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화. 집계
한편 제단 주위에 있는 여덟 부족 제사장들은 각자 다른 표정을 짓고 있었다.
용사의 문에서 복귀한 평만부족의 야만족은 서른 명 정도로, 스무 명 가량이 돌아온 흉만부족보다 많았다.
이런 의외의 결과에 평만부족의 네 제사장과 흉만부족의 네 제사장의 희비가 엇갈렸다.
가는 눈을 가진 열사부족의 제사장은 얼굴이 파랗게 질려 있었다. 흉만의 네 부족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손실을 입었기 때문이었다. 금지에 들어간 부족원 열두 명 중 고작 세 명밖에 귀환하지 못했다.
평만부족 무리를 바라보던 열사부족의 제사장은 석목을 발견하고 몸을 흠칫 떨었다.
화무공주와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던 석목은 마치 독사가 자신을 바라보는 것 같은 서늘한 기분을 느꼈다. 그가 제단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열사부족의 제사장과 눈이 마주쳤다.
열사부족의 제사장은 석목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미간을 살짝 찌푸린 석목의 입가에는 차가운 미소가 떠올랐다.
그때 대제사장 필력격이 검은 제단 위에 올라섰다. 그는 몽롱해 보이는 눈으로 좌우를 둘러보더니, 비틀거리며 걸어가서 돌 의자에 앉았다.
대제사장이 담담한 말투로 입을 얼였다.
“만신(蛮神)의 용사들이 돌아왔으니 집계를 시작하겠다.”
“네!”
여덟 제사장이 급히 표정을 거두며 위엄 있게 대답했다.
제사장의 지시에 따라 평만과 흉만의 토템용사들이 부족 단위로 제단 앞으로 나왔다.
평만 쪽에서 먼저 나온 것은 나라부족이었다. 그들은 열 명 이상의 용사가 금지로 향했으나 그중 돌아온 것은 겨우 일곱 명이었다.
녹색 옷을 입은 중년의 나라부족 제사장은 그 광경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덩치가 큰 야만인 청년이 가장 먼저 허리춤의 수혼 주머니를 열었다. 그러자 그 안에서 아홉 개의 수혼이 떠올랐다.
그중 여섯 개는 크기가 작았고, 세 개는 그보다 컸다. 수혼의 색은 각자 달랐다.
“후천초기 수혼 여섯 개, 후천중기 수혼 세 개.”
녹색 옷을 입은 제사장이 담담하게 말하자. 옆에 있던 한 하급 제사장이 급히 종이에 숫자를 기록했다.
흉만 쪽에서 첫 번째로 나온 망우부족도 제단 앞에 섰다. 용사의 금지에서 살아 돌아온 이는 네 명이 전부였다.
먼저 수혼을 꺼낸 자는 키가 큰 사내였다. 그의 앞에는 열 개가 남는 수혼이 떠 있었고, 그중 하얀색 수혼이 유달리 컸다.
“후천초기 아홉 개, 후천중기 네 개, 후천후기 한 개.”
망우부족의 제사장은 만족스럽게 웃으며 모두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말했다.
나라부족의 제사장이 고개를 돌려 그를 보더니 표정을 살짝 흐렸다. 그리고 곧 차갑게 웃으며 손을 흔들자, 덩치가 큰 야만족 청년이 수혼을 다시 주머니에 넣고 옆으로 물러났다.
이어 나라부족의 젊은 야만족이 앞으로 나와 수혼 주머니를 열었다. 안에서 떠오른 여덟 개의 수혼은 전부 후천초기와 중기의 것이었다.
녹색 옷을 입은 제사장은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다시 손을 흔들었다.
뒤를 이어 나온 야만족들은 차례로 금지에서 사냥한 수혼을 꺼냈고, 제단 앞의 하급 제사장이 이를 기록했다. 나라부족과 망우부족의 수혼이 금세 집계됐다.
개개인의 실적을 따져보면 망우부족의 토템용사가 얻어온 수혼이 더 많고 질도 좋았다. 그러나 양측의 인원수가 큰 차이가 나는 탓에 결과적으로 점수는 엇비슷했다.
처음에 대제사장이 결정한 규칙에 따라 점수를 집계해보니, 망우부족의 점수가 삼 점 앞섰다.
나라부족의 제사장은 한숨을 돌렸고, 반면 망우부족의 제사장은 그다지 기분이 좋지 않은 듯했다. 그는 콧방귀를 뀌면서 네 야만족을 데리고 옆으로 물러났다.
이어 평만부족 쪽에서 금우부족이 제단 앞으로 나왔다. 돌아온 인원은 열 명이 넘었지만 수확한 수혼은 그리 많지 않았다. 후천후기의 수혼이 총 다섯 개였고 나머지는 모두 초기와 중기의 수혼이었다.
평만부족의 몇몇 제사장은 그 모습을 보고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바로 그때, 흉만부족 쪽에서 놀라움의 외침이 터져 나왔다. 제사장들은 소리가 난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고, 곧 그들의 표정이 제각각 다르게 바뀌었다.
흉만부족 쪽에서 적미(赤尾)부족이 수혼을 집계하고 있었다. 그들의 인원은 고작 다섯 명이었지만, 얻어온 수혼 중에 후천 대원만의 수혼이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후천후기와 중기의 수혼은 평만부족보다 적은 듯 보였지만, 후천 대원만의 수혼 덕분에 총점에서 평만부족을 앞섰다.
평만부족 제사장들은 어두워진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바로 그 순간 푸른 옷을 입은 야만족 사내가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는 후천 대원만의 경지에 오른 청아부족의 야만족이었다.
사내는 자신만만하게 미소를 지으며 허리춤에서 수혼 주머니를 꺼내 살짝 흔들어보였다.
그러자 주머니에서 사람의 머리만한 수혼이 떠올랐고, 잇따라 조금 작은 수혼이 열 개 넘게 나왔다.
평만부족의 제사장들은 사람 머리만한 붉은 수혼을 보고 잠시 멍청한 표정이 되었고, 이내 기뻐하기 시작했다.
“선천수혼!”
반면 그 광경을 본 흉만부족 야만족들의 표정은 순간 어두워졌다.
화무공주와 석목은 제단 아래의 제일 뒤쪽에 서 있었다.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걱정하던 화무공주도 선천등급의 수혼을 보고 크게 기뻐했다.
석목은 청아부족의 야만족이 선천수혼을 얻어온 것을 보고 잠시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니 여럿이 협동해 적합한 전술로 상대한다면 선천괴수를 처치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청아부족 용사가 내놓은 선천수혼은 붉은 빛과 에너지의 파동을 강력하게 뿜어냈다. 그러나 삼수흉망의 수혼에는 한참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보아 선천초기의 수혼인 것 같았다.
그 청아부족의 야만족은 선천수혼 뿐만 아니라 후천 대원만 수혼 두 개, 후천후기 수혼 다섯 개, 후천 초기와 중기 수혼 여덟 개를 얻었다.
이제 평만부족의 점수는 흉만부족의 점수를 훨씬 웃돌게 되었고, 제단 위의 염아 제사장은 대단히 기쁜 듯 입을 다물지 못했다.
비록 염아만큼은 아니었지만 평만부족의 나머지 세 제사장도 찌푸려졌던 눈살을 펴고 기뻐했다.
이제껏 용사의 금지에 들어갔던 후천용사들은 안전을 우선시했고, 그러다보니 선천등급의 괴수를 사냥해오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특히 이번에는 시간이 열흘밖에 주어지지 않아서 기회가 더 적었다.
만약 특별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평만부족이 승리할 확률이 상당히 높아진 것이다.
그러나 평만부족 제사장들의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흉만 쪽에서 광사(狂狮)부족의 붉은 머리 사내가 차갑게 웃으며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가 수혼 주머니를 꺼내자 주머니가 빛나더니 사람 머리만한 파란색 수혼이 떠올랐다.
그것은 선천초기의 수혼이었다.
이번에는 평만부족 제사장들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잠시 후, 청아부족과 광사부족의 남은 야만족이 차례로 앞으로 나가서 수혼 집계를 완료했다.
집계 결과 평만부족은 흉만부족보다 376점 앞서나가게 되었다. 청아부족의 인원수가 광사부족보다 더 많았을 뿐만 아니라, 청아부족의 야만족들이 상당히 많은 수혼을 얻어온 덕분이었다.
그러나 376점이라면 사실 후천후기 수혼 네 개에 불과한 차이었다. 후천 대원만의 수혼 하나만 나온다면 바로 역전될 수도 있었다.
이제 양측에서는 각각 한 부족만이 남아 있었다. 평만부족의 오각부족, 흉만부족의 열사부족이었다.
다만 이 두 부족의 인원수 차이는 매우 컸다. 오각부족은 열한 명이 돌아왔고, 열사부족은 겨우 세 명이었다.
이에 평만부족 야만족들의 얼굴에 순간 자신만만한 표정이 떠올랐다. 인원수가 거의 네 배에 달하는 만큼, 오각부족이 특별한 수혼을 얻어오지 않은 이상 승리할 가능성이 아주 높았기 때문이다.
오각부족의 토템용사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후천 대원만의 경지에 오른, 얼굴이 검은 청년의 인솔에 따라 제단 앞으로 나왔다.
검은 얼굴의 청년은 오각부족의 제사장을 보고 잠시 망설이다가 허리춤으로 손을 가져갔다.
그가 허리춤에서 수혼 주머니를 꺼내 가볍게 흔들자, 삼사십 개의 수혼이 연달아 떠올랐다. 그걸 본 평만부족 제사장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청년이 가져온 수혼은 초기와 중기의 것이 대부분이었지만, 후천후기 수혼도 네 개나 있었다. 한 사람이 거둔 성과로는 매우 뛰어난 것이었다.
오각부족의 제사장은 기쁜 표정으로 검은 얼굴의 청년을 칭찬하려 했다.
그러나 그때, 검은 얼굴의 청년이 무척 수치스럽다는 듯한 표정으로 털어놓았다.
“제사장님, 우리 오각부족의 용사들은 금지에 들어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어느 지역에 갇혀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 수혼이 우리의 수확 전부입니다….”
“뭐라고!”
놀란 평만부족 제사장들의 표정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오각부족의 난감한 상황을 지켜보던 흉만부족의 야만족들은 싱글벙글 웃기 시작했다. 하나같이 고소하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화무공주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곤란해 하는 오각부족의 제사장을 본 석목도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시선을 돌렸다.
오각부족이 가져온 수혼을 더한 결과, 평만부족의 점수는 흉만부족보다 고작 팔백 점 앞섰다.
그 말은 열사부족의 세 야만족이 후천후기의 수혼을 아홉 개 얻어왔거나, 후천 대원만의 수혼을 하나라도 얻어왔다면 승부가 뒤집힌다는 것을 의미했다.
나머지 평만부족의 세 제사장은 오각부족의 제사장이 바로 옆에 있어서 차마 화를 내지는 못했다. 그들은 오각부족을 한 번 노려보고 나서 열사부족의 세 토템용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현재로서는 열사부족이 변변한 수확을 거두지 못했기만을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열사부족의 세 야만족 중 마르고 키 큰 사내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걸어 나왔다.
얼굴에 수많은 흉터가 나 있고, 냉혹하고 매서운 눈빛을 가진 그는 후천 대원만의 강력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상의를 입지 않아 드러난 가슴에는 붉은 구렁이 토템이 새겨져 있었다.
사내는 차갑게 웃으며 허리춤의 수혼 주머니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그가 주머니에 진기를 주입하자 순식간에 열 개가 넘는 수혼이 떠올랐다.
그 안에는 후천 대원만의 수혼이 두 개 있었으며, 나머지는 전부 후천중기와 후기의 수혼이었다. 후천초기의 수혼은 한 개도 없었다.
평만부족 제사장들의 표정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그의 주머니에서 나온 수혼만 더해도 흉만부족의 점수는 이미 평만부족을 훨씬 앞질렀다.
열사부족의 용사는 움직임을 잠시 멈추고 주위를 한 번 천천히 둘러보았다.
그가 수혼 주머니에 진기를 다시 주입하자, 이번에는 사람의 머리만한 크기의 수혼이 떠올랐다. 입을 벌리고 있는 사자의 형상을 어렴풋하게 띠고 있는 그 수혼은 바로 선천수혼이었다.
“만타사(曼陀狮)!”
열사부족의 제사장이 기쁨에 넘쳐 소리쳤다.
반대로 평만부족 제사장들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남은 두 열사부족의 야만족도 차례로 수혼을 꺼냈다. 그들이 가져온 수혼의 수 역시 상당했지만, 이미 누구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판세가 이미 기울었구나….”
금우부족의 제사장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 두 인족이 남았으니 너무 비관할 필요 없네.”
염아 제사장이 깊게 숨을 들이쉬며 말했다.
그의 말에 평만부족의 세 제사장의 시선이 석목과 화무공주에게 향했다. 그들의 얼굴에 기대감이 희미하게 떠올랐지만, 한편으로 의심의 표정도 드러났다.
사실 금지에 들어간 야만족과 비교해보면 두 인족은 너무나 보잘것없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