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109화 (109/916)

109화. 모험을 감행하다

협곡에서 맑은 계곡물이 구불구불 흘러 내려오는 중부구역의 한 산골짜기.

푸른 산과 푸른 물이 아름답게 펼쳐진 이곳에 파괴된 조각상이 하나 세워져 있었다.

그 조각상은 반인반수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만약 석목이 그 자리에 있었다면, 조각상이 이전에 그가 협곡에서 봤던 것과 상당히 닮았다는 것을 알아챘을 것이다.

그때 크고 작은 두 개의 그림자가 멀리서 빠르게 다가오더니 산골짜기 앞에서 멈췄다.

그림자의 주인은 해족의 성녀 향주와 그녀의 호위인 소고였다.

“이곳이….”

향주의 손에는 주먹 만 한 크기의 파란 수정구슬이 들려 있었다. 구슬 속의 바늘은 산골짜기의 안쪽 방향을 가리키며 떨림을 멈추지 않았다.

수정 구슬을 챙겨 넣은 향주는 수풀 속에 서 있는 조각상을 보고 기쁜 표정이 되어 산골짜기 안쪽으로 걸어갔다.

바로 그때, 커다란 흰 빛줄기가 산골짜기 안에서 빠른 속도로 날아와서 향주를 덮쳤다.

“성녀님! 조심하세요!”

소고가 놀라 소리쳤다. 그러나 향주의 뒤쪽에서 두세 걸음 떨어져 있던 그는 공격을 막아줄 틈이 없었다.

비록 공격을 전혀 예상도 하지 못한 상황이었지만, 향주는 무척 빠르게 반응했다. 그녀는 바닥을 찍고 몸을 돌리며 가볍게 옆으로 피했다.

그러나 향주를 덮친 그것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방향을 전환하더니 다시 공격해왔다.

쾅!

그때 가까스로 뛰어든 소고가 삼지창을 휘둘러서 흰색 빛줄기를 막아냈다.

그러나 소고는 빛줄기의 거대한 힘에 한 발자국 뒤로 밀려났다. 그는 삼지창을 쥔 손아귀가 어렴풋이 저려오는 것을 느끼며 얼굴이 창백해졌다.

막 한숨을 돌리려던 소고는 자신의 삼지창을 보고 이번에는 얼굴이 흙빛이 되었다. 흰색 빛줄기가 창끝에 바짝 달라붙어서 삼지창이 꼼짝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제야 소고는 그 흰 빛줄기의 정체가 무엇인지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그것은 팔뚝만큼이나 두꺼운 거미줄이었다.

하얀 거미줄은 목표물을 명중시키지 못하자 다시 돌아가려 했다. 그러자 삼지창을 꼭 쥐고 있던 소고까지 거미줄과 함께 끌려가기 시작했다.

그 순간 파란 검광이 번득이며 하얀 거미줄을 신속하게 베었다.

촤악!

그러자 하얀 거미줄이 소리와 함께 깨끗하게 절단됐다.

그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향주가 왼손에 산호를 든 채 서 있었고, 오른손에는 뱀처럼 구불거리는 곡도가 들려 있었다.

칼날에서 파란 빛이 날름거리는 곡도는 언뜻 보아도 무척이나 대단한 물건 인 듯 보였다. 방금 전 거미줄을 가른 파란 빛은 바로 이 도에서 나온 것이었다.

절단되고 남은 거미줄이 산골짜기로 돌아가고 나서 잠시 뒤, 골짜기의 수목 사이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커다란 소리와 함께 튀어나왔다.

그것은 몸의 높이가 사람 키만큼 큰 거대한 거미였다.

거미의 전신에는 두껍고 날카로운 털이 가득했고, 등에는 황색과 검은색이 어우러진 범 무늬가 있었다. 입에는 녹색 빛으로 점철된, 비수처럼 날카로운 독니 두 개가 자리 잡고 있었다.

거미는 각자 크기가 다른 네 쌍의 눈에서 섬뜩한 빛을 내뿜으며 향주와 소고를 노려보았다.

“호반마주(虎斑魔蛛)!”

소고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모습을 보아하니 선천의 경지에 오른 지 얼마 안 된 것 같아요. 골짜기의 물건은 포기할 수 없어요.”

향주가 담담하게 말을 마치자 그녀의 곡도와 산호에서 동시에 빛이 반짝였다.

* * *

한편 중부구역의 다른 곳.

후천 대원만의 야만족 다섯이 원을 형성해 거대한 붉은 호랑이를 포위하고 있었다.

선천등급인 호랑이는 창으로 관통당한 뒷다리를 절뚝이고 있었다.

이 다섯 야만족은 흉만부족의 야만족으로, 움직임이 상당히 재빠른데다 서로 호흡도 잘 맞았다. 포위당한 호랑이 괴수는 몇 번이고 밖으로 돌진하려 했으나 번번이 야만족들에게 막혔다.

그리고 멀지않은 곳에는 참혹하게 훼손된 네다섯 구의 야만족 시체가 피를 흘리며 널브러져 있었다.

* * *

평만과 흉만, 인족, 해족 가릴 것 없이 실력이 있는 자들은 모두 중부구역으로 진입했다.

그러나 중부구역은 위험이 만연한 곳이었다. 사람이 괴수를 사냥하기도 했지만 그와 반대로 괴수의 먹이가 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중부구역의 어느 검은 산봉우리 아래에는 몇 장 높이의 검은 동굴이 있었다. 동굴의 내부는 어둡고 습해보였으며 이끼가 가득 자라 있었다.

그리고 동굴 입구 근처에서는 누군가 바위 뒤에 몸을 숨기고 조심스럽게 머리를 내민 채 동굴의 내부를 관찰하고 있었다.

그는 바로 석목이었다.

석목의 상태는 아주 좋지 않아 보였다. 그의 두 눈에는 핏발이 서 있었고 표정은 매우 초조해 보였다,

석목이 중부구역에 진입한지도 이미 사흘이 지났다. 사냥이 끝날 때까지는 이제 고작 이틀이 남아 있었다.

그는 민도가 준 지도를 따라 다수흉망의 흔적을 찾아다녔으나 모두 허사로 돌아갔다. 지금 눈앞에 있는 이 동굴이 지도에 표시된 마지막 위치였다.

동굴을 바라던 석목이 잔뜩 찌푸린 미간을 서서히 풀더니 눈을 반짝였다.

이 동굴은 뱀 계열의 괴수가 거주하기에 딱 적합해 보이는 곳이었다. 동굴의 안쪽에서는 비린내가 은은하게 풍겨 나왔다.

그러나 석목은 점점 더 눈을 반짝이며 바라볼 뿐, 경솔하게 안으로 뛰어 들어가지는 않았다.

이윽고 석목은 깊게 호흡하며 마음을 가라앉힌 뒤, 천천히 동굴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는 발소리를 완전히 죽이기 위해 아주 조심스럽게 발을 내딛었다.

동굴의 안쪽은 매끄러운 검은색 암석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깊이 들어갈수록 점점 어두워져서 십 장 가량 들어가니 완전히 암흑에 휩싸였다.

그러나 시력이 매우 뛰어난 석목에게 어둠은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다.

동굴의 내부는 곧게 뻗어 있었으며 완만한 내리막길이었다. 석목이 일각 가까이 걸어 들어갔으나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석목은 전혀 짜증난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다. 그는 한손에 운철흑도를, 다른 한손에 소매 속의 부적을 쥐고 계속 걸었다.

바로 그때, 전방의 굽어진 길을 지나자 광활한 공간이 드러났다. 드디어 동굴의 가장 깊은 곳에 도착한 것이다.

석목은 동굴의 벽에 몸을 바짝 붙였다. 그리고 한쪽 눈만 내밀어서 안쪽을 살폈다.

눈앞의 지하 공간은 천장에 거대한 종유석들이 거꾸로 매달려 있는, 자연적으로 형성된 동굴이었다.

내부에는 습기가 가득한 듯, 천장의 물방울이 가끔 아래의 못으로 떨어지는 가벼운 소리가 동굴 안에 울려 퍼졌다.

순간 안쪽을 살피던 석목의 표정이 밝아졌다. 못 옆의 둥지에 거대한 검은 구렁이가 몸을 꼬고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검은 구렁이의 몸은 촘촘한 비늘에 덮여 있었고 그 위에 붉은 화염 무늬가 있었다.

석목이 더 기쁜 표정을 지었다. 그 화염무늬는 다수흉망의 또 다른 상징이었다.

그러나 검은 구렁이의 머리로 시선을 향한 순간 석목의 표정이 굳어졌다.

눈을 감고 숙면을 취하고 있는 다수흉망의 머리는 무려 세 개였다.

순간 석목은 전신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그는 잠시 주저하다가 조용히 뒤로 물러나 조심스럽게 왔던 길을 되돌아 나왔다.

동굴에서 벗어난 석목은 백 장이나 떨어진 숲속까지 몸을 피한 후에야 한숨을 돌렸다.

비록 다수흉망을 찾긴 했지만, 그것은 석목의 예상을 크게 벗어난 것이었다. 머리가 셋 달린 삼수흉망(三首凶蟒)은 선천중기의 강력한 괴수였다.

선천초기의 쌍수흉망이라면 온갖 수단을 다 사용해서 어떻게든 상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선천중기의 삼수흉망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다행히 삼수흉망이 깊은 잠에 빠져 있었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도망치는 것조차 어려웠을 것이다.

석목은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망설이고 고민했다.

만약 전투를 한다면 생사를 걸어야만 했다. 게다가 승리할 가능성도 매우 희박했다.

그렇다고 주어진 시간 내에 다른 다수흉망을 찾아낼 가능성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물론 화무공주가 지계의 존재에게 저주에 봉인을 걸어달라는 부탁을 해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토템의 저주가 터지기 전에 연맹에 돌아갈 수 있을지 없을지도 알 수 없었다.

또 시간 내에 연맹에 도착한다 해도, 진짜로 지계강자가 그를 위해 힘을 써줄 것이라는 보장도 없었다.

석목은 성산에 머무는 동안 민도에게 토템저주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민도의 말에 따르면, 지계강자의 봉인은 토템의 저주뿐만 아니라 체내 대부분의 진기와 법력까지 한꺼번에 봉인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는 다시 말하면 운 좋게 살아남는다고 해도 평범한 사람으로 지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럴 순 없어!”

석목의 눈동자에서 머뭇거림이 점차 사라졌다.

그는 진정한 강자가 되겠다고 어머니의 묘 앞에서 맹세했다. 어머니를 실망시킬 수는 없었다.

뿐만 아니라 천음차녀와도 약속했다. 그는 서른 살이 되기 전에 선천무인이 되어 천음종으로 그녀를 찾아가겠다고 했다.

이윽고 석목은 무언가 좋은 생각이 떠오른 듯 동굴 근처의 숲속을 정찰하기 시작했다.

“여기가 좋겠군.”

넓은 공터에서 발길을 멈춘 석목은 혼잣말을 하더니 품속에서 작은 주머니를 꺼냈다. 그 안에는 부적과 영석 등이 들어 있었다.

이것들은 다수흉망을 사냥하기 위해 석목이 사전에 준비한 물건들이었다. 그러나 선천중기의 삼수흉망을 상대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것들이 예상했던 것만큼의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석목은 땅바닥의 낙엽을 치운 뒤 몸을 숙였다. 그리고 땅바닥에 부문을 하나씩 새기기 시작했다. 곧 바닥에 진법의 윤곽이 형성되었다.

한 시진 후, 손을 멈춘 석목의 이마에는 땀이 살짝 맺혀 있었다.

석목은 자신의 힘만으로 삼수흉망을 상대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이곳에 함정을 설치해두고 삼수흉망을 유인해 상대할 계획을 세운 것이었다.

이어 석목은 그늘진 곳을 찾아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단약을 복용했다.

해가 서쪽으로 넘어갈 때쯤 체내의 법력을 전부 회복한 석목이 몸을 일으켰다. 그는 함정진법을 다시 한 번 꼼꼼하게 확인한 뒤 동굴의 입구를 향해 걸어갔다.

이제 하늘은 완전히 검게 물들어서 밝은 달이 별들 사이에 떠 있었다.

석목은 괴수의 가죽으로 제작한 경신부를 꺼내 몸에 가져다 댔다. 푸른빛에 감싸인 그의 몸이 한껏 가벼워졌다.

석목은 동굴 안으로 들어가려다가, 순간 머릿속에서 갑자기 연나를 떠올렸다.

그는 이전에 연나를 딱 한 번 소환한 이후로는 몇 년 동안 그에 대해 완전히 잊고 있었다.

잠시 주저하던 석목은 주문을 외웠다. 그의 앞에 검은 연기가 솟아나더니 그 사이에서 가느다란 해골이 나타났다.

해골의 뼈는 대체로 회색이었지만, 오른팔과 두개골은 다른 뼈들과 달리 하얀색이었다. 눈가에는 녹색 영혼의 불이 반짝이고 있었고, 몸에는 낡은 뼈갑옷을 걸치고 몸의 절반만한 넓은 뼈칼을 들고 있었다.

석목의 두 눈이 동그래졌다.

눈앞에 있는 위풍당당한 해골전사가 자신이 이전에 소환했던 너덜너덜한 해골이라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석목은 잔뜩 놀란 표정으로 연나의 주위를 한 바퀴 돌아보았다.

그는 연나의 지금 실력이 후천초기의 수준에 다다랐다는 것을 빠르게 감지했다.

석목은 경악하며 중얼거렸다.

“몇 년 안 본 사이에 이토록 성장했을 줄은 몰랐구나….”

처음 연나와 계약을 맺고 소환했을 때만 해도, 그것의 실력은 고작 쉬체지술 7단계에 불과한 정도였다. 게다가 너무 멍청해서 일반적인 수련자와 싸워도 이길 수 없을 것 같았다.

연나는 망연한 표정으로 천천히 석목을 보았다.

연나와 시선을 맞추던 석목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연나의 영혼의 화염 속에서 감정의 파동이 어렴풋이 느껴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자세히 보았을 때 그 느낌은 완전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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