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화. 거대한 기세
삼수흉망이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거대 원숭이는 팔을 미친 듯이 휘둘러서 뱀의 몸을 주위의 숲과 절벽을 향해 사정없이 내려치기 시작했다.
퍽! 퍽! 퍽!
둔탁한 파열음이 눈 깜짝할 사이에 수십 번이나 연이어 울렸다.
그와 함께 바닥이 커다랗게 파이고 가까이에 있는 숲이 모두 파괴됐으며, 주위의 절벽은 뱀의 피로 물들었고, 도처에는 떨어져 나온 뱀의 비늘이 흩어져 있었다.
충격이 계속될수록 삼수흉망의 저항도 점점 약해졌다. 결국 삼수흉망의 몸이 기운 없이 축 늘어졌다.
퍽!
거대 원숭이는 팔을 휘둘러 삼수흉망의 몸을 절벽에 매섭게 메다꽂았다. 산석이 우르르 무너져 내렸고, 뱀의 머리는 벽에 그대로 박혔다.
거대 원숭이는 다시 하늘을 향해 크게 울부짖으며 뱀의 꼬리를 놓더니, 절벽을 향해 바람처럼 달려가서 주먹으로 뱀의 머리를 세차게 두들겼다.
삼수흉망의 머리를 노린 주먹질은 이삽십 번이나 이어진 뒤에야 멈췄다.
결국 충격을 버티지 못한 절벽이 흔들리더니 붕괴했다. 원숭이의 몸에도 산석이 쏟아졌으나 아무 상처를 입히지 못하고 전부 튕겨져 나갔다.
삼수흉망의 가운데 머리는 이제 거의 곤죽이 되어 있었다.
거대 원숭이는 입을 크게 벌리더니 삼수흉망을 향해 은색 빛을 뿜어내자, 곧 검은 수혼이 그 은색 빛에 둘러싸여 끌려 나왔다.
검은 수혼은 필사적으로 버티려 했지만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 거대 원숭이에게 삼켜졌다.
거대 원숭이는 고개를 들고 포효하며 두 손으로 가슴을 세차게 두드렸다. 그 순간 원숭이의 눈에서 광채가 빠르게 흩어지더니, 거대한 몸이 굳어버린 것처럼 그대로 뒤로 넘어졌다.
석목은 ‘자신’이 선천중기의 괴수를 처치하는 모습을 구경꾼처럼 지켜보며 매우 놀라워하던 와중에, 갑작스러운 현기증을 느끼고 잠에 빠져들었다.
거대 원숭이의 몸에서 뚝뚝 소리가 들리더니 거대한 몸이 빠르게 축소됐고, 곧 석목의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옷이 전부 찢어진 석목은 벌거벗은 채 그 자리에 누워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제 모든 것이 평온을 되찾았지만, 난잡하게 어질러진 주위 풍경은 방금 전의 싸움이 얼마나 격렬했는가를 보여주었다.
바로 그때, 쓰러진 나무 사이에서 몸이 참혹하게 파괴된 해골 연나가 튀어나왔다.
연나는 눈가에서 영혼의 화염을 반짝이며 석목을 향해 빠르게 기어갔다.
잠시 후, 석목의 곁에 다다른 연나는 무언가 생각에 빠진 듯 멍하니 석목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연나는 잠시 주저하다가 갑자기 오른팔로 석목을 얼굴을 살짝 만졌고, 영혼의 화염을 떨면서 다시 팔을 거두었다.
바로 그 순간, 연나는 무언가 느낀 듯 고개를 돌렸다. 멀지 않은 곳에는 붉은색 수혼 주머니가 떨어져 있었다.
연나는 영혼의 화염을 격렬하게 흔들며 기어가서 수혼 주머니를 풀고 입을 벌렸다. 주머니에서 나온 수혼이 연나의 입속으로 하나씩 날아 들어갔다.
수혼을 삼킬수록 연나의 푸른 영혼의 화염은 점차 짙어졌다.
한참 후 주머니에 든 모든 수혼을 전부 삼킨 연나의 영혼의 화염은 진청색으로 변해서 파란색 빛을 밝게 뿜어내고 있었다.
고개를 든 연나는 소리 없이 포효하며 오른팔을 들었다. 그러자 검은 빛에 싸인 부서진 뼈들이 쓰러진 나무들 사이에서 날아와 연나의 몸에 맞추어졌다.
연나의 부서진 사지와 몸은 순식간에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뼈에는 여전히 빼곡한 금이 남아 있었다.
연나는 고개를 돌려서 기절한 석목을 한 번 바라보았다. 그리고 연나의 몸은 검은 빛으로 변하더니 석목의 몸으로 들어가 사라졌다.
그 자리에는 텅 빈 수혼 주머니만 남아서 기절한 석목의 곁에 툭 떨어졌다.
콰르릉!
천지를 흔드는 거대한 소리에 몸을 흠칫 떨며 잠에서 깨어난 석목은 크게 놀랐다.
나무가 무성한 숲에 있었던 그는 어느새 바다의 깊은 곳에 있었다. 주위에는 해초가 자라 있었으며, 거대한 해저산이 솟아 있었다.
눈앞에는 머리가 아홉 개 달린 금색의 교룡이 흉흉한 눈빛으로 석목을 바라보고 있었다.
금색 비늘에 덮여 있는 교룡의 머리는 하나하나가 건물만큼 컸고, 뿔은 달려 있지 않았다. 성문처럼 커다란 두 눈은 밖으로 돌출되어 있었고 금색 동공에는 아무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
길이가 백장에 달하는 커다란 몸에는 문짝만한 금색 비늘이 무수히 자라 있었다. 하지만 무언가 날카로운 것에 긁힌 것처럼 비늘이 없고 피가 흥건히 묻어 있는 부위도 있었다.
교룡의 민둥민둥한 꼬리는 끊임없이 바닷물을 휘저으며 거대한 물결을 만들고 있었다.
아홉 개의 머리는 때때로 커다란 소리로 포효하며 거대한 몸을 흔들었다. 그때마다 교룡의 배 아래에 있는 몇 장 크기의 금색 발이 언뜻언뜻 보였다.
석목은 눈앞의 모든 장면이 놀라웠다. 그는 본래 야만족의 금지에 있어야 했다.
그는 곧 자신이 전신이 은빛으로 반짝이는 삼사십 장 크기의 흰색 원숭이로 변해 바다 속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느새 석목은 꿈속으로 들어온 것이었다.
원숭이는 이전보다 더욱 거대했으며, 거무스름한 얼굴은 매우 흉악하게 보였다. 네 개의 날카로운 송곳니는 입 밖으로 튀어나와 있었고 커다란 몸에는 근육이 불끈불끈 솟아 있었다.
거대한 손끝에 자라 있는 몇 장 길이의 은색 손톱은 마치 곡도처럼 날카로웠으며, 손톱 밑에는 피와 살 조각이 끼어 있었다.
그 순간 용이 우렁차게 울부짖었다.
금색 교룡의 몸이 흐릿해지더니 마치 순간이동을 한 것처럼 흰색 원숭이의 앞에 나타났다.
교룡은 아홉 쌍의 눈을 흉흉하게 빛내며 시뻘건 입을 쫙 벌려 사방에서 거대 원숭이를 공격했다.
그러자 원숭이도 포효하며 두 손을 벌리더니 전혀 두려움 없이 맞섰다.
거대 원숭이는 거대한 두 팔을 뻗어 교룡의 목 두 개를 잡았다. 이어 손에 힘을 주자 날카로운 손톱이 금색 비늘을 찌르며 소름끼치는 마찰음을 냈다.
푹! 푹!
날카로운 칼이 살을 뚫는 소리가 연달아 울렸다.
거대 원숭이의 예리한 손톱이 금색 비늘을 부수고 교룡의 몸에 박혔다. 이어 상처에서 순식간에 뿜어 나온 선혈이 주위의 바닷물을 선홍빛으로 물들였다.
그러나 원숭이의 손톱은 교룡의 금색 비늘 때문에 깊숙이 파고들지는 못했다.
이어 교룡의 나머지 머리 일곱 개가 거대 원숭이의 어깨와 팔 등을 물어뜯었다. 원숭이의 몸 역시 순식간에 피투성이가 되었다.
그러나 거대한 원숭이의 몸을 뒤덮고 있는 은색 빛이 상처를 끊임없이 회복시켰고, 그러다 보니 교룡은 원숭이에게 치명상을 입히지는 못했다.
교룡은 눈을 흉흉하게 빛내며 거대한 몸으로 거대 원숭이의 몸을 강하게 휘감았다. 교룡이 몸을 조이기 시작하자 원숭이의 몸에 놀라울 만큼 거대한 힘이 가해졌다.
거대한 원숭이는 얼굴이 순식간에 검붉어지더니 고개를 젖히며 포효했다.
그러자 거대 원숭이의 몸에서 은색 빛이 강하게 터져 나오며 몸이 절반 정도 커졌고, 거대 원숭이의 몸을 감싸고 있던 교룡의 몸도 차츰 벌어졌다.
거대 원숭이를 바라보는 교룡의 눈에는 두려운 기색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거대 원숭이는 교룡이 반응하기도 전에 엄청난 힘으로 두 손을 잡아당겼다.
쫙!
그러자 원숭이가 붙잡고 있던 교룡의 목 두 개가 크게 찢어지며 대량의 피가 솟아나왔다. 그 때문에 마치 붉은 구름이 생긴 것처럼 바닷물이 붉어졌다.
교룡의 다른 일곱 개의 머리는 고통의 비명을 지르며 원숭이를 감싸고 있던 몸을 풀었고, 필사적으로 꼬리를 휘둘러 원숭이의 몸 이곳저곳을 가격했다.
교룡의 몸과 연달아 부딪힌 주위의 해저산이 순식간에 붕괴되고 바닷물이 거대한 회오리를 형성됐다.
콰르릉!
거대한 굉음이 끊임없이 울렸다.
주위의 해저산이 하나둘씩 쓰러지고 소용돌이도 점점 커졌다. 주위 백 리의 수면이 주저앉으며 깊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해양 회오리가 형성됐다.
크와앙!
원숭이가 다시 한 번 포효하며 두 손에 힘을 주자, 교룡의 머리 두 개가 결국 뽑혀 나왔다.
엄청난 양의 피가 분수처럼 뿜어 나오며 해저가 눈 깜짝할 사이에 붉게 물들었다.
교룡이 고통에 울부짖으며 몸을 비틀더니, 갑자기 몸을 돌려서 굉장한 속도로 도주하기 시작했다.
거대 원숭이는 입을 크게 벌려서 교룡의 머리 하나를 입에 넣고 씹어 삼켰다.
남은 머리 하나까지 삼킨 거대 원숭이는 교룡을 쫓았다. 원숭이의 움직임은 교룡보다 확연히 빨랐다.
결국 교룡은 수만 리 떨어진 곳에서 거대 원숭이에게 따라잡혔고, 다시 전투를 벌이다가 이번에도 원숭이의 거대한 손에 머리 두 개를 잡혔다.
광분한 교룡의 몸이 금빛으로 크게 빛나기 시작하더니, 일곱 개의 머리는 천둥같이 커다란 소리로 무언가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거대 원숭이는 하찮다는 표정으로 포효했다. 그러자 원숭이의 전신에서 강렬한 은빛이 터져 나오더니 영롱한 빛이 떠올라 몸을 감쌌다.
이어서 거대 원숭이는 교룡의 머리를 잡은 두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나 금색 빛의 보호를 받는 교룡의 머리 역시 방금 전과는 달리 쉽게 뽑혀 나오지 않았다.
교룡의 주문이 계속되자 거대한 원숭이의 곁에 금색 부문이 무수히 나타났다. 부문들은 금색 구슬로 모습이 변하더니, 하나하나가 강한 법력의 파동을 뿜어냈다.
교룡이 눈 깜짝할 사이에 주문을 마지막까지 외우자 몸에서 뿜어 나오던 금색 빛이 순간 어두워졌다.
콰르릉!
순간 폭발음이 울리고, 거대 원숭이를 빼곡하게 덮은 구슬이 터지며 순식간에 해저가 눈부신 금색 빛과 전기로 뒤덮였다.
원숭이와 교룡을 중심으로 주위 천 리의 바닷물이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수면에는 수십 장 높이의 거대한 파도가 일어났으며, 난데없이 회오리바람이 나타나 맑은 하늘이 순식간에 캄캄해졌다.
수백 리 떨어져 있던 이 해역의 유일한 섬은 거대한 파도와 광풍에 의해 격렬하게 진동하더니 여러 갈래로 조각나 바다에 잠겼다.
해저의 금빛과 전기가 완전히 소멸된 후 거대 원숭이의 몸을 감싸고 있던 은색 빛은 상당히 어두워졌으며, 몸에 난 열 개 이상의 거대한 상처에서는 선혈이 콸콸 쏟아져 나왔다.
격노한 원숭이는 열 손가락에 힘을 주어 교룡의 두 머리를 뽑아내더니 차례로 씹어 삼켰다.
아홉 개의 머리 중 네 개의 머리를 잃고 많은 양의 피를 흘린 교룡은 이미 생명력이 많이 고갈되어, 거대 원숭이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최후의 발악 끝에 교룡은 결국 남은 다섯 개의 머리마저 뜯어 먹혔다.
그리고 거대 원숭이는 머리 없는 교룡의 시체를 든 채 하늘을 보며 크게 울부짖었다.
곧이어 원숭이는 거대한 입을 벌려 교룡의 몸에서 나오는 피를 전부 마시고, 마지막으로 교룡의 몸까지 찢어서 먹었다. 쏟아지는 대량의 피 때문에 주위의 해역까지 붉게 물들였다.
석목은 괴수들의 엄청난 전투를 지켜보며 혀를 내둘렀다.
교룡을 처치하고 전부 먹어치운 거대 원숭이는 아주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부푼 배를 두드리며 트림을 한 원숭이가 두 손으로 수인을 몇 개 맺자 몸이 다시 은빛으로 빛났다.
은색 빛에 뒤덮인 상처에서는 새로운 살이 돋고, 그 위에 흰색 털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거대 원숭이의 몸은 마치 처음부터 상처를 입은 적이 없었던 것처럼 완전히 회복됐다.
이때 거대 원숭이는 만족한 듯 가슴을 한 번 두드리며 포효했고, 이어 두 손을 양 옆으로 벌리자 천 장 높이의 바닷물이 양쪽으로 갈라졌다.
양쪽으로 갈라진 물에는 각양각색의 해양생물이 헤엄치고 있었다.
이어 거대 원숭이는 위로 뛰어올라서 수면 위에 산처럼 우뚝 섰다.
그 순간, 하늘에서 요란한 소리가 울리고 눈부시게 빛나더니, 일곱 빛깔의 구름이 하늘에서 내려왔다.
구름 위에는 긴 눈썹의 노인이 무표정한 얼굴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그 모습을 본 거대한 원숭이는 흉악한 표정을 싹 거두더니, 감격스러운 얼굴로 수면 위에서 공경하게 절을 했다.
긴 눈썹의 노인은 구름 위에서 안타까운 표정으로 원숭이를 보며 잠시 침묵했다.
잠시 뒤 노인은 무언가 몇 마디 말을 내뱉고 손을 들어올렸다. 그러자 그의 소매에서 한 줄기 금색 빛이 쏘아져 나와 허공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금색 빛은 반짝이는 금색 서적으로 변해 원숭이의 몸 앞에 떠있었다.
긴 눈썹의 노인은 원숭이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두 눈을 감더니 구름을 타고 하늘로 솟아올라 사라졌다.
거대 원숭이는 앞에 떠있는 서적 앞에서 엎드린 채로 오랫동안 몸을 일으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