논하면 좋겠군요.”

석목이 서책을 받아들고 웃으며 말했다.

석목은 서책을 펼쳐 자세히 읽어보고, 법기 제작 과정에 대해 조평과 의논을 했다.

석목은 단조에 대해서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지는 못했지만 진법과 부문에 대한 지식은 조평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났다.

두 사람은 반 시진가량 의논한 후 각자 맡을 역할을 분담했다.

“참, 운철흑도에 어떤 술법진을 새길 계획인가?”

조평이 갑자기 생각난 듯 물었다.

“열염(烈炎)술법진입니다.”

석목이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열염술법진! 그 술법진은 12개 부문으로 구성돼 하급술법진 중 가장 복잡한 것이 아니던가!”

약간 놀란 조평이 말했다.

“맞습니다.”

석목이 담담히 웃으며 말했다. 오랫동안 고민한 후 선택한 술법진이었다.

그가 현재 만들 수 있는 술법진은 많지 않았다. 열염술법진은 그중 위력이 가장 강하면서도 부적에 가장 많이 그려 익숙한 술법진이었다. 운철흑도의 무게가 무거우니 열염술법진의 폭발속성을 더한다면 순간 공격력을 극도로 끌어 올릴 수 있을 것이었다.

“상당한 확신이 있으니 그런 결정을 한 것이겠지. 석 사제 뜻대로 하게나.”

조평이 고개를 끄덕이고 화로의 화염을 조절하기 시작했다.

석목은 메고 있던 운철흑도를 꺼내 조평에게 건넸다.

초반 작업은 조평이 맡았고 후반에 술법진을 새기는 일은 석목이 맡았다.

화로의 화염이 점점 커지며 밀실의 온도도 점점 높아졌다.

화염의 온도가 일정 수준에 오르자, 조평은 1장 길이의 집게로 운철흑도를 집어 화로에 넣었다. 그 후, 그는 대단히 아깝다는 표정으로 품에서 하급 화속성 영석을 꺼내 진법의 홈에 끼워 넣었다.

콰르릉!

화로에 새겨진 부문이 빛나더니 눈부신 붉은빛을 뿜어냈다. 곧 화로의 화염이 흔들리며 크기가 줄어들었다. 허나 화염은 2배 가까이 더 뜨거워졌다.

조평의 등은 이미 땀에 젖어버렸고 이마에선 커다란 땀방울이 얼굴을 타고 흘러 내렸으나, 그는 화염 속에 있는 흑도만을 보며 손을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반 시진이 지나자 화염 속의 흑도가 조금씩 빨갛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얼굴에 흐르는 땀을 닦던 석목이 기쁜 표정을 지었다.

열기를 더해주는 집양진이 없었더라면 일반적인 화로로는 뜨겁게 달구는 것조차 불가능 했을 것이었다.

매우 신중한 표정으로 흑도의 변화를 무섭게 바라보던 조평은 갑자기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흑도를 단조대에 집어 올렸다.

“독액!”

조평이 소리를 지르며 손을 뻗었다.

석목이 화금석 독액이 담겨있는 병을 급히 건네주었다.

병을 받아든 조평이 기합을 내지르자 은은한 붉은 빛이 그의 몸을 감쌌다. 곧 그의 두 손바닥에서 뜨거운 기운이 퍼져 나오더니 조평의 몸 주위로 뜨거운 소용돌이가 형성됐다.

조평은 화속성의 심법을 수련한 것이 분명해 보였는데 그 기세를 보아하니 백석의 지양공보다 수련의 경지가 훨씬 더 높아보였다.

조평은 이내 병뚜껑을 열어 병을 조심히 기울였다. 노란 점액이 빨갛게 달아오른 운철흑도에 뚝뚝 떨어졌다.

그가 기합을 내지르자 손바닥에서 붉은 빛이 쏟아져 나와 화염처럼 흑도를 뒤덮었다.

조평의 진기 영향을 받은 노란 액체는 얇게 퍼지며 도신을 완전히 덮었다.

“됐다! 운철흑도의 표면이 고온과 독액의 영향으로 부드러워졌다네. 온도가 떨어지면 다시 단단해질 테니 어서 술법진을 각인하게!”

손바닥에서 나오던 붉은 빛을 거둬들인 조평이 창백한 안색으로 뒷걸음질 치며 말했다.

이미 한 쪽에서 준비를 하고 있던 석목은 붉은색 법붓을 꺼냈다.

이 법붓은 특수하게 제작된 것으로 붓끝이 매우 단단했다. 부적을 제작할 때 사용하는 법붓이 아닌 법기 제작 전용 법붓이었다.

숨을 크게 들이마신 석목은 법붓을 빨갛게 달아오른 도신에 가져다 대고 부문을 그리기 시작했다.

석목의 눈도 금색으로 변해있었지만 조평을 등지고 있었기 때문에 들킬 걱정은 하지 않았다.

조평에겐 석목이 가볍고 느린 호흡으로 부문을 그리는 것만 보였다.

2각 후, 석목이 12개 부문으로 구성된 열염술법진을 완성했다.

마지막 한 획을 그리자 술법진이 갑자기 붉은 빛을 띠더니 화속성 법력의 파동을 뿜어냈다.

“성공했군!”

한 쪽에 서있던 조평이 기쁨을 참지 못하고 환호성을 질렀다.

허나 석목은 전혀 멈출 생각이 없는 듯 손을 계속 움직였다. 법붓을 다시 열염술법진의 첫 번째 부문에 갖다댄 채 처음부터 다시 새기기 시작했다.

“술법진을 중첩할 생각인가?”

놀란 조평이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이미 정신을 집중한 석목은 조평의 말을 전혀 못 들은 듯했다.

곧 숨을 크게 들이마신 조평은 석목을 기이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법기를 제작할 때 술법진을 중첩하면 법기의 위력을 더욱 강화할 수 있었다. 하지만 술법진을 중첩하기 위한 방법은 극도로 까다로웠다.

두 술법진 중 어느 하나에 조금의 오차도 없이 완전 일치해야 했다. 오차가 생기면 각인한 술법진이 붕괴돼 더 이상 법기로 사용할 수 없었다.

무기에 술법진을 각인하는 것 자체로도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기에 술법진을 중첩하는 건 숙련된 부적술사라 해도 감히 쉽게 시도하지 못했다.

술법진 2개를 그리는 것과 완전히 같은 술법진을 2번 중첩해 그리는 것의 난이도는 천지차이였다.

석목의 움직임에는 조금의 주저함도 없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석목은 두 번째 술법진을 성공적으로 중첩했다.

도신에 그려진 술법진은 처음보다 더욱 밝고 붉게 반짝였다.

그제야 길게 숨을 내뱉으며 가슴을 쓸어내리던 조평이 석목에게 무언가 말을 하려다 다시 표정을 굳혔다.

석목은 멈추지 않고 법붓을 다시 운철흑도에 가져다 댔다.

“석 사제, 설마 다시 한 번 중첩을 하려는…….”

조평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석목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며 계속 손을 움직였다. 부문을 그리는 속도가 갑자기 몇 배 더 빨라지더니 곧 세 번째 술법진도 완성했다.

그 후, 석목은 전혀 망설임 없이 네 번째 술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운철흑도의 온도가 점차 낮아지며 빨갛던 색은 점차 어두워져갔고, 석목이 마지막 한 획을 그릴 때 흑도의 표면은 이미 많이 단단해져 상당히 그리기 어려운 상태가 됐다.

거의 원래의 검은색으로 돌아온 운철흑도의 도신에 새겨진 열염술법진에서 순간 붉은 빛이 돌더니 천천히 흩어졌다.

흑도의 강도가 완전히 돌아오기 전, 석목은 다섯 번째 중첩까지 순조롭게 완성해낸 것이었다.

허나 아직 해야 할 일이 하나 남아있었다.

도신에 새겨진 열염술법진에서 이어져 나온 한 가닥 붉은 선은 운철흑도의 손잡이까지 새겨져 있었다.

석목은 화금석의 독액이 든 병을 기울여 독액을 붉은 선의 끝단에 몇 방울 떨어뜨렸다.

치익! 소리와 함께 도신이 얕게 패였다.

석목은 품에서 화속성 영석을 꺼내 그 홈에 끼워 넣었다. 곧 화영석을 돌리자 주위에 무늬가 몇 가닥 생겨났다.

화속성 영석이 갑자기 붉고 밝은 빛을 냈다. 그 빛은 피처럼 붉은 선을 타고 올라가 검신에 새겨진 열염술법진까지 흘러들어갔다.

쾅!

흑도의 도신에 붉은색 불빛이 나타났다가 곧 다시 어두워지며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석목은 매우 기뻤다.

드디어 그의 운철흑도가 법기의 반열에 들어선 것이었다.

손잡이에 꽂은 화속성 영석은 열염술법진의 원천이었다. 석목이 가진 법력으로도 열염술법진을 발동할 수는 있었지만 영석을 끼워 넣는다면 더욱 강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법기는 후천무인의 수중에선 큰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진기의 정순함이 떨어져 애초에 술법진을 발동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영석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영석은 매우 귀하기에 특수한 신분을 가졌거나 상당한 재력을 가진 자가 아니면 후천무인이 법기를 사용하기는 힘들었다.

선천무인의 경우에는 진기의 정순함이 높아 진법을 통해 진기를 법력으로 전환할 수 있었고, 그로인해 법기에 새겨진 술법진을 발동시킬 수 있었다.

조평은 석목이 술법진을 단숨에 다섯 개나 중첩시키는 것을 보고 놀라서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는 한참 후에야 숨을 크게 내쉬고 정신을 차린 뒤 석목에게 말했다.

“석 사제가 술법진에 일가견이 있다는 얘기는 이미 들었지만 오늘 직접 보니 과연 감탄을 금치 못하겠네.”

“과찬입니다.”

석목이 몸을 돌려 살짝 웃으며 말했다. 그의 눈은 이미 원래의 색으로 돌아와 있었다.

“본 문에 전문적으로 법기를 제작하는 술사학도가 있지만 그 조차 술법진을 중첩하려면 엄청난 행운이 따라야 한다더군. 때문에 술법진을 3번 이상 중첩한 법기는 극도로 적어. 단숨에 술법진을 다섯 겹이나 중첩해냈는데 어찌 대단하지 않은가!”

조평이 말하는 동시에 반짝거리는 눈빛으로 흑도를 바라봤다.

석목은 담담하게 웃었다. 두 눈의 능력 덕분에 술법진의 중첩 성공률은 매우 높을 수밖에 없었다. 만약 시간의 제약이 없다면 몇 번 더 중첩할 수 있었을 것이었다.

법기의 위력은 각인된 술법진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었다. 열염술법진은 하급의 술법진이기 때문에 아무리 다섯 번을 중첩했다 하더라도 상급 술법진을 한번 각인한 것보다는 위력이 한참 못 미쳤다.

물론 술법진을 다섯 번이나 중첩한 운철흑도는 일반적인 하급법기와 비할 수도 없는 강한 위력을 지녔다.

후천무인과 싸우기에는 충분한 위력이었다.

1각 후, 단조대 위의 운철흑도가 완전히 식었다.

도신에 뚜렷하게 새겨진 12개의 검붉은 부문은 마치 도신에 흐르는 핏줄 같아서 무언가 무서운 느낌이 들었다.

석목이 도의 손잡이를 잡더니 몸 앞에 평평하게 눕혔다.

“정말 보기 드문 훌륭한 법기야. 운철흑도의 중량에 열염술법진 다섯 겹의 순간폭발력이 더해지다니. 이 도를 사용하면 실력이 대폭 상승할 것이네.”

조평이 부러운 듯 운철흑도를 바라봤다.

법기가 되었으니 그 가치도 크게 증가할 것이었다. 하지만 공명정대한 성격의 조평은 그저 부러워만할 뿐 석목의 도를 탐내지는 않았다.

“도의 위력을 한번 시험해 보겠는가?”

조평이 말했다.

“좋습니다!”

석목은 마음이 크게 동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운철흑도는 지금까지 그가 봤던 무기 중 가장 마음에 드는 무기였다. 그 역시 열염술법진의 위력을 어서 시험해보고 싶었다.

“하하, 따라오게나. 가게 뒤에 손님들이 무기를 시험해보기 위한 훈련장이 있다네.”

조평이 하하 웃으며 밖의 공터로 석목을 안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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