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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계지문-83화 (83/916)

83화. 생환

석목이 싸우는 사이에 다른 야만족들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포효하며 석목 일행을 포위하려 했다.

“죽어라!”

석목은 운철흑도를 뽑아들고 열염술법진을 발동시키며 야만족 무리에게 달려들었다.

붉은 검광이 연달아 번쩍였다.

대원만의 경지에 오른 풍치도법을 펼치는 석목은 마치 양의 무리에 들어간 늑대 같았다. 순식간에 두 명의 토템용사가 그의 운철흑도에 토막이 났다.

그러나 석목의 뒤에 있던 다른 사람들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상당한 경지의 무공을 가진 풍리와 청봉을 제외한 사람들은, 야만족이 무기를 한 번씩 휘두를 때마다 상처를 입고 있었다.

풍화문의 한 부적술사가 검에 팔을 찔리며 쓰러지자, 옆에 있던 야만족이 악귀 같은 표정으로 낭아봉을 내리찍었다.

풍화문의 부적술사는 그걸 지켜보며 피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이를 본 석목은 미간을 찌푸리며 뒤로 돌아가 운철흑도를 휘둘렀다.

뚝!

단번에 반 토막이 난 낭아봉과 함께 팔이 잘려나간 야만족은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나뒹굴었다.

석목은 풍화문의 부적술사를 일으키며 소리쳤다.

“일어나요! 죽고 싶지 않다면 넘어지지 말고 앞으로 달려요!”

죽다 살아난 술사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출구를 향해 뛰었다.

석목은 검광을 흩뿌려 주위의 야만족들을 물러나게 한 뒤, 다시 일행의 선두에 섰다.

그런데 일행이 출구의 바로 앞까지 도달해 포위망을 벗어나기 직전, 눈앞에서 푸른빛이 반짝였다.

놀란 석목은 반사적으로 옆으로 몸을 피하며 운철흑도를 맹렬하게 휘둘렀다.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불꽃이 사방으로 튀었다.

석목은 운철흑도에서 전해지는 충격에 몸이 흔들리고 손아귀가 저려왔다. 그가 튕겨낸 푸른빛은 벽에 주먹 만 한 크기의 깊은 구멍을 남겼다.

그가 고개를 돌려보니, 출구 밖에서 푸른 피부의 젊은 야만족이 석목을 노려보고 있었다.

야만족은 그리 강해 보이지는 않았다. 몸에서 느껴지는 기운으로 미루어보아 후천중기 정도의 실력이었다.

그러나 야만인의 손에 들린 누런 장궁에 새겨진 부문은 운철흑도보다도 강한 법력의 파동을 뿜어내고 있었다. 중급 법기가 분명했다.

야만족은 십여 개의 푸른색 화살로 채워진 화살통을 허리에 차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화살은 모두 부문이 새겨진 부전이었다.

석목은 재빨리 땅을 강하게 박차고 튀어 올랐다. 그의 몸이 활을 떠난 화살처럼 야만족을 향해 날아갔다.

푸른 피부의 야만족은 석목이 순식간에 다가오자 활을 당길 틈이 없었는지, 등 뒤에서 날이 없는 고동색 칼을 뽑아 들었다.

그 칼도 활과 마찬가지로 노란색 부문이 새겨진 하급 법기였다.

“죽어라!”

푸른 피부의 야만족이 석목의 가슴을 향해 칼을 찔러왔다.

그러나 석목은 동귀어진이라도 하려는 듯 야만족의 공격을 피하지 않았다. 그는 붉게 빛나는 운철흑도를 휘둘러 야만족의 머리를 곧장 노렸다.

놀란 야만족은 무기를 급하게 회수하며 날아오는 운철흑도를 막으려 했다.

바로 그때, 석목은 휘두르던 도를 갑자기 멈추었고, 허공으로 뛰어올라 야만족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베었다.

이 동작은 과거에 겨루었던 오동의 응비구천을 모방한 것이었다. 이미 요령을 거의 이해한 석목은 마치 검은 매처럼 하늘로 높이 솟아올라 상대를 덮쳤다.

그러자 푸른 피부의 야만족은 멍청한 표정을 지으며 칼을 위쪽으로 휘둘렀다. 그의 칼에서 커다란 빛이 쏘아져서 낙하하는 운철흑도에 꽂혔다.

노란빛과 붉은빛이 부딪히며 폭발했다.

충격에 밀려 날아간 야만족은 출구 근처의 벽에 강하게 부딪히며 선혈을 내뿜었다.

석목은 야만족 쪽을 쳐다보지도 않고 출구를 향해 뛰었다. 그는 일행에게 소리치며 출구 근처의 숲 쪽으로 달려갔다.

“흩어져서 도망가요!”

뒤따라 출구 밖으로 나온 일행은 석목의 말에 즉시 사방으로 흩어졌다.

석목은 숲으로 진입하기 직전에, 쓰러져 있는 푸른 피부의 야만족에게 은색 곡도를 던졌다.

“소군주님! 조심하십시오!”

까무잡잡한 야만족 사내가 푸른 야만족의 앞을 막아섰다. 그리고 거대한 십자모양 창으로 날아오는 곡도를 받아쳤다.

콰쾅!

은색 곡도는 창에 부딪히는 순간 폭발했고, 주위로 화염이 퍼져나갔다.

까무잡잡한 야만족 사내는 크게 놀랐다. 그는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푸른 야만족을 곁눈질했다. 그러나 그는 무언가 결심한 듯 이를 꽉 깨물었고, 푸른 야만족의 앞에 서서 폭발을 그대로 몸으로 막아냈다.

격렬한 폭발의 여파에 푸른 피부의 야만족이 정신을 차렸다.

까무잡잡한 야만족이 그를 돌아보며 웃었다.

“소군주님, 무사하셔서 다행입니….”

그러나 그는 말을 맺지 못하고 그대로 옆으로 쓰러졌다.

“철 숙부!”

푸른 야만족은 급하게 손을 뻗어 쓰러진 사내를 부축하다가 흠칫 몸을 떨었고, 이어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폭발을 몸으로 받아낸 야만족 사내의 등은 피범벅이 되어 있었다. 상처 사이로 뼈와 자잘하게 조각난 내장이 들여다보였다.

뛰어난 술사가 즉시 회복 술법을 시전하지 않는 이상은 살아날 방도가 없을 듯한 중상이었다.

쓰러진 사내의 뒤로 커다랗게 파인 구덩이에서는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있었으며, 지면은 까맣게 타버린 상태였다.

그 모습을 본 푸른 야만족의 눈이 새빨갛게 충혈됐다. 그는 팔을 부들부들 떨며 말했다.

“그 인족이 한 짓이지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당장 그놈을 죽여 숙부의 복수를 할 것입니다!”

까무잡잡한 사내를 바닥에 내려놓은 푸른 야만족의 피부가 붉게 빛나더니 비늘에 덮였다.

두 눈의 동공은 피에 굶주린 듯 붉게 빛났고, 넓어진 입 사이로 뱀처럼 얇고 긴 혀가 날름거렸다.

“소군주님, 안 됩니다….”

상처 입은 야만족 사내가 힘겹게 입을 열었으나, 푸른 야만족은 석목이 도망간 방향을 향해 지체 없이 몸을 날렸다.

까무잡잡한 야만족 사내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가슴을 들썩거리며 푸른 야만족이 멀어지는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는 무언가 소리를 지르려 했지만, 그의 생명력이 급격하게 흩어지면서 눈앞이 천천히 어두워졌다.

* * *

한참을 달리던 석목은 거점에서 십 리 가량 떨어진 곳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그는 가볍게 숨을 뱉으며 거점이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거점의 상공에서 검은 구름과 푸른빛이 부딪치며 강한 빛이 폭발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십 리나 떨어져 있었지만 거대한 소리가 생생하게 들렸다.

석목은 하늘에서 선회하는 두 그림자에게 동경의 시선을 보냈다.

하늘로 비상하는 그들의 몸짓은 땅을 울리고 산을 흔들었으며, 산과 바다를 가르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이곳은 안전한 장소가 아니라고 판단한 석목은 시선을 거두고 다시 앞으로 나아가려 했다.

바로 그때, 뒤에서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푸른빛이 무서운 속도로 석목을 향해 날아왔다.

석목은 재빨리 옆의 숲으로 넘어지듯 몸을 날렸고, 푸른빛은 그의 어깨를 스치고 지나가 숲 속 깊숙이 날아갔다.

석목은 관목 뒤로 기어가서 기척을 숨기고 호흡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누가 쫓아온 것인지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중급법기인 누런 장궁으로 쏜 부전의 위력은 고급 법기에 필적했다. 앞서 석목이 월광해담을 쓴 이유는 바로 그것이 꺼려졌기 때문이었는데, 설마 실패할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푸른빛이 날아간 쪽에서 사박사박 발걸음 소리가 나더니 푸른 야만족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는 몸에서 붉은 빛을 밝게 뿜어내고 있었는데, 마치 전신이 붉은 장막으로 뒤덮인 것처럼 보였다. 석목은 숲 속에 숨어서 그 모습을 보며 놀란 표정이 되었다.

야만족은 독기어린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더니, 곧 석목이 몸을 숨기고 있는 방향으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숨을 필요 없다. 감히 철숙부를 해하다니. 목숨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푸른 야만족은 섬뜩한 미소를 지으며 활시위를 당겼다. 활에서 쏘아진 눈부신 푸른빛이 순식간에 석목의 바로 앞까지 날아왔다.

석목은 몸을 회전하며 피하려 했지만, 왼쪽 어깨를 푸른빛에 꿰뚫려 선혈을 쏟아냈다. 뼈를 다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고통에 찬 신음소리를 내뱉는 석목의 눈빛이 흉흉하게 변했다.

무슨 방법을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푸른 야만족은 그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더 이상 숨는 것은 소용없을 것 같았다.

석목이 기를 뿜어내자 쾅 소리와 함께 몸 주변이 진동하며 지푸라기와 나뭇가지들이 휘날렸다. 숲 속에 갑자기 폭풍이라도 일어난 것 같은 모습이었다.

하늘을 뒤덮은 지푸라기 사이에서 튀어나온 석목이 야만족에게 돌진했다.

푸른 야만족은 석목이 나타날 것을 예상이라도 한 듯 섬뜩한 미소를 지으며 화살을 날렸다.

쉬익!

공기를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푸른 화살이 석목의 가슴을 향해 날아왔다.

이제껏 푸른 야만족이 파천궁(破天弓)으로 쏜 추풍전(追风箭)은 50장 이내의 거리에서 단 한 번도 표적을 놓친 적이 없었다. 하물며 지금 그와 석목의 거리는 대략 30장에 불과했다.

푸른 화살이 석목의 몸을 뚫고 지나가며 피를 흩뿌렸다.

야만족이 미소를 지었다. 비록 몸을 비틀어 급소는 피했지만, 추풍전에 맞았으니 타격이 클 것이다.

그러나 곧 야만족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화살을 맞은 석목이 속도를 줄이지 않고 그대로 돌진해온 것이다.

순식간에 20여 장의 거리를 좁힌 석목의 운철흑도가 붉은 색을 띄더니 검광을 번득이며 공기를 갈랐다.

뜨거운 열기를 동반한 붉은 검광이 열세 개로 나뉘어 사방에서 야만족을 덮쳤다.

놀란 야만족은 등 뒤의 칼을 뽑을 틈도 없었다. 그는 갑자기 빛을 내며 커진 거대한 활을 부채꼴 모양으로 휘둘렀다.

깡!

금속이 충돌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거대해진 궁은 절반의 검광을 가까스로 막아냈지만, 나머지 검광이 그를 향해 거리를 좁혀오고 있었다.

콰쾅!

야만족의 몸을 덮은 붉은 장막이 반짝이며 공격을 막아냈다. 그러나 그가 숨을 돌리기도 전에 석목의 입에서 흰색 기의 화살이 쏘아졌다. 기폭술이었다.

운철흑도를 막아내느라 힘이 다했는지 상당히 어두워진 붉은 장막이 기폭술을 견디지 못하고 깨졌고, 야만족은 얼굴이 피범벅이 되어 비명을 질렀다.

이에 석목이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달려들어 운철흑도를 야만족의 가슴에 찔러 넣자, 곧 피가 쏟아져 나왔다.

그의 몸에서 붉은빛이 흩어지는 것을 본 석목은 크게 숨을 몰아쉬며 뒷걸음질 치다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의 아랫배 왼쪽에 뚫린 커다란 구멍 사이로 내장과 피가 흘러나오는 것이 보였다.

그가 쓰러지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대력마원탈태결의 수련으로 인해 육신의 강도가 일반인과 비교도 안 될 만큼 높아진 덕분이었다.

야만인의 몸에서 붉은빛이 흩어지는 것을 본 석목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심장을 찔렀으니 살아남을 가능성은 없었다.

석목이 품속에서 회춘부를 한 장 꺼내 아랫배의 상처에 붙이자, 상처에서 시원함이 느껴졌다.

그런데 바로 그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야만족의 몸이 갑자기 부풀어 오르더니 등에서 붉은빛이 터져 나왔다.

석목은 불길함을 느끼고 바닥을 박차며 급하게 뒤로 물러서려 했다. 그러나 아랫배의 상처 때문에 재빨리 움직일 수가 없었다.

어느새 야만족이 피에 뒤덮인 얼굴을 치켜들었다. 그는 핏발이 잔뜩 선 새빨간 눈으로 흉악한 미소를 지었다.

“같이 죽자!”

그 순간 야만족의 몸에서 붉은빛이 다시 한 번 터져 나왔고, 그의 몸이 공처럼 부풀어 오르더니 폭발하며 사방에 피를 흩뿌렸다.

흩날리는 피 사이에서 뱀의 형상을 한 붉은빛이 나타나더니 빠른 속도로 석목의 체내로 흡수됐다.

놀라서 바닥을 데굴데굴 구른 석목은 일어나서 몸을 살폈다.

몸속에서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마치 몸속에 불이 붙은 듯 타들어가는 듯한 통증이 엄습했다.

기경팔맥에 용암이 흐르는 것 같은 고통과 함께, 석목의 몸이 붉은빛을 내기 시작했다. 석목은 한 쪽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고, 격렬한 고통에 점점 몸을 웅크렸다. 얼굴에서는 땀방울이 줄줄 흘러내렸다.

다행히 통증은 빠르게 찾아온 것만큼 금방 사라졌다. 마치 환각이었던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석목은 허탈함을 느끼며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몸은 약간의 열기를 빼면 아무 이상이 없었다. 심지어 몸에 났던 상처는 기적같이 아물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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