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화. 뜻밖의 문제
공터에는 철갑을 입힌 나무가 많이 놓여 있었다. 또한 철갑에는 도검에 긁힌 다양한 크기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살짝 흥분한 석목이 큰 소리를 지르며 바닥을 찍고 뛰어 올라 풍치도법을 시전했다.
500근에 달하는 운철흑도가 아주 가볍게 그의 몸을 따라 움직이며 회오리바람을 일으켰다.
석목의 검이 점점 빨라지자 운철흑도는 검은 검영으로 변해 그의 곁을 맴돌았다.
석목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흐르는 물처럼 막힘없이 풍치도법을 시전했다.
“하!”
석목이 갑자기 기합을 크게 지르며 운철흑도를 가로로 휘둘렀다. 검영은 흔들리다가 순식간에 13개로 늘어났다.
멀리 서있던 조평은 크게 놀라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물러섰다.
일식십삼참!
석목은 매우 기뻤다. 그의 풍치도법이 또 한 번 발전해 대원만의 경지에 오른 것이었다.
이는 전에 경신부의 도움으로 억지로 해낸 것과는 달랐다. 이번엔 정말 풍치도법을 대원만의 경지까지 완벽하게 수련해냈다.
깡! 깡! 깡!
13개의 검광이 거대한 돌을 베고, 큰 소리와 함께 거대한 돌이 열 몇 개로 조각나 볏짚처럼 사방으로 흩날렸다.
훅! 훅!
그중 맷돌만한 돌이 석목의 머리를 향해 정면으로 날아왔다.
석목은 눈을 반짝이며 체내의 법력을 일으켜 운철흑도에 주입했다.
열염술법진이 빛나더니 붉은 빛이 도신을 덮었고, 석목은 기합과 함께 거대한 돌을 베었다.
꽝!
맷돌만한 돌이 터지더니 가루가 되어 날렸다.
석목은 바닥에 착지해 몇 걸음 후퇴하며 흩날리는 돌조각을 피했다.
“좋구나! 도법의 정묘함과 열염술법진의 위력이 실로 놀라워! 마지막 일격은 모든 힘을 쏟지 않은 것이지?”
조평이 박수치며 말했다.
석목은 고개를 끄덕였다. 도법을 연습하는데 전력을 다 할 필요는 없었기에 술법진은 한 단계만 발동했었다.
“좋구나, 좋은 무기야.”
바로 그때. 훈련장 밖에서 쉰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장간 방향에서 마르고 키 큰 남자가 천천히 걸어왔다.
얼굴에 곰보자국이 있는 그 남자는 뜨거운 눈빛으로 석목이 들고 있는 운철흑도를 바라보며 혀로 입술을 핥았다.
석목은 미간을 찌푸리며 콧방귀를 뀌곤 운철흑도를 칼집에 넣었다.
그에 남자가 눈을 차갑게 번뜩이며 곱지 않은 시선으로 석목을 관찰했다.
“좌 사형께서 오셨군요. 환영합니다!”
분위기가 어색한 것 같으니 조민이 급하게 웃으며 남자를 반겼다.
마르고 키 큰 남자는 조평을 무시하고 다시 석목의 흑도를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어쩌다 뒷마당까지 오신 겁니까. 마침 얼마 전 귀한 차를 얻었으니 안으로 모셔서 대접하겠습니다.”
남자의 성격을 잘 아는 조평이 정성을 담아 말했다.
“등급전이 얼마 남지 않아서 무기를 하나 구매하러 왔다. 가게의 녀석들이 네가 이곳에 있다고 해서 왔는데 날 바로 쫓아내려는 것이냐?”
남자의 거만한 목소리에도 조평은 웃는 낯으로 말했다.
“그럴 리가요! 좌 사형 같은 귀빈이 이런 조그만 대장간을 방문했으니 제가 당연히…….”
“가게를 한 바퀴 돌아봤지만 눈에 차는 무기가 없더구나. 하지만 이 도는 상당히 마음에 들어. 조 사제가 최근 제작한 무기인가?”
마른 남자가 조평의 말을 끊고 석목의 운철흑도를 가리키며 말했다.
석목이 두 눈을 살짝 찌푸렸다.
한눈에 봐도 이 남자가 입문한지 오래된 제자임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흑마문의 복장을 입고 있지 않아서 어떤 등급의 제자인진 알 수가 없었다.
“좌 사형이 오해를 하셨군요. 저 도는 석 사제의 것입니다. 저희 가게의 물건이 아닙니다.”
그 말을 들은 마른 남자가 눈썹을 찌푸렸다.
“조 사형, 오늘은 감사했습니다. 방금 사용한 영석 2개 값은 보수에 포함해 며칠 후 보내겠습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석목은 마른 남자는 쳐다보지도 않은 채 조평에게 인사를 하고 훈련장을 떠나려 발걸음을 내딛었다.
“기다려라!”
조평이 대답하기도 전, 마른 남자가 훈련장의 입구를 막아섰다.
“무슨 일이죠?”
석목이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
“사제의 이름을 아직 듣지 못했네.”
마른 남자가 하하 웃으며 말했다. 쉰 목소리가 굉장히 귀에 거슬렸다.
“석목입니다.”
석목이 냉담한 말투로 말했다.
“석 사제였군. 나이를 보니 새로 입문한 제자겠지?”
남자는 어디선가 석목의 이름을 들어본 듯했지만 기억은 나지 않았다.
“그게 어쨌다는 거죠?”
눈앞의 사람이 운철흑도를 노리고 있다는 게 빤히 보이자, 석목의 참을성도 차츰 사라져 갔다.
“상당히 좋은 도구나. 입문한지 얼마 되지 않아 사제가 우리 흑마문 규칙을 제대로 경험해 보지 못했을 것 같으니 내가 조언을 해 주겠네. 만약 다른 제자들이 사제가 그렇게 좋은 물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상당히 귀찮은 일에 휘말리게 될 거야. 운이 좋다면 그냥 뺏기는 것으로 끝나겠지만 재수 없으면 목숨까지도 위험해 질 수 있겠지.”
깊은 뜻이 있다는 듯, 마른 남자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터놓고 말하시죠. 해야 할 일이 있어 이곳에 오래 지체하지 못합니다.”
석목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끊었다.
“그럼 사실대로 말하지. 나는 이 도가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사제가 이 도를 누군가에게 강탈당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내가 선심을 쓰마. 3만 냥을 줄 테니 이 흑도를 나에게 넘기게나.”
마른 남자가 스스럼없이 말했다.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누가 들어도 거절은 허용하지 않겠다는 뜻이 담겨 있었다.
옆에서 그 말을 듣고 조평의 안색도 변했다.
운철흑도는 본래도 매우 귀한 무기였지만 법기로 제작하면서 그 가치가 몇 배는 더 뛰었다. 3만 냥을 제시한 것은 명백한 날강도 심보였다.
조평은 이화회의 일원임에도 불구하고 마른 남자의 성향을 잘 알기에 그와 척을 지고 싶지는 않았다. 때문에 그저 한쪽에서 듣기만 할 뿐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진 않았다.
“3만 냥으로 제 도를 사주겠다니 정말 감사한 제안이군요. 하지만 죄송하게도 저는 이 도를 팔 생각이 없습니다. 물론 다른 문제에 대해서도 신경 쓸 필요 없습니다.”
석목이 속으로 차갑게 웃으며 단호하게 거절했다.
“꼬마야, 내 말대로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 몸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감히 거절하는 것이냐?”
남자가 표정을 차갑게 가라앉히며 매섭게 말했다.
“아직 보고 들은 것이 적어 종문 내 선배님들은 원래 잘 모릅니다.”
석목이 차갑게 말했다.
“죽음을 자초하는구나!”
순간 마른 남자의 신영이 흐릿해지더니, 석목의 바로 앞에 귀신처럼 나타났다. 그는 한 손으로 석목의 얼굴을 공격하면서 다른 한 손으로는 석목이 쥐고 있는 운철흑도를 노렸다.
남자의 주먹이 닿기도 전에 날카로운 권풍이 석목의 얼굴을 찔러왔다.
‘굉장히 빠르다!’
줄곧 상대를 경계하고 있었지만 마른 남자의 속도는 석목의 상상을 초월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남자의 주먹이 바로 앞까지 도달해 있었다.
석목은 발로 바닥을 강하게 찍으며 뒤로 한 걸음 후퇴했다.
석목은 상대의 주먹을 향해 정면으로 주먹을 내지르며, 다른 한 손으론 운철흑도를 칼집 째로 휘둘러 도를 노리고 뻗어온 남자의 손을 가격했다.
펑! 펑!
두 사람이 동시에 뒤로 한 걸음씩 물러났다.
“내 주먹을 받아 내다니 실력이 나쁘지 않군. 좋은 말로 해선 안 되겠다. 이 몸을 화나게 했으니 도뿐 아니라 한쪽 팔도 함께 놓고 가야겠다!”
마른 남자가 미간을 찌푸리며 매섭게 말했다.
방금 맨 손으로 운철흑도를 받아낸 남자의 손바닥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남자는 조금 통증을 느꼈지만 손에서 피가 흐르지는 않았다.
마른 남자가 이내 허리춤에서 은색 검을 뽑아들었다.
은색 검은 폭이 손가락 하나만했다. 일반적인 검보다 얇고 오싹한 빛을 내뿜는 그 검은 매우 차갑고 날카로워 보였다. 또 검신에 푸른빛을 뿜는 부문이 새겨져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세검 역시 법기였다.
석목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상대가 법기를 가진 이상 절대 방심할 수 없었다.
쓱-
석목은 운철흑도를 칼집에서 뽑아들고 몸 앞에 가로로 뉘였다.
옆에 서 있기만 했던 조평은 어쩔 수 없이 나서서 두 사람을 말렸다.
“두 분, 말로 하시지요. 감정 상할 필요가 무엇이…….”
꺅!
그때, 갑자기 아이의 울음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고막을 찌르는 소리에 조평의 말이 묻혔다.
곧 마른 남자가 팔을 휘둘렀다. 손에 쥔 세검은 은색 선을 그리며 매우 신속하게 석목의 가슴을 찔러왔다. 소리의 정체는 바로 세검이 공기를 가르며 나는 소리였다.
시끄러운 소리를 들은 석목은 순간 가슴이 답답하고 의식이 희미해지는 것을 느꼈고, 눈앞에도 은색 빛이 반짝였다.
가슴 바로 앞까지 도달한 세검 검풍은 석목의 옷을 뚫고 피부를 흔들었다.
“핫!”
큰 소리를 질러 정신을 차린 석목이 몸을 팽이처럼 돌려 남자의 검을 매우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하지만 공격을 완전히 피하지는 못한 탓에 팔에 상처가 생기며 선혈이 흘러내렸다.
석목은 급하게 온신술을 운용해 정신을 보호하며 마른 남자를 향해 운철흑도를 내려찍었다. 운철흑도는 수많은 검은색 검영으로 변해 흩뿌려졌다.
남자는 무서운 기세를 뿜어내며 석목의 공격에 정면으로 맞섰다. 남자가 은색 세검을 위로 올려치자 은색 검영이 울음소리를 내며 쏟아졌다.
캉! 캉! 캉!
금속이 격돌하는 소리가 연속으로 들리고 둘의 검영이 동시에 흩어져 사라졌다.
석목은 깜짝 놀란 얼굴로 몸을 비틀거리며 두 걸음 뒤로 물러났다.
운철흑도로 상대의 세검을 부숴버릴 요량이었는데 무기가 맞닿는 순간 단단한 용수철을 벤 것처럼 힘이 절반 이상 중화되었다.
마른 남자 역시 연달아 뒷걸음질을 쳤다. 표정은 변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그 역시 매우 놀라워하고 있었다.
운철흑도로부터 전해져오는 거대한 힘에, 마른 남자는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통증을 느꼈고 검을 쥔 손아귀는 찢어져 피가 흘러나왔다.
무엇보다 남자는 언제나 상대의 정신을 손쉽게 흔들어 놓았던 귀호검술(鬼嚎剑术)이 그다지 효과가 없다는 사실에 가장 크게 놀랐다.
남자는 숨을 깊이 마신 뒤 진기를 슬며시 전신에 퍼뜨리며 천천히 말했다.
“신입 제자 중에 이런 인물이 있을 줄을 생각지도 못했군. 하지…….”
석목은 그의 말을 전혀 듣지 않고 남자를 향해 몸을 날렸다.
쿵!
석목이 둘 사이에 있던 사람만한 바위를 발로 찼다.
바위는 강력한 바람을 일으키며 운석처럼 빠르게 날아갔다.
말이 끊긴 남자는 화난 얼굴로 검을 쥔 손에 힘을 줬고, 그러자 세검에서 푸른빛이 솟아올랐다. 곧 그가 팔을 휘두르자 세검이 은색 궤적을 그리며 날아오는 바위를 난도질했다.
바위는 마치 바람처럼 간단히 썰려 수십 개로 조각나 사방으로 날아갔다.
그 순간, 바위 뒤에 바짝 붙어 다가가던 석목이 돌조각 사이에서 나타났다.
“핫!”
석목이 기합을 지르며 운철흑도를 번개같이 빠르게 휘둘렀다.
이내 섬뜩한 빛이 휘날리며 13개의 검영으로 변해 마른남자를 베었다.
눈부신 검광이 순식간에 마른남자의 모든 퇴로를 막았다.
크게 놀란 남자는 얼른 피하려 했으나 이미 늦은 것을 깨닫고 손에 쥔 세검을 휘둘렀다. 곧 검신에 새겨진 푸른 부문이 반짝이며 푸른빛을 내뿜었다.
남자는 빠르게 휘두른 세검으로 검막을 형성해 방어하는 동시에 바닥을 박차고 뒤쪽으로 쏘아져 나갔다.
펑! 펑!
도와 검이 부딪치며 큰 소리가 울렸다. 13개의 검영과 푸른색 검막은 동시에 흩어져 사라졌다.
석목이 눈을 날카롭게 빛내며 체내의 법력을 운철흑도에 밀어 넣었다. 흑도의 술법진은 순간 빨갛게 빛났고, 도신엔 불길이 활활 타올랐다.
굵직한 적색 검영이 맹렬한 기세로 세검을 베었다.
쾅!
두 무기가 충돌하는 순간 마치 화산이 터지듯 폭발이 일어났다. 엄청난 힘과 열기에 밀린 마른 남자는 검을 든 채 몇 장 뒤로 밀려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