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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계지문-61화 (61/916)

61화. 연이은 격변

수십 리에 달하는 성벽 아래, 무수히 많은 야만족 전사가 무기를 메고 운제를 빠르게 기어 올라갔다. 일부 토템용사는 운제를 사용하지 않고 원숭이처럼 스스로 성벽을 타고 올라가기도 했다.

능히 100명의 적을 상대할 수 있는 토템용사였지만 성벽 위의 무수한 병사와 군관의 협공에 이들은 그 자리에서 죽거나 성벽 아래로 추락해 죽었다.

성을 지키는 병사들의 관심이 전부 성 밖 적들에게 쏠려 있을 때, 성 안에선 300명에 달하는 소형 부대가 쥐 죽은 듯 조용히 성의 서문에 다가갔다.

“누구냐! 멈춰라!”

성문을 지키는 군관이 은색 창을 흔들며 엄격하게 소리쳤다. 그의 뒤에 있던 수백의 병사도 몸을 돌려 진형을 가다듬고 경계하는 눈빛으로 먼 곳을 바라봤다.

이내 파공성이 울리더니 어둠 속에서 섬뜩한 빛이 날아왔다.

방패가 없는 졸병은 날아오는 창에 일순 몸을 꿰뚫려 일격에 사망했다.

“적습이다!”

성문을 지키는 군관은 후천 중기의 무인이었다. 그는 창을 휘두르며 몸 가까이 날아온 창을 쳐낸 뒤 큰 소리로 포효했다.

바로 그때, 악독하게 생긴 중년의 남자가 그의 앞에 나타나 손을 들었다.

순간 매우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남자의 손이 크고 두껍게 변하며 짙은 갈색 털이 솟아오르더니 순식간에 거대한 곰발바닥으로 변했다. 중년의 남자는 곰발바닥으로 변한 그 손으로 군관을 그대로 내리 찍었다.

쿵!

공격을 막아낸 장창이 엄청난 힘에 두 동강 나며 순식간에 방어가 뚫렸다.

군관이 다시 다른 행동을 취하기도 전, 중년의 남자가 곰발바닥으로 변한 다른 한쪽 손으로 망치질을 하듯 그의 가슴을 매섭게 내려찍었다. 결국 군관은 힘없이 날아가 풀썩 쓰러지며 그대로 숨이 멎었다.

이어, 중년의 남자는 곁에 나타난 예닐곱 명의 사람과 함께 성문을 지키는 병사들을 도살하기 시작했다.

나타난 이들은 모두 토템용사였다. 여기에 야만인 300명까지 더 합세하자 성문을 지키던 수백의 병사들은 순식간에 전부 다 살해당했다.

그 순간, 성벽 위에서 공격을 저지하던 병사들이 이상을 감지했다. 성문 양측 통로에서 무수한 병사가 내려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곧 증원을 온 순찰 기병대도 말발굽 소리를 크게 울리며 다가왔다.

이런 상황을 미리 예측한 듯 중년 남자는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절반 이상의 야만인이 일렬로 방어진을 구축했고 남은 야만인은 성문을 향해 돌진했다.

전투의 함성이 순식간에 하늘을 뒤흔들었다.

자신들의 몇 배에 달하는 인족 병사를 상대로 무수히 많은 일반 야만인들이 사망했고 토템용사 중에서도 사상자가 발생했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나아갔다.

곧 수비군이 가장 겁내던 일이 발생했다.

일순 커다란 소리가 울리며 성의 서문이 천천히 안쪽으로 열렸고, 성 밖에 있던 야만족 대군의 함성이 엄청나게 선명해졌다. 곧 수만의 야만족 정예 기병이 열린 성문 사이로 바람처럼 돌진했다.

그들은 성문 근처의 수비군을 빠르게 죽였고, 일부 나눠진 기병은 그대로 성 안 깊숙이 들어갔다. 남은 야만인들은 말에서 내려 전투에 임했고, 여기저기 들려오는 울부짖는 소리와 나팔소리로 성 안이 순식간에 혼란스러워졌다.

성 안의 몇몇 군영은 더욱 소란스러웠다. 횃불을 든 병사들은 불의 행렬을 이루며 성의 서문으로 향했다.

* * *

진만공부(镇蛮公府)에서 서문으로 향하는 길, 또 처참한 광경이 발생했다.

20장정도의 거리에 사람과 말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갑옷을 입고 있는 시체들은 하나같이 처참하게 살해당한 상태였다. 그 갑옷은 진만공의 친위대 복장이었다.

피로 물든 길 가운데 다섯 명이 꼼짝도 않고 서있었다.

그들 중 키가 큰 4명은 얼굴이 꼭 대추 같았고, 이 넷은 키가 팔척 정도 돼 보이는 노인 하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멀리서 보면 마치 어른 4명이 어린아이 한 명을 포위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비늘갑옷 위에 흰색 옷을 입은 노인은 머리는 은발이었고 얼굴은 붉은 빛을 띠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키만 한 반월혼금당(半月混金镋)을 들고 있었는데 그 무게가 족히 천근은 되어 보였다.

그는 자신을 둘러싼 네 야만인을 차가운 눈빛으로 훑어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를 둘러싼 네 야만인 역시 함부로 덤비지 못했다.

동쪽에 서있는 야만인은 얼굴에 검은색 거미 문신을 하고 있었고 서쪽에 서있는 야만인은 이마에 손가락만한 빨간 혹이 난 추남이었다. 남북 두 방향에는 왼쪽 귀에 주먹만 한 금 귀걸이를 낀 여자 야만인과 흉악하게 생긴 외눈의 사내가 서있었다.

이 4명은 야만족의 토템용사 중에서도 강자였다. 그들이 뿜어내는 기운으로만 봤을 때도 실력이 인족의 선천무인에 비견할 수 있을 정도였다.

바로 그때, 성의 서문의 방향이 더욱 밝아지며 성의 곳곳에서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노인은 곁에 쓰러져 있는 명마를 한번 바라본 뒤, 은발을 흔들며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그러자 노인이 쥔 반월혼금당이 갑자기 웅웅, 큰 소리를 냈고, 노인의 눈빛도 칼날처럼 날카로워졌다.

곧 청천벽력과 같은 거대한 소리가 울려 퍼졌고, 그 소리는 그곳에서 몇 리 떨어진 인족과 야만족에게까지 널리널리 퍼져갔다.

얼마 후, 깜짝 놀랄만한 소식이 대제국 조정에 전해졌다.

야만족의 기습을 당한 변경의 3주가 3일 만에 절반의 성을 점령당했고 100년 가까이 야만족 침임을 막아낸 진만공 악대의 생사가 확인되지 않으며 삼백의 후천무인으로 구성된 악대의 친위대가 모두 전멸됐다는 소식이었다.

제왕(齐王)은 사건의 심각함을 인지하고 3주에 대군을 파견했고 대제의 세 종문에 특사를 보내 야만족의 침입 소식을 알렸다.

* * *

염국, 흑마문.

흑마13봉은 하나같이 높고 험준했다.

그중 3호 산봉우리는 가장 높게 솟아 있었으며 중턱에서부터는 거의 각이 지지 않고 동그란 모양을 하고 있었다.

시끌벅적한 13호 산봉우리와 다르게 이곳엔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았으며 건축물도 거의 없었다. 오직 봉우리 정상에 덩그러니 지어진 검은색 전당만이 서늘한 기운을 풍기고 있을 뿐이었다.

그 전당은 어둡고 텅 비어있어 매우 스산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그곳엔 금색으로 장식된 흑의를 입은 눈썹이 뾰족한 남자가 전당의 중앙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그의 온몸에서 세차게 뿜어 나오는 검은 빛은 마치 실제 같은 검은 화염 모양을 형성했다. 1장정도 되는 높이의 그 검은 화염은 전당의 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 순간, 남자가 찬 손목의 팔찌가 갑자기 은은한 검은 빛을 뿜었다. 검은 빛 사이에선 조그만 부문이 이리저리 움직이더니 곧 작은 진법을 형성했다.

진법이 번쩍, 빛을 뿜었고 허공에선 손바닥만 한 검은색 옥간이 생겨났다.

뾰족한 눈썹을 가진 중년 남자는 눈을 뜨고 검은 옥간을 조용히 이마에 가져다 댔다.

곧 남자의 몸에서 피어오르던 검은색 빛이 전부 흩어졌다. 몸을 일으킨 그는 급하게 밖으로 나섰다.

거의 같은 시간, 주위의 다른 산봉우리에 위치한 전당의 문이 활짝 열리고 검은 장발의 중년이 위엄 있게 걸어 나왔다. 그의 손에도 동일한 흑색 옥간이 들려있었다.

1호 산봉우리의 정상은 운무가 자욱하고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 그곳은 일 년 내내 얇은 눈에 덮여 있는 곳이었다. 그 흰 눈밭 위엔 눈에 띄는 웅장한 검은색 대전이 위치하고 있었다.

밤하늘처럼 새카만 광물을 이용해 건조된 대전은 3층으로 나뉘어져 있었고 위층으로 올라갈수록 점점 작아졌다.

대전의 3층 위엔 거대한 구형물체가 천천히 돌며 검은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꼭 안에서 거대한 화염이 타오르는 것 같아 보이는 그 물체는 궁전에 신비로운 분위기를 더해줬다.

대전의 1층에 위치한 방 안엔 넓은 의자가 양측으로 각각 12개씩 놓여 있었고, 가운데 상석을 제외한 모든 의자엔 이미 사람들이 모두 앉아있었다.

이곳에 앉을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이들은 문주와 부문주, 각 봉우리의 봉주(峰主), 장로들뿐이었다.

이전에 석목이 본적 있는 골호와 영평, 금소채도 이곳에 자리해 있었다.

이곳에 모인 흑마문 거물들은 제각각의 표정으로 종종 옆문을 바라봤다.

상석의 바로 양쪽에는 각각 한 사람이 앉아있었는데, 그중 한 사람은 석목이 영법전에서 만났던 사사라고 불린 사람이었다.

그는 부문이 수놓인 자색 옷을 입고, 오른 엄지손가락엔 남색 옥반지를 끼고 있었다. 또한 무슨 재질인지 모를 자색 석장도 함께 들고 있었다. 그 석장 가장 윗부분에 끼워진 자색 광석 안에선 이따금 번갯불이 번쩍였다.

그의 맞은편엔 금색 눈을 가진 눈썹이 뾰족한 남자가 앉아있었다. 고작 서른 정도 돼 보이는 그는 날카로운 눈빛에 구레나룻만 하얗게 세어있었다.

여기 모인 사람들은 이 둘을 중심으로 좌우 두 무리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그들은 언뜻 봐도 서로를 적대하는 사이로 보였다.

바로 그때, 옆문에서 흑의를 입은 노인이 걸어 들어왔다. 몸은 왜소하고 얼굴은 수척했으며 입은 옷은 매우 소박해보였다. 어딜 봐도 출중해 보이는 곳 하나 없는 사람이었다.

허나 그가 들어오자 앉아 있던 이들이 즉시 질서정연하게 일어났다.

“장문인을 뵙습니다.”

모두가 동시에 몸을 굽히며 공손히 인사를 했다.

“비상시기니 예를 고집할 필요 없다. 모두들 자리에 앉게.”

흑의의 노인이 말을 하며 자리에 앉았다.

이내 모두들 그의 말에 따라 자리에 앉았다.

“야만족의 갑작스러운 대규모 기습으로 대제국의 변경 3주가 며칠 사이 다 점령당했고 악대 역시 생사를 알 수 없는 상태라네.”

흑의의 노인이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 사제, 외부소통용 진법은 모두 사제가 관리하지. 현재의 전황은 어떤가? 대제국의 종문은 어떤 움직임을 취하고 있지?”

흑의의 노인이 사사를 보며 물었다.

사사가 꼿꼿이 앉아 공손히 말했다.

“보고 드립니다. 본 문엔 변경 3주에 심어놓은 첩자가 많지 않아 아직 구체적인 소식은 전달받지 못했습니다. 대제국의 세 종파는 이미 끊임없이 소속 제자를 변경으로 파견하고 있으며 대제국의 조정도 3주를 지원하기 위해 30만의 대군을 파견한 상태입니다. 대제국의 세 종문과 이미 연락을 취했으니 야만족의 구체적인 정보를 얻게 되면 즉시 소식을 전달해줄 것입니다.”

사사는 중간에 잠시 멈칫하면서 말을 이었다. 이 사사의 말을 듣고, 금색 눈을 한 남자가 입을 열었다.

“사 사형, 지금이 아무리 비상시라지만 다른 종문과 연락을 취하기 전에는 장문인이나 대장로의 동의를 얻어야만 하네. 이렇게 제멋대로 정하는 것은 지나친 월권행위요.”

금안의 남자는 명백히 사사를 비난하고 있었다.

“사안이 너무 긴급하다보니 독단적으로 행동했습니다. 분수에 지나친 행동이었으니 장문인께서 처벌을 내려 주십시오.”

사사는 표정도 변하지 않고 흑의의 노인에게 몸을 숙이며 말했다.

“괜찮다. 비상시니 사 사제의 이번 행동은 타당했다.”

흑의의 노인이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사사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사과했다.

금안의 남자도 그냥 콧방귀만 뀌며 더 이상은 따지지 않았다.

“이번 야만족의 침입 규모나 행동의 신속함이 최근 100년 사이엔 굉장히 드문 수준이야. 현재는 그 목적조차 아직 알 수가 없다고 하더군. 모두들 이에 대해서 어떤 의견을 가지고 있는지 말해 보게.”

흑의의 노인이 의자에 앉아 모두를 훑어보며 말했다.

“협약에 따라, 야만족의 침입으로 인한 위기에는 3국의 모든 인족과 7종문이 힘을 합쳐 적을 몰아내야합니다. 가능한 빨리 다른 종문과 연맹을 맺어 힘을 합쳐 야만족을 몰아내야 합니다.”

사사가 즉시 말했다. 그의 말이 끝나자 일고여덟 명의 봉주와 장로들도 분분히 맞장구를 쳤다.

흑마문의 장문인도 사사의 의견에 공감하는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7대 종문이 그런 협의를 하긴 했지만 원군을 즉시 보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어진 금안의 남자의 목소리에 모두가 그를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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