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화. 진기이체(真气离体)
저주토템 위에 새겨진 검은색 문신은 시간이 흐를수록 커지면서, 점차 거대한 삼수흉망의 형상을 갖추어갔다.
그 순간 삼수흉망의 문양이 검은 빛을 발산했다. 곧 저주토템 주위로 형성된 검은 빛의 원은 토템이 뿜어내는 붉은 빛을 점차 억압하기 시작했다.
이와 반비례하듯 검은 감옥 안에 있는 삼수흉망의 크기는 점차 줄어들었다. 원래 사람의 머리 크기였다가 이제는 주먹 크기로 작아졌으며, 기력이 다했는지 저항하는 힘도 점차 약해졌다.
바로 그때, 저주토템에서 갑자기 붉은 빛이 터져 나오더니 그 위로 붉은색 단수흉망의 환영이 나타났다.
단수흉망의 환영은 주둥이를 벌리고 주위를 둘러싼 검은 빛의 원을 매섭게 들이받았다.
순간 석목은 몸이 떨리면서 체내의 기혈이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는 급히 심법을 운용해서 기혈의 파동을 진정시켰다. 그러면서 침을 쥔 손의 움직임도 멈추지 않았다.
장침으로 계속해서 피부를 찌르자 곧 토템이 완성되었다. 삼수흉망의 문양이 점차 뚜렷해지더니 검은 빛의 원도 안정되었다.
이제 붉은 단수흉망이 아무리 충격을 가해도 검은 빛의 원은 마치 산처럼 견고하게 버텨냈다.
휙!
삼수흉망의 수혼이 반짝이더니 가늘어지면서 전부 장침에 흡수되었다. 이어서 그것을 가두고 있던 검은색 감옥도 흩어져 사라졌다.
석목의 눈이 금빛으로 반짝였다. 그는 검은 빛을 뿜어내기 시작한 장침을 가슴 정중앙에 꽂았다.
침 끝에서 쏟아져 나오는 검은 빛이 석목의 몸에 끊임없이 주입됐다.
웅—!
검은색 삼수흉망의 토템은 결국 완성되었고, 검은 빛의 원이 크게 빛났다. 가슴에 새겨진 삼수흉망의 문양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생생했다.
바로 그 순간, 토템에서 강력한 흡인력이 발생해서 석목의 정기를 미친 듯이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그러나 석목은 정기가 홍수처럼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면서도 그저 미간을 살짝 찌푸리기만 했다.
석목이 놀라거나 당황하지 않은 이유는 이런 상황이 이미 뼛조각에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토템이 완성되기 위해서 숙주의 정기를 흡입하는 것이었다.
석목은 호흡을 깊게 들이마시며 천천히 반야천상공을 운기해 단전을 보호했다.
잠시 뒤 정기를 흡수한 삼수흉망 문양이 부풀어 오르더니, 갑자기 나타난 삼수흉망의 환영이 붉은 단수흉망을 덮쳤다.
단수흉망 역시 조금도 물러나지 않고 덤벼들면서, 두 뱀은 서로를 미친 듯이 물어뜯기 시작했다.
그러나 삼수흉망은 크기와 기운 모두 단수흉망보다 앞섰기 때문에, 얼마 지나지 않아서 우세를 차지했다.
삼수흉망은 번개처럼 빠른 속도로 단수흉망의 몸을 휘감고, 세 개의 머리로 단수흉망의 몸을 물었다.
단수흉망의 환영은 몸을 비틀며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힘의 차이는 현격했다. 곧 물어 뜯겨 토막이 난 단수흉망의 몸은 붉은 빛으로 변해서 삼수흉망에게 먹혔다.
석목의 가슴에 새겨져 있던 저주토템도 붉은 빛으로 맹렬하게 빛나다가 빠르게 어두워지면서 결국 사라졌다.
이어 삼수흉망의 몸이 한 번 반짝이더니 석목의 가슴에 새겨진 토템으로 들어가 사라졌다.
석목은 기뻐하며 길게 숨을 내쉬었다. 자신의 목숨을 끊임없이 위협해온 저주에서 비로소 벗어난 것이다.
그러나 이변이 발생한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석목의 가슴에 있는 토템이 정기를 빨아들이는 속도가 급격하게 빨라진 것이다.
놀란 석목이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차가운 기운이 그의 머릿속으로 침투하기 시작했다. 석목은 망치로 머리를 가격당한 것 같은 충격을 느끼면서 정신이 아찔해졌다.
‘무슨 일이지?’
석목은 대제사장의 조언을 떠올리며, 토템에 주입되는 정기의 흐름을 급하게 틀어막았다.
그러나 그의 얼굴은 곧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어떤 노력을 해도 토템의 운용을 멈출 수가 없었던 것이다.
검은색 토템은 조금도 기세가 줄지 않으면서 석목의 정기를 미친 듯이 집어삼켰다.
이와 동시에 차가운 기운이 석목의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파고 들려 했다. 석목은 강한 정신력으로 가까스로 버텨낼 수 있었다.
‘이런!’
석목은 속으로 끊임없이 비명을 질렀다.
토템비술이 어느 정도 진행됐을 때 정기의 주입을 멈췄다면, 본체와 아직 융합하지 않은 수혼은 흩어져야 정상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토템비술은 실패한다 해도 위험을 피할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토템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상당히 많은 양의 정기가 필요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든 정기의 주입을 멈추고, 차차 다시 주입하는 방식으로 봉인을 완성시킬 수 있었다.
즉, 정상적인 경우라면 이런 상황은 발생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설마 토템비술에 무슨 문제가 있나?’
그러나 석목은 곧바로 고개를 가로저으며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지금은 그런 것을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석목은 전력을 다해 천상공을 운기해서 정기가 유입되는 속도를 늦춰보려 시도했다. 그러나 효과는 매우 미미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석목의 정기는 점점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대로라면 반 시진 후에는 체내의 정기가 몽땅 소진되고 말 것이다.
그 순간, 아까보다 더욱 차갑고 강대한 기운이 그의 머릿속으로 들이닥쳤다.
머릿속을 찌르는 것 같은 통증을 느낀 석목은 급하게 온신술을 운기해서 정신의 장벽을 세웠다. 석목의 정신을 공격한 것은 삼수흉망의 환영이었고, 칠흑같이 검은 삼수흉망이 정신의 장벽을 끊임없이 들이받고 있었다.
놀란 석목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삼수흉망의 수혼이 정신을 공격하기 시작한 이상, 봉인은 멈출 수 없게 되었다. 이제는 정신력으로 삼수흉망을 철저하게 억눌러 완전히 토템에 녹아들게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석목의 정신력이 아무리 강하다고 한들, 선천중기의 삼수흉망을 상대로는 잡아먹히지나 않으면 다행이었다.
석목은 있는 대로 머리를 쥐어짜 봤지만 이 상황을 해결할 방법이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차가운 공격은 정신의 장벽을 연달아 공격하고 있었다. 격렬하게 흔들리는 정신의 장벽은 한눈에 보기에도 오래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그야말로 위기일발의 순간이었다.
바로 그때, 석목의 목에 걸려 있던 목걸이에서 빛이 반짝였다.
그러자 광폭한 의념(意念)이 석목의 머릿속으로 밀어닥쳤다. 그것에는 포악함과 오만함, 그리고 살육의 충동이 가득했다.
동시에 머리는 희고 다리는 붉은, 흉악하게 생긴 회색 원숭이가 삼수흉망의 옆에 나타났다.
삼수흉망은 두 눈을 흉흉하게 빛내며 곧 무너질 것 같은 정신의 장벽을 향해 더욱 세차게 공격을 퍼부었다.
그 순간, 회색 원숭이가 삼수흉망을 보며 포효했다.
그러자 엄청난 위압감이 몰아치면서 삼수흉망의 움직임이 순간 굳었다.
삼수흉망은 마치 세상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존재를 마주친 것처럼 몸을 벌벌 떨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석목은 이를 악물며 정신의 장벽을 거두어들였다. 그리고 남은 정신력을 한 번에 쏟아 부었다.
거대한 정신력의 홍수가 삼수흉망을 덮쳤다.
그것에 잠겨서 뭉개진 삼수흉망은 그대로 융화되어 가슴에 새겨진 토템 속으로 흡수됐다.
회색 원숭이는 눈빛을 흉흉하게 반짝이며 고개를 들어 광폭하게 울부짖었다. 원숭이가 뿜어내는 파동이 석목의 의식 속으로 밀려들자, 억제할 수 없는 살육의 충동이 그의 내면 깊은 곳에서 솟아올랐다.
바로 그 순간, 목걸이가 다시 한 번 반짝이자 원숭이가 두려움에 찬 표정을 지었다. 원숭이는 구슬프게 울부짖은 후 순식간에 종적을 감췄다.
석목은 그대로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땀으로 흠뻑 젖어버린 그의 몸에는 이제 한줌의 기력도 남아 있지 않았다.
석목은 안색이 창백해진 채 가슴을 들썩이며 한참이나 숨을 헐떡였다.
그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앉아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보자, 그곳에는 부르면 뛰어 나올 것처럼 생동감이 넘치는 삼수흉망의 토템이 새겨져 있었다.
“이건… 봉인에 성공한 것인가?”
석목은 어지러운 머리를 휘휘 내저으며, 더듬거리며 혼잣말을 했다.
아직도 믿을 수 없었지만, 지금 그의 눈앞에 펼쳐진 상황은 토템비술에 기록되어 있던 봉인의 성공 모습과 같았다.
석목은 예상치 못하게 삼수흉망의 수혼을 완벽하게 봉인한 것이다.
물론 봉인하는 과정에서 체내의 정기를 크게 소모했을 뿐만 아니라, 정신을 파고드는 공격을 막기 위해 정신력을 거의 소진한 상태였다.
그 아슬아슬했던 순간들의 여운은 아직도 석목에게 남아 있었다.
석목은 회색 원숭이를 떠올리며 고개를 숙여 목에 걸린 목걸이를 바라보았다.
‘그 원숭이는 도대체 무엇이었지?’
그 목걸이는 기괴한 모양을 제외하고는 다른 특이점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 순간, 석목은 갑자기 머리가 무거워지면서 어지럼증이 몰려오는 것을 느꼈다.
석목은 궁금증을 미뤄둔 채 토템진법을 중지시키고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리고 남은 법력을 모두 끌어 모아 몸의 회복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는 그 자세 그대로 무려 이틀 동안이나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틀 뒤 석목이 눈을 떴을 때 그의 법력은 전부 회복된 상태였다.
그 순간 석목은 토템에서 차가운 기운이 천천히 회전하는 것을 느꼈다.
그 기운은 진기와 아주 흡사했지만, 진기보다 더 활발했으며 마치 살아 있는 생명 같은 느낌이었다.
석목은 그 기운을 움직여보려고 시도하는 순간 차가운 기운이 그의 경맥으로 흘러들어갔다. 그 기운은 무수히 갈라져서 전신의 곳곳으로 마구 퍼졌다.
“악!”
석목은 몸 이곳저곳에서 갑자기 느껴지는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곧 석목의 피부에 검은색 비늘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팔과 다리, 그리고 신체 곳곳으로 퍼졌다.
순식간에 그의 몸은 검은 비늘로 만든 갑옷을 입은 것처럼 변했다.
석목은 전신에서 폭발적인 힘이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이전보다도 족히 몇 배는 강해진 힘이었다.
힘뿐만 아니라 오감 역시 예민해졌다.
후각이 발달해서 한 번에 수십 가지의 냄새를 분별해낼 수 있었고, 평소라면 전혀 맡지 못했을 냄새들이었다. 청력도 향상되어 몇 개의 벽 너머에서 나는 소리까지 들려왔다.
석목은 미친 듯이 기뻤다. 삼수흉망의 토템이 그를 이렇게까지 강하게 만들어줄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아직 직접 시험해보지는 않았지만, 이전보다 몇 배나 강해졌다는 것이 뚜렷하게 느껴졌다.
석목은 기쁜 마음에 두 주먹을 쥐고 휘둘렀다. 그러자 그의 주먹에서 검은색 기운이 쏘아져서 벽을 가격했다.
콰르릉!
벽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면서 주위에는 균열이 생겨났다.
“진기이체!”
석목은 놀라서 몸이 굳은 채로 자신의 주먹을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에 다시 주먹을 휘둘러보았다.
쾅!
이전보다 더 커진 검은 기운이 유성처럼 날아갔다. 다시 한 번 벽에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잠시 넋을 놓고 가만히 서 있던 석목이 갑자기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변신을 해서 선천의 경지에 도달한 그는 자유롭게 진기를 방출해 상대를 공격할 수 있는 진기이체를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과거 금 씨 가문의 진 이모에게 듣기를, 선천무인은 체내의 기부(气府)를 뚫어 그곳에 선천진기를 모으고, 진기를 몸 밖으로 방출해 멀리 떨어져 있는 적도 해치울 수 있다고 했다.
야만족 토템용사는 인족의 무인과는 다르게 토템에 봉인된 수혼의 힘을 빌려 경지를 높인다. 가슴에 새겨진 토템에서 느껴지는 이 차가운 기운이 아마도 인족 선천무인의 기부에 해당하는 것 같았다.
석목은 운 좋게 음(阴) 속성인 삼수흉망의 수혼을 봉인했고, 토템의 힘을 발동시켰을 때 선천중기의 위력을 가진 음 속성의 공격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바로 그때, 석목은 무언가를 느끼고 격앙된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리고 눈을 감고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았다.
이윽고 그의 표정이 불안한 듯 살짝 흔들렸다.
삼수흉망의 수혼이 그의 의식의 바다 속을 거닐며 끊임없이 정신력을 흡수하고 있었다. 게다가 자신의 정신과 융합하려는 것이 어렴풋이 느껴졌다.
석목이 마음을 먹으니 전신에 퍼졌던 기운이 다시 그의 가슴으로 돌아와 천천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변신이 풀리면서 비늘이 몸속으로 들어가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순간 석목은 이전에 민도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리며 미간을 세게 찌푸렸다.
야만족의 토템비술이 실력을 크게 증폭시켜주는 강력한 무기인 것은 분명했다. 그러나 토템의 힘을 장시간 사용할 수는 없었다. 그랬다가 자칫 수혼이 각성하기라도 하면, 주객이 전도되어 숙주가 영원히 괴수화된 상태로 살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수혼을 강화시키는 동시에 자신의 정신력을 단련시키는 일반적인 토템용사의 경우는 괴수화 상태를 매일 반 시진 가량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단숨에 선천중기의 수혼을 봉인한 석목의 경우 정신력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선천중기의 수준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장시간 수혼을 억누를 수 없었다.
정신력이 강해질수록 유지할 수 있는 시간도 점차 늘어나겠지만, 그의 계산에 따르면 현재 그가 하루에 괴수화를 한 채 있을 수 있는 시간은 최대 이 각이었다.
어쨌든 아직은 비록 반쪽짜리라 해도 그는 선천중기의 토템용사가 됐다. 이제 선천의 경지에 오른 상대를 만나더라도 자신의 몸을 지킬 힘이 생긴 것이다.
물론 석목은 누구에게도 이 사실을 드러낼 생각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