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119화 (119/916)

119화. 저주의 해제

몸을 일으킨 석목이 필력격에게 다가가 목걸이를 건네려 했다.

바로 그때, 석목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무형의 기운이 돌연 요동치더니 하얗게 반짝이는 빛의 원이 생겨났다.

그의 사지를 감싼 빛은 체내의 혈맥과 진기를 순식간에 굳게 만들었고, 석목은 순식간에 꼼짝도 할 수 없게 됐다.

석목은 대제사장이 느닷없이 자신의 움직임을 구속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탓에 표정이 굳어졌다.

그러나 필력격은 석목의 표정이 바뀌는 것을 보고도 시종일관 평온한 표정을 유지했다.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더니 고목의 나뭇가지 같은 지팡이를 짚고 석목에게 다가갔다.

순간 석목은 크게 긴장했지만, 곧 필력격의 시선이 자신이 아니라 자신이 손에 쥔 목걸이로 향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조금 안심했다.

그런데 석목에게 다가가던 필력격은 한 걸음을 남겨놓고 머뭇거리더니, 결국 걸음을 멈췄다.

필력격은 목걸이 주위를 한 바퀴 천천히 거닐며 자세히 관찰했다. 그러면서 그의 표정이 무언가 이상하게 변했다.

잠시 후, 필력격은 원래의 자리로 천천히 돌아가 앉았다. 눈빛이 다시 흐리멍덩하게 변한 그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석목의 사지를 둘러싸고 있던 빛의 원은 갑자기 반짝이며 사라지더니, 동시에 그를 감싸고 있던 무형의 힘 역시 썰물이 빠지듯 사라졌다.

불안했던 석목은 마음을 놓았지만, 감히 다시 앉을 엄두는 내지 못하고 그 자리에 공손히 서 있었다.

그때 필력격이 길게 한숨을 쉬고 물었다.

“그대는 이 목걸이를 어디서 얻었지?”

석목은 잠시 머리를 굴리다가 대답했다.

“친구가 잠시 맡긴 것입니다.”

“알겠네. 이만 가보게나.”

필력격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그는 석목의 모호한 대답에도 아무 추궁을 하지 않은 채, 마른 팔을 저어 석목을 내보냈다.

마치 죄를 사면 받은 듯한 기분이 된 석목은 즉시 몸을 돌려서 빠르게 방을 나섰다.

석목이 자리를 떠나자 대제사장 뒤쪽에서 숨겨진 문이 갑자기 열렸다. 그곳에서 상당히 강한 기세를 가진 중년의 제사장이 걸어 나왔다.

중년의 제사장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대제사장님, 저 목걸이는 분명 우리 야만족의 물건입니다. 게다가 강력한 혼의 파동이 느껴지는 것으로 보아 상당히 귀중한 물건인 것 같은데, 어째서 인족이 지니고 있을까요?”

필력격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저 목걸이가 귀중한 것은 맞지만 불길한 물건이다. 수백 년 동안 저 목걸이를 손에 넣은 부족은 모두 이유 없이 몰락했지. 저 목걸이가 인족에 손에 있는 것은 우리 야만족에게 있어서 좋은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사이 성설궁의 대문을 나선 석목은 한숨을 돌렸다. 그의 등은 식은땀으로 완전히 젖어 있었다.

석목은 대제사장이 자신을 만나고자 한 목적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풍리의 목걸이가 주된 이유라는 것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대제사장은 그 목걸이를 가져갈 뜻이 전혀 없는 것처럼 보였다. 심지어 손을 대려고도 하지 않았다.

석목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복잡한 생각을 전부 떨쳐버리려 했다.

지금 그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최대한 빨리 만겁시혼주를 푸는 것이었다. 그 이유가 아니라면 그는 단 일 각도 야만족의 영토에 머물고 싶지 않았다.

별전을 나선 석목은 최대한 빠른 속도로 자신의 거처로 돌아왔다. 침대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그의 표정에는 여전히 두려움이 남아 있었다.

필력격이 보여준 능력은 석목을 크게 놀라게 했다. 그는 그저 손을 한 번 휘둘러서 후천후기의 무인인 석목을 구속했다. 그런 것은 아무리 선천의 경지에 오른 자라 해도 절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심지어 필력격이 자신을 구속할 때, 그의 몸에서는 어떤 기운이나 법력의 파동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다행인 것은 지금까지는 필력격이 석목에게 악의를 가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석목은 그에 대해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 위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목걸이를 꺼내 얼굴 가까이 가져다대고 자세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풍리에게 목걸이를 받은 후 이미 여러 차례 시도해봤지만, 그것은 진기와 법력에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풍리는 이 물건이 자신의 몸에 새겨진 토템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니 파손해서는 안 된다고 했지만, 그리 쉽게 부서질 것 같지도 않아 보였다.

어찌됐든 야만족 대제사장의 주의를 끈 것으로 보아 절대 평범한 물건은 아닐 것이다. 아무래도 풍리를 다시 만나야 목걸이의 구체적인 내력에 대해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석목은 목걸이를 좀 더 관찰하다가 다시 품속에 집어넣은 뒤, 푸른색 뼛조각을 꺼내 이마에 가져다 댔다.

시간이 조금씩 흘렀지만 그는 그 상태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 시진 이상 앉아 있던 석목이 드디어 눈을 천천히 떴다.

석목은 야만족 토템비술에 대해서 전혀 모르지는 않았다. 이전에 등아부족의 토템비술을 얻은 후 읽어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푸른색 뼛조각에는 그보다 더 상세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야만족이 토템을 새기는 것은 대체로 인족이 술법진을 새기는 것과 아주 비슷했다. 단지 인체에 새기느냐 부적지에 새기느냐의 차이였다.

각종 동물 형상의 토템문양은 아무 의미 없는 그림이 아니었다. 오랜 세월 대를 이어 전승되며 쌓인 완벽한 체계였다.

동물의 형상을 한 토템문양에는 심오한 봉인의 힘이 내포되어 있었다. 수혼을 속박하고 수혼의 힘을 받을 수 있는 것은 그 때문이었다.

야만족 토템은 붓으로 그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등침(腾针)이라 불리는 일종의 특수한 침으로 몸에 새겨 넣는 것이다. 게다가 토템을 새길 때는 체내의 기혈을 일정한 흐름에 따라 운기해야 했다.

또 침을 놓을 때는 엄청난 정확도가 필요했다. 자칫 잘못된 위치에 놓았다가는 기혈이 역류해 중상을 입을 수도 있었다.

석목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아무리 높은 정확도가 요구되는 일이라 해도, 엄청난 시력을 가지고 있는 그에게는 문제될 것이 없었다.

단지 유일하게 걱정이 되는 것은 대제사장이 한 말이었다. 삼수흉망의 수혼을 이용해 토템저주만을 없애는 방법은 반쪽짜리 봉인이라 완벽한 봉인보다는 쉽지만, 여전히 실패할 가능성이 존재했다.

만약 봉인에 실패할 경우에는 만겁시혼주의 저주를 해제할 방법이 사라진다. 때가 되어 저주가 터지게 되면 그때는 큰 화를 면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이번에는 석목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윽고 마음을 굳힌 석목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밖으로 나섰다. 반나절 후 배낭을 하나 들고 돌아온 그는 곧장 방 안의 밀실로 향했다.

배낭 안에는 검은색 부적과 푸른색 영석, 그리고 육칠 촌 길이의 푸른색 장침이 들어 있었다.

장침의 가운데는 살짝 두꺼웠으며 양끝은 매우 뾰족했다. 또 바늘구멍보다도 얇은 무문이 새겨져 있었다.

이 물건들은 석목이 염아 제사장에게 상당한 액수의 금을 주고 부탁한 것으로, 수혼을 봉인하기 위한 물건들이었다.

푸른색 장침은 등침이었고, 무부(巫符)와 영석은 토템 진법을 배치하고 수혼을 체내에 봉인하는데 사용하기 위해 필요했다.

토템 진법은 석목이 처음으로 접해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염아 제사장의 설명대로라면, 무부만 있다면 진법을 배치하는 것은 매우 간단했다.

반 시진 후, 밀실에 배치된 원형 토템진법에서 떠오른 검은 빛들이 천천히 회전하며 검은색 빛의 기둥을 이루었다.

석목은 상의를 벗고 진법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의 가슴에 있는 저주토템문양은 이전보다 매우 선명해져서, 언제라도 살아 움직일 것처럼 보였다. 이제는 조금이라도 시간을 지체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석목은 한참 동안 운기조식을 해서 체내의 법력과 진기를 모두 회복한 뒤 천천히 눈을 떴다.

그가 손을 흔들자 허리춤의 수혼 주머니에서 검은 빛이 반짝였다. 이어 수박 크기만 한 빛의 구체가 주머니에서 떠올랐다.

검은 빛의 구는 바로 삼수흉망의 수혼이었다.

그 안에서는 작은 삼수흉망이 끊임없이 발버둥을 치고 있었으나, 무형의 벽에 번번이 가로막혔다.

석목은 뜻을 짐작하기 어려운 주문을 외우며 손가락 한 개를 펼쳤다.

손가락에서 검은 빛이 발사되어 수혼에 닿자, 수혼을 감싸고 있는 붉은 빛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마치 가느다란 거미줄처럼 보이는 붉은 빛의 그물이었다. 속박의 힘을 가진 빛의 그물이 수혼 주머니에서부터 이어져서 수혼을 단단하게 속박하고 있는 것이었다.

선천중기의 실력을 가지고 있는 삼수흉망은 비록 수혼이라 할지라도 매우 강한 공격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런 속박을 하지 않을 경우 위험했다.

석목은 붉은 빛의 그물을 바라보며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이어 손가락을 천천히 펼쳐서 칼처럼 휘둘렀다.

그의 손가락에서 더욱 두껍고 커다란 검은 빛이 쏘아져서 붉은 빛의 그물을 베었다.

순간 속박의 힘이 풀리며 삼수흉망의 수혼이 일 척 가까이 커졌다. 빛의 구 안에 있는 반투명의 삼수흉망은 고개를 치켜들고 원한이 가득한 눈빛으로 석목을 바라보았다.

다음 순간, 삼수흉망이 석목을 향해 맹렬히 달려들었다.

그러나 석목이 가볍게 콧방귀를 뀌며 손가락을 튕기자. 주위의 진법에서 발사된 검은 빛이 삼수흉망의 수혼을 가격해 날려버렸다.

삼수흉망의 몸은 검은색 진법의 경계선까지 몇 척 거리를 날아가더니, 마치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힌 듯 다시 튕겨 나왔다.

눈빛이 더욱 흉흉해진 삼수흉망이 검은 잔상을 남기며 석목을 향해 다시 달려들었다.

그러나 석목은 차분하게 손가락을 튕겨서 계속 덤벼드는 삼수흉망을 검은 빛으로 가격해 날려버렸다.

시간이 지나자 수혼의 검은 빛이 상당히 어두워졌다. 기가 죽은 삼수흉망의 눈빛에는 희미하게 공포가 서려 있었다.

석목이 주문을 외우며 한 손을 흔들자 진법에서 수십 개의 검은 빛이 솟아나왔고, 검은 빛의 선은 서로 교차되어 원형 감옥의 모습을 형성해 순식간에 삼수흉망의 수혼을 그 안에 가두었다.

크게 놀란 삼수흉망은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며 이리저리 사방을 들이받았다. 그러나 석목을 상대하며 이미 상당한 혼력을 소모했기 때문에 그곳에서 탈출할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안심한 석목이 손짓하자 원형 감옥은 공중에 떠올라서 천천히 다가오더니 그의 앞에서 멈췄다.

석목은 눈앞에 있는 원형 감옥을 바라보며 장침에 진기를 천천히 주입했다.

그 순간 장침의 표면에 새겨진 각각의 무문(巫文)이 밝게 빛나더니 침 끝에서 푸른빛이 뿜어져 나왔다.

웅—.

장침의 뒤쪽에서 생겨난 푸른 실이 원형 감옥에 갇힌 삼수흉망의 반투명한 몸으로 파고들었다.

삼수흉망은 몸을 크게 떨면서 머리와 꼬리를 마구 흔들며 필사적으로 발버둥 쳤다. 그러나 검은 감옥의 속박에서 조금도 벗어날 수 없었다.

이어 삼수흉망의 몸을 파고든 푸른 실을 타고, 검은색 혼력(魂力)이 흘러 들어와서 장침을 까맣게 물들였다.

석목이 정신을 집중하자 그의 동공이 금색으로 변했다. 그의 시선이 닿은 가슴 근육이 순간 몇 배로 커지면서, 피부의 미세한 부분까지 보이게 됐다.

석목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저주토템이 새겨져 있는 피부를 장침으로 천천히 찔렀다.

장침의 꼬리를 통해 주입된 검은 빛이 피부에 천천히 주입되자, 침에 찔린 부위가 문신을 한 것처럼 검은 색을 띠었다.

석목은 몸을 살짝 떨었다. 침을 놓은 부위에서 마치 불에 타는 것 같은 심한 고통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토템은 반드시 단번에 새겨야 했기 때문에 잠시도 머뭇거릴 수 없었다. 석목은 급히 진혼주를 외워 고통을 경감시켰다.

고통이 줄어들자 한숨을 돌린 석목은 뼛조각에 적힌 흐름대로 기혈을 운기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검은 장침이 남긴 문신은 마치 영양을 공급받은 것처럼 점점 선명해지고 짙어지더니, 곧 검은 빛을 뿜어냈다.

그 모습을 보고 석목은 무척 기뻤지만, 그대로 숨을 죽이고 동작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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