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85화 (85/916)

85화. 성찰도(星札岛)

대제국 동부의 해안에서 백 리 떨어진 곳에는 섬들이 셀 수 없이 널려 있었다. 그중에서도 동쪽 끝에 위치한 성찰도는 가장 면적이 넓은 섬이었다.

성찰도는 반쯤 펼쳐진 붉은 부채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섬의 동쪽으로 갈수록 고도가 높아졌는데, 동쪽에는 백 장 높이의 산맥이 끊임없이 이어져서 마치 다른 섬을 앞에서 감싼 보호막처럼 보였다.

서쪽에는 작은 평원이 있었다. 평원의 토지는 비옥했고 담수도 충분했기 때문에 과거 수십 년 동안 대제국의 빈곤한 백성들이 찾아와 많은 수가 정착했다. 그 전부터 대대로 이곳에 거주하던 어민들까지 합치면 성찰도의 인구는 십만 명을 넘었다.

동해에는 바다 괴수가 자주 출몰했다. 이 괴수의 털과 가죽, 뼈는 모두 부적이나 단약, 법기 제작에 필요한 재료였다. 이 때문에 매번 적지 않은 무인들이 몰려왔고, 바다 괴수를 죽여서 그 시체를 파는 것이 점차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다보니 상인들이 운집하면서 성찰도는 시간이 흐를수록 번화했다. 풍족한 월부(越府)의 연해안 도시조차도 성찰도에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평온하고 풍요로운 이 섬에는 일 년 내내 오천 명의 대제국 정예군이 주둔하며 줄곧 삼엄한 경계태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다만 이들은 백성의 이익을 침해하지 않았고 무인들이 바다로 나가는 것도 참견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도 군대의 존재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았다.

* * *

어느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었다.

성찰도의 백성과 무인들은 모두 다음날을 위해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그때 섬의 해변에 불빛의 행렬이 나타났다. 이들은 오십여 명에 이르는 순찰대였다.

이들의 발걸음 소리가 멀리서부터 가까워졌다가 점점 멀어졌고, 해변은 다시 어둠에 잠겼다.

잠시 후 해변 너머의 새까만 바다에 파도가 강하게 일기 시작했다. 이어 물속에서 솟아오른 무언가가 해변을 향해 빠르게 접근했다.

파도 위에는 무기를 쥔 이들이 빼곡하게 서 있었다.

이들은 전신이 물고기 비늘로 덮여 있거나, 사람의 몸에 물고기의 꼬리를 가지고 있거나, 거북이 등껍질을 지고 있는 등 각양각색의 기괴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유일한 공통점이라면 전부 눈에 살기가 서려 있다는 것이었다.

같은 시간, 군대 주둔지의 가장 큰 병영.

얼굴에 흉터가 있는 중년의 장수가 진한 자색 탁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그는 갑주를 벗지 않은 채였고, 손이 닿는 곳에 금색 부문이 새겨진 은색 장도가 칼집 없이 놓여 있었다.

그는 성찰도의 수장이며 후천후기 대원만의 경지에 오른 무인이었다.

“누구냐!”

책을 읽던 장수가 갑자기 눈을 번뜩이며 은색 장도를 집어 들고 소리쳤다.

쾅!

그의 질문에 되돌아온 것은 엄청난 굉음이었다.

갑자기 건물의 천장이 뚫리더니 거대한 촉수 대여섯 개가 놀라운 속도로 장수를 덮쳤다.

동시에 주변 공기가 마치 바닷물처럼 무거워졌고, 강한 속박력이 파도처럼 사방에서 몰려왔다.

“합!”

중년의 장수는 기합과 함께 속박에서 벗어나 하늘로 뛰어올랐고, 금빛으로 빛나는 은색 장도를 빠르게 휘둘렀다. 금색 검기가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그의 전신을 보호했다.

쾅! 쾅!

남색의 촉수 네 개가 검기의 소용돌이를 전후좌우로 맹렬히 때렸다. 그러자 소용돌이는 멈칫하더니 곧 흩어져 사라졌다.

비틀거리는 장수가 다음 동작을 취하기도 전에, 차가운 촉수 두 개가 그의 목과 허리를 순식간에 감쌌다. 곧 무시무시한 힘이 그의 몸에 전해져 왔다.

툭!

장수의 머리가 순식간에 몸과 분리됐다. 뜯겨나간 그의 얼굴 표정에는 여전히 공포와 놀라움이 뒤섞여 있었다.

머리를 잃은 시체와 몸에서 떨어져 나온 머리가 피를 뿜으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여섯 개의 촉수는 구멍 난 천장으로 다시 나가서 하나로 합쳐졌다. 그것은 남색 채찍으로 변해 흰 옷을 입은 소녀의 팔을 휘감았다.

이어 백의의 소녀가 고개를 들고 입을 벌려 소리 없는 파동을 분출했다.

그러자 곧 섬의 곳곳에서 교전을 벌이는 소리가 동시에 터지며 시끄러워졌고, 평화롭던 성찰도는 순식간에 불길에 휩싸이며 대낮처럼 밝아졌다.

그 시간, 염국과 황국의 몇몇 섬에서도 성찰도와 같은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 * *

대제국 진주(陈州), 자영산맥(紫灵山脉)의 깊은 곳.

이 산맥에는 거대한 산봉우리는 드물었지만 짙푸른 산봉우리가 푸른 파도처럼 이어져 있었다.

동틀 무렵 운무가 피어오를 때 높은 곳에서 바라보면 용의 형상과 같은 경치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용의 머리에 해당하는 위치에는 용의 두 뿔처럼 크고 작은 두 산봉우리가 솟아 있었으며, 그곳은 일 년 내내 옅은 자색 안개에 덮여 있었다.

두 산봉우리 정상에는 많은 건축물이 있었는데, 그중에는 누각이 가장 많았다. 꽤 많은 수의 누각이 화려하고 정교한 다리로 연결되어 늘 많은 사람이 오갔다.

이곳은 대제국 3종 중 하나인 묘음종의 입구였다.

산 정상에는 4층짜리 자색 궁전이 있어 시선을 끌었다. 이 궁전은 금색 얼룩점이 있는 자색 바위로 만들어져 햇빛을 받으면 금빛으로 밝게 빛났다.

궁전의 한 방에는 녹색 궁전예복을 입은 아름다운 여인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남색 부문이 빼곡하게 새겨진 그녀의 옷이 나풀거릴 때마다 수속성의 파동이 뿜어져 나왔다.

여인의 머리에서 나온 남색 빛줄기가 비처럼 쏟아졌다.

그녀의 몸 아래 남색 빛은 색이 점점 짙어져 바다처럼 푸른색으로 변해갔다. 시간이 흐르자 아래에서 남색 연꽃이 떠올랐고, 만개한 연꽃은 그녀를 받치고 떠올라 가라앉지 않았다.

바로 그때, 아름다운 여인의 손목에 채워진 옥팔찌가 살짝 떨리더니 옅은 자색 빛무리를 뿜어냈다. 이어 빛무리 속에서 무수히 많은 작은 부문이 나타나더니 작은 진법을 이루었다.

진법에서 손바닥 크기의 옥간이 나오자, 여인은 두 눈을 뜨고 옥간을 집어 이마에 가져다 댔다. 곧 그녀의 얼굴 표정이 크게 변하더니 남색 빛은 모두 흩어져 사라졌다.

이윽고 그녀는 몸을 일으키더니 급하게 방을 나섰다.

잠시 뒤, 자색 궁전의 회의실에는 사방팔방에서 모여든 십여 명의 사람들이 들어섰다.

반 시진이 지나고 회의실이 다시 휑해지자, 상석에 앉아 있던 여인은 눈썹을 찡그린 채 피곤한 표정으로 머리를 주물렀다. 그라고 흰색 옥간을 꺼내 이마에 가져다 댔다.

잠시 후 그녀가 전송진법을 열자 흰 옥간은 순식간에 허공으로 사라졌다.

여인은 그제야 어두운 표정으로 몸을 일으켜 뒤쪽으로 나갔다.

* * *

대제국의 천청산(天青山)에 있는 7종문 연맹 총부.

녹색 옷의 중년 여인이 흰색 옥간을 이마에 대더니 밝지 않은 표정으로 밖으로 나갔다.

그와 거의 동시에 다른 몇 개의 방문이 열리며 사람들이 한결같이 무거운 표정으로 나왔다. 흑마문의 사사 역시 그중 한 명이었다.

일각 후, 산 정상에 있는 어느 우뚝 솟은 전당에 일곱 사람이 모여 앉았고, 그들 모두 몸에서 심연처럼 깊은 강자의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이 7인은 7대 종문에서 연맹 총부 업무를 주재하기 위해 남긴 사람들이었다. 각자 종문 장문인의 명령을 받은 그들은 종문을 대표하며, 연맹에 관한 모든 일과 야만족과의 전쟁과 관련된 일을 맡았다.

전당의 분위기는 무겁고 답답했다. 누구도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짙은 눈썹을 가진, 30대의 나이로 보이는 현무종의 대표가 침묵을 깨고 말했다.

“이번에 우리 3국의 크고 작은 섬 열한 개가 해족(海族)의 침입을 받아서 하룻밤 사이에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그중 저희 대제의 피해가 가장 큽니다. 지난 300년 동안 발생한 적이 없었던 일입니다. 해족이 정전협정을 지키지 않을 뿐더러 그 기세가 굉장히 사나우니 서둘러 방비를 강화해야 합니다.”

그러자 자색 옷의 노부인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야만족과 교전하는 동시에 해족과도 전쟁을 치른다면 앞뒤로 적의 공격을 받게 됩니다. 야만족과 화의를 맺는 것이 시급합니다.”

두세 명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말에 동의했다. 그러나 나머지는 즉각적으로 태도를 표명하지 않고 머뭇거렸다.

현무종의 대표는 짙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말했다.

“야만족은 부족이 매우 많아서 우리가 공개적으로 화의를 청한다 해도 단기간 내에 의견이 통일된다는 보장이 없고, 분수에 맞지 않는 요구를 해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가 난처한 상황에 놓이게 될 겁니다.”

“흥, 동해의 해족은 인족이나 야만족이 단독으로 맞설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에요. 우리 삼국 중 한 나라만 멸망하더라도 야만족 역시 해족의 위협을 받게 되겠죠. 우리가 이런 사실만 야만족에게 알린다면, 그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해족이 어부지리를 얻게 두지 않을 것입니다.”

녹색 옷을 입은 묘음종의 여인이 천천히 말했다. 그러자 푸른 옷을 입은 천검종의 노인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야만족은 폭력적이고 잔혹해 그 행동을 예측하기 쉽지 않아요. 상식적인 추론은 무의미합니다. 그러니 두 가지를 동시에 준비해야겠지요. 동해 연안의 수비를 강화하고 출항을 금지하는 것과 동시에, 비밀 사절단을 파견해 야만족의 대제사장과 휴전에 관해서 논의해야 합니다.”

“맞습니다. 야만족의 대제사장은 일 년 내내 야만족의 금지를 벗어나지 않습니다만, 지혜롭기로 소문난 자이니 해족만 이득을 보도록 두지 않을 것입니다. 게다가 그는 야만족의 정신적 지도자로서 명망이 높으니, 그가 휴전을 원한다면 모든 부족이 따를 것입니다.”

흑마문의 사사가 말하자 장내의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렇다면 사절단의 대표는 누구로 임명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대제국의 화무공주가 현재 우리 천음종에서 수련 중이니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색 옷을 입은 음부궁 노부인의 말에, 흰 옷을 입고 금색비녀를 꽂은 중년의 여인이 제안했다.

화무공주는 종문을 대표하는 동시에 3국 중 가장 큰 대제국의 조정을 대표할 수 있는 만큼, 확실히 사절단의 대표로는 적임자였다. 사람들은 금색비녀의 여인이 한 말을 듣고 잠시 생각하다가 동의했다.

휴전과 사절단에 관한 건이 결정되자, 그들은 전선의 전투를 축소해 동해 연안으로 이주시키는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전당 안에는 다시 격렬하게 논쟁을 벌이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사흘 뒤, 화무공주를 대표로 한 사절단이 대제국에서 출발했다.

* * *

드넓은 하늘에 떠 있는 뜨거운 태양에 끝없이 넓은 황무지의 건조한 토지는 거북이 등껍질처럼 갈라져 있었다.

옅은 자색을 띤 작은 식물들이 척박한 땅 위에서 띄엄띄엄 자라고 있었고, 간혹 키 작은 관목도 한두 그루 보였다.

다양한 크기의 주황색 암석도 있었다. 얼마나 많은 세월 동안 햇빛과 바람을 받았는지, 강한 바람이 불어오면 암석이 가루가 되어 날려갔다. 그 모습은 마치 이곳이 얼마나 처량한 곳인지에 대해 호소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런 풍경은 야만족의 황무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가끔은 이런 풍경이 천 리 가까이 이어지기도 했다.

그때 누군가 먼 곳에서 커다란 바위 그림자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그는 괴수의 가죽을 걸친 변발의 야만족이었다. 피부가 까맣고 몸집도 건장했지만 야만족 중에서는 마르고 키가 작은 편에 속했다.

그는 등 뒤에 은색 칼집과 커다란 장궁을 메고, 손에는 천으로 감싼 칠흑의 장도를 들고 있었다. 허리춤에는 화살통까지 걸려 있어서 무척 사나워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는 야만족으로 변장한 석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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