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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계지문-94화 (94/916)

94화. 매복에 당하다

일각 후, 호수의 구체적인 위치를 파악한 청년이 돌아왔다. 소녀의 명령을 받은 기병들이 방향을 틀어 즉시 호수 방향으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황량했던 황무지에 푸른 풀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마치 바닥에 푸른 양탄자를 깔아놓은 것 같은 모습이었다.

곧이어 그들의 눈앞에 수십 장은 족히 되어 보이는 호수가 나타났다.

줄곧 모래바람 속에서 고생해온 일행은 크고 깨끗한 호수를 보자 헐레벌떡 말을 몰았다. 그리고 허리춤에 걸려 있던 가죽주머니를 꺼내 물을 담고 몸을 씻을 준비를 했다.

소녀는 좌우의 두 남자와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며 일행의 뒤에서 천천히 말을 몰았다.

갑자기 이변이 발생한 것은 그때였다.

호수의 중심에서 1장 넓이의 물기둥이 치솟았다. 마치 고래가 물을 뿜어내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 물기둥은 오륙 장 높이까지 올라간 뒤에야 더 이상 위로 오르는 것을 멈췄다.

소용돌이치는 물기둥의 꼭대기에서 한 남자가 나타났다. 그는 흉악하게 생긴 은색 상어 가면을 쓰고 푸른 채찍을 들고 있었다.

남자는 높은 곳에서 호수 주변 사람들의 움직임을 차가운 눈으로 내려다봤다.

그가 출현한 순간 천지를 뒤엎을 듯한 거대한 위압감이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수십 장 넓이의 호수가 보이지 않는 커다란 손에 의해 눌리기라도 한 것처럼, 몇 척 깊이로 괴이하게 파였다.

그러자 공기가 순간 끈적끈적해지더니 얼음같이 차가운 살기가 그곳에 있는 사람들을 덮쳤다. 장 장군과 청년은 동시에 오싹함을 느끼며 안색을 굳혔다.

이 정도로 두려운 살기와 기운은 선천고수가 내뿜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해족의 모습을 하고 있는 그 남자는 지계의 강자가 분명했다.

남자를 본 소녀의 표정이 미미하게 변했다. 그러나 그녀는 마음을 빠르게 진정시키고, 고삐를 쥔 손에 힘을 빼며 앞으로 나아갔다.

소녀는 우선 야만족의 예절대로 한 손을 가슴에 가져다대며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남자를 향해 태연하게 말했다.

“존경하는 해족의 강자님. 저희는 청아부족의 기병입니다. 저희 야만족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한다면 해족과 야만족 사이에 전쟁이 발발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모르시는 겁니까?”

그녀의 말을 들은 사절단 일행의 표정이 살짝 풀어졌다. 그들은 자신들이 현재 야만족 기병 신분으로 위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

소녀를 향한 해족 남자의 시선에 잠시 이채로운 빛이 스쳐지나갔다. 그러나 그의 눈에는 곧 조롱하는 기색이 떠올랐다.

남자가 푸른 채찍을 가볍게 들어올렸다. 그러자 채찍에 새겨진 부문이 푸른빛으로 눈부시게 빛났다.

“이런! 냉영걸! 너는 어서 공주마마를 데리고 가라!”

장 장군이 소리치며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장 장군이 가면을 쓴 남자에게 양날 도끼를 휘두르자, 도끼는 진기에 둘러싸이며 일 장 크기의 핏빛 도끼로 변해 남자의 머리를 내리찍었다.

쐐액!

동시에 열 개가 넘는 뼈창이 파공성을 일으키며 가면을 쓴 남자에게 날아갔다.

가면을 쓴 남자는 왼손을 뻗었다. 그러자 푸른빛이 뿜어져 나와 빠르게 퍼졌고, 그의 몸은 순식간에 투명할 정도로 옅은 푸른빛의 장막에 뒤덮였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연달아 들려왔다.

흉흉한 기세로 날아온 뼈창은 푸른빛의 장막에 부딪히는 순간 가루로 변했고, 핏빛 도끼 역시 장막에 박혀 맹렬하게 흔들리다가 폭발해 사라졌다.

소녀는 장 장군의 고함이 끝나는 순간 말에 올라탔고, 일행이 해족 남자를 공격하는 틈을 타 수십 장의 거리를 달아났다. 냉영걸은 은빛으로 반짝이는 창을 쥐고 그녀의 뒤를 바짝 쫓으며 엄호했다.

“아무도 도망갈 수 없다!”

해족 남자가 손을 움직여 푸른색 채찍을 휘두르자 푸른색 진기의 소용돌이가 형성되었다.

소용돌이 속에서 쉭쉭 소리가 들려오더니 거대한 괴수들이 앞 다투어 쏟아져 나왔다. 괴수들은 오륙 장 길이의 푸른 뱀 모양을 하고 있었으나 뱀은 아니었고, 등에는 날개가 달려 있었다.

괴수들은 나타나자마자 호숫가에 있는 사절단 일행을 향해 날아갔다. 푸른빛이 반짝하는 찰나에 모두의 눈앞에 도달해 있을 만큼 엄청난 속도였다.

사절단의 한 후천초기 무인이 포효하며 손에 든 도를 맹렬하게 휘둘렀다.

거대한 푸른 뱀은 마치 지능을 가진 듯 영민한 동작으로 공격을 피한 뒤, 그대로 무인의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그러자 무인의 몸이 갑자기 부풀어 오르더니 그대로 터져버렸고, 피가 비처럼 흩날렸다. 무인의 몸은 두 다리만 남아서 땅에 발을 붙이고 서 있었다.

나머지 십여 명의 무인도 같은 최후를 맞았다. 푸른색 거대한 뱀이 그들의 몸에 들어가 폭발하자 순식간에 피비린내가 퍼졌으며, 온 땅으로 피가 스며들었다.

선천의 경지에 올라선 장 장군만이 유일하게 살아 있었다. 그는 도끼를 휘둘러서 푸른색 뱀이 체내에 파고드는 것을 가까스로 막아냈다.

두 마리의 푸른 뱀이 도주하고 있는 소녀와 냉영걸 쪽으로 날아갔다.

뱀들을 본 냉영걸은 놀라서 소녀 쪽을 빠르게 한 번 보더니, 곧 무언가 결심을 굳힌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은창이 눈부신 은빛으로 반짝이더니 창대에 새겨진 모든 부문이 미친 듯이 떨기 시작했다.

쾅!

창이 폭발하며 은색 빛이 뒤틀렸고, 창은 은색의 화염으로 변해 푸른 뱀을 향해 날아갔다.

동시에 냉영걸은 붉어진 얼굴로 비명을 지르며, 소녀를 향해 날아가는 다른 뱀에게 몸을 날렸다.

콰르릉!

기의 파도가 사방으로 퍼지며 핏빛과 은빛, 푸른빛이 동시에 빛났다. 절반 정도로 크기가 작아진 뱀 한 마리가 그 빛을 뚫고 나와 소녀를 덮쳤다.

폭발이 일어난 자리에는 냉영걸의 모습은 완전히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 * *

소녀는 자신의 뒤로 점점 가까워지는 위험을 감지하고, 고삐를 당기며 말에서 뛰어내렸다. 더 이상 도망가는 것은 헛수고라고 생각한 듯했다.

몸을 돌린 그녀의 왼손에는 부문이 가득 새겨진 금색 영패가 들려 있었다. 소녀가 체내의 진기를 끌어올리자 금색 영패의 표면에 금색 빛이 감돌기 시작했다.

푸른 뱀이 눈 깜짝할 사이에 소녀의 지척까지 다가왔다. 소녀가 전력을 다해 금색 영패를 가동하자 영패의 표면에 ‘수(囚)’자가 어렴풋이 떠올랐다.

뱀은 두 눈을 빛내며 그녀의 몸속으로 파고 들어가려 했다.

바로 그때, 소녀의 가슴에서 녹색 빛이 반짝이며 그녀의 목걸이에 걸려 있던 비취색 옥패가 깨졌다. 그리고 그녀의 몸은 순식간에 목속성 기운을 띈 녹색 빛으로 뒤덮였다.

쾅!

푸른빛과 녹색 빛이 격렬하게 충돌했다.

소녀의 몸을 감싼 녹색 빛은 사라졌지만, 손가락 크기만큼 작아진 뱀은 여전히 소녀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소녀는 당황한 표정으로 허리춤에서 한기를 뿜어내는 검을 뽑아 휘둘렀다.

검광이 뱀 모양의 괴물과 부딪히면서, 순간 한기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며 검신 주위에 눈발이 흩날리자 뱀의 몸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퍽!

다시 한 번 검광이 반짝이자 뱀의 몸은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그러나 소녀도 검신을 타고 체내로 들어오는 거대한 진기를 막을 수 없었다. 그녀는 오장육부가 뒤집히는 격렬한 통증을 느끼며 표정을 일그러뜨렸고, 입을 벌려 선혈을 토해냈다.

소녀의 손에 들린 금색 영패의 표면에 나타난 ‘수(囚)’라는 글자가 점점 뚜렷해지고 있었다.

같은 시간 호수의 위.

장 장군은 한쪽 팔과 양날 도끼를 잃으면서도 결국 푸른 뱀을 해치웠다.

그리고 냉영걸과 소녀가 자신의 일격을 막아내는 것을 본 해족 남자의 푸른 채찍이 다시 빛나기 시작했다.

그가 푸른 채찍을 든 손을 뻗으려는 것을 발견한 장 장군의 두 눈이 순간 붉게 충혈됐다.

“네놈과 죽겠다!”

체내의 진기를 격동시킨 장 장군은 순식간에 십여 장의 거리를 좁혀 가면을 쓴 해족 남자에게 돌진했다.

이어 거대한 핏빛 주먹이 그의 몸 앞에 형성되었고, 그것은 가면을 쓴 남자를 향해 매섭게 날아갔다.

그러자 해족 남자는 장 장군 쪽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고 푸른 채찍을 휘둘렀다. 채찍은 허공에 떠오른 장 장군의 몸을 휘감았다.

퍽!

채찍이 조여 들자 장 장군의 몸은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터져버렸다.

그가 전신의 진기를 쏟아서 날렸던 핏빛 주먹 역시 흩어져 사라졌다.

다시 시선을 돌린 해족 남자는 멀지 않은 곳에서 금빛으로 반짝이는 물건을 쥐고 손을 들어 올린 소녀를 발견했다.

놀란 남자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그의 주위 허공에서 파동이 일어나더니, 머리털처럼 가느다란 금색의 실들이 나타났다.

실들은 빠르게 얽히더니 찬란한 금빛의 감옥으로 변해 남자를 안에 가두었다.

해족 남자는 자신의 눈앞이 금색으로 빛나는 것을 느꼈고, 그 순간 외부와 완전히 단절됐다.

놀란 남자는 그의 몸을 감싸고 있던 옅은 푸른빛의 장막을 부풀렸다.

쾅!

금색 감옥이 빛의 장막과 충돌해 진동했지만, 여전히 굳건한 채 버티고 있었다.

대노한 남자가 푸른 채찍을 들어 올리자 순식간에 뱀 모양의 괴수들이 다시 몰려나와 금빛 감옥을 덮쳤다. 뱀들이 금빛 감옥에 흡수되며 폭발하자 그제야 감옥의 표면이 살짝 어두워졌다.

감옥은 남자가 이각 동안 수십 마리의 푸른 뱀을 연달아 소환한 후에야 파괴되었고, 반짝이는 빛으로 변해 사라졌다.

남자는 일단 곤경에서는 벗어났지만 표정은 무척이나 어두웠다.

소녀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태였고, 무슨 비술을 사용했는지 현장에는 아무 기운도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 * *

뙤약볕이 내리쬐어 황량한 사막의 지면이 뜨겁게 달아올랐고, 뜨거운 공기가 일렁이고 있었다.

전신에 회색 망토를 두르고 체구가 커다란 사람이 사불상을 몰고 어디론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사불상의 움직임은 언뜻 보면 굼떠 보였지만, 한 걸음에 일 장 가까운 거리를 이동했기 때문에 전진하는 속도가 상당히 빨랐다.

회색 망토를 입은 남자가 갑자기 몸을 꼿꼿이 세우며 고삐를 끌어당겼다. 사불상은 자리에 멈추며 소 울음소리를 냈다.

그가 머리 부분의 망토를 젖히자 젊은 남자의 얼굴이 드러났다. 석목이었다.

석목이 눈을 찌푸리자 동공이 순식간에 금빛으로 변했다. 그는 땅바닥을 잠시 보더니 다시 고개를 들어 먼 곳을 바라보았다.

석목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고삐를 흔들며 지시했다.

“동남쪽으로 가자.”

사불상은 마치 석목의 말을 알아들은 것처럼 방향을 틀더니 앞으로 나아갔다.

반 시진 후, 수천 평은 되어 보이는 커다란 오아시스가 석목의 눈앞에 나타났다.

오아시스에는 상당한 크기의 호수가 있었는데, 수면은 마치 거울처럼 잔잔했다. 또한 무성한 수목에는 과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석목은 기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음메!”

사불상도 기분 좋은 듯 울음소리를 내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사불상은 호숫가에 엎드려 물을 마시며 꼬리를 이리저리 흔들었다. 석목도 호숫가에 쭈그려 앉아 따뜻한 물을 몇 모금 마시고, 수통에도 물을 가득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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