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화. 유인
“설마 해골도 감정이 있는 것인가?”
그러나 석목은 터무니없는 생각을 떨쳐버리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 연나에게 명령을 내렸다.
“이 동굴의 깊은 곳에 강력한 괴수가 있으니 가서 그것을 끌어내라.”
계약에 따라 알 수 없는 힘이 발휘되면서, 연나가 동굴의 깊은 곳으로 힘차게 걸어갔다.
그 모습을 본 석목이 다급하게 한마디를 덧붙였다.
“발소리를 죽여!”
그의 말에 연나가 막 들어 올린 오른쪽 다리의 움직임을 멈췄다. 연나의 눈가에서 녹색 영혼의 화염이 살짝 떨렸다.
연나는 오른발을 천천히 내려놓더니 다시 천천히 왼쪽 다리를 들어올렸다.
느린 걸음으로 살금살금 걷는 연나의 모습은 뭔가 익살맞게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발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석목은 연나의 느릿느릿한 모습을 보고 할 말을 잃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연나에 대해 큰 기대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정도만 해도 충분히 기대 이상이었다.
연나가 동굴로 들어가자 석목은 숨을 가볍게 내쉬고 다시 숲속으로 몸을 숨겼다.
동굴 안의 상당히 깊은 곳까지 들어간 연나는 발소리를 죽이고 걷는데 익숙해진 듯, 점점 걸음에 속도가 붙었다.
광활한 공간의 멀지 않은 곳까지 다가간 연나는 눈가의 영혼의 불꽃을 들썩였다. 연나의 본능이 동굴의 깊은 곳에서 아주 위험한 기운을 느끼고, 더 이상 가까이 가지 말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그러나 연나는 계약의 힘에 의해 석목의 명령을 거부할 수 없었고,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연나는 더욱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내딛으며 몸의 기운도 감췄다.
곧 동굴의 가장 깊은 곳에 도착한 연나의 눈에 삼수흉망의 모습이 들어왔다. 순간 연나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기운을 감추었으나, 완벽하게 지우지는 못했다.
연나의 시선이 삼수흉망에 닿는 순간, 흉망의 몸이 꿈틀거리더니 세 개의 뱀 머리에 달린 여섯 개의 눈을 동시에 떴다.
몸을 일으킨 뱀의 얼음처럼 차가운 시선이 연나를 향했다.
연나는 잠시 멈칫하더니 눈가의 영혼의 화염을 반짝였다. 그리고 주저 없이 몸을 돌려서 왔던 길 그대로 뛰쳐나갔다.
그가 몸을 돌려 달아나는 순간 검은 빛줄기가 허공을 가르고 날아왔다. 빛줄기는 연나가 방금 전까지 서 있던 자리에 매섭게 충돌했다.
콰르릉!
빛줄기에 강타당한 바닥에 일 장 깊이의 구멍이 파이고, 돌조각이 사방에 날리면서 코를 찌르는 고약한 냄새가 퍼졌다.
삼수흉망의 왼쪽 머리가 입을 크게 벌리고 분노에 찬 눈빛으로 포효했다.
예전이라면 이렇게까지 화가 나지 않았겠지만, 지금 다수흉망은 뱃속에 새로운 생명을 품은 상태라 충분히 길고 깊은 수면을 취해야 했다.
그런데 이런 시기에 겁도 없이 자신의 보금자리에 침입해 수면을 방해했으니, 용서할 리가 없었다.
삼수흉망은 거대한 몸을 좌우로 흔들며 빠른 속도로 연나를 쫓았다.
그때, 이미 통로 안으로 몸을 피한 연나는 전속력으로 달아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정도의 속도로는 삼수흉망의 추격에서 도망갈 수 없었다.
통로의 입구에 들어간 삼수흉망은 몸을 살짝 수축하더니, 마치 활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빠르게 튕겨져 나가서 순식간에 연나를 따라잡았다.
삼수흉망의 오른쪽 머리가 입을 크게 벌려서 날카로운 이빨로 연나를 물어뜯으려 했다.
그러나 바로 그때, 연나의 몸이 갑자기 흐릿해졌다. 연나는 은색 잔상을 남기고 몇 장 밖으로 벗어나면서 삼수흉망의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콰르릉!
삼수흉망은 이런 상황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듯, 몸을 가누지 못하고 동굴의 벽에 머리를 강하게 부딪혔다. 동굴 전체가 흔들리며 무수한 돌조각이 바닥으로 쏟아졌다.
연나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지만 등 뒤에서 삼수흉망이 벽에 부딪히는 거대한 소리를 들었다. 연나는 놀란 듯 영혼의 화염을 마구 떨며 더욱 빠르게 달렸다.
삼수흉망이 고개를 들었을 때, 연나는 이미 동굴의 출구 가까이 도망친 상태였다.
분노에 찬 삼수흉망은 포효하며 다시 연나를 쫓았다. 세 개의 머리 중 오른쪽 머리가 다시 입을 벌려 연나를 향해 검은 빛줄기를 발사했다.
연나의 몸이 다시 한 번 흐릿해지더니, 이번에도 잔상만을 남기고 순식간에 동굴 밖으로 빠져나갔다.
콰르릉!
연나의 뒤에서 폭발음이 들려왔다.
두 번의 고속 이동을 한 연나는 지친 듯 영혼의 화염이 상당히 어두워진 상태였다. 그러나 감히 멈출 엄두를 내지 못하고 석목이 함정을 설치해놓은 숲속을 향해 내달렸다.
한편 두 번이나 목표를 놓친 삼수흉망은 격분했다.
주위 수십 리의 영역을 아우르는 패자로서 고작 후천초기의 하등한 존재를 처치하지 못하다니, 이런 굴욕은 처음이었다.
쾅!
길이가 십 장이 넘는 삼수흉망의 거대한 몸이 동굴의 입구를 박차고 나오자 돌조각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숲속에서 한 울창한 나무의 가지 위에 포복해 있던 석목은 그 광경을 보고 반색을 했다. 그는 파천궁에 추풍전을 걸었다.
삼수흉망은 다시 순식간에 연나의 뒤에 따라붙었다.
삼수흉망은 거대한 몸을 좌우로 움직이며 두꺼운 꼬리로 지면을 쳐서 연나를 향해 뛰어들었다. 동시에 왼쪽 머리가 입을 벌려 검은 빛줄기를 쏘려 했고, 오른쪽 머리는 입을 벌려 연나를 물어뜯을 준비를 했다.
연나는 뒤에서 전해져오는 엄청난 법력의 파동을 느꼈지만, 더 이상은 속도를 올릴 기력이 없었다. 어떻게든 공격을 피하고자 달리던 연나는 갑자기 바닥에 엎드렸다.
바로 그때,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허공에 울려 퍼졌다.
어디선가 화살이 삼수흉망을 노리고 날아왔다.
푸른색 부문이 가득 새겨진 화살은 놀라운 속도로 공기를 가르고 날아들어서 삼수흉망의 오른쪽 머리에 박혔다.
삼수흉망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추풍전에 맞은 오른쪽 머리를 미친 듯이 좌우로 흔들어 바닥을 내리찍었다.
콰르릉!
지면에 커다란 구멍이 생기며 흙먼지가 피어오르고, 강풍이 주위에 휘몰아쳤다. 바닥에 엎드려 있던 연나도 강풍에 휩쓸렸다.
연나의 몸은 마치 하늘에 흩날리는 버들가지처럼 숲속으로 떠밀려 날아갔다.
연나는 날아가면서 받은 충격으로 커다란 상처를 입은 듯 바닥에 쓰러져 꼼짝도 하지 않았다.
석목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 이유는 연나가 강풍에 날아갔을 뿐 몸에는 거의 충격을 받지 않은 것을 똑똑히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워낙 다급한 상황이라 연나에 대해서 자세히 생각할 틈이 없었다.
석목은 다시 추풍전을 뽑아서 활시위에 걸었다.
쉬익!
푸른색 화살이 유성과 같은 기세로 가운데 머리의 왼쪽 눈을 향해 날아갔다.
가운데 머리는 입을 살짝 벌리고 얇고 긴 붉은 혀를 내밀어 푸른색 화살을 정확히 가격했다.
그러나 이는 삼수흉망이 추풍전의 위력을 너무 과소평가한 것이었다. 혓바닥은 화살의 측면을 가격하긴 했지만 튕겨내지는 못했다.
푸른색 화살은 살짝 방향만 틀어진 채로 날아와 가운데 머리의 입가에 절반 정도 박혔다.
또 다시 상처를 입은 삼수흉망은 큰 소리로 울부짖었다. 그리고 연나를 더 이상 상대하지 않고 화살이 날아온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전신의 기운을 전부 숨긴 석목은 점점 다가오는 삼수흉망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팔을 살짝 움직여서, 손가락에 연결된 투명한 실을 먼 곳으로 날려 몇 장 떨어진 숲속의 나뭇가지를 흔들었다.
공터를 지나가다가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것을 본 삼수흉망이 왼쪽 머리의 입을 벌려서 그쪽을 향해 두꺼운 검은 빛줄기를 발사했다.
바로 그 순간, 갑자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숲속의 공터 주위에서 갑자기 팔뚝 굵기의 노란 빛줄기가 솟아오르더니, 허공에서 엉겨 붙어서 거대한 원형 그물망으로 변한 것이다.
그물망은 순식간에 삼수흉망의 몸을 덮었다. 삼수흉망은 몸이 마치 산 아래 짓눌린 것처럼 바닥에 납작 엎드린 모양새가 되었다.
그러자 삼수흉망의 움직임이 매우 느려졌다. 원형 그물망의 노란 빛에 구속능력이 있는 듯했다.
이 광경을 본 석목은 크게 기뻐하며 나무에서 뛰어내렸고, 곧 다음 행동을 취하려 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삼수흉망이 여섯 개의 눈을 흉악하게 번뜩이더니 굵은 몸을 격렬하게 비틀었다. 그러자 삼수흉망의 몸에서 검은 연기가 뿜어 나와서 주위의 노란 빛줄기와 충돌했다.
노란 빛줄기가 불안하게 흔들리며 깨질 기미를 보이자 놀란 석목은 급히 파란색 부적을 던졌다. 금지에 들어오기에 전 화무공주에게 받은 한음부였다.
파란 부적이 허공에서 반짝이자, 파란색의 길쭉한 촉수 여덟 개가 노란 빛줄기 사이로 뻗어 들어가서 삼수흉망의 몸을 강하게 묶었다.
격노한 삼수흉망이 다시 한 번 몸을 격렬하게 비틀었고, 두 배로 늘어난 검은 연기가 파란색 촉수와 노란 그물에 충돌했다.
그러나 한음부는 역시 중급부적다웠다. 조금 떨리기만 할 뿐 조금도 부서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밝은 표정으로 몸을 날린 석목은 공터 근처의 나뭇가지 위로 올라갔다. 금갑부를 사용한 그의 몸에는 금빛이 돌고 있었다.
석목은 발버둥치는 삼수흉망을 바라보며 망설임 없이 뛰어들었다.
그는 허공에서 팔을 세차게 휘둘러서 주먹 만 한 크기의 주머니를 삼수흉망의 머리를 향해 던졌다.
삼수흉망은 가운데 머리를 일 장 가까이 치켜들어 석목을 노려보며 입을 크게 벌렸다.
그러나 석목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화염구를 날려 주머니에 명중시킨 석목은 반동을 이용해 공중에서 한 바퀴 돌아서 바닥에 착지했다.
쾅!
주머니가 터지며 매캐한 유황 냄새를 내뿜는 황색 분말이 쏟아져 삼수흉망을 뒤덮었다.
이 황색 분말은 금지로 출발하기 전 다수흉망의 힘을 억제하기 위해 석목이 직접 제작한 것이었다.
따다닥!
황색 분말이 삼수흉망의 몸에 닿는 순간, 무언가 자잘하게 터지는 소리가 울려 퍼지며 삼수흉망의 머리를 덮은 비늘이 상당부분 제거됐다. 특히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왼쪽 머리는 표면의 비늘이 절반 이상 녹아내렸다.
다수흉망이 세 개의 머리를 치켜들며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그와 동시에 몸에서 뿜어 나오던 검은 연기도 순식간에 절반 이상이나 줄어들었다.
석목은 한 발로 바닥을 박차고 몇 장 높이를 뛰어오르며 등 뒤의 운철흑도를 뽑아들었고, 이어 체내의 법력을 세차게 끌어올려 도신에 주입했다.
쾅!
그러자 운철흑도는 도신에 몇 척 높이의 화염이 활활 타오르는 거대한 화염도로 변했다.
“핫!”
석목이 크게 기합을 지르며 화염도를 번개처럼 내리찍었다.
놀란 삼수흉망은 옆으로 몸을 피하려 했으나, 노란 빛줄기와 한음부의 촉수에 이중으로 속박당한 탓에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제한적이었다.
화염도가 삼수흉망의 왼쪽 머리가 달린 목을 매섭게 베었다.
비늘의 보호를 받지 못한 목에 선명한 붉은 선이 나타나더니, 거대한 머리가 몸에서 분리되어 바닥에 떨어졌다. 비린내가 나는 뱀의 뜨거운 피가 잘려진 목에서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바로 지척에 있던 석목은 쏟아지는 뱀의 검붉은 피를 흠뻑 뒤집어썼고, 순식간에 전신이 핏빛으로 물들었다.
석목은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더욱 강렬하게 타오르는 화염도를 휘둘렀다. 열세 개의 검영이 남은 두 머리를 향해 거세게 몰아쳤다.
왼쪽 머리가 잘려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던 삼수흉망은 화염도가 몸에 닿으려 하자 그제야 반응을 했다.
캬악!
삼수흉망의 남은 두 머리가 크게 포효했다. 그러자 몸이 붉게 변하기 시작하더니, 중간의 머리가 빠르게 입을 놀려서 한입에 운철흑도를 물었다.
운철흑도가 불을 두려워하지 않는 삼수흉망의 입에 물리자 붉은 검광이 한순간에 전부 흩어져 사라졌다.
놀란 석목은 온 힘을 다해 삼수흉망의 입에서 운철흑도를 뽑아내려 했다. 그러나 그가 무엇보다 자랑으로 여기던 힘은 선천중기의 흉망 앞에서는 전혀 통하지 않았다.
그 순간 삼수흉망의 오른쪽 머리가 고개를 돌려 석목을 물려 했다. 그러나 아직 한음부의 파란색 촉수에 얽매여 있어서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했다.
그때 가운데 머리가 갑자기 맹렬하게 머리를 흔들어서 운철흑도를 쥔 석목을 멀리 날려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