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화. 고향으로 돌아가다
한 달 후, 대제국 개원부의 어느 외진 어촌.
동쪽에서 태양이 막 솟아오르는 참이었으며, 바다 위에는 연무가 넓고 아득하게 피어올라 있었다. 작은 배 여러 척이 바다 위에 별처럼 떠서 파도를 따라 출렁거렸다.
마을 주위의 논밭에서는 노인과 부녀자들이 허리를 숙여 바쁘게 일하고 있었다.
어촌은 바다와 근접해 있는 탓에 토지의 염도가 높아서 매우 척박했다. 그렇기 때문에 어민들은 토지의 비옥한 정도에 상대적으로 영향을 적게 받는 과일과 채소를 심었다.
건물 앞뒤에서는 많은 마을 사람이 어망과 물고기를 말리기 위해 펼쳐놓고 있었으며, 몇몇은 자신들의 집 앞에 앉아 태양을 쬐며 어망을 손질했다.
아이들은 엉덩이를 내놓은 채 시끄럽게 뛰어다니며 놀았고, 먹이를 찾는 닭과 오리의 뒤를 쫓아다니기도 했다.
그리고 마을의 입구에는 황구 한 마리가 나른하게 바닥에 엎드려 아침햇살을 맞고 있었다. 처진 몸과 주름이 가득한 피부를 보아하니 그 개는 움직이는 게 힘들 정도로 많이 늙은 것 같았다.
그런데 늙은 개가 갑자기 코를 벌름거렸다. 그리고 무언가를 발견한 듯 닫혀 있던 눈꺼풀을 뜨고 마을 밖을 향해 짖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마을 전체에 개 짖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마을 입구에는 검은 옷을 입고 커다란 배낭을 멘 청년이 서 있었다. 체구가 큰 그 청년은 감격한 표정으로 바다냄새가 나는 공기를 깊게 들이마시는 중이었다.
청년은 야만족 황무지에서 돌아온 석목이었고, 마을은 바로 그가 나고 자란 어촌이었다.
오각부족의 숙영지를 떠난 뒤, 석목은 귀찮은 일을 최대한 피하기 위해 야만족으로 변장했다. 그리고 해변을 향해 걸어서 청아부족의 세력 범위 안으로 진입했다.
염아 제사장이 석목에게 준 영패는 실로 유용했다. 그가 정한 경로에서 피해갈 수 없는 관문이나 야만족 순찰기병을 만났을 때, 영패를 내보이면 모두 공손히 길을 터준 덕분에 수고를 상당히 덜 수 있었다.
또한 석목은 미리 자세한 계획을 세워놓은 데다 낮에만 이동했다. 그래서 소수의 괴수를 맞닥뜨린 것을 제외하면 여정은 매우 순조로웠다.
족히 보름을 이동해 동해에 도착한 석목은 그대로 해변을 따라 인족의 영토를 향해 나아갔고, 황국을 거쳐 대제국의 국경 내에 들어섰다.
이어 밤낮으로 이동해 몇 개의 주와 군을 넘은 석목은 결국 대제국의 천주(泉州)에 도착했다.
그곳은 바로 석목의 고향이자 어려서부터 생활한 작은 어촌이 위치한 곳이었다.
석목은 과거에 성 집사를 따라 어촌을 떠난 이후,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육 년 가까이 고향에 돌아올 기회가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흔치 않은 기회가 찾아오면서, 집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이 솟아난 것이었다. 흑마문으로 돌아가면 언제 다시 고향을 찾을 수 있을지 기약이 없었기 때문이다.
석목이 넋을 놓고 있는 사이 마을 입구의 늙은 개가 갑자기 짖는 것을 멈추었다. 석목을 향해 달려온 개는 냄새를 맡더니 그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석목은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개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개도 반가운 듯 그의 손가락을 핥았다.
이 개는 석목이 잘 아는 개였다. 바로 그의 옆집인 흑어네 집에서 키우는 개로, 석목이 어촌을 떠날 즈음에는 사람으로 치면 청년의 나이였었다.
석목은 개의 머리를 두들겨준 후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마을 안으로 힘차게 걸어 들어갔다.
늙은 개는 꼬리를 흔들며 석목을 따라갔으나, 곧 힘에 겨운 지 혀를 내놓고 숨을 헐떡이면서 다시 마을 입구로 천천히 돌아갔다.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어촌은 변한 것이 없었다. 석목의 기억 속에 있는 모습 그대로였다.
지금은 바다에 나가서 물고기를 잡기에는 좋은 계절이 아니었기 때문에 마을에는 남자가 많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 시간쯤에는 모두 바다에 나가 있었을 것이다.
한편 마을 사람들도 석목을 발견했다. 그러나 그가 입고 있는 옷이 한 눈에 봐도 저렴하지 않았고, 등에 검은 장도를 차고 있어서 매우 사나워보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저 멀리서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때 어느 집 앞에 앉아서 어망을 짜고 있던, 주름이 지고 눈빛이 혼탁한 노인이 갑자기 석목에게 물었다.
“목이니?”
석목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노인에게 대답했다.
“맞아요. 어머니를 뵈러 돌아왔어요.”
어린 시절 석목이 어머니와 힘든 나날을 보낼 때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 노인은 그들 모자에게 잘 대해줬으며 때때로 도움을 주기도 했다.
“잘 돌아왔구나. 잘 돌아왔어.”
노인은 석목을 보며 무언가 회상하는 듯 중얼거렸다.
그러자 주위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마을 사람들도 삼삼오오 모여서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뭐라고? 석목이었다니! 정말 많이 변했구나.”
“모습을 보아하니 마을 밖에서 돈깨나 벌었나 보네.”
“등에 메고 있는 저 도를 봐. 정말로 무관의 무사가 된 것은 아니겠지?”
“무사는 무슨. 이전에 사람을 죽이지 않았는가. 금 씨 가문의 그….”
“쉿! 조용히 하게!”
그들의 대화는 한 마디도 빠짐없이 석목의 귀에 들어왔다. 그중 몇몇 사람은 석목을 수상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과거에 석목이 금 씨 가문과 오 씨 가문의 사람들을 살해한 이후, 두 가문에서 어촌에 사람을 보내 엄청난 현상금을 걸었으리라는 건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도 지금 이 마을 사람들 중에는 그들에게 뭔가 정보를 알리려는 속셈을 가진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석목은 마을 사람들과 언쟁할 생각은 없었다. 금 씨 가문이나 오 씨 가문은 이미 그에게 전혀 상대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인에게 다가가 몸을 숙이고 몇 마디 대화를 나누던 석목은 금덩이가 든 주머니를 그의 손에 몰래 쥐어주었다. 그리고 방에 들어가서 열어보라고 말한 뒤 몸을 일으켜 자리를 떠났다.
이어서 석목은 어느 허름한 나무집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와 그의 어머니가 지내던 집이었다.
석목은 눈앞의 집을 보며 한참 동안이나 복잡한 표정을 짓다가, 나무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의 모든 것이 그대로였지만, 먼지가 두껍게 쌓여 있었다.
석목은 어렸을 적의 추억을 떠올리며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 가만히 방 안에 서 있었다.
한참 후, 그를 추억 속에서 끄집어낸 것은 멀리서부터 점점 가까워지는 누군가의 발소리였다.
“목아, 돌아왔구나!”
발소리의 주인공이 집 안으로 들어오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피부가 까맣고 어민의 옷을 입은 삽십 대 남자였다.
석목은 몸을 돌려 미소를 지으며 그 사내를 바라보았다.
“흑어 형, 오랜만이에요.”
까만 피부 때문에 흑어라고 불리는 사내는 어려서부터 석목과 함께 자란 이웃이었다. 그의 가족은 마을에서 석목 가족과 가장 가까운 관계였다.
“목아, 어서 떠나거라. 곧 사람들이 너를 잡으러 올 거야.
흑어가 다급한 목소리로 석목에게 말했다.
“네가 어촌을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마을에 낯선 사람들이 찾아왔다. 그들은 자신들이 풍성의 금 씨 가문과 오 씨 가문의 사람이라며 너의 행적을 물었다. 당시 네 소식에 일만 냥의 현상금을 걸었으니, 아마 지금쯤이면 누군가 가서 밀고를 했을 게다.”
석목은 흑어의 걱정스러운 말에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끼며 대답했다.
“안심하세요. 조심할게요.”
누군가의 이런 진심 어린 배려는 그가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것이었다.
흑어는 석목이 자신의 처지를 깨닫지 못한다고 생각했는지, 다시 급하게 무언가를 말하려 했다.
그러나 석목이 먼저 입을 열었다.
“형수님의 건강은 좀 좋아졌나요?”
“아직도 가끔은 숨이 찰 때까지 기침을 하는데, 오늘은 평소보다 상태가 좋아졌다. 그래서 아이들을 데리고 해변으로 새우를 잡으러 갔어.”
흑어가 머리를 긁적이면서 가까스로 웃으며 말했다.
“이것을 줄 테니 형수님의 병을 치료하세요.”
석목은 품속에서 금덩이 세 개를 꺼내 흑어에게 건네며 말했다.
흑어는 반짝이는 금덩이를 보고 놀라서 눈이 커졌다. 그는 이렇게 많은 돈은 꿈에서도 본 적이 없었다.
“목…목아, 나…나는 이것을 받을 수 없다. 이것은….”
흑어는 상기된 얼굴로 그 자리에 멍하니 서서 작은 목소리로 우물거렸다.
석목은 미소를 지으며 그의 손에 금덩어리를 쥐어 주었다. 흑어는 거절하려 했으나 거스를 수 없는 강한 힘에 꼼짝도 하지 못했다.
거듭 사양한 끝에 결국 흑어는 금덩이를 받아들었다.
흑어의 아내는 폐병을 앓고 있었다. 그러나 돈이 없어서 큰 도시에서 진료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이렇게 많은 돈을 받은 그는 너무 감격한 나머지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석목과 흑어는 과거의 추억을 떠올리며 한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두 사람 사이에서는 때때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마치 어린 시절로 다시 돌아간 것 같았다.
한 시진 후, 석목은 어촌에서 일 리쯤 떨어진 어느 이름 없는 언덕에 있었다.
석목은 배낭을 옆의 풀숲에 아무렇게나 던져놓은 채 언덕에 있는 묘 앞에 공손히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바로 어머니의 묘였다.
“어머니, 불효자 목이가 왔습니다.”
“저는 종문에 정식으로 들어가서 진정한 무인이 되었어요. 비록 다짐했던 것보다는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반드시 해낼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맞다. 한눈에 반한 여인이 생겼어요. 어머니의 가르침대로 재빨리 그녀에게 제 마음을 표현했어요. 그녀는 제가 서른 살 전에 선천무인의 경지에 오른다면 마음을 받아주겠다고 약속했어요….”
“그녀와 결혼하면 반드시 이곳에 데리고 와서 어머니께 보여드릴게요!”
석목은 족히 한 시진이 넘도록 무릎을 꿇은 채 앉아서 그동안 마음에 담아두었던 이야기를 다 털어놓았다.
이어 절을 세 번 한 뒤 몸을 일으킨 석목은 운철흑도를 뽑아들고 빠르게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검은 검영이 석목의 몸 주위로 선회하며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그 모습은 마치 평지에 검은 회오리바람이 피어오르는 것 같았다.
“핫!”
석목이 크게 기합을 지르며 운철흑도에 체내의 법력을 전력으로 주입했다. 그 순간 운철흑도에 일 척 높이의 화염이 솟아올랐다.
도의 움직임이 점점 빨라지면서, 그를 둘러싼 검영이 점점 화룡처럼 변하더니 몸 주위를 끊임없이 선회했다.
바로 그 순간, 석목은 공터를 향해 전력으로 도를 내려찍었다.
쾅!
바닥에서 화염이 폭발하며 흙이 사방으로 날렸다. 지면에는 순식간에 반 장 깊이의 구덩이가 생겨났다.
석목은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운철흑도를 다시 등 뒤의 칼집에 꽂아 넣었다.
이후 석목은 몸을 움직이며 이번에는 주먹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백옥처럼 하얗게 변한 그의 두 주먹은 마치 사람과 싸우는 것처럼 다양한 각도로 끊임없이 뻗어나갔다. 권풍이 지나가는 곳마다 공기가 진동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석목이 번개처럼 빠른 몸놀림으로 이리저리 움직이며 주먹을 뻗자, 일 장 가까운 범위가 새하얀 권영으로 빼곡하게 뒤덮였다.
일 각 후, 바닥에서 뛰어오른 석목은 굵기가 물통만한 주위의 나무에 주먹을 뻗었다.
쾅!
나무가 흔들리더니 커다란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석목은 제자리에 서서 추억에 잠긴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어촌을 떠나기 직전에는 전력으로 일격을 내질러도 그릇만한 두께의 나무에 반 촌 깊이의 흠을 내는 것이 고작이었다.
석목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어머니의 묘 앞으로 걸어갔다. 그는 다시 세 번 절을 한 뒤 배낭을 주워들고 떠났다.
그런데 몇 걸음 걸어가던 석목의 머릿속에 갑자기 무언가가 떠올랐다.
그는 몸을 돌려 산 아래를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일 각 후, 어느 해변에 도착한 석목은 우선 돌 사이의 틈을 찾아 배낭을 숨겼다. 그리고 바다를 향해 걸어가더니 곧 수면 아래로 사라졌다.
석목은 마치 물고기처럼 헤엄쳐 해저 깊은 곳으로 잠수해 들어갔다.
그는 어려서부터 어촌에서 생활해서 물에 익숙했고, 과거에 향주와의 일을 겪은 이후로 물에서 자유자재로 호흡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