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103화 (103/916)

103화. 신비한 돌덩이

석목은 석상을 관찰하는 것을 멈추고 유적의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러나 유적을 빠짐없이 뒤진 그의 얼굴에 실망하는 표정이 떠올랐다. 그곳에는 온통 돌조각과 썩은 나무뿐이었다. 무언가 특별해 보이는 물건은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

석목은 포기하지 않고 다시 한 번 샅샅이 뒤졌지만, 여전히 소득은 없었다.

석목은 씁쓸하게 웃었다. 아무래도 이번에는 너무 욕심을 부린 것 같았다.

그가 포기하고 유적을 떠나려 할 때, 희미한 붉은 빛이 얼핏 눈에 들어왔다. 그 빛은 방금 전 본 조각상이 아래로 늘어뜨린 손 안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석목은 재빨리 조각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손 안에서 반짝이는 것이 주먹 만 한 크기의 붉은 돌덩이라는 것을 알았다. 까딱하면 발견하지 못할 뻔했다.

고민하던 석목은 이를 악물고 붉은 돌덩이를 낚아챘다. 그리고 자신이 들어왔던 길을 되돌아 질주하기 시작했다.

유적을 벗어나 수십 장을 내달린 석목은 뒤에서 어떤 이상한 낌새도 느껴지지 않자 그제야 숨을 가볍게 내쉬었다.

그는 붉은 돌덩이를 얼굴 가까이 가져다 대고 자세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돌덩이의 표면에는 암홍색 결이 있었으며, 생명이 있는 것처럼 미미하게 반짝이며 손에 온기가 전해지는 것이 매우 신기했다. 한눈에 보더라도 평범한 물건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결국 석목은 그 돌덩이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아내지 못하고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 * *

그 시각, 석목이 진입했던 산골짜기의 입구에 열사부족과 망우부족의 다섯 토템용사가 나타났다.

열사부족의 대머리 사내가 들고 있는 원반의 바늘은 산골짜기의 깊은 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대머리 사내는 무언가 감지하려는 듯 잠시 눈을 감았다가 말했다.

“이곳으로 들어간 것 같습니다.”

그러자 열사부족의 마른 남자가 괴수의 가죽을 꺼내며 덧붙였다.

“지형도 그렇고, 지도상에 아무 표시가 없는 것을 보아하니 막힌 길인 것 같습니다. 하하, 놈은 독 안에 든 쥐나 마찬가지니 도망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그렇다면 기다릴 게 뭐 있느냐. 어서 들어가자!

망곤이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차갑게 말했다.

그때 망우부족의 다른 사내가 소리쳤다.

“기다리세요!”

망우부족의 사내는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연못가로 빠르게 향했다.

그곳에는 거대한 붉은색 멧돼지 괴수의 시체가 쓰러져 있었다.

“적염전저(赤炎战猪)!”

사내가 놀란 표정으로 내뱉었다.

다가와서 멧돼지의 시체를 본 다른 이들의 표정도 살짝 바뀌었다.

“적염전저의 체형을 봤을 때 후천후기 정도의 괴수인 듯한데, 모습을 보니 일격에 당한 것 같군요.”

대머리 사내의 표정이 다소 무거워졌다.

“석목이라는 놈의 실력이 확실히 상당한 수준인가 봅니다. 방심해서는 안 되겠어요.”

그러나 망곤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흥! 고작 적염전저 한 마리를 죽인 것뿐인데 무엇이 대수라고. 시간이 없으니 어서 들어가지. 이미 너무 많은 시간을 낭비했어.”

검은 얼굴의 사내는 협곡 방향으로 걸어가는 망곤을 보고 잠시 주저했지만, 결국 그의 뒤를 바짝 쫓았다.

대머리 사내는 적염전저의 시체를 다시 한 번 보았다. 그는 어렴풋이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다고 느꼈다.

그러나 그는 곧 고개를 가로저으며 생각을 떨쳐버리고, 두 수하를 데리고 망곤을 따라 협곡으로 들어갔다.

* * *

석목은 협곡의 깊은 곳에서 경쾌한 걸음으로 밖을 향해 질주하고 있었다.

관목지대를 지나자 석목의 움직임이 갑자기 멈췄다. 그는 무거운 표정으로 전방을 바라보았다.

석목의 두 눈이 순식간에 옅은 금색으로 변했다.

그 순간 표정이 변한 석목은 옆의 거대한 고목 뒤에 몸을 숨기더니, 나무 위로 원숭이처럼 기어 올라갔다.

석목은 절반 정도 올라가서 멈춘 뒤 다시 전방을 주시했다.

협곡에 가득한 나무들은 그의 시야를 가로막지 못했다. 몇 백 장 떨어진 전방의 숲 속에서 다섯 야만족이 협곡 안으로 들어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들은 무언가를 찾는 듯 때때로 주위를 둘러보며 경계하고 있었다.

석목은 그중 세 사람의 오른팔에 새겨진 뱀 모양의 토템을 보고 중얼거렸다.

“열사부족….”

석목은 금지에 들어오기 전에 본 열사부족 제사장의 음산한 눈빛을 떠올리며 눈을 섬뜩하게 빛냈다.

석목은 잠시 생각한 뒤 고목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파천궁을 꺼내들고 수풀 사이로 몸을 숨겼다.

야만족 중 가장 앞서가던 대머리 사내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더니, 일행을 정지시키며 귀를 기울였다.

“무슨 일이지?”

옆에 있던 망곤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대머리 사내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분명 어렴풋이 소리를 들었는데 순식간에 사라져서 들리지 않았다.

제사장이 하사한 법기는 대략적인 방향만 감지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근거리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대머리 사내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모두 조심하세요. 아무래도 상대가 먼저 우리를 발견한 것 같습니….”

그는 말을 하다 말고 전방의 숲속 깊숙한 곳에서 검은 그림자가 움직이는 것을 발견했다.

“저쪽이다! 쫓아라!”

대머리 사내가 소리치며 검은 그림자가 지나간 방향을 향해 몸을 날렸다.

다른 이들도 그림자를 보고 일제히 달려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그림자가 있었던 곳에 도착했다.

“위쪽이다!”

주위를 둘러보던 대머리 사내가 머리 위로 검은 그림자가 지나가는 것을 발견하고 소리쳤다.

그러면서 독사가 혓바닥을 내뱉듯이 손에 들고 있던 채찍을 머리 위로 재빠르게 휘둘렀다. 나머지 네 사람도 주저하지 않고 위쪽을 향해 공격을 퍼부었다.

그들의 공격이 나뭇잎과 가지를 조각내자 검은 그림자의 정체가 드러났다. 그것은 회색 늑대의 가죽으로 만든 옷이었다.

그림자의 정체를 확인한 일행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망곤은 콧방귀를 뀌더니 손에 든 거대한 도끼를 휘둘러 늑대 가죽옷을 조각냈다.

바로 그때, 흩날리는 옷 조각 사이에서 하얀 가루가 쏟아져내려와 야만족 일행을 뒤덮었다.

고개를 들고 허공을 노려보던 그들은 흰색분말이 눈으로 쏟아져 들어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야만족들은 두 눈에 엄습하는 격렬한 고통에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쉬익!

이번에는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대머리 사내는 두 눈을 뜨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그 소리의 정체를 파악했다.

“화살을 조심해라!”

대머리 사내는 옆으로 몸을 피하며 소리쳤다.

그의 말이 끝나는 순간 날카로운 화살 소리가 두 번 더 들렸다.

“악!”

“으악!”

두 번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대머리 사내는 가슴이 철렁했다. 그러나 급박한 상황이라 누가 활에 맞았는지 파악할 틈이 없었다. 그는 땅에서 옆으로 구르며 재빨리 피했다.

우지직!

이번에는 옷이 걸려 있던 나무가 쓰러지며 비명을 질렀던 두 야만족을 깔아뭉갰다. 누군가 미리 손을 써 놓은 듯했다.

대머리 사내는 두 눈의 통증이 조금 가라앉자 억지로 눈을 떴다.

바로 그때, 그가 있는 곳과 멀지 않은 곳에서 붉은 검광이 번쩍였다.

다시 한 번 비명과 함께 사람이 땅바닥에 쓰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대머리 사내의 표정이 크게 변했다.

이번에 터져 나온 비명의 주인은 누구인지 똑똑히 알 수 있었다. 열사부족의 마른 남자 목소리였다.

놀란 대머리 사내가 허리춤을 만지작거리자, 하얀 빛이 활을 떠난 화살처럼 붉은 검광이 번쩍이는 방향으로 날아갔다. 그것은 하얀 빛에 휩싸인 뼈로 만든 부메랑이었다.

딱!

부메랑이 나무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상대를 명중시키지 못한 것이 분명했다.

대머리 사내가 부메랑이 날아간 곳으로 재빠르게 다가갔을 때, 상대는 이미 그곳에 없었다.

열사부족의 마른 야만족은 가슴에 큰 상처를 입고 바닥에 누워 있었다. 몸이 거의 두 동강이 난 상태라서 살아날 가망이 없어 보였다.

쓰러진 나무에 깔린 두 사람도 마찬가지로 꿈쩍도 하지 않았다.

분개한 대머리 사내는 이를 갈았다.

바로 그때, 병기가 충돌하는 소리, 망곤이 포효하는 소리가 멀지 않은 곳에서 들려왔다.

대머리 사내는 소리가 난 곳으로 빠르게 달려갔다. 망곤이 누군가와 격렬하게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큰 눈과 짙은 눈썹을 가진 그 사내는 바로 그들이 찾던 석목이었다.

질끈 감은 망곤의 두 눈가에는 아직도 흰색 분말이 묻어 있었다. 그는 여전히 앞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그 순간 망곤의 몸이 갑자기 커지더니 전신의 근육이 팽창했다. 양팔의 짙푸른 핏줄이 전부 드러났고, 머리에는 날카로운 쇠뿔이 두 개 돋아났다.

모습을 바꾼 망곤은 전신을 보호하려는 듯 손에 쥔 검은 도끼를 미친 듯이 휘둘러댔다.

석목의 손에 들린, 화염을 두른 장도가 빼곡한 검영으로 나뉘어 망곤을 향해 날아갔다. 망우는 뒤에 누군가 있다는 건 감지했지만, 그게 대머리 사내라는 것은 분간하지 못했다.

대머리 사내가 흉악한 표정을 지으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러자 석목이 그를 슬쩍 보고 눈빛을 빛내더니, 갑자기 반가워하는 듯한 목소리로 크게 소리쳤다.

“화무, 마침 잘 왔어! 공격해!”

대머리 사내는 석목의 말을 듣고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곧 그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를 깨달은 듯 경악했다.

그 순간 분노에 찬 망곤이 소리를 지르자 그의 도끼가 검은 빛으로 뒤덮였다. 망곤이 도끼를 맹렬하게 휘두르자 그의 검은 도끼는 일고여덟 개로 나누어졌다.

하나하나가 천둥 같은 위력을 가진 그것의 절반은 앞의 석목을 향해, 나머지 절반은 뒤를 향해 날아갔다.

“속지 마세요! 접니다!”

다급하게 뒤로 물러나며 망곤의 공격을 피한 대머리 사내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그의 목소리에 망곤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잠시 움직임을 멈췄다.

바로 그 찰나의 순간이었다.

푹!

석목의 운철흑도가 망곤의 가슴을 뚫고 지나갔다.

집중력이 분산된 틈을 놓치지 않고 귀신같이 다가가서 일격에 절명시킨 것이다.

이어 망곤의 몸이 굳어지며 입으로 선혈을 뿜어냈다.

순간 검은 칼날이 붉은 빛을 띠더니 맹렬하게 위로 솟구쳤다. 그 빛이 반짝이는 순간 망곤의 몸이 거의 절반으로 갈라지며 선혈이 사방에 흩뿌려졌다.

망곤의 거대한 몸이 비틀거리더니 곧 바닥에 쓰러졌다.

석목은 평온한 표정으로 운철흑도를 허공에 휘둘러 선혈을 털어냈다. 그리고 얼음같이 차가운 눈빛으로 마지막 남은 적을 응시했다.

대머리 사내가 몸을 흠칫 떨더니 자신도 모르게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제사장의 명을 받고 소군주의 복수를 하러 온 것이겠지요?”

석목이 대머리 사내에게 다가가며 담담하게 물었다.

그의 말에 대머리 사내가 뒤로 한걸음 더 물러났다.

“소군주를 만나게 해드리죠!”

순식간에 대머리 사내의 앞까지 다가간 석목의 운철흑도가 반짝이더니, 열세 개의 검광으로 변해서 대머리 사내를 향해 몰아쳤다.

대머리 사내는 석목의 기세에 눌려 있었지만, 검광이 몸에 닿기 직전에 간발의 차이로 반응했다. 그가 포효를 하며 푸른색 채찍을 연달아 휘두르자 채찍의 잔상이 그의 몸을 뒤덮으며 보호했다.

푸른색과 붉은색이 엉키며 귀를 찌르는 마찰음이 울렸다. 석목의 공격이 대머리 사내의 채찍에 완전히 막힌 것이었다.

그러자 석목은 대머리 사내를 향해 운철흑도를 내려베었다. 그가 진기를 주입한 운철흑도의 붉은 검광은 일 장 가까이 커져 있었다.

검광이 도달하기도 전에 뜨거운 열기가 대머리 사내를 덮쳤다. 놀란 사내는 푸른빛을 띠며 한층 두꺼워진 채찍을 휘둘러 화염의 도를 막았다.

그와 동시에 대머리 사내의 오른팔에 새겨진 적색 구렁이 토템이 반짝이더니 전신에 붉은색 비늘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토템의 힘을 발동시킨 듯했다.

그때 대머리 사내는 석목이 어느새 왼쪽 손에 든 반 척 길이의 검은 원통으로 자신을 조준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대머리 사내의 얼굴에 놀라움과 공포가 뒤섞인 표정이 스쳐지나갔다.

다음 순간 석목의 손에 쥐어진 검은 원통이 맹렬하게 흔들리더니, 전방으로 검은 빛이 폭발하며 쏘아져 나갔다. 그 빛은 귀신이 울부짖는 것 같은 소리를 내며 대머리 사내의 가슴을 향해 무시무시한 기세로 날아갔다.

검은 빛은 대머리 사내의 몸에 뒤덮인 붉은 비늘을 가볍게 뚫었다. 거리가 가까웠기 때문에 대머리 사내로서는 몸을 피할 도리가 없었다.

대머리 사내의 몸이 마치 무거운 것에 가격당한 것처럼 뒤로 몇 장이나 날아가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그의 가슴에 수없이 뚫린 작은 구멍에서 선혈이 새어나왔다.

대머리 사내는 원한에 찬 눈빛으로 석목을 바라보며 몸을 움찔거리더니, 잠시 후 움직임을 완전히 멈췄다.

석목은 그제야 몰려오는 피로를 느끼며 길게 호흡을 내뱉었다.

체내의 진기는 그다지 많이 소모하지 않았지만, 연달아 공격을 퍼붓느라 상당한 기력을 소모했다.

만약 잔꾀를 쓰지 않았다면 후천후기 이상의 다섯 명을 이렇게 수월하게 처리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정면으로 맞붙었다면 석목 역시 상당한 대가를 치러야 했을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다수흉망과의 전투에서 승리할 일말의 가능성조차 사라졌을 게 분명했다.

석목은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천천히 호흡을 들이쉬고 내뱉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