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화. 찾다
만롱산맥의 낭현봉(琅嬛蜂).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이 산봉우리의 정상을 마치 하얀 천처럼 덮고 있었다.
산봉우리 위에는 건물들이 세워져 있었고, 우아하게 꾸며져 있는 것으로 보아 여자들이 머무는 곳인 듯했다.
이곳은 바로 천음차녀의 거처가 있는 곳이었다.
그중 한 건물의 커다란 방 안, 기선이 요정 같은 소녀와 마주앉아 있었다.
그 소녀는 바로 석목이 늘 그리워하는 천음차녀였다.
그녀는 몇 년 전 석목이 숲에서 만났을 때보다 더욱 어려진 것 같았다. 아직 성인도 채 되지 않은 소녀처럼 보였다.
두 사람 사이에 놓인 탁자 위에는 한기를 뿜어내는 하얀 옥상자가 놓여 있었다.
“석목?”
천음차녀가 살짝 놀라며 말했다.
“맞아요. 반나절 전에 산 아래에서 우연히 만났어요. 그가 이 물건을 사숙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했어요.”
기선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천음차녀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잠시 후, 그녀가 옥상자를 열자 상쾌한 향기가 섞인 한기를 뿜어내는 청명과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것은… 청명과!”
놀란 표정으로 말을 내뱉은 천음차녀의 호흡이 잠시 가빠졌다.
기선은 눈썹을 찌푸리며 궁금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청명과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가슴속까지 깊이 스며드는 과일의 향기, 그리고 천음차녀의 흥분한 표정을 봤을 때, 평범해 보이는 이 푸른 과일이 굉장히 진기한 물건이라는 것을 추측할 수 있었다.
“그는 지금 어디에 있지?”
천음차녀가 청명과를 보고 잠시 망설이다 물었다.
“산에 오르는 것은 곤란하다며, 상자를 건네주고 바로 떠났습니다.”
기선이 사실대로 말했다.
놀란 표정을 짓던 천음차녀는 다시 평상심을 되찾고 상자를 덮었다.
그녀가 손을 움직이자 손가락에 끼워진 푸른색 반지에서 푸른빛이 반짝이더니, 상자가 어디론가 사라졌다.
기선은 부러운 눈빛으로 그 반지를 바라보았다.
천음차녀의 반지는 굉장히 희귀한 공간속성의 부기(符器)였다. 물건을 편리하게 보관할 수 있어서, 무거운 물건을 휴대하는 수고를 덜어주었다.
공간법기는 수량이 매우 적었으며, 7종문에서도 선천등급 이상에 다다른 소수의 인원만이 어쩌다 한 개 가지고 있을 정도로 귀했다.
“석목이 이곳에 왔던 사실은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말거라.”
천음차녀가 말했다.
“네.”
기선은 호기심이 일었지만 곧바로 대답했다. 석목의 부탁을 완수한 그녀는 더 이상 그곳에 머물지 않고 빠르게 자리를 떠났다.
천음차녀는 창가로 다가가서 솜 같은 구름을 보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잠시 뒤 그녀는 몸을 돌려 방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 * *
동해 해저의 어느 곳, 각양각색의 산호와 수정으로 만든 거대한 궁전들이 세워져 있었다.
어두컴컴한 해저에 길게 늘어서 있는 이 궁전들은 때때로 눈부신 빛을 뿜어내 해역을 휘황찬란하게 비추었다.
그중 가장 화려하고 커다란 궁전에서 무언가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는 듯,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그곳에는 화려한 옷을 입고 머리에 금색 뿔이 두 개 있는 노인이 상석에 앉아 있었다. 기운을 숨기고 있는 노인의 몸에서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위엄이 느껴졌다.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논쟁을 지켜보고 있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앞에는 양측으로 나뉜 해족들이 서로 대치하고 있었다.
왼쪽 무리의 대표는 파란색 옷을 입고 있는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그녀의 맞은편에는 등에 거북이 등껍질을 메고 있는 노인이 서서 다른 무리를 대표하고 있었다.
아름다운 여인의 옆에는 조개소녀 향주가 있었다. 멍하니 고개를 숙인 채 발끝을 보고 있는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인족과 야만족이 연합을 했으면 또 어떻습니까? 인족은 과거에 수많은 해족을 잡아 죽였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에는 더 심해졌지요. 반드시 피의 복수를 해야 합니다!”
거북이 등껍질 노인의 옆에 있는 훤칠한 체구의 해족 사내가 성난 얼굴로 말했다.
그러자 아름다운 여인 쪽에서 푸른색 얼굴의 해족이 즉시 반박했다.
“귀환한 순찰대의 말에 따르면, 인족과 야만족의 정예병들이 이미 대부분 바닷가로 이동했다고 합니다. 무턱대고 공격한다면 우리의 손실도 적지 않을 것입니다.”
맞은편에 있는 또 다른 해족이 무언가 말하려 할 때, 갑자기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성녀가 이미 고대 야만족의 비술을 얻었으니, 즉시 사용해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성공만 한다면 인족이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그러자 등껍질을 멘 노인이 두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고대 야만족의 비술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자원이 필요합니다. 성공한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만일 실패한다면….”
“승상의 뜻은 그 책임을 제가 지라는 것인가요? 이 일은 동해 수족의 진흥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이번 기회는 천 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기회이기도 하고요. 만약 계속 미루다가 무언가 이변이 발생한다면 승상이 책임을 지겠습니까?”
여인이 차갑게 말했다.
“말씀이 과하시군요. 저는 그런 뜻이 아니었습니다.”
등껍질을 멘 노인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양측의 논쟁이 계속 이어지는 와중에, 낮고 위엄 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둘 다 싸울 필요 없다. 인족을 침략하는 것은 잠시 미뤄두고, 병력을 축소시켜 전선만 유지한다. 남 부인은 성녀와 함께 최대한 빨리 무진을 연구하도록 하고, 오 승상은 진법에 필요한 재료를 모으도록 해라.”
머리에 금색 뿔이 길게 자란 노인은 말을 마친 뒤, 대답을 듣기도 전에 몸을 일으켜 밖으로 걸어 나갔다.
* * *
석목이 만롱산맥을 떠난 지 이틀 째 되는 날 오후.
산의 안개가 피어올라 산자락이 마치 구름의 바다처럼 변해 있었으며, 하늘에도 흰 구름이 무성히 포개져 있었다.
푸르른 산봉우리들은 마치 위아래의 두 구름바다 사이를 연결하는 계단처럼 우뚝 솟아 있었다.
그중 한 산봉우리의 정상에 있는 숲속에 커다랗고 맑은 수만 평의 호수가 있었다.
옥 같은 청록색을 띤 호수의 중심에는 고풍스러운 팔각정이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그 정자는 물가로 이어지는 구불구불한 회랑과 연결되어 있었다.
한 소녀가 팔각정의 난간에 기대어 호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눈처럼 하얀 옷을 입은, 요정 같이 아름다운 소녀였다.
그녀의 옆에는 금색 옷을 입고 몸매가 풍만한, 어여쁘게 생긴 여인이 서 있었다. 그녀는 푹 빠질 것만 같은 눈망울로 소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참 후, 흰 옷의 소녀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이번에는 무슨 일로 찾아온 거야?”
그러자 금색 옷을 입은 여인이 숙연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미 결정한 거야?”
소녀는 잠시 침묵하다가 대답했다.
“맞아.”
금색 옷을 입은 여인이 낯빛을 흐리며 말했다.
“그렇게까지 강해지고 싶은 거야? 세상에서 가장 강해진다 한들 무슨 쓸모가 있니?”
“이 기회는 삼십 년에 고작 한 번뿐이야. 예전에 선택받지 못해서 줄곧 아쉬워하시는 사부님의 염원을 내가 대신 이루어드리고 싶어.”
흰 옷의 소녀가 천천히 말했다. 그러자 금색 옷의 여인은 하찮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사문에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너를 보내는 것이겠지? 흥, 그게 사람을 파는 것과 무엇이 다르니!”
“그렇게 말하지 마. 이 일은 종문과 나에게 있어서 모두 좋은 일이야. 네가 상관할 필요 없어.”
흰 옷의 소녀가 미간을 찌푸리며 언짢은 말투로 말했다,
소녀의 말을 들은 금색 옷의 여인은 침묵하다가 한참 후 다시 물었다.
“화무의 자질도 결코 떨어지지 않는데, 어째서 그녀가 가지 않는 거야?”
“화무는 그토록 짧은 시간에 선천 경지에 오르지 못해. 그리고 대제국의 왕이 슬하에 아들이 없으니 화무는 왕위를 계승해야지.”
흰 옷의 소녀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금색 옷의 여인은 눈동자를 굴리다가 다시 물었다.
“석목은 어떻게 하고? 그의 잠재력은 장로들의 예상을 뛰어넘어. 그는 전혀 상관없는 거야?”
“나…나와 그는 아무 관계도 아니야.”
흰 옷의 소녀가 깜짝 놀라며 당황한 말투로 얼버무렸다. 그러나 금색 옷의 여인은 능구렁이 같은 표정으로 재차 물었다.
“정말 아무 관계도 아니야? 너희 사이에 약속이 있지 않았어?”
잠시 침묵하던 소녀의 몸이 순간 사라졌다. 그녀는 몇 장 떨어진 곳에서 잠시 나타났으나, 다시 순식간에 사라졌다.
“내 결정은 바뀌지 않을 거야!”
모습을 감춘 소녀의 목소리만 멀리서 들려왔다.
금색 옷의 여인은 멀어지는 소녀를 바라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
* * *
사령계.
차가운 기운을 뿜어내는 검은 산봉우리들이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아 있었다.
산봉우리 아래의 지면은 황량한 모래바닥이었으며, 그 모래 역시 전부 검은색이었다. 산봉우리와 산봉우리 사이에는 뼈가 시릴 정도의 강풍이 끊임없이 몰아쳤다.
모래바닥 위에는 무수히 많은 해골의 잔해가 널브러져 있었다.
그 잔해들은 사람의 뼈와 괴수의 뼈가 섞여 있었으며, 그중 어떤 것은 절반 정도 묻혀 있었다. 아마도 모래의 더 깊숙한 곳에는 분명 더 많은 해골이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한 줄로 늘어선 해골들이 차가운 바람을 뚫고 전진하고 있었다.
가장 앞에서 걸어가고 있는 해골은 연나였다. 연나는 영혼의 화염을 반짝이며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강하게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기가 쉽지 않았지만, 연나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뒤따라오는 해골군단은 거의 전력을 다한 질주로 연나의 속도를 가까스로 따라잡고 있었다.
바람은 검은 산봉우리의 깊은 곳으로 들어갈수록 점점 강해지더니, 곧이어 검은 모래폭풍이 일기 시작했다.
연나는 크게 영향을 받지 않았지만, 그의 뒤를 쫓아오던 해골군단 중에서 약한 해골들은 모래폭풍에 휘말려 날아갔다. 그들은 바닥에 곤두박질쳐져 박살이 났다.
그러나 연나는 등 뒤의 상황을 전혀 모르는 듯 빠른 걸음으로 계속 전진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들은 두 산봉우리의 중간에 위치한 협곡에 도착해 발걸음을 멈췄다.
처음에는 백 구가 넘게 있었던 해골군단은 이제 서른 구에서 마흔 구 정도만 남은 상태였다.
연나는 그곳에서 마치 무언가를 느끼려는 듯 짙은 남색 영혼의 화염을 반짝였다.
이어 갑자기 몸을 떨더니 단숨에 수십 장 떨어진 곳까지 달려갔다. 그리고 입을 벌리고 소리 없는 영혼의 파동을 내뿜었다.
그러자 해골군단이 연나의 곁으로 달려와 손으로 바닥을 파기 시작했다. 연나 역시 두 손으로 빠르게 바닥의 검은 모래를 파냈다.
모래 속에는 썩은 지 한참 된 무수한 해골이 묻혀 있었다.
수십 구의 해골이 힘을 합쳐 검은 모래를 파내자, 눈 깜짝할 사이에 몇 장 깊이의 커다란 구덩이가 생겼다. 그러나 아래로 내려갈수록 토질이 점점 딱딱해져서 해골병사들은 더 이상 땅을 팔 수 없었다.
오직 연나만이 단단한 바닥을 마치 두부 다루듯, 가볍게 파내고 있었다.
연나가 모래를 헤치자 회색 뼈의 일부분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뼈는 바닥 깊이 묻혀 있었지만 전혀 부패된 흔적이 없었다.
연나가 영혼의 화염을 크게 빛내며 빠르게 주위의 모래를 파자 회색 뼈의 온전한 모습이 드러났다. 그 뼈는 발가락뼈까지 연결되어 있는 오른쪽 다리뼈였다.
다리뼈를 들어 올린 연나가 감격한 듯 전신을 살짝 떨었다.
잠시 후, 연나가 다리뼈를 들고 일어났다. 그리고 옆에 놓여 있던 뼈창을 쥐더니 순식간에 자신의 오른쪽 다리를 베어냈다.
뒤이어 자신의 손에 들려 있던 회색 뼈를 절단면에 가져다 대자, 회색 뼈에서 흰 빛이 반짝이더니 완벽하게 연나의 몸과 연결됐다.
새로운 다리뼈에서 갑자기 흰 빛이 떠올랐고, 곧 연나의 전신을 전부 뒤덮었다.
반 각 후, 연나의 몸을 감싼 빛이 천천히 빛의 구로 변해, 두개골에 흡수되었다.
쾅!
강력한 영혼의 파동이 연나의 두개골에서 뿜어져 나왔다. 연나의 영혼의 화염이 완전한 남색으로 변했다.
그뿐만 아니라 연나의 몸에서는 이전보다 더욱 강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주위의 해골군단은 연나가 더욱 강해진 것을 느끼고 일제히 바닥에 엎드렸다.
연나가 갑자기 손을 흔들자 손에서 흰색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 빛은 그곳에 있는 모든 해골의 몸을 순식간에 뒤덮었다.
해골들은 몸을 떨었다. 그들의 영혼의 화염이 순식간에 왕성해졌다.
연나가 팔을 내리고 창을 흔들자, 해골군단이 몸을 일으켜 다시 전진하기 시작했다.