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70화 (70/916)

70화. 선천고수의 전투

석목은 전신의 기혈이 들끓어 거의 심장까지 역류하는 것을 느꼈다. 석목은 크게 놀라 체내의 진기를 극한까지 끌어올려 짓누르는 기운에 저항하며 거의 모든 법력을 운철흑도에 주입했다.

운철흑도 위로 화염이 1척 높이까지 타올랐다.

석목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기합을 내지르며 다가오는 거대한 손바닥을 내려찍었다.

쾅!

충격에 밀린 석목이 선혈을 뿜으며 몇 장을 날아가 착지했다.

석목은 가까스로 남자의 일격을 막아냈지만 가아와 기 낭자는 그러지 못했다. 그녀들은 거대한 남색 손바닥에 가격당해 10여장 이상을 날아가, 생사여부조차 불투명해졌다.

석목은 곁눈질로 그 광경을 보고 눈꼬리를 떨었다.

“내 일격을 받아 내다니 실력이 나쁘지 않구나.”

남자도 놀란 표정이었지만 곧 차갑게 웃으며 주먹을 날렸다.

석목이 성난 얼굴로 등 뒤에서 무언가를 뽑아 던지고 돌아서 몸을 던졌다.

은색 검광이 남자의 남색 주먹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남자가 석목의 행동을 보고 미간을 찌푸리는 사이, 이 은색 검광이 남자의 주먹과 충돌했다.

콰르릉!

은색 곡도가 눈부신 자홍색 빛을 뿜어내며 태양처럼 작열했다. 뜨거운 열기는 곧 남자의 주먹을 삼켰다.

순식간에 터져 나온 거대한 힘과 열기에 남자는 한보 뒷걸음질을 쳤다.

먼지가 걷히자 살짝 탄 남자의 주먹이 보였다.

월광해담의 폭발력은 선천고수의 일격과 거의 비슷한 위력을 발했다.

“네놈이 죽고 싶구나!”

어느새 손에 장갑을 착용한 남자가 분노에 찬 소리를 지르며 주먹을 매섭게 뻗었다. 남자의 주먹이 눈 깜짝할 사이 석목의 몸 앞까지 다가갔다.

석목은 크게 놀라 제대로 반응도 못하고 운철흑도로 겨우 막아냈다.

남자의 주먹이 운철흑도와 충돌하자, 석목은 거의 찢어진 마대자루 마냥 날아가 커다란 나무 몇 그루를 부순 후에야 바닥에 떨어졌다.

석목이 입에서 피를 뿜어냈다. 온몸의 뼈도 수없이 골절됐다. 그의 신체가 유난히 단단하지 않았더라면 방금 공격에 사망했을 것이었다.

허나 석목은 죽지만 않았을 뿐, 전신의 근골이 부서진 탓에 조금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검은 남자는 곧 기척도 없이 다가와 다시 주먹을 들어올렸다.

석목은 씁쓸하게 웃으며 두 눈을 천천히 감았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검은 옷을 입은 남자의 머리 위로 하얀 얼음 꽃 한 송이가 나타났다. 꽃은 남자의 머리 위를 빙글빙글 돌면서 낙하했다.

놀란 남자는 바닥을 박차고 몇 장 밖으로 몸을 피했다.

“누구냐!”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주위를 둘러보며 성난 목소리로 외쳤다.

하지만 대답은 없었다. 그저 허공에선 얼음 꽃들이 연달아 나타나며 화살처럼 남자를 향해 쏘아져 나갈 뿐이었다.

남자가 살벌한 표정을 지으며 전신에 파란 빛을 뿜어냈다. 남자는 계속해서 얼음 꽃들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며 권영을 날렸다.

펑!

주먹과 얼음 꽃이 충돌하자 뼈를 찌르는 한기가 폭발하며 주위로 옅은 안개가 퍼졌다. 남자는 조금 힘에 겨운지 뒤로 한걸음 물러났다.

바닥에 쓰러져 있던 석목은 허공의 흰 얼음 꽃을 보고 몸을 살짝 떨었다. 강렬한 감정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그에 석목은 전신을 강타한 통증도 다 무시한 채 고개를 들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하늘 위엔 백의를 입은 요정, 아니 맨발의 소녀가 있었다. 희고 아름다운 손으로 하얀 막대기를 쥔 그녀의 주위론 하얀 안개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석목은 그녀에게서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하고 그대로 얼어붙어버렸다.

소녀는 석목이 딱 한 번 만나본 이후 줄곧 그리워하던 천음차녀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요정 같은 절세미녀가 하늘에서 천천히 바닥으로 내려왔다.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를 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현빙척! 아니지. 가짜가 분명하다!”

남자가 소녀가 든 무기를 보고 놀랐다가 곧 고개를 저었다.

“내가 잘못 찾아온 게 아니면 네놈이 야만족 월한부(月寒部) 종연이겠지?”

천음차녀가 남자를 향해 물었다.

“그렇다. 내가 바로 종연이다. 너는 누군데 가짜 물건을 들고 와서 죽음을 자초하는 것이냐!”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천음차녀는 대답해 줄 생각이 전혀 없는 듯 깔깔 웃으며 손을 움직였다.

숲 저편에선 기 낭자를 태운 흰색 구름이 날아왔다.

“이 아이는 네가 상처 입힌 것이냐?”

천음차녀가 물었다.

기 낭자는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입가에 피를 흘리고 있었다. 그대로 혼절을 했는지 깨어나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렇다.”

종연이 돌려 말하지 않고 즉시 인정했다.

“깔깔, 좋다. 그렇다면 네 목숨으로 보상받아야 하겠구나!”

천음차녀는 듣기 좋은 소리로 웃었지만 동시에 얼음처럼 차가운 얼굴로 살기를 내뿜었다.

곧 그녀가 하얀 손목을 뒤집자 손에 쥐고 있던 현빙척이 흰 빛과 함께 엄청난 한기를 방출했다.

눈 깜짝할 사이 허공에 얼음창 여러 개가 나타나 종연의 몸 바로 앞까지 쏘아져나갔다. 그럼에도 종연은 하찮다는 듯 차갑게 웃곤 손바닥을 뻗었다.

곧 그의 손에서 파란 빛이 터져 나와 1장 가까운 크기의 거대한 남색 손바닥으로 변해 얼음창을 쥐어 으깼다.

허나 남자가 공격하기도 전 얼음창 여러 개가 다시 날아들었다.

그리고 얼음창이 남자에게 아직 완전히 도착하기도 전에 천음차녀의 손에 들려 있던 현빙척이 반짝이더니 더 많은 얼음창이 빼곡하게 나타났다.

종연은 날아오는 얼음창을 연달아 쳐부수었다.

천음차녀의 공격은 거의 숨 쉴 틈도 없이 몰아쳤지만 남자를 조금도 상처 입히지는 못했다.

“흥! 네가 들고 있는 것이 정말 현빙척이라면 모르나 고작 위조품으로 나를 어찌할 수 있을 것 같으냐!”

종연이 성가시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얼음창이 다시 한 번 종연에 의해 부서졌다.

그런데 어느새 천음차녀가 들고 있던 현빙척이 그녀의 머리 위로 떠올라 있었다. 천음차녀는 곧 열 손가락을 굽혔다 펴며 기괴한 수인을 맺었다.

“빙백(冰魄), 일어나라!”

와르르!

종연의 몸 주변으로 흩뿌려진 얼음창 조각이 산산이 조각나며 흰색 안개로 변했다. 안개는 꼭 지성이 있는 듯 구체 모양으로 변해 남자를 뒤덮었다.

남자는 놀란 얼굴로 바닥을 박차고 안개에서 벗어나려 애썼다. 하지만 흰색 안개는 그가 몸을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움직이던, 그림자처럼 따라 움직이며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남자는 나름 공격도 해봤지만, 공격은 안개를 뚫고 지나갈 뿐 구체로 변한 안개를 전혀 손상시키지도 못했다.

“진기화령(真气化灵)? 말도 안 돼!”

종연이 믿을 수 없다는 듯 크게 소리 질렀다.

“빙백뇌옥(冰魄牢狱)!”

천음차녀가 남자의 외침을 무시하고 두 손으로 끊임없이 수인을 맺다, 갑자기 합장을 했다.

꾸드득!

남자를 감싸고 있던 안개가 얼어붙으며 몇 장 크기의 얼음구슬이 됐다.

얼음구슬 안의 남자는 손발을 휘두르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지만 호박 안에 갇힌 벌레처럼 조금도 움직이지 못했다.

천음차녀의 콧방울엔 투명한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이 비술을 펼치는 건 그녀에게도 상당히 버거운 듯했다.

석목은 전신을 조금도 움직일 수 없는 이 상황에서도, 잠시도 눈을 떼지 않고 짧지만 화려한 전투를 똑똑히 지켜봤다.

아직 그의 경지론 전투과정의 상당 부분을 명확하겐 볼 수 없었으나 선천고수 사이의 전투에 대해 강렬한 인상이 새겨졌다. 이는 이후 수련을 하는데 있어서도 큰 도움이 될 것이었다.

석목은 눈빛을 밝게 빛내며 맨발의 소녀를 바라봤다.

당시 석목이 했던 맹세는 여전히 그의 마음속에 메아리치고 있었다. 그때의 마음도 흔들림 없이 굳건했다.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땐, 까마득히 높은 곳에 있는 신선처럼 느껴졌다. 그에 반해 자신은 그저 평범한 사람일 뿐이라, 하늘과 땅처럼 영원토록 맞닿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녀는 지금도 여전히 고개를 들어봐야만 하는 존재였지만, 그때처럼 영원히 닿을 수 없는 존재처럼 느껴지진 않았다.

현재 후천중기 무인인 석목은 서른 이전에 선천무인의 경지에 오르는 목표와 상당히 가까워져 있었다.

“감히 그런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다니. 눈알을 뽑아주랴?”

천음차녀가 석목의 뜨거운 눈빛을 느끼고 돌아서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

“저번에도 그 말을 했었지요, 당신이 내 눈알을 뽑는다해도 저는 당신을 계속 볼 겁니다.”

석목이 온 힘을 다해 몸을 일으켜 가까스로 나무에 기대 앉아 미소를 지었다. 무리해 몸을 일으킨 탓에 석목의 몸에선 상처가 벌어져 피가 터져 나왔고 입에선 대량의 선혈이 뿜어져나왔다.

“넌…….”

천음차녀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자세히 석목의 얼굴을 바라보며 아름다운 눈썹을 찡그렸다,

“당신은 저를 기억하지 못하나 보군요. 저는 석목입니다. 과거 대제국 풍성 밖에 위치한 숲에서 당신을 제 아내로 맞이하겠다고 맹세한 적이 있었죠.”

석목은 온몸에서 피를 흘리면서도 미소를 지었다.

천음차녀는 곧 아리따운 몸을 흠칫 떨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너구나!”

“맞습니다. 저를 완전히 잊은 것은 아니었군요. 저는 몇 년 동안 줄곧 당신이 했던 말을 잊지 않고 있었습니다.”

석목이 열렬한 눈빛을 빛내며 말했다.

“종문에 가입한 것이냐?”

천음차녀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붉은 입술을 움직여 물었다.

“흑마문의 정식제자가 되었습니다. 비록 경지는 아직 높다고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이미 후천중기에 올라 후천후기의 경지를 앞두고 있습니다. 술사로서의 경지도 낮지 않습니다……. 어찌됐든 저는 서른 이전에 반드시 선천무인이 돼 만롱산에 찾아가 당신을 아내로 맞을 것입니다. 절대로 맹세를 어기지 않을 거예요.”

석목이 창백한 얼굴로 웃으며 말했다.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천음차녀는 작은 입을 뻥긋 거리며 한참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석목은 그런 천음차녀에게서 한시도 눈을 떼지 않았다.

천음차녀는 석목의 눈빛에 살짝 홍조를 띄우며 시선을 피했다.

“누……, 누가 네 허튼 소리를 듣겠느냐!”

당황한 그녀의 모습은 매우 귀여웠다.

석목은 살짝 부끄러워하는 천음차녀를 바라보며 더욱 환하게 미소 지었다. 허나 그렇게 몸을 일으키려던 석목은 근골이 다 파열된 탓에 결국 다시 비틀거리며 쓰러져버렸다.

바닥으로 넘어지려던 찰나, 하얀 구름이 피어나 석목을 가볍게 들어올렸다.

“괜찮으냐!”

어느새 석목의 옆으로 다가간 천음차녀가 물었다.

“저를 걱정해주는 건가요? 너……, 너무 기쁘……, 콜록…….”

석목은 미처 말을 다 하지 못하고 격렬하게 기침을 하며 선혈을 토해냈다.

“입 다물어라. 그리고……, 그리고 눈도 감고 나도 쳐다보지 말거라.”

천음차녀가 갑자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석목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말에 따라 눈을 감았다.

곧 석목은 가슴에 닿는 차갑고 부드러운 손길을 느꼈다. 손을 통해 얼음처럼 차가운 진기가 전해져왔다. 석목의 몸으로 흘러 들어온 진기는 석목의 체내를 한 바퀴 빠르게 한 바퀴 돌고 그의 경맥으로 천천히 스며들었다.

석목은 전신의 통증이 순식간에 줄어드는 것을 느끼며 표정이 편안해졌다.

“종연의 주먹을 받아내며 전신의 근골이 모두 파열된 상태다. 이전처럼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다.”

손을 거둔 천음차녀가 평온을 되찾은 듯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치료를 할 방법이 없는 건가요?”

석목이 두 눈을 뜨고 잠시 침묵한 후에 물었다.

“방법은 있지만 매우 고통스러울 것이다. 의지력이 약하다면 상처를 치료하지 못할뿐더러 생명까지 잃을 수 있지.”

천음차녀가 아름다운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반드시 버텨낼 수 있어요. 선천무인이 되어 당신을 아내로…….”

그의 말을 듣던 천음차녀가 얼굴을 살짝 붉히며 석목을 매섭게 노려봤다.

석목은 머쓱해하며 급하게 말을 거두었다.

“상처를 치료하는 것은 우선 잠시 미뤄두죠. 이 야만인은 죽은 건가요? 이 야만인을 먼저 완전히 처리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방금 그의 몸에서 파란 빛이 반짝이는 것 같아 보였어요.”

석목이 얼음구슬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뭐라고?”

천음차녀가 놀란 얼굴로 재빨리 몸을 돌렸다.

그때였다. 얼음구슬에 갇힌 남자의 어깨 위로 남색 빛이 반짝이더니 호랑이 얼굴을 한 환영이 나타났다. 환영은 곧 소리 없는 포효를 했다.

이내 환영 주위로 파문이 일고, 얼음구슬이 흔들리더니 조금씩 금이 가다가 결국은 부서졌다.

얼굴이 종이처럼 하얘진 남자가 바닥에 떨어졌다. 그는 공포에 찬 표정으로 천음차녀를 한번 바라보고 즉시 몸을 돌려 도망을 쳤다.

천음차녀가 즉시 그를 쫓으려 하자, 도망가는 남자의 어깨 위에 있는 호랑이 환영이 입을 크게 벌려 천음차녀 쪽으로 파란 빛줄기를 발사했다.

놀란 천음차녀가 현빙척을 휘둘러 몸 앞에 얼음벽을 만들었다.

콰쾅!

파란색 빛줄기를 막아낸 얼음벽이 부서지는 사이, 남자는 결국 사라져 자취를 감췄다. 천음차녀도 아름다운 눈썹을 찌푸리며 더는 그를 쫓지 않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