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59화 (59/916)

59화. 월광해담(月光海胆)

연기가 걷히자 전신이 까맣게 탄 남자가 한쪽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이 드러났다. 검을 쥐고 있던 그의 손아귀에서는 피가 쏟아지고 있었다.

챙!

바로 그때, 그가 쥐고 있던 세검이 손잡이만을 남기고 조각나 부서졌다.

얼굴이 창백해진 남자는 입에서 피를 쏟았다.

“네……, 네놈이 감히 내 법기를…….”

마른 남자가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석목을 쳐다보았다.

안색이 살짝 창백해진 석목은 콧방귀를 뀌었다. 그리고 석목의 손에 들린 운철흑도는 여전히 불길을 날름거리며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계속 싸우겠다면 기쁘게 받아들이겠습니다.”

석목이 차갑게 말했다.

두 사람이 겨루는 소리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 훈련장에는 어느새 수십 명의 구경꾼이 몰려와 있었다.

마른 남자는 주위의 사람들을 훑어보고 이를 악물며 말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지만 부러진 검에 대한 원한은 추후 다시 찾아와 갚을 것이다.”

말을 마친 남자가 부러진 검의 손잡이를 던지고 몸을 획 돌려 훈련장 밖으로 걸어 나갔다.

석목은 운철흑도를 자세히 관찰했다. 다행히 어떠한 손상도 가지 않은 것을 확인한 석목은 다시 도를 칼집에 넣었다.

“석 사제, 괜찮은가?”

조평이 다가와 겸연쩍게 물었다.

“괜찮습니다. 그 사람은 누구였죠? 잘 아는 것 같던데요.”

석목이 개의치 않아하며 말했다.

“그 자는 좌언이라네. 병급 제자들 사이에선 100순위 안에 들어가는 제자지. 실력은 강하지만 언제나 혼자 행동하며 어느 조직에도 가입하지 않아. 아량이 좁고 원한은 반드시 갚는 성격이라 조직들도 그와는 엮이기를 원치 않네. 사제도 그의 법기를 부쉈으니 앞으로는 항상 조심해야하네.”

조평은 석목이 자신을 원망하지 않음에 가슴을 쓸어내리며 석목에게 다가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석목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좌언은 석목이 지금껏 겨뤘던 사람 중에 가장 강했다. 석목이 운철도로 상대의 무기를 부수지 않았더라면 승패가 불투명한 힘든 싸움이 됐을 터였다.

흑마문에는 정교한 심법과 무예가 무수히 많이 있었다. 게다가 법기의 도움까지 더해지니 풍성과 같은 작은 지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강자들이 존재했다.

석목은 좌언이 했던 말이 틀리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는 다른 제자들이 운철흑도를 노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앞으로는 운철흑도를 꺼내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석목은 문득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조 사형, 조 사형의 대장간에서 물건을 하나 만들고 싶습니다…….”

석목이 조평의 곁으로 가 귀에 대고 몇 마디를 속삭였다.

조평은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 그 물건들에 사용되는 재료는 반드시 방금 말한 것들을 사용해야 합니다. 제작과정이 조금 까다로울 수 있겠지만 조 사형에겐 어려운 일이 아닐 겁니다. 열여섯 자루를 부탁하겠습니다.”

석목이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말했다.

“알겠네, 반드시 석 사제의 요구사항에 따라 만들겠네.”

조평이 잠시 머뭇거리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내 석목은 살짝 웃으며 인사를 하고 떠났다.

* * *

3일 후, 석목의 집.

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는 석목의 앞엔 반 척 길이의 곡도 16자루가 놓여있었다. 초승달처럼 은색 빛을 발하는 그 곡도는 매우 얇고 화려했다.

곡도를 보는 석목의 입 꼬리도 곧 만족스러운 듯 올라갔다.

그 곡도는 종공비전에 기록된 특수한 암기 중 하나인 월광해담이었다. 그것은 종공비전에 기록된 여러 암기들 중에서도 매우 강력한 위력을 가진 편에 속했다.

월광해담이라는 이름은 대제국 해역의 한 특별한 해담으로부터 따온 것이었다. 달처럼 밝은 은백색의 이 해담은 매우 아름다웠지만 가시에 극독을 내포하고 있었다. 해담은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사방으로 독침을 발사하는데 치료법을 모른다면 독침에 찔린 사람은 곧 사망할 수밖에 없는 위력이었다.

이 곡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특수한 금속인 은신철(银辛铁)로 제작한 이 곡도는 작은 충격에 쉽게 깨지고, 도신에 미리 극독을 발라놓으면 상대의 무기와 충돌하는 순간 검이 터지며, 그 검 조각은 상대를 상처 입히는 동시에 감염시킨다.

상대의 실력이 아무리 뛰어날지라도 가까운 거리에서 무기가 터진다면 상처를 입지 않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월광해담을 제작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웠다. 이유는 운신철을 구하기 어려워서가 아닌 극독의 제작이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석목은 극독을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종공비전에 적힌 그대로의 월광해담을 만들려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상관없었다.

석목이 곡도를 조심스럽게 챙겨 탁자의 한쪽 위에 올려놓고, 그중 한 자루만 탁자의 중간에 둔 뒤 품에서 붉은색 법붓을 꺼냈다.

이내 석목의 두 눈은 금빛으로 변했고, 석목은 막힘없이 법붓을 움직여 곡도에 부문을 하나씩 새기기 시작했다. 바로 운철흑도에 새겼던 것과 같은 열염술법진이었다.

이 곡도는 재질이 특수해 화금석을 사용하거나 불에 달굴 필요가 없었다.

석목은 이 곡도에 열염술법진을 열 겹 중첩할 계획이었다.

영부보경에 따르면 아무리 하급술법진이라고 하더라도 열 겹 이상을 중첩한다면 상상을 초월하는 위력을 발휘한다고 했다.

작업은 매우 순조로웠다. 석목은 2각이 채 지나기도 전에 술법진을 여섯 겹이나 중첩시켰다.

법붓을 거두고 잠시 숨을 돌린 석목은 다시 첫 번째 부문에 법붓을 가져다대고 일곱 번째 술법진을 중첩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 부문이 완성되기도 전, 순간 석목이 놀란 얼굴로 법붓을 급하게 회수했다. 검신에선 난데없이 강력한 법력의 파동이 솟아나오고 있었다.

쾅!

석목이 술법진을 새기던 곡도가 붉은 화염에 휩싸이더니 곧 다시 순식간에 공기 중으로 사라졌다.

무수히 조각난 곡도는 땅으로 흩어졌다.

석목이 그 광경에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지만 곧 새로운 곡도에 다시 술법진을 새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곱 번째 술법진을 중첩하는 도중에 다시 한 번 술법진이 붕괴했다.

석목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어째서 이런 상황이 발생하는 건지 까닭을 알 수 없어 몹시 답답했다. 열염술법진에 익숙한 자신이 눈의 능력까지 사용해 술법진을 그렸으니 실수를 했을 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방을 서성이던 석목이 결국 침상으로 돌아가 가부좌를 틀고 명상을 했다.

한참 뒤, 석목이 두 눈을 반짝이며 침상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는 빠르게 탁자에 다가가 새로운 곡도에 술법진을 새기기 시작했다.

술법진을 두 번 중첩시킨 석목이 두 눈을 감고 온신술을 운기했다. 두 눈을 감고 있었지만 마음속엔 주위의 광경이 직접적으로 투영돼보였다.

석목은 앞에 있는 곡도의 도신에서 미약한 화속성 법력의 파동을 느꼈다.

곧 다시 눈을 뜬 석목이 매우 천천히 세 번째 술법진을 중첩시켜 그리기 시작했다.

석목은 완벽하게 술법진을 복제하는 능력을 가졌지만 여전히 술법진 사이에 보이지 않는 사소한 차이가 존재했다. 그로인해 술법진이 뿜어내는 법력의 파동이 미약하게 엉켰던 것이었다.

중첩의 횟수가 증가할수록 파동은 점점 더 엉켜 불안정해지고 결국 술법진이 붕괴를 일으킨 것이었다.

석목은 이번엔 술법진의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법력의 파동을 느끼면서 매우 천천히 부문을 새겼다.

2각 후, 석목이 7번 중첩한 열염술법진을 바라보며 숨을 길게 내쉬었다.

잠시 숨을 돌린 석목이 술법진을 다시 한 번 중첩시키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덟 번째 술법진을 절반 정도 새겼을 때, 술법진이 다시 붕괴했다.

석목의 표정도 다시금 어두워졌으나, 석목은 포기하지 않고 새로운 곡도에 다시 술법진을 새기기 시작했다.

한 시진 후, 방 안에 순간 자홍색 빛이 번쩍이다가 사라졌다. 이내 석목의 앞엔 자홍색 부문이 12개 새겨진 은색곡도가 하나 놓여있었다.

다섯 번의 실패 끝에, 석목은 드디어 술법진을 열 번 중첩한 월광해담 제작에 성공한 것이었다.

석목은 완성된 곡도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매우 흥분한 표정을 지었다.

한데 그때, 석목은 머리를 찌르는 강력한 통증에 몸을 비틀거렸다.

석목은 급하게 탁자를 잡아 겨우 쓰러지는 것은 면했다.

석목의 기력이 완전히 소모된 것이었다.

이내 석목은 급히 침상 위에서 가부좌를 틀고 온신술을 운기하며 천천히 기력을 회복했다.

* * *

석목은 3일 내내 대부분의 시간을 월광해담을 제작하는 데에 쏟았다.

고도의 기력을 소모하는 일이라 석목의 얼굴에도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노력은 사람을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석목은 결국 16개의 곡도 중, 세 자루에 중첩을 성공했다.

하루를 꼬박 침상에 누워 보낸 석목은 다음 날 저녁 법기화한 월광해담의 위력을 시험하기 위해 어둠을 틈타 골짜기 밖 사람이 없는 공터로 향했다.

석목은 주변을 훑다가, 높이가 3장 가까이 되는 검은색 바위를 발견했다.

이내 석목이 허리춤에서 곡도를 꺼냈다. 초승달 모양의 검신에 자홍색 부문이 새겨져 있는 곡도는 무언가 위험한 분위기를 내뿜었다.

석목이 눈을 차갑게 번뜩이며 체내의 법력을 주입하자 곡도의 자홍색 부문이 순식간에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자홍색 빛이 곡도를 전부 뒤덮자 곧 얇은 검신이 격렬하게 떨며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열 겹 중첩된 열염술법진이 전부 발동한 것이었다.

“가라!”

석목이 체내의 진기를 끌어올려 던진 곡도가 한줄기 자홍색 빛의 잔상을 남기며 검은색 바위를 향해 날아갔다.

곡도가 바위에 부딪히는 순간 자홍색 빛이 터졌다. 꼭 태양처럼 밝게 빛나는 그 빛에 검은색 바위가 파묻혔다.

콰르릉!

뜨거운 불길에 휩싸인 무수한 검은색 돌 파편이 사방으로 날아갔다.

주변이 잠잠해진 후, 바위가 있던 곳을 지켜본 석목은 매우 놀랐다.

3장 높이의 바위는 자리에서 완전히 사라져 보이지 않았고 공기 중에는 탄 냄새가 짙게 깔려있었다.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바위를 중심으로 바닥에 몇 장 넓이의 거대한 구덩이가 생겨나 있었다. 구덩이 안은 새카맣게 타있었고 주변의 지면에는 녹은 흔적도 있었다.

석목은 매우 기뻤다.

선천무인의 일격도 이 정도로 강력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 * *

다음 날 새벽, 석목은 집을 떠나 산골짜기의 광장으로 향했다.

해가 중천에 뜬 후에야 광장을 벗어난 그의 배낭 안엔 정철로 제작한 반지 2개와 화려한 은색 칼집 하나, 소박한 흑색 칼집 하나, 투명한 영잠사(灵蚕丝) 두 뭉치가 들어있었다.

극도로 추운 지역에서 서식하는 누에가 뽑아내는 이 영잠사는 매우 튼튼했으며 거의 투명해 육안으로는 식별하기가 어려웠다.

집으로 돌아온 석목은 배낭에서 반지와 영잠사를 꺼내 곡도의 손잡이와 반지를 영잠사로 연결했다. 석목은 두 곡도를 은색 칼집에 넣고 흑색장도는 검은색 칼집에 넣었다. 그런 뒤 튼튼한 가죽 끈으로 연결한 두 개의 칼집을 등에 교차해서 멨다.

석목이 곧 오른손을 뒤로 뻗자 검은 빛이 번쩍이더니 칼집에서 뽑힌 운철흑도가 눈 깜짝할 사이 손에 쥐어져있었다.

석목은 천상진기를 끌어올리며 팔을 휘둘렀고, 13개의 검은 검광이 회오리치듯 허공에서 몰아쳤다.

도가 울부짖는 매서운 소리가 멈추기도 전에 검은빛이 다시 한 번 번뜩이더니 운철흑도가 칼집으로 되돌아갔다.

검을 뽑고 다시 넣기까지의 모든 동작이 어색함 하나 없이 민첩했다.

이어서 석목은 왼손에 진기를 흘러 보냈다. 그러자 검지에 낀 반지가 흔들리더니 석목의 등 뒤에서 섬뜩한 은빛이 반짝이며 곡도가 하늘로 치솟았다.

여창해에게 배운 절기인 산수도의 응용이었다.

쉬익!

은색 곡도가 투명한 영잠사를 통해 흘러들어간 진기의 조종에 따라 순식간에 방향을 틀고, 한 마리의 은색 새처럼 석목의 주위를 선회했다.

석목의 주위로 순식간에 곡도가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가득 채워졌다.

은색 곡도가 떨어지려 할 때마다 석목이 진기를 주입하면 손가락의 반지가 흔들리며 곡도가 다시 떠올랐다.

석목은 영잠사를 통해 진기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산수도를 자유자재로 펼쳐보였다.

그 뒤로도 석목은 며칠 동안 방에서 조금도 나오지 않고 풍치도법과 산수도의 연계공격을 연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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