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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계지문-108화 (108/916)

108화. 흩어지다

바닥을 강하게 박차고 뛰어올라 원숭이처럼 나무에 매달린 마랑은 얼마 지나지 않아 성인의 팔만큼 두꺼운 가지 위로 올라섰다.

그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는 영롱하게 빛나는 청명과가 걸려 있었다.

마랑은 연못을 한 번 바라보고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그리고 앞으로 몇 걸음을 옮겨 조심스럽게 청명과를 따기 시작했다.

아래에 있는 세 사람은 긴장한 채로 연못을 노려보았다.

바로 그 순간 생각지도 못한 일이 발생했다.

나무 뒤에 있던 평범한 얼음덩어리가 갑자기 터지더니, 그 사이에서 무엇인가가 마랑을 향해 날아갔다.

그것은 엄청난 속도로 날아왔기 때문에, 마랑은 그것이 무엇인지 눈앞에 다다른 뒤에야 알아볼 수 있었다. 마치 얼음처럼 하얗고 투명한 전갈의 꼬리였다.

피하기엔 이미 늦었다고 생각한 마랑은 손에 들고 있던 도끼를 휘둘렀다. 파랗게 빛나는 도끼가 푸른 잔영을 남기며 거대한 꼬리의 공격을 받아쳤다.

쾅!

굉음과 함께 거대한 힘에 밀린 마랑이 도끼를 쥔 채로 멀리 날아갔다. 그의 얼굴에는 놀라움이 가득 차 있었다.

얼음덩어리가 터진 자리에서 흰 안개 사이로 오륙 장 크기의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하얗고 투명해서 마치 얼음조각상처럼 보이는 거대한 얼음전갈이었다.

얼음전갈은 곧장 뛰어오르며 입에서 흰색 연기를 뿜어냈다.

“선천….”

마랑이 뭐라 외치려 했으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하얀 연기가 그의 몸을 감쌌다. 순간 마랑의 움직임이 느려지더니 곧 흰색 얼음이 전신을 완전히 뒤덮었다.

짙은 한기에 의해 순식간에 얼음덩어리가 된 마랑의 몸이 아래로 추락했다.

이어 그의 몸이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얼음전갈이 빠르게 다가와 꼬리를 휘둘렀다.

퍽!

얼음에 뒤덮인 마랑의 몸은 그대로 산산조각이 났다. 청아족의 토템용사인 마랑은 그렇게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마랑이 죽기 직전에 딴 청명과는 조각난 그의 손에 그대로 쥐어진 채였다. 그것은 금황이 숨어 있는 곳 근처에 떨어졌다.

이 일련의 사건은 모두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졌다.

그 광경을 지켜본 이들은 얼음전갈이 이미 선천등급에 오른 괴수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아마도 주위 환경의 영향 때문에 이곳에서는 선천중기에 근접한 힘을 무한히 발휘할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사이에 다시 뛰어오른 얼음전갈은 허공에서 한 바퀴 돌며 한기를 뿜어냈다.

주먹 만 한 크기의 얼음공이 사방으로 쏘아져 나가며 하늘을 가득 덮었다.

쾅! 쾅! 쾅!

주위의 얼음덩어리가 얼음공과 충돌하며 부서졌다.

세 사람이 뛰어오르자마자 그들이 몸을 숨기고 있던 얼음덩어리도 얼음공에 맞고 파괴됐다.

각자 무기를 휘둘러 날아오는 얼음조각을 막아낸 석목과 화무공주는 두말없이 몸을 돌려 동굴 입구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금황은 무수히 날아오는 얼음조각을 전부 막아내며 오히려 반대쪽으로 움직였다. 그는 땅에 나뒹굴고 있는 마랑의 팔에 다가가서 잽싸게 청명과를 낚아챘다.

바로 그때, 포효 소리와 함께 얼음구슬이 금황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빈틈없이 날아오는 얼음공은 도저히 피할 길이 없어 보였다.

금황은 이를 악물더니 손가락을 머리 위의 깃털모자에 가져다 대고 무언가 주문을 외웠다.

팟!

깃털모자가 큰 빛을 내뿜으며 산산이 부서졌고, 동시에 그의 몸 위로 금빛 새 모양의 환영이 덧씌워졌다.

금황은 금빛 잔영을 남기며 출구 방향으로 쏜살같이 날아갔고, 석목과 화무공주의 머리 위를 스쳐지나갔다.

“이런!”

그 모습을 본 화무공주의 얼굴에 분노의 표정이 떠올랐다.

청명과를 손에 넣은 금황이 두 사람을 희생양으로 삼고 혼자 빠져나갈 계획으로 비술을 사용한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때, 출구까지 오십 장도 채 남지 않은 거리에서 화무공주와 나란히 달리던 석목이 갑자기 한 손을 뻗어서 그녀의 가는 허리를 감쌌다. 놀란 화무공주가 무언가 말하기도 전에 석목은 검은 가죽부적을 찢었다.

석목의 등 뒤에서 갑자기 검은 빛의 날개가 생겨났다. 그는 화무공주와 함께 허공으로 떠올랐다.

쉬익!

수많은 얼음가시가 두 사람을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두 사람이 방금 전까지 서 있던 자리의 반경 십여 장이 빼곡한 얼음가시로 뒤덮였다.

만약 그대로 땅을 달리고 있었다면 둘 다 화를 면치 못했을 것이다.

화무공주는 허공에 뜬 채 아래를 바라보며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그 순간, 그녀는 석목의 튼튼한 팔이 자신의 허리를 감고 있다는 것을 의식했다. 남자의 체취를 맡은 그녀의 두 뺨이 붉게 물들었다.

한편 빠르게 날아가는 금황은 동굴 입구에 다다르기까지 채 십 장의 거리도 남겨두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얼음전갈은 제자리에서 서서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쾅!

바로 그 순간 동굴 입구 근처의 거대한 얼음이 터졌다.

얼음이 터진 자리에 흩날리는 얼음 안개 사이에서 갑자기 나타난 얼음전갈이 동굴의 입구를 막았다.

“이런!”

화무공주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석목도 낯빛을 흐리며 운철흑도를 더욱 강하게 쥐었다.

입구를 막은 얼음전갈의 몸 위로 갑자기 반투명한 얼음게의 환영이 나타났고, 얼음게는 금황을 향해 한기를 품은 집게를 매섭게 휘둘렀다.

금황은 놀란 표정으로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러나 곧 콧방귀를 뀌며 원형 톱날무기를 날렸다.

무기가 회전하며 얼음게의 집게를 향해 매섭게 날아갔다.

깡! 깡! 깡!

허공에서 금속이 충돌하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금빛으로 회전하는 무기가 순식간에 집게를 가르고 반투명 얼음게의 몸에 꽂혔다.

톱날무기가 게의 몸에 박히자 얼음가루가 사방으로 날렸지만, 무기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회전을 멈췄다.

그 순간 금황이 눈에 힘을 주자 무기에 새겨진 무문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들썩이기 시작했다.

쾅!

금황의 무기가 금빛으로 폭발하자 반투명한 얼음게의 몸이 마치 햇빛에 닿은 눈처럼 수증기로 변해 사라졌다.

그때 갑자기 허공에서 무언가 빠르게 날아오는 소리가 들렸다.

얼음전갈의 입에서 뿜어져 나온 얼음불꽃이 금황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금황은 몸을 움직여 피하려 했으나 얼음불꽃은 너무나 빨랐다. 그저 얼음불꽃에 아주 살짝 스쳤을 뿐인데도 그의 두 다리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퍽!

금황의 몸이 바닥에 떨어지면서 얼어붙은 두 다리는 가루가 되어버렸다.

“으악!”

비명을 지르며 땅바닥에 쓰러진 금황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얼음전갈을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에 절망적인 표정이 떠올랐다.

석목과 화무공주는 허공에 뜬 채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때 화무공주가 잠시 머뭇거리더니 품속에서 은색으로 빛나는 부적 두 장을 꺼냈다. 그녀는 그중 한 장을 석목의 손에 쥐어주었다.

“이건 스승님께 하사받은 순간이동 부적이에요. 사용하면 무작위로 수십 리 떨어진 곳으로 이동하죠. 이전에 황무지에서 습격을 받았을 때 한 장을 사용했고, 마지막으로 남은 두 장이에요.”

말을 마친 그녀는 석목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손에 든 부적을 몸에 가져다 댔다. 은색 빛이 그녀의 몸을 순식간에 감쌌다.

은색 빛이 번쩍이는 순간 석목의 손이 가벼워지더니 화무공주가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석목은 손에 아직 남아 있는 향기를 느끼며 손에 든 은색 부적을 강하게 쥐었다.

그러나 그는 부적을 즉시 발동시키지 않았다. 석목은 이제 색이 많이 옅어진 검은 날개를 움직여 공간의 중앙에 있는 은색 나무를 향해 날아갔다.

그 순간 동굴의 입구에 있던 얼음전갈이 석목의 목적을 꿰뚫어본 듯 우렁차게 소리쳤다. 전갈은 멀지 않은 곳에 쓰러져 두 다리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금황을 바라보며 잠시 머뭇거리는 듯하더니, 금황의 몸 위에 올라탔다.

석목은 은색 나무를 향해 날아가면서도 계속 등 뒤의 상황을 경계했다. 그의 등에 자란 검은 날개는 거의 투명하게 보일 만큼 색이 옅어진 상태였다.

석목이 은색 나무에서 일 장 정도 거리까지 가까이 다가갔을 때 등 뒤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연못 근처에 있는 얼음덩어리가 폭발하더니 그 사이에서 나온 얼음전갈이 석목을 향해 돌진해왔다.

석목은 뒤에서 공격하는 전갈을 무시한 채 단번에 청명과 세 개를 땄다. 이어 몸을 홱 돌린 그는 손에 들려 있는 운철흑도를 휘둘렀다.

지척까지 다가온 얼음전갈을 향해 열세 개의 검광이 몰아치면서, 연이어 충격음이 터져 나왔다.

열세 개의 붉은 검광은 얼음전갈의 몸에 닿는 순간 사라졌지만, 전갈의 움직임을 잠시나마 지연시켰다.

석목은 그 순간을 틈타 마지막 청명과를 따고 나서 순간이동 부적을 발동시켰다.

화악!

그때 코앞까지 다가온 얼음전갈의 공격이 석목을 감싸고 있는 은색 빛에 닿았다. 이미 흐릿해진 석목의 모습이 흔들리더니 그 자리에서 자취를 감췄다.

* * *

중부구역 어느 산간분지의 땅에서 갑자기 은색 빛이 나타났다.

그 안에서 석목이 비틀거리며 나와 바닥에 굴렀다. 그는 몸을 휘청거리며 가까스로 일어났지만 곧 다시 쓰러졌다.

얼음전갈이 마지막에 날린 일격의 충격이 절반 정도는 그의 몸에 전해진 것이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풍치도법으로 상대 공격의 위력을 경감시킨 상태였고, 미리 사용한 금갑부의 보호를 받았기 때문에 큰 상처는 입지 않을 수 있었다.

석목은 품속의 청명과를 확인한 뒤 한숨을 돌렸다.

이어 석목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완전히 낯선 풍경이었고 설산도 보이지 않았지만, 주위에 괴수의 흔적은 없었다.

화무공주가 어디로 전송되었는지도 지금으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작게 한숨을 쉰 석목은 회춘부를 꺼내 등 뒤의 상처에 붙였다.

일각 후, 석목은 근처의 높은 산봉우리 정상에 올라 가죽 지도를 펼쳐들고 있었다.

초라했던 지도에는 이전과 달리 새로운 내용이 가득 표시돼 있었다. 석목이 마랑의 지도를 보고 그 내용을 상당부분 외워서 자신의 지도에 그대로 그려 넣은 것이었다.

석목은 탄월식을 수련하면서 정신력뿐만 아니라 기억력도 상당히 향상됐다. 뭐든 한 번 보고 전부 외워버리는 수준까지는 아니었지만, 그에 근접할 만큼 뛰어난 수준인 것은 틀림없었다.

그는 지도와 주위의 지형을 대조해 빠르게 자신의 위치를 판단했다. 이곳은 설산에서 서북쪽으로 30리가량 떨어진 곳으로 다수흉망이 있을지도 모르는 곳 중 한 곳과 매우 가까웠다.

석목이 지도를 챙겨 넣고 산봉우리 아래로 내려가 지도에 표시된 곳을 향해 조심스럽게 이동했다.

* * *

설산에서 서쪽으로 이십 리 떨어져 있는 곳의 빽빽한 수풀 속에서 한 여인이 달리고 있었다.

휙! 휙! 휙!

수십 개의 검은색 견과가 마치 화살처럼 여인에게 쏘아져 날아갔다.

우지직!

날아간 견과들은 돌보다 단단해서 나무를 가볍게 뚫었고, 다소 작은 나무는 단번에 쓰러뜨렸다.

그러나 그만큼 위력이 상당한데다 수도 많은 검은 견과는 달리는 여인의 몸에는 단 하나도 명중하지 못했다.

그 여인은 잔뜩 화가 난 표정을 짓고 있는 화무공주였다.

옅은 푸른빛에 감싸인 그녀는 질풍처럼 빠르게 숲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그녀는 날아오는 견과를 바람에 휘날리는 버들가지처럼 재빠르게 움직이며 가볍게 피했다.

뒤쪽의 삼림에는 이십여 마리의 회색 원숭이가 커다란 나무를 뛰어넘으며 화무공주를 쫓고 있었다.

이 회색 원숭이들은 한 마리 한 마리가 전부 후천중기 이상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원숭이들은 손에 검은 견과를 들고 있었고, 그것을 화무공주에게 투척했다.

화무공주와 원숭이들은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펼치며 순식간에 수백 장을 내달렸다.

그러던 중 전신에 검은 털이 길게 자란 원숭이가 갑자기 날카롭게 소리쳤다. 그러자 회색 원숭이들이 모두 움직임을 멈추더니, 화무공주를 향해 과시하듯 울부짖은 원숭이 무리는 검은 원숭이의 인솔 하에 왔던 길로 빠르게 되돌아갔다.

화무공주는 얼마의 거리를 더 달린 뒤 원숭이들이 더 이상 쫓아오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그제야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러나 살짝 풀리는 듯했던 그녀의 얼굴이 다시 고통으로 찌푸려졌다. 그녀의 옷은 몸 곳곳에 입은 찰과상으로 인해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화무공주는 석목보다 확연히 운이 나빴다. 회색 원숭이 무리 근처로 전송된 그녀는 상황이 불리하다고 판단해 즉시 경신부를 사용했다. 덕분에 몸을 피하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경상을 입었다.

화무공주는 품속을 뒤적이더니 녹색 부적을 꺼내 몸에 붙였다.

곧 녹색 부적이 반짝이자. 그녀의 몸에 난 상처들이 육안으로 보일 정도로 빠르게 회복됐다.

상처를 치료한 화무공주는 숨을 길게 내뱉고는, 어딘가를 향해 다시 몸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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