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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계지문-92화 (92/916)

92화. 저격

갑작스러운 기습에 놀란 주위의 병사들은 기겁을 했다. 날아온 화살은 너무 빨랐기 때문에 그들은 어느 쪽에서 날아왔는지조차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러자 대열의 앞쪽에 있던 기병들이 순식간에 달려왔다.

“무슨 일이냐?”

앞장서 달려온 비도는 말을 마치자마자 바닥에 쓰러진 야만족의 시체를 보고 표정을 굳혔다.

그때,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어디선가 검은 빛이 날아왔다. 그것은 대열에서 가장 후미에 있던 토템용사의 가슴을 꿰뚫었다.

그 토템용사는 아무 반응도 하지 못하고 앞서 화살을 맞은 야만족처럼 늑대 위에서 굴러 떨어졌다.

심장에 화살이 박힌 그는 경련을 일으키다가 곧 절명했다.

“저쪽이다!”

비도가 고개를 돌려 먼 곳에 있는 언덕을 가리켰다. 언덕 위에 한 사람이 서 있는 것이 어렴풋이 보였다.

삼사백 장 떨어진 언덕의 꼭대기에 검은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장궁을 들고 있었다. 석목이었다.

석목은 사불상을 타고 밤새 쉬지 않고 추격해서 방금 전 천랑부족의 대열을 따라잡은 것이었다. 그는 금색으로 변한 두 눈으로 먼 거리에 있는 기병을 보고 있었다.

잠시 뒤, 석목은 화살을 꺼내 활에 걸고 시위를 당겼다.

기병들이 비도가 가리킨 방향을 바라본 순간, 석목의 손에서 검은 빛이 다시 쏘아져 나갔다. 공기를 찢고 날아가는 화살의 속도는 소리보다도 빠른 것 같았다.

검은 빛이 또 다른 야만족의 심장을 꿰뚫었다.

“방패로 몸을 보호해라!”

비도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서 큰 소리로 외쳤다.

놀란 토템용사들은 두말하지 않고 검은 원형 철방패를 집어 들어 몸을 막았다.

“보병은 이곳에 남고 나머지는 나를 따라라!”

비도는 매섭게 소리친 뒤 타고 있던 늑대를 재촉해서 석목이 있는 방향으로 달려갔다.

화살이 삼사백 장 떨어진 거리에서 번개처럼 빠른 속도로 날아오는 것으로 보아, 상대는 탄력이 상당히 좋은 활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이 정도의 강궁은 야만족 전체를 통틀어도 몇 개 존재하지 않을 것이었다.

게다가 세 명의 토템용사는 각각 화살에 급소를 명중당해서 일격에 쓰러졌다. 후천후기의 경지에 오른 궁수라 해도 이 정도로 시력이 뛰어나지는 않았다.

이런 적을 상대로 거리를 빠르게 좁히지 못할 경우, 반각도 되지 않아서 남은 토템용사마저 막심한 손실을 입을 게 분명했다.

석목은 방패로 몸을 가리고 달려드는 기병들을 보고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그가 화살통에서 추풍전을 뽑아서 활시위를 당기자 활이 마치 보름달처럼 동그래졌다.

석목이 체내의 법력을 활에 주입하자, 파천궁은 누런빛을 뿜더니 추풍전을 감쌌다. 무수히 많은 부문이 추풍전을 둘러싸고 천천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쉬익!

화살이 푸른색 잔상을 남기며 방금 전 쏘았던 화살의 절반 정도 되는 속도로 날아갔다.

퍽!

방패를 든 토템용사가 바닥에 떨어지며 죽었다. 앞서 쓰러진 세 사람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그가 들고 있던 철방패는 두께가 족히 삼 촌은 되는 것이었지만, 화살은 그것을 마치 종잇장처럼 뚫어버린 것이다.

추풍전에 새겨진 부문을 보고 놀란 비도의 동공이 수축했다.

“무전(巫箭)이다!”

비도의 외침을 들은 토템용사들의 표정이 급격히 변했다. 겁에 질린 몇몇은 더 이상 앞으로 달려 나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멈추지 말고 달려라! 명령을 어기는 자는 목을 베겠다!”

비도가 성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 말을 들은 토템용사들은 내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계속 달려 나갔다.

얼굴이 파랗게 질린 비도는 이런 강력한 적이 대체 어디서 나타났는지 열심히 머리를 굴려 생각했다.

그러나 상대가 어디서 왔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 정도의 강궁을 당기기 위해서는 필시 체력소모가 매우 클 것이니 얼마 버티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매우 진귀한 무전을 얻을 수 있는 기회라고 볼 수도 있었다.

“분산해서 놈을 포위해라!”

비도가 명령을 내리며 정면으로 석목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는 방패로 몸을 가리지 않고, 검은 빛에 감싸인 5척 길이의 검푸른 철추를 들고 있었다.

천랑부족의 정예인 토템용사들은 비도의 명령이 떨어지자 즉시 흩어졌다. 그리고 부채꼴 진형을 이루며 석목이 서 있는 언덕으로 달려들었다.

늑대를 탄 기병의 속도라면, 삼사백 장은 호흡을 스무 번도 채 하기 전에 도달할 수 있는 거리였다.

그러나 석목은 그 모습을 보고 조롱하는 듯한 표정으로 활을 거뒀다.

화살 네 개를 연달아 쏘았더니 이제 그의 팔도 저려오고 있었다.

석목이 휘파람을 길게 불자 그의 뒤쪽 관목 사이에서 소의 머리와 사슴의 몸을 가진 사불상이 빠르게 다가왔다.

석목이 올라타자 사불상은 몸을 돌려 먼 곳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사불상의 속도는 기병들의 속도보다 훨씬 빨라서, 상대의 포위전술은 순식간에 물거품이 됐다.

그 광경을 본 비도의 표정이 가라앉았다.

휙! 휙!

두 번의 소리가 거의 동시에 울렸다. 석목이 몸을 돌려 두 개의 화살을 연달아 날린 것이었다.

곧 두 번의 비명이 울렸다.

두 기병이 들고 있던 방패가 뚫리며 한 명은 아랫배에, 다른 한 명은 이마에 화살을 맞고 늑대 위에서 떨어졌다.

보기 흉하게 일그러진 표정으로 머리를 굴리던 비도가 갑자기 소리쳤다.

“계속 쫓아라!”

비도는 소리를 지르며 품속에서 뭔가를 꺼냈다. 손바닥 크기의 검은 괴수 가죽이었는데, 그 위에는 지렁이 같은 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비도는 곧 자신의 혀를 깨물더니 가죽에 피를 뱉었다. 동시에 고삐를 잡아끌어 대열의 가장 후미로 물러섰다.

이윽고 괴수의 가죽에 검은 빛이 떠올랐고, 표면의 무늬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거렸다.

비도가 주문을 외우자 가죽이 뿜어내는 빛은 점차 밝아졌다.

괴수의 가죽이 불타오르더니 순식간에 일 장 크기의 검은 새로 변했다. 온 몸이 검게 타오르는 거대한 새는 날개를 펼쳐 석목을 향해 날아갔다.

비도는 잔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들어 주위를 보았다. 그러나 그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

그가 괴수의 가죽을 사용하는 사이에 그의 곁에는 예닐곱 명의 토템용사 밖에 남지 않았다. 나머지는 이미 화살에 맞아 죽은 것이었다.

비도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그는 석목을 향해 매섭게 소리 지르며 달려갔다.

“이놈! 목숨을 내놓아라!”

한편 절반 이상의 기병을 사살한 석목의 수중에는 추풍전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그때 잠깐 사이에 그를 따라잡은 검은 새가 다가왔다. 석목은 하늘에서 덮쳐오는 거대한 새를 보고 크게 놀랐다.

검은 새가 불타오르는 발로 석목을 할퀴었다.

석목이 기합을 지르자 그의 팔이 검게 빛나더니 두 배가량 굵어졌다.

석목은 등 뒤의 운철흑도를 뽑아 하늘을 향해 휘둘렀다. 붉은 검광과 검게 불타오르는 새의 날카로운 발톱이 충돌했다.

쾅!

거대한 힘이 운철흑도를 타고 몸에 전해지면서, 석목은 도를 거의 놓칠 뻔 했다. 그가 타고 있던 사불상도 비틀거리다가 겨우 균형을 잡았다.

크게 놀란 석목은 칼자루를 쥔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허공에서 몸을 한 바퀴 돌리며 충격을 흘려낸 새는 날개를 펼치더니 다시 석목을 덮쳤다. 거대한 새의 발이 검은 잔상을 그리며 다가왔다.

석목이 체내의 법력을 운철흑도에 주입하자 도신이 순식간에 불빛을 뿜어냈다. 석목은 한 손으로 도를 휘두르는 동시에 다른 한 손으로 남색 부적을 여러 장 꺼내들었다.

쾅!

검은 새의 발톱과 도신이 다시 부딪치며 검고 붉은 빛이 터져 나왔다.

바로 그때, 석목의 손에 들려 있던 남색 부적이 찢어지며 여러 개의 얼음창이 새를 향해 날아갔다.

거리가 극도로 가까웠던 데다 절묘한 찰나에 날아간 얼음창들은 새의 거대한 몸에 한 개도 빠짐없이 명중했다.

우지직!

고통에 찬 새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얼음창은 검은 새의 몸에 닿으며 깨졌지만, 그와 함께 새의 몸을 덮고 있는 화염은 한층 어두워졌다.

그 사이 비도와 남은 토템용사들이 석목을 따라잡았다.

석목은 이를 꽉 깨물었다. 그리고 양손 가득 부적을 꺼내 거대한 새를 향해 발동시켰다.

화염구, 물의 화살, 얼음송곳, 소용돌이, 낙뢰….

비록 하급 술법들인 탓에 위력은 제한적이었지만, 그 수가 셀 수 없이 많았다.

거대한 새는 몰려드는 술법의 파도에 순식간에 휩싸였다. 그리고 얼마 버티지 못하고 구슬프게 울부짖더니 검은 화염으로 변해 사라졌다.

석목이 막 한숨을 돌리려는 사이에, 귀를 찌르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누런 창이 거센 바람을 일으키며 등 뒤에서 날아왔다.

석목은 사불상의 목을 안으며 전광석화 같은 속도로 몸을 숙였다.

촤악!

투창이 석목의 등을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가며 옷을 찢었다.

석목이 숨을 돌릴 틈도 없이 다시 파공성이 울렸다. 이번에는 뼈창이 석목의 허리를 노리고 더 낮게 날아들었다.

공격을 피할 새가 없었던 석목은 들고 있던 운철흑도를 휘둘러 창을 막았다.

쾅!

석목의 몸이 밀려나며 사불상의 등 위에서 떨어졌다.

그는 땅바닥을 뒹굴다가 곧 움직임을 멈추고 피를 뿜어냈다. 방금 전의 공격에 중상을 입은 듯했다.

사불상은 크게 놀란 듯 고개도 돌리지 않고 앞으로 질주했다. 그 속도는 지금까지보다도 더 빨랐다.

멀리서는 비도가 숨을 낮게 몰아쉬고 있었다.

그가 방금 시전한 것은 천랑부족의 유성비척(流星飞掷)이었다. 그것은 일반적인 투창보다 강력했지만 체력소모가 굉장히 컸다.

석목이 쓰러지는 광경을 본 여섯 명의 토템용사가 환호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그들은 강적을 참살하는 공로를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고 싶지 않았고, 곧 석목을 둘러쌌다.

서늘한 빛이 반짝이며 여섯 자루의 도검이 거의 동시에 석목을 향해 내리쳐졌다.

그런데 석목이 위기일발의 상황에 놓인 순간 이변이 발생했다.

바닥에 엎드려 미동도 하지 않고 있던 석목이 갑자기 튕겨져 일어나더니 두 손을 휘저었다. 그의 손에서 뿌려진 하얀 가루가 토템용사들을 덮었다.

그들은 하얀 분말이 눈에 들어가자 통증을 느끼며 눈을 뜨지 못했다.

“안 돼!”

먼 곳에 있던 비도가 그 광경을 보고 소리를 지르더니, 늑대에 뛰어올라 석목을 향해 돌진했다.

바로 그때, 허공으로 뛰어오른 석목이 몸을 팽이처럼 돌렸다.

촤악!

일 장 가까이 커진 찬란한 화염의 도가 여섯 명의 토템용사를 휩쓸었다.

“으악!”

동시에 여섯 개의 몸이 두 동강이 나며 선혈이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비도는 그 광경을 보고 격노해서 크게 소리를 질렀다. 이어 그의 철추가 검푸른 빛에 뒤덮이더니 파공성을 일으키며 석목의 머리를 향해 날아들었다.

석목은 일격을 날리고 이제 막 땅에 착지한 순간이었기 때문에, 비도의 공격을 피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석목은 이를 꽉 물고 몸을 빙글 돌리며, 붉은 빛으로 변한 운철흑도를 휘둘러 공격을 맞받아쳤다.

깡!

철추와 운철흑도가 부딪치며 금속이 충돌하는 소리가 울렸다.

석목은 뒤로 세 걸음을 물러난 뒤에야 똑바로 섰다. 그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비도 또한 충격에 밀려 뒤로 날아가서 공중제비를 돌아 바닥에 착지했다. 푸른 철추를 든 그의 손이 저려왔다.

비도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그의 철추는 겉보기에는 평범했지만, 야만족의 황무지에서 나는 여러 광석을 섞어 단조했고 무게는 오백 근 이상이나 됐다.

그러나 방금 전의 충돌에서 느낀 운철흑도의 중량 역시 자신의 철추와 견주어 전혀 밀리지 않는 듯했다.

다만 상대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으로 보아, 고작 후천중기의 토템용사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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