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125화 (125/916)

125화. 금룡방(金龙帮)

석목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손쉽게 해저에 도착했다. 그곳은 칠흑과 같이 어두워서 손을 뻗으면 손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바닥에 잠시 멈춰 선 석목의 눈이 금빛으로 빛났다. 그러자 해저의 풍경이 자세히 보이기 시작했다.

석목은 마음속으로 위치를 짐작하며 어느 방향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 근처일 텐데….’

주위를 둘러본 석목은 빠르게 목표물을 찾았다. 그곳에는 높이가 팔 장 정도 되는 거대한 암초가 고요히 서 있었고, 암초의 주위에는 해초가 가득 자라 있었다.

석목은 눈을 빛내며 천천히 암초에 다가갔다.

과거에 이 암초는 지금은 해족의 성녀가 된 향주를 깔아뭉개고 있었다. 그 사건은 석목의 인생에 있어서 전환점이라고 할 수 있었다.

갑자기 석목의 눈이 금빛으로 반짝였다.

암초 밑바닥의 일부분이 검은색을 띠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전체적으로 짙은 회색인 다른 부위와는 확연히 구분됐다.

석목은 두 다리로 해저의 바닥을 박차고 뛰어올라서 암초를 향해 빠른 속도로 헤엄쳐갔다.

몸을 숙여 암초의 아래를 들여다본 석목은 거기에 무언가 있다는 것을 금세 발견했다.

좀 더 가까이 다가간 석목은 체내의 진기를 끌어올려서 전력을 다해 암초를 밀었다.

콰르릉!

해저에 해류가 격렬하게 일어나면서 거대한 암초가 마치 벌채된 나무처럼 쓰러졌다.

암초의 밑바닥에는 수박만한 검은 광석이 단단하게 박혀 있었다.

그것은 얼핏 보기에는 평범한 듯했으나, 집중해서 보면 표면에 검은 빛이 감도는 것이 무언가 예사롭지 않아 보였다.

석목은 그 돌이 어디에선가 봤던 것처럼 낯설지 않게 느껴졌다.

그는 운철흑도를 뽑아서 광석에 가져다 대보았다. 그 둘은 완전히 똑같았다.

석목은 매우 기뻤다. 그 광석은 운철흑도의 재질과 같은 운철이었다. 과거에 암초가 굉장히 무겁게 느껴진 이유가 그것이었다.

석목은 운철흑도를 휘둘러서 검은 돌과 암초가 결합된 지점을 정확하게 베어냈다. 검은 돌의 표면에 남은 암초의 조각을 떼어나고 나니 수박만한 크기의 운철이 온전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석목은 운철흑도를 칼집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허리를 숙여서 두 손으로 운철을 들었다. 그 운철은 운철흑도보다도 훨씬 무거웠다.

지금의 석목은 이전보다 힘이 대폭 증가했고, 운철흑도는 삼수흉망과의 전투에서 손상을 입었다. 그런 상황에서 때마침 더 무거운 운철을 찾게 된 것이다. 이는 정말 뜻밖의 행운이었다.

이 각 후, 해안과 가까운 수면이 들썩이더니 기포가 연달아 올라왔다.

이어 물이 사방으로 튀면서 한 남자의 상반신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천천히 해변을 향해 이동하는 그 남자의 손에는 수박만한 검은 원석이 들려 있었다.

그는 바로 석목이었다.

반 시진 후, 석목은 배낭을 찾아 메고 검은 운철을 안은 채 곧장 흑어의 집으로 향했다.

석목은 흑어의 집에서 저녁을 먹은 후 자신의 낡은 나무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먼지 쌓인 침대를 정리한 뒤 가부좌를 틀고 앉아 눈을 감았다.

다음날 이른 아침, 흑어가 이 장 길이의 두꺼운 쇠사슬을 석목에게 가져다주었다.

석목은 흑어가 돌아간 뒤에 쇠사슬을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 쇠사슬은 두께가 거의 성인의 팔뚝 만했으며 재질은 평범했다. 석목이 전날 흑어에게 부탁해 옆 마을 대장간에서 제작한 것이었다.

석목은 쇠사슬로 운철을 단단하게 감았다. 잠시 후 운철은 쇠사슬에 묶인 유성추의 모습이 되었다.

쇠사슬의 끝을 잡고 가볍게 들어본 석목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 * *

그날 오후, 마을의 입구.

석목은 말 두 마리가 끄는 검은 마차의 앞좌석에 앉아 있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서 언제나처럼 조용한 마을을 한 번 바라보았다. 이어 자신을 애타게 바라보는 늙은 개를 보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한참 후, 석목은 두 눈에 힘을 주며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이랴!”

그가 두 손으로 고삐를 당기자 두 마리의 건장한 말은 먼 곳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 * *

보름 후.

풍성의 거대한 성문에는 이전보다 더 많은 장사꾼과 행인이 끊임없이 드나들고 있었다.

먼 곳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려오더니 두 마리의 건장한 말이 끄는 검은 마차 한 대가 성문 앞에 도착했다.

마차에 상당히 무거운 물건이라도 실려 있는지, 말들은 온 몸이 땀에 젖어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마차의 앞에는 짙은 눈썹과 큰 눈을 가졌으며, 이목구비가 뚜렷한 회색 옷차림의 청년이 앉아 있었다.

그는 바로 어촌에서 온 석목이었다.

석목은 눈앞의 성을 보며 추억에 잠긴 표정이 되었다. 그리고 마차를 타고 성문을 지나서 천천히 이동했다.

그가 풍성을 찾은 것은 진 이모와 여동생인 석옥환을 보기 위해서였다. 석목은 과거에 자신이 행한 일에 연루됐을지도 모를 그녀들의 안위를 줄곧 걱정해왔다.

천천히 움직이는 마차 위에서 풍성의 거리를 둘러보는 석목의 감회는 남달랐다.

당시 금 씨 가문에게 핍박당해 이 성을 나설 때, 그는 고작 기를 막 느끼기 시작한 수련자에 불과했다.

세월은 덧없이 흘러가고 성 안의 풍경은 그다지 바뀌지 않았지만, 석목 자신은 더 이상 그때의 나약한 소년이 아니었다.

마차의 양 옆으로 보이는 풍경이 멈추지 않고 계속 뒤로 밀려났다.

수 년 전 이곳에서 생활하고 수련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기억은 석목의 머릿속에서 연기처럼 흐릿하게 떠올랐다가 금세 흩어지며 아련함을 느끼게 했다.

그러는 사이에 마차는 인파가 한적한 거리에 도착했다.

이 거리는 석목에게 매우 익숙한 곳이었다. 모퉁이를 몇 번만 돌면 그가 한동안 무예를 익혔던 유풍무관이 나왔다. 유풍무관은 석목이 무도의 기초를 다진 곳이었다.

석목이 고삐를 잡아당겨 말의 머리를 돌렸다. 그는 먼저 유풍무관으로 가서 스승인 여창해를 찾아뵐 생각이었다.

바로 그때, 석목은 눈썹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려 무언가를 바라보았다.

십여 장 밖의 좁은 골목길에서 인영이 드러났다가 순식간에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석목은 눈을 반짝이며 주위를 살짝 감지해보고 나서 미간을 찌푸렸다. 주위에서 자신을 정탐하는 시선이 느껴졌던 것이다.

그들은 주위에 조심스럽게 숨어 있었지만 석목의 눈과 귀를 피할 수는 없었다.

석목은 속으로 콧방귀를 뀌며 태연한 표정으로 계속 길을 갔다.

잠시 후, 석목은 일 장 넓이의 좁은 길에 도착했다. 길의 양쪽에는 오래된 건축물이 서 있었으며 주위에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이곳은 성의 구 시가지로, 과거에 흑호회 등 여러 방파가 관리하던 구역이었다.

석목은 돌연 고삐를 잡아당겨 마차를 멈춰 세웠다.

전방의 멀지 않은 곳에 검은 옷을 입고 무기를 든, 체구가 큰 사내 다섯 명이 나란히 서서 길을 막고 있었다.

그들의 소매에는 금룡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으며, 표정에서는 악의가 느껴졌다.

이어서 뒤쪽의 좁은 골목에서도 여덟 명이 더 튀어나왔다. 그들은 각종 무기를 들고 있었으며, 군대에서나 쓸 법한 쇠뇌로 석목을 조준하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이 나타나자 거리의 분위기가 갑자기 스산해졌다.

“네놈이 석목이냐?”

우두머리로 보이는 사내가 앞으로 한 걸음 나와서 웃으며 말했다. 얼굴에 흉터가 있는 사내였다.

석목은 그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다.

“누군데 내 앞길을 막아서는 거지?”

“이 몸은 금룡방의 부방주 맥정이다. 과거에 네가 한 짓을 잊지는 않았겠지. 풍성에 다시 돌아오다니, 정말 겁도 없구나.”

사내가 차갑게 말했다.

그러나 석목은 눈썹만 치켜세울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올 것이 온 것이다.

석목은 금룡방이라는 방파의 이름은 전혀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가 풍성을 떠난 뒤 몇 년 사이에 새롭게 나타난 방파인 것이 분명했다.

“내 목을 따서 현상금을 받을 심산인가?”

석목이 무표정하게 물었다.

눈앞의 사내는 후천초기의 경지에 오른 무인으로 보였다. 당시 풍성의 많은 방파에서 이 정도의 경지에 오른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런 사람이 부방주라면 금룡방의 방주는 상당한 실력자인 것 같았다.

흉터를 가진 사내가 입을 열기도 전에, 화살이 놀라운 속도로 석목의 등을 향해 날아왔다.

곧이어 석목의 등 뒤에서 쇠뇌를 들고 있던 애꾸눈 사내가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얼굴에 흉터가 있는 사내의 얼굴에 분노의 표정이 떠올랐다. 그가 받은 명령은 석목을 데려가서 윗분들에게 넘기는 것이었지 시체를 들고 가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곧 사내의 얼굴은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본 것처럼 멍청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석목이 고개도 돌리지 않고 한 손을 들더니, 날아오는 화살을 두 손가락으로 잡아 뒤로 던진 것이다.

쉬익!

화살은 이전보다 세 배는 빠른 속도로 되돌아가서 애꾸눈 사내의 몸에 박혔다. 화살을 맞고 몇 장이나 날아간 사내는 등 뒤의 벽에 화살과 함께 박힌 채 떨어지지 않았다.

석목을 둘러싼 이들은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깨닫지 못하고 있다가, 고개를 돌려보고 나서야 화살에 가슴이 뚫린 채로 벽에 박혀 있는 사내를 발견했다.

애꾸눈 사내는 놀라움과 공포에 찬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러나 그의 목에서는 기괴한 소리만 새어나올 뿐이었다.

사내는 몸에 경련을 일으키더니 곧 동공이 풀렸다.

크게 놀란 금룡방의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살짝 떨며 한 발짝 물러났고, 두려운 표정으로 석목을 바라보았다.

유일하게 부방주만이 평온한 표정을 가까스로 유지하고 있었으나, 그 역시 눈가의 두려운 기색을 완전히 숨길 수는 없었다. 그의 실력으로는 석목의 움직임을 따라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내 인내심에도 한계가 있다. 말하라. 나를 가로막은 목적이 무엇이지?”

석목이 차갑게 말했다.

“귀…귀하가 성에 진입한다는 소식을 사전에 접하고, 어느 거물이 귀하를 데려오라고 지시했습니다.”

얼굴에 흉터가 있는 사내가 침을 꿀꺽 삼키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석목은 눈썹을 살짝 치켜 올리며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좋다. 그렇다면 너희를 따라가도록 하지.”

석목의 말에 금룡방 사람들은 모두 멍한 표정이 되었다. 자신의 귀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어서 안내해.”

석목이 살짝 짜증을 내며 재촉하자, 흉터를 가진 사내가 그제야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앞장섰다. 다른 이들도 모두 무기를 회수하고 사내의 뒤를 쫓았다.

곧이어 길거리의 사람들은 기이한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성에서 온갖 횡포를 일삼아온 금룡방의 부방주가 방파원들과 안절부절 못하며 걷고, 어느 낯선 청년이 마차를 몰며 태연하게 그들의 뒤를 따르는 모습이었다.

반 시진 후, 일행은 성 안의 구석진 곳에 위치한 한 사유지의 문 앞에 도착했다.

사유지의 면적은 팔백 평은 족히 되어보였고 안쪽의 건축물은 크고 깨끗했다. 검은 옷을 입은 금룡방의 방파원 두 명이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석목이 온다는 소식을 이미 들었는지, 체구가 커다란 사람 몇이 나와서 그들을 맞이했다.

“부방주님, 이 자가 방주님이 언급했던 그놈입니까?”

얼굴이 까맣고 근육이 잘 발달한 사내가 석목을 보며 말했다.

그러자 부방주는 석목 쪽을 조심스럽게 살피며 모호한 대답을 했다.

까만 얼굴의 사내는 부방주의 태도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 채지 못했다.

그는 석목에게 다가가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리고 흉악하게 웃으며 무언가 말하려 했다.

“꼬마야, 네가 아무리….”

그러나 석목은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이미 마차에서 내려서, 무표정한 얼굴로 사유지 안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의 왼손에는 쇠사슬에 묶인 수박만한 운철이 들려 있었다.

순간 화가 솟구친 사내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금룡방에서 상당한 지위에 올라 있는 그는 이제껏 이 정도의 무시를 받아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지금은 많은 수하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었다.

“꼬마야, 지금 이 몸이 말하고 있지 않느냐!”

까만 얼굴의 사내가 소리를 지르며 커다란 손으로 석목의 어깨를 잡으려 했다.

“만청, 멈춰!”

그의 옆에 있던 부방주가 놀라서 급하게 소리쳤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석목의 손이 사내의 어깨를 때렸다.

뚝!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또렷하게 들리며 사내가 마치 허수아비처럼 날아갔다. 그의 어깨와 쇄골은 박살이 나서 움푹 내려앉았고,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크게 놀랐다.

그러나 석목은 주위의 반응을 무시한 채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사유지의 대문으로 걸어 들어갔다.

“길을 안내해라.”

석목의 말에 부방주 맥정이 급히 대답했다. 그는 주위의 부하에게 눈짓을 하고 앞장서서 사유지 안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을 보고 어쩔 줄 몰라 하던 부하들도 하는 수 없이 석목을 쫓아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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