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106화 (106/916)

106화. 용사의 강

동굴을 나선 석목과 화무공주는 북쪽으로 향했다.

두 사람의 실력이라면, 선천등급의 괴수나 대규모 괴수 무리를 마주치지 않는 이상 위험한 일은 없었다.

이틀 뒤 석목과 화무공주는 커다란 강에 도착했다. 그 강의 폭은 족히 수십 장은 되었고 강물의 흐름이 상당히 거셌다.

“이 강이 소문의 그 용사의 강인가 봅니다. 이 강의 건너편부터 중부구역입니다.”

석목이 눈앞의 강을 보며 말했다.

강의 맞은편 구역이 바로 그가 금지에 온 목적이 있었다.

“맞아요. 이 강은 고대의 야만족이 금제를 걸어서, 맞은편에 있는 선천등급 이상의 괴수는 강을 넘어올 수 없다고 하죠.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할 길은 없지만요.”

화무공주가 강물을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그 순간 석목이 갑자기 미간을 찌푸리더니 고개를 돌려 왼쪽을 바라보았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누군가 대여섯 명이 그들이 있는 곳으로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살짝 놀란 화무공주가 한 손으로 허리춤의 검을 꽉 쥐고 다른 한손을 소매에 집어넣었다.

그러나 석목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괜찮습니다. 평만부족의 야만족입니다.”

화무공주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수련한 심법 역시 시력을 증진시켜주는 효과가 있었지만, 그렇다 해도 이렇게 먼 거리의 상황까지 파악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석목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해족 성녀와의 만남 이후, 그녀는 줄곧 석목이 비밀에 싸여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석목의 말대로 평만부족의 야만족들이 나타났다.

선두에 선 두 명 중 하나는 청아부족의 복장을 입고 있었으며, 다른 한 명은 상의를 벗고 있었지만 머리에 금색 깃털이 꽂힌 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 모자는 평만부족 중 금우부족의 상징이었다.

두 사람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을 봤을 때 모두 후천 대원만의 경지에 오른 고수로 보였다. 나머지 야만족도 그 둘보다는 약했지만, 모두 후천후기의 경지에 오른 이들이었다.

고작 후천중기의 무인인 석목은 그들 앞에서 상대적으로 약해보일 수밖에 없었다.

석목을 본 청아부족의 야만족이 웃음을 지으며 반갑게 인사했다.

“인족의 귀빈이었군요.”

화무공주도 활짝 웃으며 인사했다.

“마랑님.”

석목도 화무공주의 반걸음 뒤에 서서 웃음을 지었다.

두 사람은 성산에 도착한 후 줄곧 청아부족과 함께 지냈기 때문에 부족민들과 조금씩 안면이 있었다. 마랑 역시 이전에 두어 번 석목과 마주친 적이 있었다.

마랑이 하하 웃으며 곁에 있는 금우부족의 청년을 소개했다.

“두 분께 소개시켜드리겠습니다. 이 분은 금우부족의 금황입니다.”

금황은 줄곧 냉담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 무척이나 과묵한 성격을 가진 듯했다. 그는 화무공주와 석목을 향해 고개만 끄덕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반갑습니다, 금황님.”

화무공주는 금황의 반응을 전혀 개의치 않고 웃으며 말했다.

금황은 등 뒤에 거대한 금색 원형 무기를 메고 있었다. 그 무기의 겉에는 날카로운 톱날이 서 있었다.

그의 원형 톱날무기는 무문이 새진 무기(巫器)였으며 그 등급이 절대 낮지 않아 보였다.

금황은 자신의 무기를 넋 놓고 구경하는 석목의 시선을 느꼈는지 갑자기 고개를 돌렸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석목은 금황의 따가운 시선을 느끼고 살짝 놀랐지만 표정에 드러내지는 않았다. 그는 금황을 향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 뒤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런 석목을 유심히 살펴보던 금황도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마랑은 나머지 네 야만족도 소개했다. 두 명은 나라부족의 야만족이었고 나머지 두 명은 오각부족 소석이었다.

이들은 각자 출신이 달랐지만 이해관계가 일치하기 때문인지 사이는 퍽 좋아보였다.

“마랑님, 용사의 강에는 무슨 일로 오신 것이죠?”

서로 인사를 마친 후 화무공주가 바로 본론을 꺼냈다.

마랑이 하하 웃으며 말했다.

“우리는 며칠 전부터 함께 다녔습니다. 조금 전 근처에서 강력한 괴수를 두 마리 처리하고, 지금은 다른 사냥감을 찾고 있는 중이었죠. 두 분도 명확한 목표가 없다면 우리와 동행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화무공주는 석목과 눈빛을 한 번 교환한 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아요. 함께 움직인다면 더욱 안전하겠죠.”

“잘 생각했습니다!”

마랑이 기쁜 표정으로 손뼉을 치며 웃었다.

마랑은 화무의 실력을 매우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녀는 인족 연맹에서 파견한 사람이니만큼 분명히 도움이 될 만한 물건들을 지니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럼 어디로 갈 것인지는 결정한 건가요?”

화무공주의 질문에 마랑이 대답했다.

“확실한 방향은 정하지 않았지만, 용사의 강을 따라 이동하며 후천 대원만의 괴수를 최대한 많이 처치할 생각입니다.”

그러자 화무공주가 아름다운 눈을 빛내며 말했다.

“강 건너편에 더 좋은 사냥감이 있을 겁니다.”

마랑과 금황은 서로를 한 번 바라본 뒤 살짝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 말은 강을 건너고 싶다는 뜻인가요?”

“맞습니다.”

화무공주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금지에 들어온 지 닷새가 지난 지금, 이미 평만과 흉만의 격차는 상당히 벌어져 있었다. 높은 등급의 괴수를 사냥하지 않는 한 이 시합에서 평만부족은 절대 승리할 수 없을 것이었다.

“강 건너편에는 선천등급의 괴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마주치는 순간 죽을 게 분명합니다.”

오각부족의 사내가 큰 소리로 말했다.

나라부족의 두 야만족 역시 중부구역으로 가는 것에 반대한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화무공주가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려 석목을 바라보았다.

석목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말했다.

“공주가 강을 건너겠다면 당연히 저도 함께할 것입니다.”

그러자 오각부족과 나라부족의 네 야만족이 그를 멸시하듯 바라보았다.

석목은 금지에 들어온 모든 이 중 유일하게 후천후기의 경지에 오르지 못한 사람이었다.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것도 기적이나 마찬가지인데 중부구역에 들어가겠다는 터무니없는 말을 하니, 그들에 눈에는 죽음을 찾아가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

“두 분은 어떻습니까?”

화무공주가 이번엔 마랑과 금황에게 물었다.

“화무공주의 의견은 정확히 우리의 뜻과 같습니다. 우리 역시 중부구역에 가서 한바탕 할 계획이었습니다.”

마랑이 하하 웃으며 말했다.

그의 말을 들은 오각과 나라의 네 야만족이 모두 깜짝 놀랐다.

“현재 우리가 금지에 들어온 지도 벌써 닷새가 지났습니다.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두었는지 서로 잘 알고 있지요. 흉만부족의 실력은 우리보다 위인 만큼, 위험을 무릅쓰고 모험을 하지 않는 이상 우리가 이길 수 있는 확률은 매우 낮습니다.”

마랑이 낮은 목소리로 말하자, 나라부족의 두 야만족이 주저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오각부족의 한 야만족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중부구역에 들어가자는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 용서해주십시오. 이 시합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목숨을 뒷전으로 할 수는 없습니다. 기어코 중부구역에 가시겠다면 저희는 여기서 갈라지겠습니다.”

마랑이 미간을 찌푸리며 머리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저도 강요하지 않겠습니다.”

오각부족의 두 야만족은 인사를 하고 몸을 돌려 멀어졌다.

그러자 나라부족의 두 야만족도 미안하다는 표정이 되어 어색하게 말했다.

“중부구역은 너무 위험합니다. 저희는… 저희도 따로 행동하겠습니다.”

“금지에는 위험이 도처에 널려 있으니 어떻게 행동할지는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 당연하지요.”

마랑이 아쉬운 듯 웃으며 말했다.

나라부족의 두 사람도 인사를 한 뒤 오각부족과는 다른 방향으로 걸어갔다.

순식간에 인원의 절반이 사라지자 잠시 적막이 감돌았다.

“우리 네 사람만 남았네요. 인원은 적지만 행동하기에는 더 편할 것입니다.”

마랑이 침묵을 깨고 웃으며 말했다.

“강을 건너기로 결정하긴 했지만, 강이 매우 위험해보여 건너기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 말이 맞습니다. 두 분이 아실 지 모르겠지만, 용사의 강에는 육식을 하는 검어(剑鱼)가 서식하고 있습니다. 그것들은 수도 많고 공격적이죠. 설령 선천의 경지에 오른 존재라 해도 그것들을 상대로 무사하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검어요? 전혀 보이지 않는데요?”

마랑이 무거운 표정으로 말하자 화무공주가 눈썹을 추켜세우며 물었다.

그때 줄곧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던 금황이 나섰다. 그는 갑자기 등 뒤의 배낭에서 신선한 고기를 꺼내 용사의 강에 던졌다. 아직 피가 묻어 있는 것으로 보아 괴수의 몸에서 잘라낸 지 얼마 안 된 고기 같았다.

고깃덩어리가 물에 들어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강물의 깊숙한 곳에서 가느다란 은색 빛들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솟아올랐다.

은색 빛의 정체는 물고기였다. 크기는 반 척 정도로 크지 않았지만, 주둥이 위에 마치 칼날 같이 날카로운 가시가 자라 있었다.

검어들은 물보라를 튀기며 순식간에 고깃덩어리를 먹어치운 뒤, 다시 흩어져서 강물 깊은 곳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출렁거리는 수면을 바라보며 화무공주가 숨을 살짝 들이켰다.

그 광경을 본 석목은 중부구역에 있는 선천등급의 괴수들이 이 검어를 두려워해서 외곽구역에 오지 않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두 분은 이 검어의 존재에 대해서 이미 알고 있었으니 강을 건너는 방법도 알고 있겠지요?”

화무공주가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당연히 알지요! 방법은 매우 간단합니다. 단단한 뗏목을 만들어서 강을 건너면 됩니다.”

마랑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자, 화무공주와 석목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간단하다구요?”

“뗏목만으로는 검어들의 날카로운 이를 막아낼 수 없지 않을까요?”

화무공주가 의심하듯 재차 물었고, 석목 역시 걱정스럽게 질문을 덧붙였다.

만약 뗏목이 공격당해서 물속에서 수많은 검어와 대적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아무리 선천초기의 강자라 하더라도 상처 없이 무사히 빠져나오기는 어려울 것이다.

“걱정 마세요. 옛날부터 중부구역으로 가는 야만족들은 모두 이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그래도 걱정이 된다면 뗏목을 최대한 크고 튼튼하게 만들면 됩니다.”

마랑이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굉장히 확신에 차 있는데, 혹시 이전에 이미 이 방법으로 강을 건너본 적이 있습니까?”

화무공주는 다시 한 번 물었다.

그러자 마랑은 잠깐 주저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안심할 수 있지요.”

화무공주가 그제야 웃으며 석목과 함께 숲속으로 걸어갔다.

두 시진도 채 되지 않아 그들은 커다란 뗏목을 만들어냈다. 너비가 삼 장, 길이가 오 장이었고, 안전을 위해 석목이 뗏목 바닥에 통나무를 세 겹이나 쌓았다. 마랑은 커다란 괴수의 가죽을 꺼내 뗏목에 초라한 돛을 세웠다.

네 사람이 전부 뗏목에 오르자 마랑이 푸른색 무부(巫符)를 꺼내 주문을 외웠다.

무부가 타오르더니 허공에 갑자기 강풍이 불기 시작했고, 강풍을 받은 돛이 펄럭이더니 뗏목이 강 건너편으로 빠르게 나아갔다.

긴장한 표정이 역력한 석목은 한 손으로 운철흑도의 칼자루를 강하게 쥐었다. 다른 한 손은 소매 속에 넣고 열사부족의 대머리 야만족에게서 빼앗은 검은 부적을 쥐고 있었다.

당시 석목은 총 두 장의 부적을 얻었는데, 이후에 한 장을 시험 삼아 발동해보았다. 그 부적에는 풍속성의 하급 보조 술법인 풍익술(风翼术)과 아주 흡사한 술법이 담겨 있었다. 부적을 사용하면 날아올라서 일정 거리를 이동하는 게 가능했다.

석목은 풍익술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있었으나, 영부보경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아 제작하는 법까지는 알지 못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