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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계지문-78화 (78/916)

78화. 길을 막다

깊은 밤, 하늘에 밝은 달이 높게 걸렸다.

쥐굴 거점의 서쪽 출구에서 누군가 조용히 빠져나와 산길을 빠르게 이동했다. 석목이었다.

일각 후, 석목은 산봉우리 중턱의 풀밭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달빛이 쏟아져 그의 몸을 비추자 석목은 곧 꿈속으로 들어갔다.

* * *

사령계의 우뚝 솟아오른 산봉우리 근처.

산기슭에 1장 넓이의 웅덩이가 있었다.

웅덩이 주위에는 부서진 뼈들이 널려 있었는데, 뼈의 크기는 저마다 달랐지만 조각을 맞추면 해골 여섯 구는 될 것 같았다.

웅덩이는 색이 붉은 것을 제외하고는 이상한 점이 없었다. 웅덩이의 수면에는 때때로 기포가 솟아올랐다.

연나는 웅덩이의 바닥에 누워 입을 천천히 여닫으며 물을 마셨다가 뱉어내기를 반복했다.

그럴 때마다 물의 핏빛이 점점 연해지더니 시간이 지나자 완전히 투명해졌다.

화륵!

연나가 눈구멍에서 영혼의 화염을 반짝이더니 몸을 일으켰다.

석목과 계약을 맺은 뒤 이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연나는 겉으로 보기에는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전보다 몸이 훨씬 단단해지고 영혼의 화염이 커졌을 뿐이었다.

또 이전과 달리 뼈칼을 지니고 있었고, 뼈 갑옷으로 양팔과 골반 등 중요한 관절을 보호하고 있었다.

연나는 고개를 숙여 웅덩이의 물을 내려다봤다.

수면에는 열두 개의 핏빛 달이 비추고 있었다.

투명해진 물이 다시 어렴풋이 붉어졌다. 그러나 다시 붉어지는 속도가 느려서 얼마나 시간이 지나야 본래의 색으로 돌아갈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해가 뜰 무렵, 석목은 거점 근처의 한 산중턱에서 몸을 떨며 꿈에서 깨어났다.

* * *

한 달 후, 곤 방.

석목은 흰 병을 손에 들고 무언가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동안 석목은 출중한 부적 제작 실력으로 연맹의 긴급 임무를 여러 차례 완수하며, 이곳의 부적술사들과 방상사의 인정을 받았다.

석목은 방상사의 허락을 받고 다른 두 영계 부적술사와 함께 언제든 거점의 창고에서 부적 재료를 쓸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개인적인 용도로 쓸 경우에는 공로점수를 지불하고 교환해야 했다.

며칠 전 석목은 연맹에서 내려온 붉은색 임무를 엄청난 속도로 완수하고 포상으로 파벽단(破壁丹)을 받았다.

파벽단은 글자 그대로 수련의 정체기를 뚫어주는 단약이었다. 후천무인이 사용하면 효과가 뚜렷하게 나타나지만, 만들기가 극도로 어려운 탓에 돈이 있어도 구할 수 없는 물건이었다.

‘이 약이 있으면 반야천상공 4단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

석목은 파벽단의 병을 주위에 두고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리고 눈을 감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석목의 가슴이 오르락내리락 할 때마다 단전에서 진기가 가닥가닥 흘러나왔다.

그것은 가느다란 흐름을 이루며 기경팔맥을 따라 전신을 한 바퀴 돌고 다시 단전에 모였다. 그 과정에서 주위에 있는 자연의 기가 흡수되어 진기에 더해졌다.

순환이 반복되며 점점 커지고 빨라진 진기의 흐름이 경맥을 거세게 순환했다.

이때 석목의 몸에서는 연기가 끓어올랐고 피부는 붉게 달아올랐으며, 혈관은 지렁이처럼 솟아올랐다.

석목은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마치 깨알만한 크기의 무언가가 모공이 막혀 빠져나가지 못하는 것처럼 전신의 피부가 오돌토돌하게 솟아올랐다.

그 순간, 석목은 파옥단(破壁丹)을 한 입에 삼켰다.

마치 천년한빙(千年寒冰)이 식도를 타고 뱃속에 들어가 끝없는 한기를 사지로 뿌려대는 것 같았다. 전신의 혈액이 얼어붙는 것 같은 한기에 석목의 안색이 대번에 창백해졌다.

세차게 흐르던 진기의 흐름이 순식간에 멈추더니 한기에 의해 점점 압축됐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압축됐던 진기는 갑자기 다시 부풀어 올랐다.

쾅!

석목은 알 수 없는 힘이 단전의 깊은 곳에서 솟아나오는 것을 느끼고 깜짝 놀랐다.

그와 동시에 자연의 기가 피부를 통해 대량으로 밀려들어왔다. 마치 오랜 세월 감옥에 갇혀 하늘을 보지 못하다가 신선한 공기를 마신 것 같은 상쾌함이 느껴졌다.

그의 전신을 감싸고 있던 연기는 어느새 전부 사라졌고, 피부 역시 정상으로 돌아왔다.

석목은 전신에 힘이 충만해진 것을 느끼며 두 주먹을 꽉 쥐었다.

드디어 반야천상공 5단계를 돌파한 것이다.

이전까지는 5단계를 앞두고 무언가 높고 두꺼운 벽에 가로막힌 것 같았는데, 단약을 복용하자 그 벽은 한낱 얇은 종이처럼 느껴졌다. 어째서 파벽단이라는 이름이 붙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흥분한 석목은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움직여보았다.

주먹과 발차기가 허공을 때릴 때마다 공기가 폭발하는 소리가 연달아 울렸다. 쇄석권이 일으키는 권풍이 마치 실제처럼 느껴졌다.

석목은 그걸로 만족하지 못하고, 이번에는 운철흑도를 뽑아 풍치도법을 시전해보았다.

검은 빛이 한필의 명주처럼 그의 전신을 끊임없이 휘감더니, 갑자기 검광이 열세 개로 나뉘어 허공을 가격했다.

반 시진 후 석목은 다시 돌침대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는 무언가 망설이는 표정이었다.

예전에 천상공 4단계에 막 진입했을 때 석목은 대력마원탈태결 수련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때는 진기가 부족한 탓에 실패로 끝났다.

그러나 비록 실패했지만 수확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천상공 5단계에 진입한다면 단전의 진기가 마살지기의 침입으로부터 경맥을 보호해줄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 * *

옅은 회색 하늘에 열두 개의 핏빛 달이 걸려 있었다.

어느 황토색 산골짜기에 직경이 반 장 정도 되는 작은 못이 있었다.

못의 수면은 마치 피처럼 붉은 색이었고, 주위에는 해골의 잔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그곳에서 뼈 갑옷을 입은 세 구의 해골이 뼈칼을 들고 있는 연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연나는 곧 무너질 것처럼 불안해 보였다. 뼈 갑옷 사이로 보이는 등뼈에는 금이 가 있었고, 늑골은 두세 개가 부족했다.

깡!

뼈칼을 횡으로 휘둘러 정면으로 날아드는 두 곡도를 막아낸 연나가 충격으로 비틀거렸다.

그 순간 눈처럼 하얀색의 뼈창이 연나의 가슴 쪽 척추를 노리고 찔러 들어왔다.

만약 그 창에 제대로 찔린다면 연나의 상반신은 그 즉시 하반신과 분리될 것 같았다. 연나의 반응 속도로는 피할 도리가 전혀 없어 보였다.

그 순간, 연나의 영혼의 화염 속에서 검은 부문이 반짝였다.

연나의 움직임이 갑자기 빨라지더니 뼈창을 피했다. 이어서 앞으로 한걸음 다가가서 뼈칼을 휘둘러 창을 든 해골의 머리를 베었다.

공기를 가르는 파공성이 울리며 두 곡도가 다시 연나를 향해 날아왔다.

연나가 한쪽 무릎을 꿇으며 피하자 곡도는 허공을 가르며 지나갔다.

빠각!

이번에는 곡도를 쥔 해골의 상반신이 끊어지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어서 소리가 다시 한 번 울리더니 다른 해골의 머리가 바닥에 떨어져 데굴데굴 굴렀다.

연나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동작으로 몸을 일으켰고, 주위의 모든 두개골을 전부 발로 밟아 부쉈다. 연나의 영혼의 화염은 두개골에서 날아온 녹색 빛을 전부 흡수하고 조금 더 커졌다.

이어서 연나는 해골의 잔해를 뒤져 상태가 괜찮은 뼈를 찾았고, 그것으로 자신의 부서진 뼈를 교체했다.

뼈를 바꾼 연나는 자신의 몸을 보고 기쁜 듯 입을 벌렸다.

잠시 후, 연나는 눈앞의 붉은색 못으로 시선을 돌렸다.

붉은 못에 몸을 한 번 담근 이후, 연나는 무의식중에 비슷한 장소를 찾기 시작했다. 붉은 못이 자신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머릿속에서 어떤 목소리가 끊임없이 울렸다.

못에 들어간 연나의 몸이 물속으로 완전히 잠기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수면에 기포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 * *

석목은 산길을 따라 현릉산맥 깊은 곳에 있는 쥐굴 거점 방향으로 걷고 있었다.

그는 남성 거점에서 공로점수를 써서 순음의 마살지기와 일반 원숭이의 정혈 세 병을 샀다.

석목은 대력마원탈태결에 적혀 있는 신체 강화 효과에 대한 기대에 부풀어, 즉시 거점에 돌아가 수련을 시작할 생각에 들떠 있었다.

그러나 길모퉁이를 도는 순간 석목은 표정이 변하며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그곳에는 금색 옷을 입은 절세미녀가 웃으며 서 있었다. 석목이 이곳으로 지나갈 줄 알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녀는 바로 금소채였다.

석목은 속으로 한숨을 쉬며 허리를 숙여 예를 표했다.

“제자 석목이 금 장로님을 뵙습니다!”

그러자 금소채는 흥미가 가득한 눈빛으로 석목을 바라보며 다가왔다.

“우리는 함께 같은 배를 타고 강을 건넜던 사이 아닌가? 서로 안면이 생긴 지도 오래 되었는데 그렇게 예의를 차릴 필요는 없다. 쥐굴에서의 생활은 어떤가?”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싸우던 때와 비교하면 매우 좋습니다. 추천해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금소채가 가까이 오자 석목은 자신도 모르게 뒤로 두어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의 말투는 비록 공경했으나 머릿속은 복잡했다.

이 요녀의 눈에 든 것은 분명 좋은 일이 아닐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내가 너를 추천한 것은 우리 흑마문의 인재 배양을 위한 것이기도 하니 당연한 일이다. 사제에 대한 방 장로의 칭찬이 끊이지 않더구나. 듣자하니 그가 얼마 전 파벽단까지 하사했다던데, 이렇게 서둘러 움직이는 걸 보니 그것을 사용해 심법을 한 단계 돌파하려는 생각이겠지?”

금소채가 웃으며 또 한 걸음 다가왔다. 그녀는 뜨거운 눈으로 석목을 응시했다.

그녀의 시선을 느낀 석목은 무의식적으로 한 걸음 뒤로 물러나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맞습니다. 수련 중인 심법이 벽에 막힌 상황이라, 이 기회에 돌파하고자 합니다.”

“만약 수련을 하다가 궁금한 것이 생긴다면 묻도록 해라. 내가 친히 지도해주지.”

금소채는 시선을 피하는 석목에게 다시 한 걸음 다가갔다. 그녀의 입가에 조롱 섞인 미소가 스쳤다.

석목은 금소채의 그윽한 향기에 가슴이 살짝 떨리는 것을 느끼며, 다급히 또 한 걸음 물러났다. 그의 등이 차가운 돌벽에 닿았다.

마음속에서 불안이 점점 커진 석목은 결국 고개를 들고 금소채를 향해 말했다.

“무언가 원하는 것이 있다면 터놓고 말씀해주십시오.”

그러자 금소채가 발걸음을 멈추고 요염하게 웃으며 말했다.

“무엇을 그리 긴장하는 것이냐? 설마 내가 너를 잡아먹기라도 하겠느냐? 아직 나이가 어리니 혼인은 하지 않았겠지. 필요하다면 내가 아름다운 여제자를 한 명 소개시켜줄 수도 있다만?”

“사숙의 호의에 감사드립니다만, 저는 수련 외의 다른 것에는 아직 뜻이 없습니다.”

“깔깔깔, 미인을 싫어하는 남자가 어디 있느냐? 안심해라. 내가 소개시켜줄 그 여제자는 용모나 몸매가 나와 아주 많이 닮았단다.”

금소채가 사랑스럽게 웃으며 대담하게 다가가자 석목은 놀라서 피하려 했다.

그러나 금소채는 오른팔을 빠르게 뻗어 벽을 짚으며, 석목에게 몸을 바짝 가져다댔다.

얼굴이 거의 맞닿을 정도로 가까이 온 금소채가 매혹적인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자 석목은 목이 탔다.

그녀가 입에서 뱉어내는 향기가 석목의 얼굴을 간지럽혔고, 옷을 뚫고 나올 듯 솟아오른 두 가슴은 그의 가슴에 맞닿기 직전이었다.

석목의 가슴이 널뛰며 뜨거운 피가 머리로 솟구쳤다.

그는 사랑스러운 표정을 짓는 금소채의 붉은 입술에 입을 맞추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혔다.

“나와 꼭 닮은 아이인데, 정말 만나보고 싶은 생각이 없다는 것이냐?”

석목에게 더욱 몸을 밀착한 금소채가 입술을 살짝 벌려 향긋한 입김을 불며 재차 물었다.

석목은 혀를 꽉 물어서 간신히 정신을 다잡으며 말했다.

“저는 이미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이 있으니 자중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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