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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계지문-71화 (71/916)

71화. 상처치료

“방금 그것이 야만족의 토템 비술인가요? 당신의 얼음구슬을 파괴하다니 과연 대단하군요.”

천음차녀를 한번 본 석목이 한숨을 쉬며 물었다.

“내 부주의였다. 종연이 뇌음호(雷音虎) 혼백을 지녔을 줄은 몰랐다.”

천음차녀가 발을 구르며 불만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너무 마음에 두지 마세요. 만약 정말 신경이 쓰인다면 제가 선천무인이 된 후 당신을 대신해서 복수해줄게요.”

석목이 눈을 깜빡거리다 갑자기 웃으며 말을 이었다.

“네가 정말 무지한 것인지 아니면 허풍을 떠는 것인지 모르겠구나. 선천무인의 경지는 그리 쉽게 오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종연의 실력은 선천고수 중에서도 상당히 강한 축에 속했다. 네가 운이 좋아 선천무인이 된다 하더라도 절대 그의 적수가 되지 못할 테니 괜히 찾아가 개죽음 당하지 말거라.”

천음차녀는 마음이 좀 풀렸는지 말투가 꽤 부드러워져있었다.

“저 석목은 내뱉은 말은 반드시 해냅니다.”

석목이 말했다.

“흥! 일어나는 것조차 하지 못하는 사람이 그런 허풍을 떨다니 틀림없는 바보구나.”

천음차녀가 콧방귀를 뀌며 한빙척을 가볍게 휘둘렀다. 그러자 석목과 기 낭자를 태운 흰 구름이 떠올라 앞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가아 사매가 아직 이곳에 있어요. 사매도 야만인의 공격을 받았는데 함께 데려갈 수 없을까요?”

석목이 가아를 떠올리고 급하게 말했다.

“가아…….”

천음차녀가 미간을 찌푸리며 곱지 않은 눈길로 석목을 바라봤다.

“그저 같은 거점에 배치되었을 뿐 저와 그녀는 아무런 관계도 아닙니다! 그녀는 묘음종 목속성 술사인데 저를 몇 번 도와줬습니다.”

깜짝 놀란 석목이 급하게 설명했다.

“흥! 그런 일까지 내게 말할 필요는 없다. 그 아이라면 이미 깨어났다. 몸에 지닌 방어보물이 충격 절반을 막아내 준 덕분에 치명상을 입지 않았지.”

볼을 살짝 붉힌 천음차녀가 고개를 돌려 어느 방향을 바라봤다.

석목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힘겹게 고개를 돌려 그녀의 시선을 쫓았다. 정말 멀리에 비틀거리며 다가오는 가아가 보였다. 얼굴이 창백해진 그녀의 입가엔 한줄기 피가 흐르고 있었다.

가아도 석목이 무사하다는 걸을 확인했는지 순간 기쁘게 웃었다.

“석 오라버니! 살아있다니 다행이에요.”

그런 뒤 가아가 다시 천음차녀에게 공손히 예를 표했다.

“선배님을 뵙습니다.”

천음차녀는 가아를 한번 보고 현빙척을 휘둘렀다. 그러자 하얀 구름이 가아의 발밑에 피어오르며 그녀를 들어 올렸다.

“이곳은 안전하지 않으니 우선 떠나도록 하자. 네 상처를 치료할 장소를 찾아야겠다.”

천음차녀는 담담히 말을 하며 동시에 몸이 떠올랐다. 그녀는 곧 석목의 옆자리에 앉았다.

이윽고 천음차녀가 하얀 손을 들자 구름 3개가 빠르게 날아갔다.

* * *

세 사람을 태운 구름은 한 시진을 넘게 날아가 어느 높고 큰 산봉우리 위에 멈춰 섰다.

천음차녀는 세 사람을 산 정상의 한 동굴 안으로 들이고 먼저 천음종의 여제자를 치료했다.

그녀의 상처는 석목보다 훨씬 가벼웠다. 천음차녀가 그녀에게 단약을 하나 먹인 뒤 막힌 기와 혈을 뚫어주자 호흡이 금세 안정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두 눈은 떠질 줄을 모르고 의식을 회복할 조짐도 보이질 않았다.

석목은 바닥에 누워 조용히 천음차녀의 움직임을 쫓으며 미소를 지었다.

가아는 술법을 펼쳐 상처를 스스로 치료하고 있는 중이었다. 한 쪽에 앉아 두 눈을 꼭 감고 앉아있는 그녀의 몸이 순간 녹색 빛으로 반짝였다.

이내 천음차녀가 몸을 일으켜 석목의 곁으로 다가갔다.

“큰 전투를 벌인 후 저희를 데리고 날아오느라 진기의 소모가 컸을 텐데 우선은 쉬세요. 이 정도는 버틸 수 있어요.”

석목이 살짝 창백한 천음차녀의 얼굴을 보고 말했다.

“괜찮다. 네 상처를 치료하는 것은 많은 힘이 필요하지 않다.”

천음차녀가 담담히 말하며 손을 휘둘러 흰 구름으로 석목을 살짝 들어올렸다. 그리곤 어두운 붉은색 막대기를 꺼내 허리를 굽혀 바닥에 무언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매우 숙련된 손길이 움직이자 일순간 바닥에 암홍색 부문 하나가 생겨났다.

석목은 이 광경에 매우 놀랐다. 천음차녀는 바닥에 진법을 새기고 있었다.

그녀는 진법에도 정통한 듯 고작 1각 사이에 복잡한 진법을 그려냈다.

천음차녀가 손을 휘둘러 석목의 몸을 진법 중앙에 내려놓았다.

곧 천음차녀의 손에서 한줄기 붉은 빛이 쏘아져 나와 진법으로 흡수되었다.

웅~ 웅~

바닥의 진법이 발동되며 빨간 빛의 기둥이 솟아올라 석목의 몸을 감쌌다.

붉은 빛의 열기가 체내로 스며들자 석목은 매우 따뜻하고 편안해졌다.

“전신의 근골이 모두 망가졌으니 원래대로 회복하기 위해서는 부러진 뼈를 붙이고 경맥을 이어야한다.”

천음차녀가 말을 하면서 붉은색 상자를 꺼내 열었다. 안에는 비둘기 알만한 크기의 핏빛 단약이 들어있었다. 이 단약 역시 강력한 법력 파동을 뿜어내고 있었다.

“현빈혈백단(玄牝血魄丹)!”

두 눈을 뜬 가아가 단약을 보고 놀라 소리쳤다.

“현빈혈백단을 알아보다니 안목이 상당하구나. 안에는 혈풍호(血风虎)의 정혈이 봉인돼있지. 복용 후 고통만 참아낼 수만 있다면 상처를 치유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화속성 원기가 체내에 쌓여 수련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천음차녀가 가아를 힐끗 보고 석목을 향해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석목은 상자 안의 단약을 보고 감동한 듯 뭉클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엄청난 효능을 지닌 단약이라면 매우 진귀한 것이 틀림없었다. 그런 것을 자신을 위해 기꺼이 사용하다니, 그녀 역시 자신에게 완전히 마음이 없는 건 아닌 것 같았다.

석목은 크게 기뻐하며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말했다.

“걱정 마세요. 아무리 아파도 버텨낼 수 있어요.”

이 말에 천음차녀가 깔깔, 소리 내 웃었다. 그녀가 웃는 모습은 마치 빙하의 연꽃이 피어나는 것 같아서, 석목은 또 한 번 정신을 쏙, 빼놓을 만큼 혼미해졌다.

그때, 가아는 석목과 천음차녀의 사이가 범상치 않다는 것을 느끼고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바닥에 새겨진 이 구전귀원진(九转归元阵)이 너의 고통을 덜어줄 것이다.”

천음차녀가 웃음을 거두고 말했다. 그리고 그녀는 진법 밖으로 벗어났다.

석목은 깊게 호흡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곧이어 천음차녀가 손을 흔들자 상자 안의 현빈혈백단이 날아올라 석목의 입 안으로 들어갔다.

단약이 입에 들어온 순간, 석목은 깜짝 놀랐다. 마치 불타는 석탄이 몸속으로 들어온 느낌이었다. 너무 뜨거운 온도에 눈을 동그랗게 뜬 석목은 살짝 고개를 들고 단약을 한입에 삼켰다.

타오르는 불덩이 같은 단약은 목구멍을 따라 배속에 들어가 뜨거운 열기를 내뿜었다.

석목의 안색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이마에 파란 핏대가 돌출되고 굵직굵직한 땀방울도 맺혔지만 고함은 지르지 않았다.

이 모습에 천음차녀는 붉은 입술로 주문을 외며 흰 손을 흔들었다.

이내 구전귀원진에서 붉은 빛줄기가 뻗어 나와 석목의 몸을 리본처럼 둘둘 감았다. 몸이 타오르는 통증은 조금 안정됐지만 효과는 한정적이었다.

석목은 몸을 떨었고, 그의 배 속에 단약은 완전한 화염으로 변했다. 육안으로도 그의 아랫배가 붉게 빛나는 것을 볼 수 있을 정도였다.

뜨거운 열기는 점차 커지며 빠르게 전신으로 퍼졌다. 석목은 무수히 많은 칼날이 전신의 곳곳을 반복적으로 절단하는 것 같은 통증을 느꼈다. 정말 당장이라도 죽고 싶은 기분이었다.

“정신을 안정시켜라. 의식을 놓아서는 안 된다!”

석목의 귓가로 천음차녀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석목은 간신히 고통을 참고 온신술을 운기해 정신을 다잡았다.

몸에선 여전히 고통이 연달아 밀려왔지만 온신술의 보호 덕에 석목의 정신은 서서히 안정돼갔다.

아랫배에서 작열하던 열기도 체내의 기경팔맥을 따라 전신 곳곳에 흐르며 끊어졌던 근골을 이어주는 것이 느껴졌다.

석목은 기뻐하면서 온신술을 더욱 힘껏 운기했다.

천음차녀는 놀란 얼굴로 무언가를 중얼거리며 한 손가락을 뻗었다. 그러자 구전귀원진에서 진동소리가 울리더니 더욱 많은 빛이 뻗어 나와 석목의 몸을 휘감았다. 석목의 몸은 점점 핏빛 누에고치처럼 변해갔다.

이 모습을 보고서야 천음차녀도 살짝 한숨을 돌렸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새 하늘은 점차 어두운 색을 껴입었다.

천음차녀는 동굴 안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핏빛 누에고치를 바라보고 있었다. 천음종의 여제자는 이미 의식을 회복하고 가아와 함께 그녀의 옆에 서있었다.

그때, 돌연 구전귀원진 표면이 붉게 빛났다.

천음차녀는 어여쁜 눈으로 누에고치를 위아래로 관찰하며 주문을 외웠다.

작동을 멈춘 구전귀원진은 점차 붉은 빛이 흩어져 사라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핏빛 누에고치의 은은한 붉은 빛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선배님, 오라버니의 상태가 어떤가요?”

가아가 물었다.

“체내의 근골이 모두 연결됐다. 하지만 하루 이틀은 이대로 안정을 취해야 완전히 회복될 거야.”

천음차녀가 가아에게 시선을 돌리며 담담하게 말했다.

이 말에 가아도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내가 줄 수 있는 도움은 여기까지다. 나는 이곳에 오래 머물 수가 없으니 곧 떠날 것이다. 나머지는 너희에게 맡기마.”

천음차녀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네.”

천음종의 여제자가 공손하게 대답했다.

“이전에 너희가 있었던 그 거점은 야만족의 군대가 이미 파괴했으니 그곳으론 가지 말거라. 이것은 이 부근 산맥의 지도다. 이곳에서 50리 떨어진 곳에 연맹의 거점이 있으니 석목의 몸이 회복되면 그곳으로 가 상황을 얘기하면 될 것이다.”

천음차녀가 품에서 옥간을 하나 꺼내며 두 여인에게 지시했다.

두 여인은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곧 천음종의 여제자가 손을 들어 지도를 받으려하자, 천음차녀가 손을 돌려 가아에게 옥간을 건네며 표정을 굳혔다.

“선아야. 남운은 생전에 너만을 제자로 받았다. 나와 천음종으로 돌아가는 것이 어떻겠니. 연맹의 늙은이들도 뭐라 하지는 못할 것이다.”

“감사합니다. 사숙. 하지만 천음종의 제자로서 종문의 명령에 불복할 수는 없으니 이곳에 남도록 하겠습니다. 게다가 사부님께서도 실전의 위험을 경험하지 않고서는 수련의 정체기를 뛰어넘기 어렵다고 말씀하셨어요.”

천음종의 여제자가 잠시 슬픈 표정을 짓더니 곧 고개를 가로저으며 꿋꿋하게 말했다.

“내가 다음번에도 제때 도착할 수 있을지 모르니 항상 몸조심해라.”

천음차녀가 그녀의 확고한 목소리를 듣고 가볍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핏빛 누에고치를 한번 보고 잠시 머뭇거리다가 다시 한번 한숨을 쉬었다. 그러다 곧 발아래 나타난 흰 구름을 타고 동굴 밖 먼 곳을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가아는 멀어지는 천음차녀를 보며 부러움과 실의감이 뒤섞인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 * *

2일 후, 석목은 동굴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눈을 감고서 운기조식을 하고 있었다. 호흡은 평온했고 몸은 상처 하나 없이 말끔했다. 망가진 근골 역시도 기적적으로 전부 다 회복됐다.

석목은 피부색이 조금 더 짙어졌을 뿐 이전과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가아와 천음종 여제자는 곁에서 조용히 석목을 바라보고 있었다.

석목은 천상공을 천천히 운기해 체내의 진기를 일으켰다. 그러자 그의 몸 주위로 은은한 소용돌이가 일어나며 의복이 펄럭였다.

오랜 시간 후, 석목이 숨을 길게 내뱉으며 감았던 두 눈을 뜨고 기쁜 표정을 지었다. 현빈혈백단을 흡수하니 상처도 다 회복됐을 뿐 아니라 체내의 진기도 상당히 증가됐다. 천상공 5단계까진 이제 한 걸음 밖에 남지 않았다.

이내 석목은 동굴에 천음차녀가 없는 것을 발견하고 살짝 시무룩해졌다. 그래도 곧 고개를 가로젓곤 자리에서 일어나 가아와 천음종 여제자를 향해 인사를 했다.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몸을 전부 회복했으니 이곳을 바로 떠나죠.”

석목이 말했다.

잠시 후, 동굴을 나선 세 사람은 어느 방향을 향해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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